2012.02.17 20:13

요정의 허물 1-3

조회 수 2865 추천 수 0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bb.jpg  
 
 
 
 
  〃나는 널 구하고 싶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쓴 일지도 다시 읽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메이아를 어떻게 대했었는지 전혀 모르겠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떤 식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 나는 어떨 때 웃었었지? 웃은 적이 있었나? 오히려 찡그린 표정으로 그녀와 대화했었나?
  아침, 직접 메이아와 대면했을 때 불현듯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마 객관적으로 봤을 때 웃긴 행동도 많이 했을 것이다. 메이아도 그런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어디 아프니?"
 
  하고 걱정해주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나를 걱정해준 것일까? 혹시 내가 무언가를 눈치채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며 떠보는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어지러움이 극에 달할 때처럼 머릿속이 새하얗다. 어쩌면 진짜로 어지러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메이아가 돌아가고 난 후에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후 저녁때까지 탐색을 하다가(일지는 제대로 챙겼다) 밤이 되어서야 다락방으로 돌아왔다. 메이아도, 엘립도 없었다. 메이아가 가져다준 음식뿐이었다. 메이아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음식을 가져다준 것일까. 신경 쓰기 싫은 데도 신경 쓰게 된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확실하게 대화를 해야겠다.
  오늘 일지는 여기까지.〃
 
 
 
 
 
  〃구해주고 싶어. 그러니 내가 말한 대로 해주겠니? 나는 메이아. 하지만 네가 아는 메이아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아. 어쩌면 정말 네 친구 중에 메이아가 있어서 그 메이아가 등장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지금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레인, 제발 네 거짓말을 똑바로 바라봐 주었으면 해. 그게 힘들다면 작은 거짓말부터 부수도록 해.
  그러기 위한 힌트를 줄까?
  너는 죽었어야 했어.〃
 
 
 
 
 
  〃비명을 지를까? 이번에도 고민했다. 그러나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도 나는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이 일지를 작성하고 있다.
  이젠 나름 정이 든 책 침대에서 눈을 떴다. 메이아는 이미 음식을 두고 갔다. 아침에 만나면 제대로 대화해보려고 했는데, 하고 생각했다. 음식에 손을 대려고 다가가는데 어떤 책이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이 방의 어떤 책보다도 눈에 익은, 엘립에 관한 나의 일지다. 그 일지의 첫 장이 펼쳐진 채로 있었다.
  거기에는 '거짓말쟁이'라는, 쓴 적도 본 적도 없는 글이 쓰여 있었다. 놀란 나는 무심코 책장을 넘겼다. 내 기록의 사이사이에 못 보던 글들이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엘립이 장난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보이지 않는가? 위의 '나는 메이아'라는 문장이.
  비명을 지를 거다. 지르는 거다. 뭐가 구해주고 싶다는 것이냐. 뭐가 나는 죽었어야 했다는 것이 힌트라는 것이냐. 이해할 수 없어.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내 손도 비명비명비명비명비명명비?비명비명비!명비명비명비명비명비명비명비명비명비명비명비명을 지르고 싶어해서 나는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손도 비명을지를수 있던가하는 건 아무런 상 관 도 없는 질문일까그 래도 별 상관없지 는않을까 나는거 짓말쟁이가 아닌데왜자꾸 거짓  말     을 나 자신을 믿지 말라니 그럼 누구를 믿어야 하는 건 도둑 위협받고 있어 친구한테 나는 목숨을위협받고 있어 메이아가 아니 친구야친구가 아니야 그것부터 확실히 해주면 차라리 마음은 편        할거라고생각하는데 메이아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편하긴 데 뭐가 편해 거꾸로 매달린 레인은 비명비명비명을 지르자!〃
 
 
 
 
 
  〃엘립, 나를 구해줘요.〃
 
 
 
 
 
  〃엘립이다. 엘립이 나를 흔든다. 흔들어서 계속 흔들어서 이히히히히. 히히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나를 위협하는 메이아가 있고 그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엘립이 다락방에 같이 있어준다는 그런 망상을 하고 싶은 것일까. 정말 어쩔 수 없는 거짓말쟁이다.
  엘립이 나를 진정시키고 나서 나는 내 일지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부끄러움? 그런 건 있었는지 없었는지 잘 모르겠다. 부끄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이 또한 거짓말일지 나 자신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거짓말쟁이니까.
  나는 어버버, 거리며 떨리는 입을 주체하지 못하며 그에게 나를 지켜달라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얼굴이 경직돼서 그런지 발음이 뭉개졌다. 말을 하는 게 이렇게나 힘든 것인 줄 정말 몰랐다. 말로는 의미 전달이 힘들 것 같아 나는 엘립에게서 일지를 빼앗고 빈 부분에다가 나를 구해달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걸 엘립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엘립은 그 글씨를 보지 못했다. 그 순간 내가 메이아의 힌트를 이용해서 답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쳐있는데도 머릿속은 제멋대로 돌아가고 있었는지 갑작스레 이해해버렸다. 내가 죽었어야 했다는 말의 의미를.
 
  "엘립. 정말 나는 아무도 믿으면 안 되나 봐요."
 
  엘립도, 그리고 나 자신도 말이다.
  나는 아까 먹으려다 만 빵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것을 입으로 가져다 댔다.
  이빨을 세우고, 빵의 촉촉한 부위를 강하게 문다.
  천천히, 씹는다.
  삼켰다.
 
  '그리고 나는 내가 먹은 것을 토해냈다'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빵을 입으로 씹고 삼켰으며 토해내지 않았다. 음식을 먹지 못하는 병에 걸린, 공기와 물 밖에 먹을 수 없었던 레인이 정상적으로 식사를 끝마쳤다. 그렇다는 건.
 
  "엘립. 당신이 내게 먹인 것은 단순한 감기약이 아니었군요."
 
  상상력이 부족한가 보다. 그때 엘립이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건 모든 병을 치료하는 영약이었겠지요. 아니라면 나는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요. 내가 걸린 병은, 고비를 넘길 때 감기 같은 증상이 나타나니까. 이 병이 완치되려면 그런 영약이 아니면 안 되겠지요. 당신은…… 정말로 기억을 훔치는 도둑이었군요.
  감기약이라니……. 결국 당신도 믿지 말라는 말은, 당신이 내게 거짓말을 했다는 소리였어."
 
  나는 그때 화가 났었나? 잘 모르겠다. 그 대신 나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작은 거짓말. 그렇다면 큰 거짓말은 무엇일까?
  해답은 금세 나왔다.
 
  "그래, 당신이 이런 이른 아침에 이곳에 방문한 이유도 알았어요. 조금 전까지 매도하는 듯한 말을 해서 죄송해요. 당신이 거짓말을 한 건 내 탓이에요. 내가 거짓말쟁이니까, 당신도 거짓말쟁이일 수밖에 없었던 거였어요."
 
  이제야 엘립의 표정이 보였다. 의아한 표정이었다. 이제 와서 그런 것이 정말로 웃겨서 웃음이 나왔다.
 
  "처음부터 나는 병 같은 것에 걸리지 않았어요.
  당신이 지금 이곳에 있는 건, 제가 스스로 한 거짓말에 마주할 각오가 되어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마주할 수 있도록 메이아가 의도적으로 만든 상황일까요. 둘 중 하나인 건 분명해요.
  엘립 묠리스. 세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아무것도 훔치지 않는다는 도둑. 타인의 기억을 훔친다는 도둑.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저는 모르지만요. 한 가지는 알아요. 내 앞에 있는 당신은……"
 
  어찌 그 한마디 하기가 그리 어려운 건지.
 
  "제가 지어낸 거짓말이란 사실을요."
 
  그는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농담도 정도껏 하라고. 설마 너 마법에 미쳐 버린 것은……."
 
  물론 목소리도 떨고 있었다. 그 굵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이제는 얇고 희미하게 느껴진다.
 
  "그럼 지금 당장 내 과거의 기억을 훔치세요. 훔칠 수 있나요?"
 
  "그건……."
 
  "할 수 없다면! 더는 내게 신경 쓰지 마세요. 가공의 인물."
 
  그에 비해 내 목소리는 자꾸 커져만 간다.
 
  "당신, 정말로 짜증 나."
 
  이미 엘립은 사라진 뒤였다.〃
 
 
 
 
 
  〃아니, 엘립이 사라졌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내 몸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는 느낌이니까.
  내가 있는 곳은 수많은 장서가 높다랗게 쌓여있는 다락방이 아니라, 처음 보는 거대한 방이었다. 가운데에 거대한 기둥이 있고, 또 그 크기에 어울리는 거대한 괘종시계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라, 방은 공허해 보였다.
  나는 차근차근 내 일지를 들고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았는데 벌써 여기까지 적었다. 이제부터는 실시간으로 적겠다.
  여기까지 기록한 다음 나는 앞을 보았다. 괘종시계 앞에 여자아이가 있다. 거대한 괘종시계 앞에 있어서 그런 것인지 매우 왜소하고 아담하게 느껴졌다. 달이 뜨지 않은 밤을 연상시키는 검은색 머리카락이 땅까지 닿는 신비한 분위기의 여자아이다.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알고 있다.
 
  "메이아."
 
  그 이름을 부르고 나서,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내가 아카데미 시리프에 숨어들면서까지 찾아내려던 무언가. 그 무언가는 바로 이 신비로운 소녀 메이아 였던 것이다. 엘립에 관해 기록해나간다면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내 예상이 결국 맞은 것이다.
  메이아가 입을 열었다.
 
  "과거의 기억을 잊고 싶어?"
 
  그렇다. 비록 내가 지어낸 거짓말이었지만, 엘립이 말했던 것처럼 마법은 존재한다. 메이아는 그 마법을 쓸 수 있을 터다(내가 지금 여기로 올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마법 덕분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찾아 헤맨 것이다. 과거의 기억을 잊고 싶어서. 그렇다면 여기서 나는 고개를 끄덕여야 할 것이다.
  나는 글씨를 적어 내려가며 고개를 저었다. 어라, 왜 이러지? 나는 왜 지금 고개를 젓고 있는 거지? 눈물은 또 왜 나오는 거지? 조울증은 내가 지어낸 거짓말이 아니었던가?
 
  "아니야?"
 
  메이아가 다시 물었다. 나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나를 훔쳐 줘.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나에 대한 기억을 훔쳐 줘."
 
  그녀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야 당연하다. 말을 하는 나조차도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었다.
  이젠 이 일지에 기록할 이야기는 없을 것 같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의 일지를 마친다.〃
 
 
 
 
 
 
 
 
 
 
/사족/
에포합니다. 사랑입니다.
사실 이번 회를 다 쓰고 나서, 저는 에피소드가 거의 끝났구나, 하고 착각했습니다. 실상은 반도 채 쓰지 못했는데도 말입니다. 어쨌든 이번 회도 읽는 분들께 죄송한 것투성이군요.
불친절 불친절.
  • ?
    행인 2012.02.17 21:54

    음... 에피소드 진행이 어떻게 되는걸까요... 이전 편에서 내용이 좀 명쾌해졌다 싶었더니 다시 혼란스럽네요. 내용 자체가 레인의 일지를 기반으로 진행되다보니 주인공의 심리 상태에 글이 엄청 크게 영향을 받는 것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이 안개에 끼인 것같이 흐리게 느껴지네요.


    그래도 재밌습니다. 일지를 기반으로 스토리를 진행하는게 이 소설 특유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이 소설 내용을 제대로 감 잡으려면 한참을 더 읽어야 할 것 같지만...

  • ?
    epoh 2012.02.18 00:05

    ㅜㅜ 용두사미의 비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 요정의 허물 1-6 (EPISODE 1 끝) 4 file epoh 2012.02.17 2520
6 요정의 허물 1-5 2 file epoh 2012.02.17 2829
5 요정의 허물 1-4 2 file epoh 2012.02.17 2994
» 요정의 허물 1-3 2 file epoh 2012.02.17 2865
3 요정의 허물 1-2 2 file epoh 2012.02.17 2843
2 요정의 허물 1-1 2 file epoh 2012.02.17 3139
1 요정의 허물 0 2 file epoh 2012.02.17 3894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