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17 19:29

요정의 허물 1-2

조회 수 2843 추천 수 0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bb.jpg   
 
 
 
 
  〃왜 나를 너의 망상 속으로 끌어들이지 못해서 안달이 난 건지 나는 잘 모르겠어.〃
 
 
 
 
 
  〃일지 기록을 하루 걸렀다. 일단 메이아에 대한 이야기를.
  메이아는 종잡을 수 없는 아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신비하고 비밀스럽다는 말이다. 본래라면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이 일지에다 기록할 예정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적어야 할 모양이다.
  달이 가려진 밤이었다. 기억나는 것은 그런 밤하늘 풍경뿐이며,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또 그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하늘을 꿰뚫을 듯한 메타세쿼이아들이 늘어선 숲이었는지, 빛이 없어 오로지 흑색만 그득한 바닷가였는지. 또 자신의 특이체질이 병인지도 몰랐던 어린 시절이었는지, 삶에 필요한 지식을 순수와 맞바꿔 알아가는 나이었는지. 대부분이 불분명한 그런 밤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며 신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메이아와의 첫 만남이었지만, 뜻밖에 그 전에 우리는 몇 번 마주쳤는지도 모른다. 애석하게도 그때 그녀와 나눈 대화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면 대화 같은 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 우리는 헤어졌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우리 사이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신뢰가 생겨나 있었다. 그 점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껏 눈치 못 챌 정도로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며칠 정도 전에 나는 아카데미 시리프에 잠입하기로 했다. 사전준비의 일환으로 건물의 배치와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근처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카데미 부지 외곽을 걷는 사람 중에 유달리 눈에 띄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땅에 닿는 긴 흑발의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며칠 후, 혹은 몇 년 후에 만난 메이아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내가 그녀에게 사정을 말하자 그녀는 자신의 기숙사 방을 사용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덕분에 예정보다 빨리 아카데미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이곳 다락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메이아와 나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접점이 없는 것 같다. 서로 친구라고 인식하고 있을 뿐 친구로서의 추억이나 연대감은 없는 것 같다는 말이다. 이처럼 묘한 관계인데도 엘립이 그에 관한 얘기를 하기 전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 내 심정은 알트겐이 읊었던 시의 어느 구절과 같았다. 『혹자』의 '깨달음' 부분이었나?
 
  "자(者)가 느끼기에 이것은 지진인데, 둘러보니 자의 몸(自身)이 떨고 있었네."〃
 
 
 
 
 
  〃미안. 갑자기 못 보던 글씨가 적혀있어서 깜짝 놀랐지? 너는 이곳에 무엇이 적혀있든 인정하지 않을 테지. 솔직히 나도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인지 모르겠어. 모르지만, 어쩌면 내 탓이야. 그런 걸 네게 보여버린 탓에 너는 미쳐버린 거야.〃
 
 
 
 
 
  〃그래서 이 뜬금없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이유는 주지했다시피 엘립과의 대화다. 즉, 나의 예감이 맞아떨어졌는지 자칭 엘립이 다락방에 방문했다는 이야기다. 일단 어제 깨어나서부터의 일을 적겠다.
  깨어났을 때 보였던 것은 막 다락방에서 나가려는 메이아였다. 간단한 아침 식사로 빵 조금과 우유를 가지고 왔다가 내가 자는 걸 보고 그릇만 놔두고 내려가려는 것이었다. 그런 메이아를 나는 불러세웠다.
  메이아는 아침에 무슨 꽃이 핀 것을 보았다는 둥, 어제 선생님에게 혼났다는 둥 시답잖은 것을 이야기했고, 나는 참 예뻤겠구나, 참 우울했겠구나, 시답잖은 대답을 했다. 보통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고 우리는 서로 나중에 보자며 인사했겠지만, 어제만큼은 달랐다.
 
  "이 장소에 대해 다른 누군가에게 말한 적 있니?"
 
  그렇게 묻자,
 
  "누가 왔었어?"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잠시간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할지 말지 고민했다. 결정을 내리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매끼 음식을 가져오게 하는 것도 미안한데 걱정까지 끼칠 수는 없다. 거기에 엘립이라는 자가 위험하지 않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몸살 기운이 싹 가시지 않았기에 널려있는 책을 읽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 고서라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저녁 즈음에 꽤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는데 폭스 필렙이라는 작가가 쓴 『가장 아름다운 심장을 도둑맞다』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딸을 가진 아버지와 사람의 기억을 훔치는 도둑 엘립의 대결을 그린 소설이었다. 설정만 놓고 보자면 어디에나 있는 삼류 같지만 의외로 흡입력을 가지고 있어서 재미있었다. 그렇게 대단원이 끝나갈 즈음 아직 익숙하지 않은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라면 좀 더 멋진 말을 했을 거야."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를까 잠깐 고민했다. 역시 이곳의 위치를 내부인에게 들킬 우려가 컸기 때문에 관뒀다(이런 고민을 할 때마다 내가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재인식한다).
  그였다. 자칭 엘립. 언제 또 들어온 건지.
  나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고 책을 덮으며 그에게 말을 붙였다.
 
  "정말로 사람도 훔칠 수 있나요?"
 
  "글쎄."
 
  "못 한다면 못 한다고 해요. 가공의 인물."
 
  "훔치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것이 사람으로 보일까? 아마 물건으로 생각할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들어 봐. 사람을 훔친다는 말은 어색하지?"
 
  우리는 서로 마주 보았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마 짜증 나서 짓는 웃음일 것이다.
 
  "정식으로 소개할게요. 저는 레인이라고 해요. 가명이지만."
 
  "얼씨구. 어제는 반말 찍찍 싸대더니 오늘은 왜 그러세요?"
 
  "어젠 몸이 안 좋았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열 받으면 막말해도 된다는 거지?"
 
  "그 점에 대해서는 사과드릴게요."
 
  "여기서 또 트집 잡으면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한 소리 듣겠군."
 
  적어두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나는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 짜증 나는 남자다.
 
  "정식이고 뭐고 어제 말했듯이 난 엘립 묠리스야. 물론 가명이지만, 도둑으로서 진짜 이름이기도 하지."
 
  그것이 진짜 이름이든 가짜 이름이든 상관없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가 이곳을 방문한 목적이다. 다시 이곳을 찾은 목적이 무엇이냐, 그렇게 묻자 그의 대답은 이랬다.
 
  "이젠 비밀도 뭣도 아니지만 나는 명색이 도둑이야. 들어 봐. 시리프라고 하면 부의 도시잖아? 그곳에 있는 교육시설이라고 하면 명문이라고, 명문. 비싼 게 많을 거 아니냐. 그래서 훔쳤어. 훔치고 싶었던 것을 훔쳤으니 슬슬 아카데미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었지. 그러다가 이상한 게 눈에 띄어서 와봤더니 이런 비밀장소가 있지 뭐야? 그렇다면 이곳 외에 다른 비밀장소가 있을 가능성도 높아지지."
 
  "그러니까 비밀장소 꽁무니나 쫓아다니지, 왜 여기로 오는 거냐고요. 여긴 당신이 원하는 금은보화 같은 건 없어요. 보시다시피 낡아빠진 책들뿐인데요."
 
  "정보를 얻으려고. 어차피 너도 뭔가를 훔치려고 이곳에 숨어든 거 아니냐?"
 
  "남이야. 사람은 아는 만큼만 보인다더니 꼭 그렇네요. 그렇게 캐내고 싶으면 당신의 그 잘난 기억 훔치기로 캐내어 보시던가요."
 
  엘립은 처음으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가 설령 진짜 엘립이라고 해도 기억을 훔친다니 말도 안 된다. 기억을 훔치는 도둑은 그것을 바라는 사람들의 환상이며 상상이며 망상일 뿐이다. 만약 그런 도둑이 있다면, 그리고 그가 그 능력으로 정의로운 일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처음에는 분명 엘립이라는 도둑에 대한 한두 줄짜리 문장으로 된 소문에 불과했겠지만, 점점 더 사회가 바라는 인물상이 더해져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리라.
  어떻게 하면 엘립을 좀 더 놀려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엘립이 먼저 말을 꺼냈다.
 
  "훔칠 생각이야."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고 하면 믿겠는가? 누가 처음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기가 막힌 비유다. 얼어버린 공기로는 숨을 들이마실 수도 내뱉을 수도 없다. 또한 몸을 움직일 수도 없으며, 그 차가움에 온몸이 찢길 것만 같다. 엘립에게 향한 시선을 회피하고 싶었지만, 눈동자마저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들어 봐. 훔치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내가 네게서 ㄱ을 훔치면 너는 ㄱ을 잃게 되는 거라고. 만약 내가 정보를 얻기 위해 네 머리를 쪼개어 이곳에서의 기억을 훔친다면 어떻게 될까?
  네가 아카데미 시리프에서 무엇을 하든 상관없고, 딱히 너를 방해할 생각도 없어. 이렇게까지 말해줬는데도 이해를 못 하는 멍청이라면 정말로 기억을 훔칠 거야. 나에 대한 기억은 어차피 훔칠 생각이었지만."
 
  분위기? 분위기 따위 처음부터 없었지만, 굳이 말하자면 이후의 분위기는 서먹서먹했다. 뭔가 대화를 나눴던 것 같은데 자세하게 적지는 않겠다. 기억도 나지 않고.
  별다른 작별인사도 없이 그는 다락방에서 나갔고, 그가 나간 후에도 당황한 상태였던 나는 일지를 쓰는 것도 잊고 잠을 청했다.〃
 
 
 
 
 
  〃이건 네 내면이니? 아니면 그것을 반영한 이야기니?〃
 
 
 
 
 
  〃이어서 오늘 있었던 일을 기록하겠다.
  몸 상태가 멀쩡해졌다. 감기에 걸리기 전보다도 팔팔해졌다고 착각할 정도로. 그래서 며칠 동안 하지 못했던 탐색을 재개했다. 이 일지는 엘립과 관계된 것들만 적을 생각이므로, 탐색 과정이나 성과를 자세하게 적지는 않겠다.
  탐색을 마치고 나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학생도 선생도 드문드문했기에 비교적 마음을 놓으며 다락방으로 돌아왔다. 방금 비교적 마음을 놓았다고 적었나? 다락방으로 들어간 순간 나는 마음을 꽉 죌 수밖에 없었다. 이 일지를 읽고 있노라면 다락방에 엘립이 있을 것이란 예상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엘립이 있다는 것만으론 문제 될 건 없다. 단, 그 엘립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표지에 하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가죽 재질의 책이다. 어디서 많이 본 책이라고 생각했다. 저 책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다. 뭔가 적을게 필요해서 수많은 장서를 뒤지고 뒤져 찾아낸 빈 책이었던 것이다. 잉크와 펜은 메이아가 조달해 주었기에 기록을 시작할 수 있었다. 뭘 기록하느냐고? 당신도 참 바보다. 바로 이 일지 말이다.
  이 일지 말이다! 당황했다. 되찾는 과정에서 격한 몸싸움을 해버렸지만, 다행히도 엘립은 이 일지를 보지 못한 것 같다. 그가 이 일지를 보든 말든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아무 데나 던져뒀었는데, 막상 그가 이 일지를 읽을 것 같으니 굉장히 부끄러웠다. 부끄럽기도 부끄럽지만, 그가 화낼만한 말을 적어놓지는 않았는지 걱정도 되었고. 자신이 쓴 글을 남에게 보이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물쭈물 해봤자 어제처럼 이상한 분위기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잊는 것이다. 어제 있었던 일을 의도적으로 신경 쓰지 않으면 된다.
 
  "또 뭔가를 훔치러 온 것이겠죠."
 
  그러면 될 텐데, 어째서 나는,
 
  "타인일 뿐이니까 무언가를 훔치는데에도 거리낌이 없는 거겠죠.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멍청이라면 당연하다는 듯이 기억을 훔쳐도 된다는 건가요? 네, 훔쳐가세요. 차라리 그렇게 되면 마음은 편하겠네요. 이왕이면 과거의 기억까지 모두 다 가져가세요.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해버린 걸까. 당신도 어이없는가? 쓰고 있는 나조차도 어리둥절한데 읽는 당신은 오죽하겠는가.
  햇빛을 잘 못 봐서 그런 거다. 열등감 폭발이다. 외로워서 그랬다. 숨어 사는 게 서러워서 그랬다. 몸이 아파서 그랬다. 바깥, 또래의 아이들이 평범하게 사는 것을 보고 부러워서 그랬다.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그랬다. 어떤 이유가 당신에게 가장 와 닿을까? 사실 내가 조울증 환자일 뿐이다. 괜히 기쁘고, 괜히 슬플 뿐이다. 기쁘면 실없이 웃고 슬프면 눈물을 흘려버리게 되는 것이다.
  속 시원하게 울고 나니 근처에서 대충 집었는지 책 한 권을 들고 졸고 있는 엘립이 눈에 들어왔다. 싸구려 동정보단 이게 낫다고 생각한다.
 
  "왜 훔치는 거죠."
 
  그는 무시했다. 아까처럼 떼를 쓰는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확신하고 적지만 결코 그런 의도는 아니다.
 
  "어제부터 생각해봤는데 어색해요. 당신은 이곳에 비싼 물건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며 들어왔다고 했지요. 그걸로 변명은 끝이라는 듯이. 사실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금방 알아챌 수 있어요. 겨우 교육시설인데 비싼 게 뭐가 있다고. 차라리 아카데미보단 이 근처에 있는 저택에서 뭔가를 훔쳐내는 게 돈이 될 텐데요."
 
  엘립은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를 말할지 말지 갈등하는 것도 같았다. 내심 짜증이 나서 성을 내려고 했다. 타이밍도 좋게 한숨을 내쉬며 그가 말을 꺼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기억을 훔친다는 것보다 더한 거짓말은 없다. 내가 가만히 있자 엘립은 말을 이었다.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사실 나는 훔치는 것이 비싸든 싸든 상관 안 해. 레인, 너는 마법을 믿니? 안 믿겠지? 기억을 훔친다는 것도 믿지 못하는 녀석인데."
 
  물론이다. 믿지 않는다.
 
  "들어 봐. 놀랍게도 마법은 있어. 하지만 마법은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야. 세계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가령 불로불사의 약초가 있다고 치자. 누구나 그 약초를 구하기 쉬워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음절 하나하나를 강조하며 말했다.
  인 구 폭 발.
 
  "상상이 안 가겠지.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인간들의 성욕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구는 그것만으로도 문제가 되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들은 모든 식물과 동물들을 집어 삼킬 거야. 심지어 인간마저도.
  이번엔 다른 방향으로 가정해보자. 불로불사의 약초를 가진 인간이 있어. 그는 다른 사람에게는 그 약초를 넘기고 싶지 않아. 오로지 그 특권은 자신만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그는 자신이 신과 대등한, 아니 신이라고 생각해. 권력욕이 강해서 종교도 만들어. 이미 그의 눈엔 인간이 미천하게 보일 거야.
  그것이 전부라면 다행이지. 그의 자녀는 어떻게 될까?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어중간한 녀석들 말이야. 내가 보기엔 이래. 그들은 새로운 계급이 되어서 인간들을 지배할 거야. 지레짐작이 아니야. 그런 신화가 남쪽 대륙에도 존재하잖아?"
 
  반 신 반 인.
 
  "어느 쪽이든 광기에 집어 삼켜진다. 마법은 그래. 보기만 해도 보는 사람을 현혹하려 하고 자기 멋대로 조종하려고 해. 그래서 나는 그런 것들을 훔치고 있어. 어떤 사람도 기억하지 못하도록.
  혼자서 모든 마법을 훔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내가 훔치고 싶은 건 그중에서도 원류(原流)야. 모든 마법의 원형. 그것만 훔친다면 다른 마법들은 손쉽게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지금이야 딱히 단서가 없으니까 보이는 족족 훔치고 있는 거고. 훔치다 보면 우연히 조우할 가능성도 있고. 자, 설명 끝."
 
  설명 끝, 이라고 말했지만, 짜증 나게도 그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왜 훔치는지. 왜 마법을 훔치는지. 하지만 그 부분을 찌를 정도로 나는 무심하지 않다. 어떤 사정이 그를 옭아매고 있을지도 모르며, 그가 한 모든 말이 거짓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 거짓말일 것이다. 애초에 엘립 묠리스는 거짓말 같은 존재다. 가공인물인 것이다.
 
  "이 아카데미에 있었던 마법은 훔쳤어.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다른 마법을 훔치고 있었겠지만……. 이 다락방은 이상해. 너는 이곳이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절묘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이 다락방은 있어서는 안 되는 공간이야. 이렇게 큰 방인데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상하잖아? 보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 당연하겠지만."
 
  즉, 그 말은.
 
  "마법이지. 이 방 자체는 마법이 아닌데, 영향을 받고 있어. 있어야 할 공간을 부러 지워버렸다고 해야 할까. 나는 뭔가를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어. 숨기고 있는 건 마법이겠지. 그 마법만 훔치면 이 공간도 사라질 거야.
  내가 제일 궁금한 건 너야. 없는 공간을 찾아낸 데다가 거기에 거주까지 하고 있으니. 어떻게 이런 공간을 찾아낸 거지?"
 
  그렇게 물어본 들, 우연히 찾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이곳의 위치를 아는 건 너와 나뿐인가?"
 
  그건 아니다. 메이아도 이곳을 알고 있다.
 
  "메이아? 누구지?"
 
  아차. 무심코 대답해버렸다. 이미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었다.
 
  "친구예요."
 
  "자세하게 설명해 봐."
 
  내가 왜 당신에게 내 친구를 소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미 내 입은 메이아에 대해 줄줄 읊어대고 있었다. 아마, 그때 이미 나는 눈치챘었는지도 모른다. 메이아가 내 친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메이아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다. 엘립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비밀이 있는 사람을 조심해라."
 
  "비밀이 없는 사람도 있나요?"
 
  "그 말대로. 모든 사람을 조심하라는 얘기야."
 
  "좀 당황스럽네요. 확실히 수상쩍긴 해도 메이아는 친구에요. 몇 번 대화도 해보지 않은 사람의 말을 듣고 친구를 의심하라는 말인가요?"
 
  "이미 의심하고 있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때만큼 나 자신이 싫어진 적은 없었다. 그 후 그는 다락방에서 나갔다. 그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한 말은 그 자신도, 그리고 나 자신도 의심하라는 말로 들렸다. 그러고 보면 그는 어디에서 머물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메이아가 저녁으로 가져다주었을 빵을 먹었다. 그렇게 많은 양도 아니건만 다 먹지 못하고, 표지에 하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가죽 재질의 책을 펼쳤다.
  이에 오늘의 일지를 마친다.〃

 
 
 
 
 
 
 
 
 
 
/사족/
사랑합니다. 에포입니다.
일단 가독성 죄송합니다. 재미가 별로 없는 것도 죄송합니다. 제 글의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고쳐야 할 점이지요.
이런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번 일화는 정신 나간 일화입니다.ㅠㅠ 처음 기획했었을 때는 훨씬 심각했었어요. 더 난잡한 구성에 결말은 안드로메다로. 지금 이게 그나마 다듬은 결과입니다.
  • ?
    행인 2012.02.17 21:48

    슬슬 세계관도 드러나고 구체적인 갈등도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니 점점 재미가 붙는데요 뭘.


    이번 편도 잘봤습니다.

  • ?
    epoh 2012.02.18 00:03

    ...세계관이고 뭐고 전부 훼이크라는 점에서 저는 울어야합니다?ㅠ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 요정의 허물 1-6 (EPISODE 1 끝) 4 file epoh 2012.02.17 2520
6 요정의 허물 1-5 2 file epoh 2012.02.17 2829
5 요정의 허물 1-4 2 file epoh 2012.02.17 2994
4 요정의 허물 1-3 2 file epoh 2012.02.17 2865
» 요정의 허물 1-2 2 file epoh 2012.02.17 2843
2 요정의 허물 1-1 2 file epoh 2012.02.17 3139
1 요정의 허물 0 2 file epoh 2012.02.17 3894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