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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마드라를 떠나기 위해 말을 탄 채 한참을 달렸다. 일단 리디아의 국경이 나올 때까지 길을 따라가는 것이 목표이지만, 구체적인 목적지는 없었다.

 

 이미 길을 따라 나선지 몇 시간이 흘렀지만, 나와 루시아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길 따라 계속 앞으로 향하였다. 도로 상태는 제법 좋은 편이었다. 길과 숲의 경계는 확실히 눈으로 구분이 가능했고, 길을 따라가던 도중 작은 마을도 몇 개 지나쳤다.

 

 앞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마두라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생각은 더욱더 커져간다. 앞으로 쭉 뻗어있는 길을 보면 자꾸만 여러 가지의 생각이 떠오른다.

 

 슬쩍 고개를 돌려 루시아를 살펴보니, 굳게 다문 입술과 미묘하게 축 처진 그녀의 눈썹이 눈에 띄었다.

 

 조금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 알아보는 것이야 가능할 것이다. 하물며 347년 동안 여러 사람 사이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루시아.”

 

 루시아의 이름을 불렀지만, 한참을 지나도 대답이 없었다. 그녀의 표정을 봤을 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무게가 무척이나 커다랗다는 것을 미미하게 느꼈다.

 

 “루시아?”

 “······응?”

 

 조금더 크게 이름을 부르자, 눈을 흠칫 하더니 바로 표정을 바로 잡고 고개를 돌려 날 바라봤다. 하지만 그렇게 애써 표정을 바로 지어봤자, 내 눈에는 그저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처음 만났을 때 당당했던 표정과, 그녀와 함께 여행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한 게 만든 것은 얼굴에 새겨진 그녀의 신념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루시아의 얼굴에는 그 신념이 없다.

 

 “다음 마을에서 쉬었다 가지?”

 “하지만 이제 국왕에게도 쫒기는 몸이 되었을 텐데.”

 “아직은 괜찮아.”

 “어떻게 그걸 확신하지?”

 “날 따라오기로 한 이상 그냥 믿으라는 말밖에는 못하겠군.”

 

 루시아는 말없이 나를 노려보았지만, 태연하게 무시하고 다시 길을 바라보았다. 요 몇 십 년을 혼자 다녔다. 정확히 몇 년인지는 세어보지 않았다. 그건 나에게 무의미하니까.

 

 오랜만에 스스로 내린 결정이다. 하지만 그 루시아 에첸드레이커는 신념을 잃었고, 갈 곳을 잃었다. 레지스탕스가 된 파약기사 리아네스조차 자신의 신념은 굳게 지니고 레지스탕스로 활동 했다. 그런 점에서 더 이상 나에게 루시아 에첸드레이커는 큰 가치가 없었다.

 

 “마을이군.”

 

 어느새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의 규모는 제법 컸으며, 살펴볼 것도 없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많이 낡아서 페인트칠이 거의 벗겨진 간판에는 ‘여행자의 쉼터’ 라고 써져있었다.

 

 “2인실 하나요.”

 

 방을 달라는 말에 통통한 여관 주인은 루시아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서랍에 손을 넣어 열쇠 하나를 건네주었다. 대충 계산을 마치고 바로 루시아의 손을 잡고 방으로 올라갔다.

 

 “어머, 남자분이 터프하시네.”

 

 여관 주인이 음흉하게 웃으며 한마디 던졌지만, 신경 쓰지 않고 방으로 향하였다.

 

 “자, 잠깐. 잠깐 기다려라 레인폴트.”

 

 루시아가 뭐라 하던 유관주인에게 건네받은 열쇠로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루시아를 밀어넣었다. 루시아 나름 당황해서 방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힘을 주었지만, 당황한 여자 한명을 방 안에 밀어 넣는 것쯤은 간단했다.

 

 쿵.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고, 방안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뭐, 뭐냐!”

 

 참 바보 같은 여자다.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너무나도 쉽게 신념이 무너졌다. 사실 조금씩은 흔들리고 있었겠지. 물론 347년을 살아온 나에게는 흔한 경우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고, 수많은 기쁨과 절망. 슬픔과 분노, 행복, 오해 등등을 보아왔다.

 

 “더,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내가 천천히 다가가자, 당황한 루시아가 허둥대며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모습이다.

 

 “루시아 에첸드레이커. 날 똑바로 바라봐.”

 

 다른 인간에게 간섭하는 것은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다. 불과 몇 일전에 루시아와 리안에게 휘말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다. 하지만 이미 루시아와의 동행을 결심했던 이상, 나 또한 루시아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다. 그저 단순한 변덕일 뿐이다.

 

 “딱 한번 말 할 테니 똑똑히 들어.”

 

 그제서야 루시아는 허둥거리던 손짓을 멈추고 그 자리에 멈춰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미안하지만 나에게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

 

 “난 이제 다시 마드라로 돌아간다.”

 “어, 어째서!”

 “너도 잘 알고 있지 않아?”

 “······.”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너는 그 사실을 모른 척 하고 싶을 뿐이겠지. 더 이상 마드라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난 오퍼레이션 링을 찾으러 간다. 애초에 너와의 동행의 목적은 오퍼레이션 링이었어. 그 외에는 조금의 흥미였을 뿐이지.”

 

 루시아가 원망의 눈초리를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마드라에서 나왔을 때부터 모든 게 이상했지.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아? 어떻게 우리 둘이 멀쩡히 마드라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 나는 지금도 여전히 오퍼레이션 오브를 가지고 있어. 그렇지만 검문은커녕 아무 일 없이 여행자처럼 수도를 벗어날 수 있었지.”

 “그야 널 국왕께 데려가는 조건으로 너의 수배령을 없던 것으로 했으니까······.”

 “하아-”

 

 루시아가 나의 시선을 회피하며 자신 없게 말했다. 한숨이 다 나온다.

 

 “이미 나는 국왕을 만나고, 국왕 레이드릭 리디아에게서 도망쳐 나왔다. 그런데 국왕에게서 도망친 나에 대한 수배령을 국왕의 오른손인 백작 에첸드레이커가에서 철회할 수 있을까?”

 “······!”

 

 루시아는 몸을 흠칫 하고 떨었다.

 

 “루시아 에첸드레이커. 아니, 이제는 더 이상 에첸드레이커를 붙일 수도 없겠지. 루시아. 너는 누구지? 네가 하고 싶었던, 네가 펼치고 싶었던 진심은 무엇이지?”

 “나, 나는······.”

 “듣고 싶지 않아.”

 

 나는 매몰차게 루시아의 말을 끊었다. 변명이나 결심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이미 국왕 레이드릭 리디아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일에 끼어있다. 그리고 난 그 사이에서 오페레이션 링을 찾으러 간다.”

 

 내가 루시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이다. 물론 더 따스하게 그녀를 보듬어 줄 수도 있다. 혹독하게 몰아붙여 그녀에게 깨달음을 알려주는 것 또한 쉬운 일이다. 하지만 잠시나마 마음이 움직였던 만큼 마지막까지 가면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푹 자두도록 해라 루시아. 내일은 서로 갈 길을 가야 할 테니.”

 

 조용히 문 손잡이를 당겨서 방을 빠져나갔다. 앞으로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할지는 내 알바가 아니다. 다만 조금 후련한 기분이 들면서도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347년의 세월동안 무척이나 무뎌진 나의 감각이지만, 이번만큼은 감각이 약간 삐걱거렸다.

 

 오퍼레이션 링. 지긋지긋한 나의 삶을 끝낼 수 있는 도구이다. 평범하게 늙어갈 수 있고, 결국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축복. 그것이 마치 눈앞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받아서, 잠시동안 감정이 되살아난 듯 한 기분을 느꼈다.

 

 아무래도 오늘도 무척이나 긴 밤이 될 것 같다.

 

*

 

 드디어 기회가 왔다.

 

 “어떻게 생각하나 벨리에?”

 “이제 충분히 기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하.”

 “정보부의 준비는 끝났나?”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벨리에를 바라보니, 모든 것이 흡족하다. 오늘 오브의 소유자가 레이드릭의 허수아비를 만나고 갔다. 혹시나 했지만, 불멸자는 너무나 쉽게 덫에 걸려들었다.

 

 필멸자는 불멸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불멸자는 필멸자가 되기를 원한다. 너무나 웃기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핫.”

 

 너털웃음이 튀어나온다. 내가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서. 내가 다스리게 될 이 나라를 위해서. 나는 불멸자가 되어야한다. 그것은 나의 신념이자, 나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이유이다.

 

 “벨리에.”

 “네, 저하.”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가 아닌가.”

 “무엇이 말입니까?”

 “나는 어떻게든 불멸의 손을 힘에 넣으려고 하는데, 오히려 불멸자는 필멸을 원한 다는 것이 참으로 웃기지 않은가?”

 “그러하오나, 분명 불멸자라 하는 이는 어리석은 이가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래?”

 

 난 슬쩍 웃으며 운을 띄웠다. 벨리에의 입에서 내가 원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이루어야 할 일과, 신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에게 불멸은 과분한 법이지요.”

 “그렇군.”

 

 이제 내가 생각하던 이상을 펼칠 수 있다. 이제 모든 것이 내 손 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다. 당장이라도 손을 뻗으면 손에 잡힐 것만 같다.

 

 더 이상 리디아는 주변의 국가들에 벌벌 떨며 눈치만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 강인한 국가로 다시 태어나서, 이상을 펼칠 것이다. 드디어 꿈꾸던 나의 왕국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제 단 한걸음 남았다.

 

 “내일. 국왕 레이드릭 리디아를. 아버지를 처형하겠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래. 이제 새로운 국왕은 나 헤레시스 리디아다.”

 

*

 

 결국 아침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생각이 많아지자,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결론은 역시 마드라로 돌아가는 것 밖에 없었다. 생각한다는 것과는 의미가 달랐다. 347년을 살아온 나라는 인간 그 자체가 오퍼레이션 링을 원하고 있다.

 

 “하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서 잠시 산책까지 다녀왔지만,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산책에서 재밌는 것을 손에 넣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괜찮았다.

 

 문득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자 낡은 침대가 삐걱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전혀 푹신하지도 않는 주제에 엄살만 심한 침대다. 어쨌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저 문 너머에 마주보고 있는 방에 2인실에는 루시아가 있다. 그녀 또한 생각이 가득한 밤을 가졌을 것이다. 결국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다.

 

 “흠.”

 

 다시 상체를 젖혀 몸을 침대에 맡기자, 삐걱 삐걱 침대가 울었다. 낡은 침대에서 흘러내리는 먼지가 침대 밑에 사르륵 쌓이는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그 소리가 마음에 들어서 누워서 몸을 이리 저리 뒤척이다보니,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 졌다.

 

 이대 로면 왠지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마드라에 일이 터지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터이고, 국왕이 죽든 말든 난 상관없다. 점점 수마가 밀려온다. 온 몸이 포근해지는 것이 기분이 좋다. 점점 힘이 빠져 나간다······.

 

 쾅-! 우렁찬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너무 놀란 나머지 침대에서 몸이 튀어 올랐다.

 

 “레인폴트. 아직도 자고 있나?”

 “뭐야? 루시아인가?”

 

 그녀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을까? 솔직히 반반 정도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모습부터가 달랐다. 그러니까

 

 “그 옷. 아직도 가지고 있던 건가?”

 

 루시아가 입고 있는 것은 예복이 아니라, 무척이나 노출이 높았던 에가 공국의 전통의상이었다.

 

 “말 안했던가? 설마 내가 맘에 안 드는 옷을 입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하, 얼마 전까지 징징대던 누군가가 맞는지 궁금할 지경이군.”

 “레인폴트,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아?”

 “그것도 그렇군.”

 

 갑자기 유쾌한 기분이 들어서 기분 좋게 웃었다. 정말 순수하게 유쾌했다.

 

 “그, 그 웃음은 뭐지, 레인폴트?”

 “아무것도 아니야.”

 “당신 정말 음흉한 사람이야.”

 “고맙군. 내게 있어 최고의 찬사야.”

 “그럼 늦기 전에 어서 마드라로 돌아가자.”

 “아니, 그 전에 이것부터 봐.”

 

 품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서 루시아에게 내밀었다. 아침에 산책을 다녀올 때 벽에 붙어있던 것 중 하나를 떼어 온 것이다. 루시아는 천천히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점점 읽어갈수록 그녀의 눈이 커지고 숨이 거칠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종이에 적힌 내용은 이러했다.

 

 더 이상 현왕인 레이드릭 리디아는 없다. 이제 그는 악랄한 정책으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하는 비겁자이며, 이제는 점점 노쇠해지는 자신의 육체를 위해 이름 모를 여행자와 더러운 아티펙트에 의존하려 하고 있다. 더 이상 그의 악랄한 정책을 견딜 수 없던 그의 아들 헤레시스 리디아는 자신의 아버지이자 국왕인 레이드릭 리디아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러자 헤레시스 리디아의 의지를 따르는 수많은 이들과, 레이드릭 리디아의 악랄한 정책에 등을 돌린 백성들이 힘을 합쳐 레이드릭 리디아를 몰아내었다. 그리고

 

 “···오늘 6시. 독재자 레이드릭 리디아를 공개처형한다.”

 

 종이의 내용을 읽은 루시아의 두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손에 들려있던 종이도 당연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제 루시아는 자신이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을 잃었다. 그것은 에첸드레이커가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보다 더욱 커다란 충격을 주겠지.

 

 “루시아. 너의 진심은 뭐지?”

 

 천천히 걸어가 루시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루시아에게 물었다. 거창한 말은 필요 없다. 이제부터는 순수한 그녀의 선택일 뿐.

 

 “···당장 마드라로 가자.”

 

 푹 숙인 루시아의 고개에서 목소리가 기어 나왔다.

 

 “루시아. 뭔가 착각을 하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의 목소리에 루시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이목구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런 그녀의 귓가에 나의 생각을 거침없이 속삭였다.

 

 “난 레이드릭 리디아가 어찌 되든 상관없어. 그저 나에게 중요한건 오퍼레이션 링일 뿐이야.”

 “······.”

 

 루시아는 말없이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진심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퍼레이션 링일 뿐이다. 루시아 결국 너도 여기서 끝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루시아를 지나 문을 나가려고 했다. 그 때 고개를 든 루시아와 눈을 마주쳤다.

 

 같이 동행을 하기로 했지만 루시아의 얼굴을 주의 깊게 본적은 없었다.

 

 창문으로 내리쬐는 햇빛은 루시아의 은빛 장발을 더욱 빛나게 비추어주었다. 아름다운 턱선 위로는 앵두 같은 입술이 굳게 닫혀 그 의지를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은빛의 눈은 정확히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조금도 피하지 않았고,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찬란하게 빛나며 한 쌍의 눈동자가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굳게 닫힌 입술을 열어 나에게 말했다.

 

 “과연, 레인폴트. 너답군.”

 

 그리고는 몸을 돌려 문으로 향하였다.

 

 “내가 막을 거다.”

 

 루시아는 그 말을 남기고 방을 나섰다. 나는 그저 멍하니 서서 쓴웃음을 삼켰다.

 

*

 

 “아직 늦지는 않았겠지?”

 “지금이라면 늦지 않을 거야. 아니, 조금 아슬아슬한 정도일까?”

 

 지금 나는 루시아와 함께 마드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왔던 길을 따라 말을 타고 쭉 달려왔지만, 이대로라면 잘못하면 늦는다. 고개를 돌려 루시아를 힐끔 쳐다보았다.

 

 “좀 더 빠른 길은 없나 레인폴트?”

 

 이미 루시아는 처음 보았을 때의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물론 노출이 심한 기사 같지도 않은 옷도 마찬가지이다. 잘못하면 더 이상 기사가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의 흔들림 없는 모습은 나에게 그것이 떠오르게 했다.

 

 파르. 나의 벗. 나의 친구. 기사가 되겠다고 했던 파르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미 몇 백 년 전의 일이지만, 파르의 눈과 루시아의 눈이 겹쳐 보였다. 말은 냉정한 척, 모든 것을 전부 다 알고 있는 척 하지만, 실은 나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런 마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약간의 심술이 났다.

 

 “숲을 가로 질러간다.”

 “뭐, 뭐라고?!”

 

 루시아가 미간을 찡그리면서 언성을 높였다. 고삐를 쥔 루시아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한참을 생각하던 루시아는 석연찮은 표정으로 나를 마라보았다.

 

 “···아.”

 “응?”

 “조, 좋다고······.”

 

 루시아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하였다.

 

 “그럼 따라와라.”

 

 고삐를 힘차게 당기며 방향을 틀었다. 말을 다루는 것쯤이야 질릴 만큼 익숙하다. 내가 먼저 앞서 간다면, 숲이라 할지라도 뒤따라오기는 쉬울 것이다.

 

 “아, 알겠다아······.”

 

 루시아가 들릴 듯 말듯 중얼거리며 자신도 고삐를 당겨 방향을 돌린 후,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

 

 “리안! 좀 더 즐기라고! 결국 모든 일이 잘 풀렸잖아.”

 “이봐, 친구. 좀 더 생각해봐. 결국 우리 레지스탕스가 한 일은 뭐지?”

 “우리가 하고 싶었던 건, 나라를 파국으로 이끌어가는 레이드릭 리디아를 왕권에서 끌어내리려는 거잖아?”

 “하아-”

 

 이봐, 이봐. 그건 우리가 하려고 했던 거지, 결과적으로 우리가 한 일은 뭐지?

 

 “리안.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우리가 했던 모든 행동들도 작은 가치를 가지고, 그게 모인 결과가 레이드릭 리디아의 처형이야. 좀 더 즐기는게 어때?”

 “그래, 그래.”

 

 일단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게 뭐냐고 소리치고 싶을 지경이다. 고작 며칠 만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레인폴트. 속을 알 수 없는 그 녀석과 만나고 나서 모든 것이 급하게 진행되었다. 뭐, 사실 내가 그를 만남으로 얻은 것도 많다. 그저 행동만 앞서서 물불 안 가리고 무작정 뛰어드는 것. 난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저 순간순간만을 바라보며 달리면서, 그것이 레지스탕스로서 이 나라를 바꾼다는 자만심에 빠져있었을 뿐. 바뀐 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레인폴트에게 오퍼레이션 오브를 주었다. 그리고 녀석은 루시아를 따라서 왕성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의 정보를 모아본 결과, 레인폴트는 왕을 만난 뒤 얼마 후에 쫓기듯 마드라를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나로서는 레인폴트가 어떠한 가면을 쓰고 왕을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음흉한 녀석이 절대로 자신의 모습 그대로 왕을 만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부러 멍청한 척으로 왕을 속였을 수도 있고, 달콤한 말로 왕을 유혹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결과다.

 

 헤레시스 리디아가 왕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다. 헤레시스가 내밀은 상황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심지어 오퍼레이션 오브와 불멸자인 레인폴트까지 이용해서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제 곧 레이드릭 리디아의 처형이 시작된다. 이걸로 레지스탕스의 활동은 끝이 난다. 정말 이걸로 끝인가? 이걸로 좋은가? 어딘가 석연찮다.

 

 “어?”

 

 녀석이다. 이미 마드라에서 떠난 게 아니었나? 어째서 다시 마드라로 돌아온 거지 레인폴트? 더군다나 루시아까지······. 무엇을 위해 다시 돌아온거지 레인폴트?

 

*

 

 “다행히 아직 늦지 않았어······.”

 

 루시아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를걸. 해가 지고 있다. 레이드릭 리디아의 처형이 얼마 남지 않았어.”

 “···실감이 나지 않아.”

 “무엇이 말이지?”

 “이 앞을 봐. 모든 이들이 레이드릭 전하의 처형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이건 흡사 축제와 같잖아.”

 “독재자의 최후다.”

 

 레이드릭 리디아의 사정 같은 건 내가 알바가 아니었다. 루시아와 나는 사람들을 헤치며 레이드릭 리디아의 처형대를 향해 나아갔다. 점점 레이드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높은 단상위에는 손과 목을 끼울 수 있는 단두대와, 그것을 내리칠 날이 하늘 위에 밧줄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자가 레이드릭 리디아였다. 이미 자신의 죽음을 받아드린 건지 아무런 미동조차 없이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근데 정말 괜찮겠나?”

 “무엇을 말이지, 레인폴트.”

 “너는 이제 더 이상 기사의 자격이 아닐 텐데.”

 “훗. 레인폴트. 저 곳에 나의 주군이 있다. 가문을 잃고 갈 곳을 잃는다 해도, 내가 섬기는 주군이 저곳에 있는 이상 나는 기사다.”

 “대단하······.”

 

 잠깐. 이건 뭔가가 이상하다.

 

 “뭐지 레인폴트?”

 “저 옆에 앉아있는 자가, 진짜 레이드릭 리디아가 맞나?”

 “무슨 소리인가 레인폴트. 너는 집적 전하를 알현하지 않았나?”

 “아니. 다른 사람이다. 내가 왕국에서 보았던 레이드릭 리디아가 아니야.”

 “뭐라고?!”

 

 외견은 비슷하다. 험악하지도 포근하지 않은 인상. 왕의 나이를 증명하듯 하얗게 센 머리와 흰 수염들. 왕국에서 보았던 레이드릭 왕과 똑같이 생겼다. 하지만 다르다. 가만히 앉아서 미동조차 없는 레이드릭 리디아는 그때의 그 왕이 아니다.

 

 “루시아. 네가 마지막으로 왕은 뵌 것이 언제지?”

 “언제나 멀리서 뵈었으니까. 에거 공국 정탐을 다녀오기 전이었다.”

 “아니, 그거 말고 직접적으로 왕은 본적은 있는가?”

 “직접적으로 라면······. 아마 십년은 더 전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 때는 내가 한참 어릴적으로······.”

 “아니. 그거면 충분해. 확실하게 말해주지. 어떤게 가짜일지는 몰라도, 저 앞에 있는 남자는 어제 왕국에서 보았던 레이드릭 리디아가 아니다.”

 “그, 그 말. 지, 진짜냐?!”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낮선 목소리는 아니었다. 리아네스 너인가?

 

 “리안인가? 마침 잘 왔군. 아무래도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린 것 같다.”

 “뭘 하려는 거지, 레인폴트?”

 

 루시아가 불안 반 기대 반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 동시에 무척이나 힘든 일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한명의 도움이라도 더 필요했다.

 

 “우리는 이제 저기 앞에 있는 레이드릭 리디아를 구출한다.”

 “뭐라고?”

 

 리안이 놀란 눈으로 반문했다. 물론 너로써는 무척이나 놀랄 일이겠지. 이대로 조금만 있으면 레지스탕스의 오랜 숙원이 이뤄지는 순간일 테니. 하지만 리안 너의 눈에는 아직도 의문이 가득 차 있다.

 

 “잔말 말고 도와. 너에게 결코 나쁜 일은 아닐 거다.”

 “···확실한가?”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다. 누누이 말했지만, 이 일이 실패하더라도, 나는 적어도 내 한 몸 정도는 어떻게든 피할 수 있다. 그러니 선택은 스스로 해라.”

 “···좋아. 믿어보도록 하지.”

 “자, 루시아. 준비 되었나?”

 

 루시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려 리안을 바라보니, 리안도 굳게 다짐을 한 듯 날 바라보고 있었다.

 

 참 바보 같은 일이다.

 

 “왜 웃는 거지 레인폴트?”

 

 아, 내가 웃어버린건가?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군.

 

 국왕에게 반기를 들었던 레지스탕스가 최후의 순간에 오히려 국왕을 구하려 하고 있다. 국왕에게 충성을 바친 기사는 기사의 작위를 잃어버린 직후에도 국왕에 대한 충성을 바치고 있다. 그러나 그 국왕 또한 레이드릭 리디아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바보같은 이야기는 이백년 전 이후로 처음이다.

 

 “자, 그럼 국왕을 구출하러 가볼까?”

 

 

 

 

 

 

 

 

 

 

 

 

 

 

 --------------

 

쓰는 도중 고민이 무척이나 많이 대면서도...

다른 분들의 글을 수시로 들락거렸습니당...

 

일단 루시아와 레인폴트를 나름 돌려봤는데....

그저 죄송스러운 느낌밖에는 안드네요

 

시간이 더 없는 관계로 썻던 내용을 올려봅니다

  • ?
    MaGi。 2011.09.16 19:00
    무엇보다도 기쁜건 루시아의 쿨데레가 돌아왔다는 것 (....)
    글이 참 깔끔하고 마음에 듭니다..
    저는 언제쯤 저런 필력을 갖추게 될까요...

    참고로 현왕이 레이드릭 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리안과 레인폴트만이 알고 있던 사실입니다.
    현재 사형당하는 왕이 사칭자라고 착각한건지 아니면 본왕이라는 걸 알고있는건지 잘 모르겠네요...
    이 설정은 아마 클린워터님이 적어주신걸로 기억합니다.
  • ?
    오라하콘 2011.09.16 19:23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다만 글 전개가 너무 대사로만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네요


    더하여 '링' 을 찾으러 어째서 수도로 가는건지...


    란도님의 글에서는 차후 얻을것 이라는 대사가 있었고 가지고 있다는 글귀는 없던걸로 기억합니다


    정보를 얻기위해서... 라기도 조금 설득력이 부족해 보이네요


    p.s 


    마기님, 클린워터님의 글에 있던것은 리안이 왕은 조종당하고 있다 라고 말한것 밖에 없습니다


    사형대 위의 사람이 왕인지 아닌지는 현 전개에 따르면 루시아, 리안, 레인폴트 누구도 모릅니다


    다만 레인폴트만이 이전에 만난 왕과 모습이 다르다고 만 기억하고 있는것이겠지요

  • ?
    MaGi。 2011.09.16 19:29
    ...어라라 그랬던가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던걸 말하다보니...
    죄송합니다 ㅋ
  • ?
    말걍♪ 2011.09.16 20:50

    글이 깔끔하고 좋네여.

     

    특히 1인칭시점에서 속으로 생각하는게 대사문으로 드러나지않고 다른 상황묘사와 같이 나오는 방식이 좋습니다.

  • ?
    CleanWater 2011.09.16 23:23

    손님님은 언제나 절 가만두지 않아요. 저번엔 왕의 음모를 던져 주셨는데 이번엔 왕을 구출할 전략을 짜라고 하시네요.....ㅋㅋㅋ

     

    이럴수가... 이건 음모보다 더 난이도가 높은데요.... ㅋ

     

    손님님 글이 저번에 비해서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요... 근대.. 음 대사가 아닌 부분에서 대사같은 말이 나오는건 좀 혼동을 주기도 하네요 ㅋㅋ...

     

    전자사전으로 글을 쓰다보면 큰 따옴표가 없어서 스페이스 바로 한칸 띔으로 대사를 구분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혼동되는 걸 수도...

     

    으음.. 거기다가...

     

    우와... 이번 껀 진짜 잘못쓰면 소설 망치겠다 ㄷㄷㄷ;;; 부담감 100배;;;; 손님님 항상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_-;;; 

  • ?
    PrimaryC 2011.09.17 06:15

    묘사를 넣어보려고 노력하다가 점점 의욕이 상실되는 과정이 보이는것 같네요.

  • ?
    휴우 2011.09.20 19:30

    한 문장 안에 여러가지 중첩되는 부분이 많네요.쉼표와 불필요한 온점때문에 글이 끊기기도 합니다.

    글 전개에 있어서도 설득력이 부족하군요.오라하콘님 말대로요.

    그래도 주인공이 앞으로 해야 할 행동을 명확히 지정 해 주신 부분은 감사드립니다.

    더해서 클워님께 시련을 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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