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06 12:59

자살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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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예전에 쓴 단편이네요;; 쓴지 2년 된....
즐감해 주시길 바랍니다 ^_^

 

-

 

자살 바위.

 

세상에 우연이란 건 없다고 하지만, 내게 있어선 그건 말그대로‘우연’ 이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믿었던 친지들에게 배신당하고, 사랑에 실패하고-.
무엇하나 잃을 것이 없는 패배자가 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자살 뿐이었다.
기억도 안나는 어린 시절, 누군가가 내게 말했던 이 세상엔 1등 외엔 필요없다는 말이 뇌리를 맴돌았다.
죽자, 이대로 죽어서 나란 존재를 지워버리자.

 

그렇게 결심을 하고 마지막 남은 돈으로 택시를 탔다. 실패로 얼룩진 내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는 유명한 자살바위였다.

 

“저..., 자살바위에는 무슨 일로?”


불안해하는 택시 운전수. 그에게는 대충 그럴싸한 핑계로 둘러댔다.
갑갑하던 택시에서 내리자 짠 소금내가 훅 풍긴다. 폐까지 가득 차오르는 짠내가 마음까지 무겁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자살바위 까지 올라갔는지도 몰랐다.

그 곳엔 ‘한번 더 생각해 보시오’ 란 표지판과 함께 자애로운 모자상이 서 있었다.

어차피 내겐 죽지 말라고 따뜻하게 안아 줄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별 감흥도 없었다.
한 번 더 생각할 여력도 없었으니 날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래를 보니 깊은 수심을 뽐내기라도 하듯 시퍼런 파도가 철썩이고 있었고, 갈매기 몇 마리가 끼룩대며 날아다녔다.
두 팔을 뻗고 한걸음씩 앞을 향해 내딛는다. 조금씩, 바다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서 그대로 뛰어내리면 왠지 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불쑥 들었다.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하얀 와이셔츠가 크게 굴곡지며 펄럭였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뼈속까지 시원해 질 것 같다.
발 끝에 아슬하게 닿은 바위의 끝에서 나는 마지막 인생의 외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뛰어 내렸다.

 


..........뛰어내렸어야 했다.

 

 

“야!!!”

 

정말로, 머리끝까지 화난 듯 한 목소리만 듣지 않았다면 말이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성난 목소리가 달팽이관을 강타했다.

 


“죽으려면 딴데가서 쳐죽어! 이런 관광 명소에서 죽지 말고!!!”

“......”

 


 

어? 라고, 바보같은 물음이라도 돌려주고 싶었지만 내 입은 움직이지도 않았다.
물에 젖은 소금짐을 얹은 양 천근만근이었다.

 


“왜 암말도 못해?! 너 벙어리야? 입 병신이냐고!”

“...끄러.”

“뭐?!”

“시끄럽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누구 때문에 머리가 지잉- 울렸다.
누구인지도 모를 그 목소리에게 나는 한껏 크게 외쳤다.
불합리한 세상에 내지르지 못했던 그 속내까지, 정작 내가 외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아니, 나는 처음부터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들이 손가락질 하는 것에 대해서,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망스러운 세상에 대해서.

 


“시끄럽다고 이 새끼야...”

 

 

왈칵 눈물이 흘렀다.
왜인지는 모른다.
험한 일을 계속 당하면서도 눈물 하나 흘리지 않았던 내가, 왜 이 이름 모를 낯선 이의 목소리에 울부짖는지 몰랐다.

 

그냥 울고 싶었다. 그래서 울었다. 펑펑 울었다. 남자의 마지막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울었다.

 

 

“이 새낀 왜 울고 지랄이야. 남세스럽게.”

 


뒤에서 어설픈 손길로 헛기침을 하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처음부터 욕하고 소리 지른 주제에, 그 손길이 너무 다정스러워서 나는 더 크게 울었는지 모르겠다.

 

 

 

 

 

***

 

 

 

 

 

얼마를 울었는지 시간개념조차 잊었을 무렵, 나는 겨우 울음을 그쳤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몸 안에 있는 물기를 다 뱉어내기라도 하듯이 울어제꼈으니 탈수 증상이 올만도 했다.

아직 얼굴도 모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가 다 울 때까지 가지 않고 뒤에 조용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차마 얼굴 보기가 민망스러워 뒤돌아보지 못하고 있자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아까부터 이 새끼, 저 새끼 해서 미안한데 이름을 몰라서 말이지. 이름이 뭐야?”

“한승우.”

“아, 그래. 한승우. 나도 이름은 있다. 이 새끼가 아니라. 박찬욱. 근데 너, 아니 여태까지 반말 했으니까 상관없겠지?

아무튼, 한승우 너 말야. 갈 데는 있냐?”

“...없다.”

 


집까지 모조리 차압 들어갔으니 남아있을리 없지. 반쯤 체념한 상태로 한숨을 쉬었다.

 

 

“땅 꺼지겠다. 나이가 몇이길래 벌써부터 한숨이냐, 넌?”

“스물일곱.”

“음, 다행히 나랑 동갑이네. 앞으로 계속 반말까자.”

“그러던지.”

 


처음부터 존대 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을 거면서, 어이가 없어서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등이 들썩이는 걸 보고 뒤에 버티고 서 있던 녀석이
얼씨구? 그래도 웃을 정신은 남아있네,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털난다던데-하면서 비식거렸다.

 

“야, 한승우. 꼬락서니나 한 번 보자. 난 오늘에서야 다 큰 사내자식이 1시간 동안 쉬지않고 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거든?

겁나게 궁금해서 그런다.”

“......”

“싫어? 꼴에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임마, 이미 넌 다 까발려졌어. 얼른 뒤돌아보지 않으면 내가 가서 본다. 하나, 둘-”

 

 

진짜로 와서 얼굴을 확 돌려볼 것 같은 기세에, 나는 엉겁결에 돌아 섰다.

퉁퉁 부은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본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생각보다 덩치가 있는 인물이었다.

야야, 하고 반말하고 욕하는 통에 키작고 땅딸막한 녀석이지 않을까 하고 상상했기에 좀 놀랐다.

이 터무니없는 편견은 중학교 때 친했던 키 작은 녀석과 말투가 흡사해서 생겼지만.

눈앞의 이 녀석은 여자 꽤나 울릴 만한 마스크지만 지나친 화려한 치장이 흠이라면 흠인 것 같다.
피어싱이 주렁주렁, 보기에도 내 살갗이 아플 정도다.

 


“왜, 피어싱한 거 처음보냐? 내 배꼽에 있는 피어싱도 볼래?”

“됐다. 보고 싶지도 않아.”

“계집애 같은 놈.”

“누가 계집애 같다고?”

“여기서 너밖에 더 있냐. 처음 만날 때부터 질질 짤지, 피어싱은 겁내지. 딱 계집애구만.”

“그런 소리 한 건 네가 처음이다.”

 


시큰둥한 얼굴로 핀잔을 주자, 녀석, 아니 박찬욱이 낄낄 웃었다.
가문의 영광입죠, 하고 넙죽 큰절을 하는 시늉까지 냈다. 정말 웃긴 놈이다.

덕분에 암울했던 기분을 잠시나마 잊고 웃을 수 있었다.

정말로 이상했다. 자살바위로 오기 전까지는 새카만 먹물마냥 우울의 바다를 헤엄치던 정신이 이리 맑아질 수 있다니.


찬욱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악동같은 미소를 지었다.

 

“웃지마. 정들라.”

“줄 정도 없어.”

“그으래~?”

 

 

찬욱은 불안하게 말을 길게 늘어뜨렸다. 눈빛이 번쩍이는 듯도 하다.

 

“정 줄 상대가 없다, 이 말이렷다?”

“그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나?”

“좋았어, 여기서 잠깐 기다려봐.”

“왜?”

“아, 기다리라면 좀 기다려봐.”


어디 딴데 갈 생각도 말고 더욱이 뛰어내릴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잔뜩 으름장을 놓은 찬욱이 어딘가로 휑하니 달려갔다.

이미 자살할 생각은 물건너 간 상태라, 나는 멀뚱하게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몇 분 안되어 찬욱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돌아왔다.
핼멧을 쓴 채 멋들어진 늘씬한 오토바이를 몰고 말이다.

 

“야, 타.”

 

뜬금없이 야타족으로 돌변한 찬욱이 뒷자석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말했다.
특별한 손님만 태우는 애마이니 탈 때 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만 삽질하고, 기분도 풀 겸 정 줄 여자사람이나 꼬시러 가보자고. 내가 이래뵈도 사랑의 작대기 하나는 확실히 해줄 줄 아는 놈이거든."

"하아?"

"뜬금없냐? 뭐 싫음 말고."


나는 이 초대하지 않은 손님을 따라가야 할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오토바이의 뒷자석이 원래 내 자리였던 것 마냥 그 자리를 툭툭 치며 재촉하는 찬욱의 얼굴이 씨익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자, VIP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시동을 걸며, 찬욱이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시원스럽게 뻥 뚫린 것만 같다.

 

 

“어디든지.”

“Yes,, sir."

 

 

척, 하고 거수경례를 붙이고 찬욱이 힘껏, 그리고 부드럽게 클러치를 조절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폐를 무겁게 짓누르던 소금내가 가벼워졌다.

소음을 남기고 떠나가는 자살바위 에는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팻말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나중에서야 그도 자살하기 위해 자살바위에 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건 훗날의 일이었다.

 

 

 

그 날은- 자애로운 모자상이 나를 향해 미소짓는 듯 했던, 어느 오후날이었다.

 

 


END

 


============================================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이가 친구가 되는.
죽음을 꿈꾸다 만난 두 친구 이야기.
(플러스로 여자친구도 소개시켜주는 바람직한! 친구를 만났군요.)

  • ?
    ColdWind 2011.02.06 20:32

    줄거리가 너무 좋아요 친구 이야기라... 정말 기분 좋은 이야기 입니다 ^^

    그런데 묘사가 너무 부족했던 것 같아요ㅠ 남는 것 없이 끝나버린다는 느낌이...

    아마 문단이 너무 많이 띄어져 있어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군요 ㅋ

    잘 쓰셨습니다. ^^ 건필을 빕니다. ㅋ

     

  • ?
    디엔 2011.03.08 00:53

    잘보고 갑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우울한 느낌을 좀더 더 풀어주셨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요. 기대를 해서...ㅎㅎ 순간적으로 지나가버려서 아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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