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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라 일라하 일라 일랄라, 라 일라하 무함마둔 라쑬룰..... 라" (1)

이태원 어느 곳의 한적한 골목 귀퉁이에 있는, 약간 이국적인 분위기의 거대해보이는 건축물 안에서 나지막한 주문 비스무레한 소리가 나고있다. 어느 나라의 말일까 생각해본적도, 무슨 뜻인지도, 아니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도 나에겐 그렇게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바깥 날씨는 여느 12월 삼한사온의 따스한 날과 다름없이 평년의 추운 공기를 머금고 있으며 공활한 하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앞에 계시는 원로 이맘(2)님께서 나를 축복해주셨다.

"그래.... 너는 이제부터 '무슬림'(3) 이 된 것이다. 앞으로 성실하게 살아가거라...."

무슬림이 되었다..... 무언가의 책임감이 나의 가슴에 얹어진 느낌이다. 그동안의 나의 여정에 대한 마침표이자 새로운 이정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도전을 받아들인 셈이다. 고독한 싸움을 해 나가야 하겠지. 그러고는 다시금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다시 '상훈' 이라는 속세의 사람으로 돌아가 있겠지.

"그럼 혹시 생각해 놓은 무슬림 이름(4) 이라도 있는가?"

"음... 정의와 신념. '살라딘' (صلاح الدين) (5) 을 정해두었습니다만...."

"오... 하긴 무슬림 이름이 특별히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네 매우 멋진 이름을 선택하였구만. 정의와 신념이라...."

살라딘. 특별히 전부터 생각해 둔 이름일 수도 있겠다. 아주 예전에 봤기 때문에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윌터 스콧이 썼다는 전승소설 '아이반호' 에서의 살라딘의 묘사가 그렇게도 훌륭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는 역사적 사실로 보나 소설의 묘사를 보나 멋진 남자였고 매너 좋은 장군이자 현명한 지략가였었다. 하지만 특별히 그 사람을 존경해서 이름을 선탰한건 아니었다. 뭐랄까.... 내 마음속에 아직 남은 허영심과 속세를 향한 야망의 잔재라고 할까. 속세를 잊고 고독해지기 위해 이슬람교를 찾아 왔지만, 아직도 속세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니.... 실상은 사담 후세인이라던지 카다피같은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6)의 씨앗이 되거나 오사마 빈 라덴(7) 같은 자본주의 언론들을 길들이기 위한 쇼맨쉽 메이커의 전형이 될 수도 있을 듯 한 케이스였다. 자살과 무차별 학살을 즐기는 무슬림스럽지 못한 행동(8)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지....... 그렇게 많은 상념이 스쳐지나간다.
그렇게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갈 무렵 12시, '주흐르' 예배(9) 의 시작을 알리는 아잔(10) 소리가 울려퍼졌다.

"...... 알라-흐-아크바르, 알라-흐-아크바르, 알라-흐-아크바르, 하이아잇-쏼라........" 

무슬림이 된 첫 날 첫 정오의 예배였다. 남녀가 구분되어 있는 이슬람교의 예배실에서 나는 남자 예배실로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정결해지기 위해 '우두'(11)  의식을 하고,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외국인들과 잠시 축하의 의미로 환영의 화답을 나눈 뒤에 곧바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예배당은 정확히 서쪽이 아닌 서북쪽 방향, 메카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비쓰밀라 라흐마니 라힘, 알함두릴라....." (12)

허리를 굽혔다 펴고 반절. 다시 '알라-후-아크바르' 소리가 울려퍼지면 무릎을 꿇고 벽, 아니 메카를 향해 절을 한다. 이마와 코가 땅에 닿음으로서 인간은 신 앞에 절대복종함을 나타낸다고 한다..... 아직 예배는 어색했다. 주변은 전부 낮선 이방인, 외국인들이었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시리아, 요르단, 사우디...... 국적과 피부색은 모두 다르고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었지만 모두들 경배하는 존재는 단 하나다. '우리를 창조한 절대자, 결코 셋이자 하나가 아닌, 단 하나뿐인 지고한 존재' (13)

그렇게 예배는 세계의 많은 모습들을 품어안은 채 평화를 빌며 끝났다.
--

나는 다시 인천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전철로 두시간 남짓. 지고하신 신이고, 한분 뿐인 존재에 대한 복종이고 간에, 나는 이제 다시 가정에서 평범한 대한민국의 장남으로 살아야 한다..... 하루 다섯번의 예배는 다시 잊고 살아야 한다..... 1호선 국철의 철컹철컹 거리는 굉음이 오늘따라 거슬리게 들리는 건 기분 탓인가. 하지만 결국엔 돌아오는 길에 고픈 배를 추스려 가까운 편의점에 들려 스팸이 한웅큼 들어간 삼각김밥을 입에 물고 하이네켄 블랙을 죽죽 빨아댔다.(14) 신성모독이며 죄악인가..... 크흣.  
취기가 한층 오른 상태로 나는 집에 다시 돌아왔다. 귀여운 여동생이 나를 반긴다. 하지만 전혀 귀엽지 않다. 

'상훈이오빠 도데체 어딜 갔다오느라고 이렇게 늦은거야!! 지금 시간이 몇시야.... 이건 또 웬 술냄새야!!!"

늘상 있는 잔소리가 그 이유다. 아무런 신앙도 없는 주제에.... 라는 평소엔 상상도 하지 않던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딱히 나도 꼬집고 싶지도 않고 꼬집을 입장도 아녔다. 그냥 간단하게 말장난으로 맞받아쳤다.

"제길. 여자친구랑 줄창 놀다왔다. 노래방도 가고 카페에서 라떼도 좀 빨고...." 

"쳇 누구는 돈이 남아서 오빠한테 퍼다 주나. 부모님 잘 만나서 다행이지 혼자서 어떻게 살래?"

우리 아버지는 남동공단의 공장 소유주이자 이사. 어머니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땅도 제법 소유하고 있는 속칭 중산층 땅부자에 속한다. 적어도 망하더라도 돌아갈 곳은 있는 만반의 대비는 다 되어있는 그런 집안이다. 뭐가 싫었는지 나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용산 등지에서 컴퓨터조립 등으로 간간히 용돈벌이나 하며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후로 나를 두고 내논 자식이라면서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단지 하루에 만원씩 두고 가며 점심이나 굶지나 말라고 배려해주는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의 전부였다..... 딱히 더이상은 생각하고싶지도.... 아버지부터 이러니 어머니도 다를 게 있을까. 더이상 부모님은 나의 혈육같지도 않게 되어버렸다. 그나마 집에 남은 나의 여동생만이 가족다워 보인다만....

"쳇. 그래. 니가 이겼다. 그러니까 이 오빠는 이제 잠좀 자자 응?"

19년간의 귀인 대접. 6년간의 파란만장. 그리고 오늘 하루. 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있다. 
그렇게 나의 24번째 크리스마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가장 이교도적인 크리스마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다.



-부록-

(1) 이슬람교의 신앙고백. 이슬람교는 '5주' 라는 기본 교리가 있는데, 신앙고백, 예배, 희사(자카트, 봉헌),성지순례, 단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앙고백은 아주 기본적인 것으로 이교도들이 이슬람교로 입교할 때 먼저 외치게 되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2명 이상의 무슬림 증인들 앞에서 선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 이슬람교의 예배 인도자. 이슬람을 기치로 내세운 국가들의 경우엔 모든 계급주의의 철폐를 외쳤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긴 했지만)  신부나 목사, 승려같은 별도 계급으로 이루어진 종교지도자 마저도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꾸란(이슬람의 경전) 의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원로분 중 한명이 예배를 이끄는 이맘이 되어 예배 집전을 하게 된다. 특별한 자격조건은 없다.
(3) 이슬람교도를 이르는 말.
(4) 무슬림이 되면 성당의 세례명이나 불교의 법명과 비슷하게 이름을 새로 받는 경우가 있다. 사람의 의사에 따라서 아랍 이름 중 자유롭게 골라 지을 수도 있으며, 그냥 안 지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타 종교와 조금씩 다르다.  
(5) '살라흐 알딘' 아이유브, 줄여서 '살라딘' 으로 유명하다. 3차 십자군 전쟁 당시 아이유브 조의 술탄으로 십자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존경의 대상이라는 이중적 모습을 보인 명장이었다. 영국 사자심왕 리처드와는 전장에서의 라이벌이자 매너있는 상대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아랍권에선 한동안 인기가 없다가 오히려 훗날 서구권의 독일 황제 빌헬름이라던지 월커 스콧의 '아이반호' 등에서의 전승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 역으로 아랍권에서 추앙받는 존재가 되었다.
(6)사담 후세인은 이라크의 전직 독재자로, 아들 부시의 2차 이라크전으로 패하여 포로로 잡힌 뒤 사형당하기까지 이라크를 지배하였다. 카다피는 리비아의 독재자로 후세인만큼이나 반서방적인 인물로 유명하다.  
(7) 알 카에다를 이끌고 있는 사우디 부호 출신의 테러리스트 리더. 현재의 생사여부는 불분명하며 음모론자들 사이에서는 냉전시대 친미계열 인물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의 전력 때문에 9.11 테러가 자작극이며 알 카에다는 미국의 언론 교란용 선전술 집단이란 이야기가 있다.
(8) 이슬람은 자살폭탄테러를 원칙상으로 금지하며 진정한 '지하드'로도 보지 않는다. 지하드의 본 뜻은 '종교적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수단 및 노력' 이라는 뜻이다.
(9) 이슬람교는 하루 다섯번 달의 움직임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예배를 드린다. '파즈르', '주흐르', '아스르', '마그립', '이샤' 가 그것으로, 이것은 이슬람교의 기본 교리인 '5주'에 해당한다. 참고로 예배를 사정상 드리지 못했을 경우 마지막 예배인 '이샤' 예배 때 몰아서 드릴 수 있으므로, 현대의 바쁜 이슬람교도들은 대부분 이렇게 근행하고 있다.
(10) 예배를 알리는 소리로, 이슬람 사원의 높은 첨탑인 '미나렛' 위에 올라 외치는게 일반적이다.
(11) 예배를 드리기 전 몸을 정결하게 씻는 의식. 양손-입-코-얼굴-양팔뚝-얼굴-귀-머리카락-양발 순서로 씻는다.
(12) 코란의 개경장 '파티하' 아야(장), 예배를 드릴 때 반드시 암송한다. 불교의 반야심경, 기독교의 주기도문 격이다.
(13) 이슬람의 신의 개념은 '단 한분' 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기독교의 신의 개념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부분으로,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를 바탕으로 하는 반면, 이슬람교는 이를 부정한다. 이는 삼위일체론의 교리가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 사후 300여년 후에 로마의 태양신교 미트라교와 기독교를 통합시키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정치적 야욕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삼위일체를 반대했던 아리우스 파는 니케아 공회에서 이단으로 판정받고 단죄되었으며, 우파 아타나시우스는 오늘날의 가톨릭 교리의 근간을 완성하였다.
(14) 이슬람교, 유태교, 초대교회 및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 등의 종교는 원칙적으로 돼지고기와 술을 섭취하지 말도록 교리상으로 가르치고 있다. 스팸은 가장 전형적인 돼지고기 음식이며, 하이네켄 블랙 또한 맥주로 술이다.



PS. 하갈이란? 이슬람교, 유태교, 기독교 3교의 모든 종교에서 추앙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브라힘) 의 본처 사라의 몸종으로, 아브라함과의 관계를 통해 아랍인의 뿌리인 이스마엘을 먼저 낳았고, 본처 사라로부터는 나중에 이삭을 낳게 되었다. 
참고로 이스마엘은 사전적 의미로 '방랑자' 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Who's 희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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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온기가 미처 식지도 않은 체 아래로 떨구는 소년의 눈동자는
마음 속의 바다를 바라다보며 조용히 미소짓고 있네.
새로이 태어나는 것, 사라져 가는 것. 이 모든 것은 운명의 진자의 폭과 같지.
좌절의 어둠을 뚫고 지나간 후에 보이는 건 빛의 진실.
Aura! 새벽과 함께 그 머리카락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뭐지?
Aura! 대지의 바람은 신께서 주신 자비로운 입김인가...

속눈썹을 적신 체 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년의 눈동자는,
먼 그 날에 스쳐지나갔던 미래를 보고 있어.
새로이 태어나는 것. 사라져 가는 것. 이 모든 것은 운명의 진자의 폭과 같지.
좌절의 어둠을 뚫고 지나간 후에 보이는 건 생명의 진실.
Aura! 새벽과 함께 사라져 가는 별에 바치며,
Aura!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조그마한 그 손안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