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17 13:53

무협 단편>여심女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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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가요?"

"현실이야."

"저게 정말 천아라고요?"

"그래. 백령문 최저의 재능을 가진 전천후 만능 하인 장천아야."

"그래도 역시 우승은 무리겠죠?"

"모르지. 저 녀석이 처음 비무장에 올랐을 때 모두 뭐라고 했더라?"

"아가씨는 알고 계셨나요?"

"글쎄, 다만 약하지는 않겠구나 했다만."

백령문주 백진호의 딸이자 무림의 이름높은 홍진칠룡紅塵七龍의 예룡銳龍, 백여민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백령문에서 자신들의 후기지수들을 자랑하기 위해 주최하는 비무대회의 결승전.

그 대미를 장식할 무대의 한켠에 서있는 것은 척 보기에도 이미 기진맥진한 소년이었다.

몇번이나 기대에 배반 당했으면서도 그런 소년의 모습을 보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년의 패배를 점쳤다.

반면에 소년의 상대는 고급스러운 옥색 도포를 차려입은 말쑥한 청년이었다.

체격도, 기세도, 어느 것 하나 소년이 나아 보이는 것은 없었다.

"령아, 기억하니? 작년 겨울에 수련장에 쓰러졌던 소나무 말이다."

"네, 물론이죠. 설마 그런 거목이 쓰러질 줄은 아무도 몰랐지요."

"그래, 그런 나무가 부러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지. 그걸 손발로 치고 박아서 넘어 뜨리는데 얼마나 시간이 들었을까?"

"네? 무슨 말씀인지 저는 통...?"

"그 소나무 말이다, 밑둥이 맨질맨질하게 깎여 나갔더구나. 지금은 말끔하게 베어버려서 흔적도 없지만 부러졌을 때 슬쩍 봤거든."

"그, 그 큰 나무를 부러뜨렸다구요?"

"응, 아마도. 난 그때 정말 우리 백령문 식구들한테 실망했다. 나무가 부러진 이유야 어찌되었건. 내공도 익히지 못한 아이가 혼자서 그 부러진 거목을 끌고 나가는데 아무런 위화감을 못 느꼈다니. 어이가 없지 않니?"

여민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소녀의 탄성은 인파의 함성속에 묻혀버렸다.

결승전의 시작이었다.

"잘 보거라, 저것이 오로지 뼈와 살만으로 쌓아 올린 무武란다." 

둘 사이에 시작된 첫 검격은 아주 느릿했다.

그것은 마치 예의를 갖추기 위해 서로가 검을 맞대는 것 처럼 보이는 우아한 그림이었고,

모두가 그 모습에 침을 삼켰다.

그리고 누군가의 침이 목을 넘어가려는 순간, 비무장을 뒤덮은 공기가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시작은 소년으로 부터였다.

상대와 맞닿아있는 오른손이 아닌 왼손의 검이 빠르게 미끄러져 청년의 어깨를 찔러 들어갔다.

그것은 기교도, 속임수도 없는 정직한 찌르기. 다만, 그곳에 있는 것은 수없이 숙달된 동작과 신속함 뿐이었다.

하지만 상대 역시 결승까지 올라온 백령문 최고의 후기지수.

소년의 공격을 재빠르게 쳐낸 청년은 바로 검을 틀어 초식을 전개했다.

열번의 찌르기가 현란하게 이어지는 백령검법 십령초래十靈招來.

허초 없이 모든 찌르기가 급소를 노리는 백령문이 자랑하는 절기중 하나였다.

그 수백의 세월이 쌓아 올린 기술 앞에서 소년은 묵묵히 양손을 휘둘렀다.

그런 초식 따위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고. 배워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매번 자신의 사혈을 향해 날아드는 검극을 빠르게 쳐낼 뿐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방어가 반복 될 때마다 소년의 양 팔은 비명을 내지른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상처를 내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압승은 실력차가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소년은 그렇게 제압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즉, 멈추면 죽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이 소년의 양팔을 끊임 없이 움직이게 했다.

십령초래는 막혔다.

특별한 보법도 없이 소년은 우뚝 선 채 그 위협적인 초식을 막아냈다.

찢어질 것 같은 근육을 다그치며 소년은 다시 반격에 나선다.

상대 역시 예상한 듯 자세를 취하고, 소년은 뻔히 막힐 것을 알면서도 검을 휘두른다.

막혀도, 피해도, 소년은 공세를 멈추지 않는다.

소년에게 검술을 가르쳐 준 사람은 없다.

소년이 갈고 닦은 검술에는 초식 따윈 존재하지도, 만들 이유도 없었다.

상하좌우, 양대각선과 그 역방향의 베기, 그리고 찌르기.

오로지 이 9가지 기술만이 소년이 이해할 수 있는 검술의 전부였으니까.

그렇기에 소년의 공격은 그 어떤 기교나 무리가 담겨있지 않다.

하지만 그 무서우리 만치 정직하고 무뚝뚝한 공격은 상대를 질리게 만들었다.

'어렵지 않다.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실수하면 죽는다.'

소년의 검은 그런 것이다.

공격도, 방어도, 기본중의 기본이다.

애초에 꾸밀 여력이 없다. 하지만 군더더기도 없고, 실수가 없다.

단순한 동작만을 수없이 연마해온 소년의 육체는 끊어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실수를 허락하지 않는다.

상대는 분명 잘 막고 있는데도 불안해진다.

어느 쪽이 먼저 실수 할까? 같은 질문을 생각할 수가 없다.

무조건 이쪽이 먼저 실수한다.

그렇게 정해져 버린 싸움이다.

초조해진 청년은 급히 보법을 전개해 사정권에서 빠져나왔다.

내공이 없는 소년은 그런 급격한 속도 변화를 따라 갈 수 없다.

결국 거리는 벌어지고 소년은 기진맥진한 채 숨을 몰아쉰다.

방어하는 쪽도 부담이 쌓이지만 공격을 한 소년의 피로도는 그것을 능가한다.

공격을 성공시키는 싸움이 아닌 지쳐서 먼저 실수하는 쪽이 이기는 싸움이다.

분명 개인간의 실력차를 놓고 보면 하늘과 땅 차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싸움이 시작되면 끈적한 뻘처럼 두 사람 모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그 진창 싸움엔 실력이 중요한게 아니다.

끈기. 지구력. 정신력.

버티는 싸움이다.

내공 없이 육체만으로 싸우는 법을 터득해야 했던 소년이 내놓은 최고의 승리책이었다.

상대 역시 그것을 눈치 챘기에 섣불리 접근하지 않았다.

조용히 내공을 운기해 검에 집중했다.

차가운 철덩이에서 푸르스름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오오-! 검기다!"

비무장을 둘러싼 관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져나온다.

검기! 천 명의 기재가 40년을 하루같이 수련하면 그 중 한 명이 이른다는 지고한 경지의 증거.

약관의 나이로 보이는 청년의 놀라운 성취에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런, 졌군."

그 모습을 본 여민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오 공자님께는 무리겠지요?"

"글쎄, 계속 그대로 갔다면 모르겠지만 용하가 검기를 쓰게 만들다니. 끝이야. 실력 문제가 아니거든, 저건."

한편, 처음보는 검기를 마주한 소년에게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저런 것, 모른다. 본적도 없고 상정해 본적도 없다.

그렇기에 달려든다.

모르는 것, 자신에게 없는 것을 두려워 하며 여기까지 왔던가?

뒤로 물러서며 여기까지 왔던가?

아니다.

그렇기에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간다.

소년의 검이 바람을 가르고 상대를 향해 날아 들었다.

이번에도 역시 속임수 없이 깨끗한 가르기.

그리고 그 검의 앞에는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청년의 검이 막아서고 있었다.

[챙그랑-!]

이를데 없이 청명한 소리와 함께 승부는 끝을 고했다.

산산히 박살난 소년의 검이 반짝이며 흩날렸다.

단 한번, 상대와 검이 마주친 것만으로

소년의 노력은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

비무장을 애워싸며 솟아 오르는 함성.

그 속에서 소년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 봤다.

자루만 남은 검이

덩그라니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쉽지만, 멋있었다. 그치? 령아?"

"네, 아가씨."

"오늘부터 저 아이를 비웃는 녀석이 있다면 내가 친히 엉덩이 걷어차 줄 것이야."

"아가씨, 채통을 지키셔야죠!"

"채통이 대수냐? 하하핫."

"아가씨, 제발, 사내처럼 웃지 좀 마십시요. 또 제가 혼줄 납니다."

"하지만 좋지 않느냐? 저렇게 멋진 사내라니. 여걸을 자부하는 이 나도 아직 여인의 마음이 있었나 보구나. 하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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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개미 눈꼽 만치도 없는 주인공이

무공으로 훨훨 날아다니는 무림인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힘을 갈고 닦아 홀로서는 내용을 담으려 했던 한 무협물의 일부분을 썼으나...

정작 이거 역시 본작을 쓰질 않고 있다.

설정만 잡고 글을 쓰지 않는 설덕후에겐 단편 습작 정도가 딱 어울리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