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7 11:06

[단편] 반과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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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시기 전에/
요정의 허물 첫 에피소드를 쓰고 난 뒤의 상황 : 으아으아으아ㅡ으ㅏ으아ㅡ아으ㅏ으ㅏ(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다가 멘붕)
아, 슬럼프구나(항상 슬럼프였지만) 깨달은 뒤의 상황 : 단편이라도 써 보자.
그리고 : 으ㅏ으아ㅡ아ㅡ아ㅡ아ㅡ아ㅡ아ㅡㅇㅇㅇ아으ㅏ으아ㅡ아ㅡ아ㅡㅏ(역시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다가 멘붕)
 
세글자요약 : 망작임
 
에포입니다. 농담도 아니고 자기비하도 아니고 정말 글 실력이 퇴화하고 있는 거 같아서 두렵습니다. 차라리 고삼 때가 나았어요.
어쨌건 우여곡절 끝에 완성은 했지만 이 글의 구성도, 이야기 자체도 난잡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완성했으니 올리긴 합니다만, 웬만하면 읽지 마시길 권합니다.
이제 기교에 치중하기보단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 같네요.
그전에 일단 쌓인 과제랑 레포트 작성하러 가야겠군요.















[단편] 반과 숨
 
 
 
 
 
  삶은 거대한 형벌이다.
 
 
 
  ◐일(0.5+0.5)
 
  "그에게 삶은 거대한 형벌이었어."
 
  다시 밤이다. 몇 번째 밤인지 새는 것을 그만둔 그는, 이젠 익숙한 솜씨로 불을 지폈다. 불씨가 충분히 커지자, 그는 조금이라도 덜 딱딱한 흙바닥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본의 아니게 말이 끊긴 그녀는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다. 곧 그녀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메스 말이야. 물론, 삶이 형벌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기 있었겠지만, 제대로 실감했던 건 성년이 되는 날이었겠지. 그는 그날 신전에 들어가 어머니의 말씀을 듣기 전까지는 자신이 그렇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을 거야. 으레 그러하듯이 등에 두 짝의 날개를 달고 천궁(天宮)을 향해 날아갈 것이라고만 생각했어. 실로 모든 인간은 그렇게 해왔으니까.
  자신들이 반쪽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었어! 제메스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어. 어떻게 날개가 한쪽밖에 없을 수가 있는 거지? 그건 이상하잖아. 당연히 양쪽 모두 나와야 정상인데, 그는 오른쪽 날개밖에 나지 않았던 거야!
  이제 제메스는 천궁으로 가는 유일한 수단을 잃어버렸어. 그야, 반쪽으로는 날 수 없잖아?
  그뿐이야? 이제 그는 유배지의 보호도 받을 수 없게 되었어. 반쪽인 그는 추방당해야만 했지. 한 때 자신의 동료이자 가족이었던 자들의 욕설과 몰매를 견디어 내면서.
  제메스는 외성(外城)을 등지고 나오며 온갖 생각을 했어. 그중에서 가장 비중이 컸던 것은 단연 절망이었지.
  열심히 탑을 쌓아왔음에도 어머니께 용서받지 못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런 걸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제 어떡하지?
  그런 걸 생각해야만 했지.
  밤은 곧 다가올 테고, 밤이 다가오면 그는 단신으로 마물과 맞서야만 했으니까. 마물들의 시간을 견뎌야만 했으니까. 그는 그런 걱정 때문에 주위를 둘러볼 수 없었던 거야. 그의 바로 옆에 있었거든.
  또 다른 추방자. 또 다른 반쪽.
  그녀의 이름은 모라였어. 모라는 아무리 말을 걸어보아도 그가 대답하지 않자, 왼쪽 날개(반쪽)로 그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어. 제메스는 놀라서 비명을 질렀고, 자신을 찌른 게 무엇인지 확인하고자(어쩌면 반사적으로 그랬을지도 모르지) 고개를 돌렸어. 그것이 그들의 첫 만남이었고, 첫 마주침이었지.
  모라의 체구는 작았어. 분명 성년이기 때문에 자신과 같은 나이었겠지만, 제메스는 왠지 그녀가 자신의 동생처럼 느껴졌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을까? 아니면, 지켜야 할 존재가 생겼기 때문일까? 제메스는 침착해졌어. 그리고 떠올려냈지, 한 전설을, 그리고 그가 해야 할 일을.
  반쪽들의 나라, 파노스.
  저 머나먼 북쪽을 향해 계속 나아가면, 날개가 반쪽뿐인 사람들이 모여 만든 나라에 도달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전설.
  그러나 그걸 전설로만 치부할 수 없었어. 당장에라도 무언가를 해야 했고, 그들이 향할 수 있었던 곳은 유배지 외의 어딘가뿐이었으니까. 제메스와 모라는 태양이 지는 방향을 확인하고 북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흐릿했던 하늘이었지만, 이젠 제법 개어서 별자리 몇 개가 보이기도 했다. 다행이다. 불을 피우기 위해 밤을 새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시 고개를 내려보니 그녀가 부루퉁해져 있다. 아마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아서 화가 나나 보다.
 
  "걸었다니까. 다행히도 유배지 근처라 그런지 처음 며칠 간은 마물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어. 그들은 낮에는 재빨리 움직이고, 밤에는 불을 지펴서 자신들을 보호했지. 고픈 배를 움키고, 마른 목을 다시고, 떠는 몸을 이끌어 앞으로, 앞으로. 그대로 계속 나아가서 파노스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는 한, 그들은 계속 나아 갔을 거야.
  물론 그들은 또다시 절망과 마주 보아야 했어.
  그들의 앞에는 흉측한 모습의 마물이 있었어.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모습이었지.
  그들의 뒤에는 높다란 낭떠러지가 있었어.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높이였지.
  하필이면, 불을 피우기 전에 마물과 맞닥뜨려 버린 거야. 불을 피울만한 마땅한 재료도 아직 구하지 못했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해야 하지. 제메스는 초조해했어.
  그때 무언가가 그의 오른쪽 팔을 찔러댔어. 모라의 왼쪽 날개였지. 모라는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어. 제메스도 왠지 모르게 침착해져서 그녀를 바라보았지. 그들은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어. 서로의 눈동자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어. 반쪽밖에 없는 자신들을 되돌아보았어.
  이윽고 모라가 결심한 듯이 말을 꺼냈어.
  날자.
  반쪽뿐인 우리니까, 함께 가자.
  비록 삶이 거대한 형벌일지라도, 어머니에게 용서받지 못한 반쪽이라도.
  그 반쪽에는, 네게 오른쪽 날개가 있음은, 내게 왼쪽 날개가 있음은,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들은 서로(반쪽)를 껴안고 낭떠러지 밑으로 몸을 던졌지.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쿵.
  불을 피워놓기 위해 쌓아둔 나뭇가지가 그녀의 발소리에 약간 흩어졌다. 그는 흩어진 그것들을 다시 한곳으로 모이게 했다. 그런 그를 보며 못마땅하다는 듯이 그녀가 말했다.
 
  "우리도 해 볼까?"
 
  "바보. 성공할 리가 없잖아."
 
  반쪽짜리인 그들이, 반쪽짜리인 그들의 흉내를 내면, 결국 같은 결말에 도달할 뿐이다.
  그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허락된 것은, 이런 한숨뿐이라고.
 
 
 
  ◐이(심貳心)
 
  "그에게 삶은 거대한 형벌이었어."
 
  그날 밤은 유난히도 땔감으로 쓸만한 나무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는 어렵사리 구한 나무에 불을 지피고 그녀의 다리를 보았다. 부어있었다. 그의 다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긴 여정으로 인한 피로. 이젠 걸어도 아무것도 못 느낄 정도의 피곤. 익숙해진 피곤. 익숙해진 아픔. 익숙해진 걸음.
  익숙함은 지루함을 유발한다. 그런 지루함을 불식시켜주는 그녀의 이야기에 그는 귀를 기울였다. 타닥타닥, 모닥불 소리가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어우러져서 마음만은 편안했다.
 
  "케임벨의 이야기야. 케임벨은 탑사(塔司)였어. 탑을 쌓는, 가장 고귀한 속죄를 하는 사람이었지. 케임벨은 일반적인 탑사보다 더 부지런했어. 밤늦게까지 탑을 쌓는 일에 열중했지.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몸이 안 움직여서 못 돌아가곤 했어.
  어느 날, 그는 처음으로 그런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어. 그날도 그는 기진맥진해서 탑을 쌓던 그 자리에 드러누웠지.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구름이 있었어. 비를 피하기는 피해야 하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기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했어. 그의 기억은 거기서 끊어졌어.
  케임벨은 눈을 떴어. 케임벨은 먼저 그가 있는 그곳이 아직도 탑의 최상층이라는 것을 확인했어. 그리고 비명을 질렀지. 아니 지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의 목은 움직여주지 않았어. 목도 그의 몸의 일부였으니까. 그래,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어. 눈을 제외하고는 말이야. 그는 차라리 눈도 몸처럼 움직이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어. 실로 그러했다면, 그가 그것을 눈에 담을 일은 없었을 테지.
  그의 눈동자는 마물을 비추고 있었지. 그는 그 흉측한 외모로부터 눈을 떼고 싶었어.
  그래서 그랬지. 그는 눈을 감았어. 그러자, 이번에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도저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어. 그 소리를 내는 건 분명 마물일 테니까. 아아, 왜 귀는 닫을 수 없게 만들어졌는지.
  '두려워하지 마.'
  누구라도 깜짝 놀라서 감은 눈을 도로 떴을 거야. 그 말소리가 누구의 것이었든지. 마물과 함께 있는(존재 여부도 불확실한) 사람의 것이었든지, 아니면.
  '두려워하지 마.'
  마물의 목소리였든지.
  놀랍게도 그건 마물이 내는 목소리였어!
  '내 이름은'
  마물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머뭇거렸어.
  '기억이 안 나.'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이 그 마물은 말했지. 그 후 마물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 케임벨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마물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했어. 같잖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이젠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그에게 일종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밤새 비라도 오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환하게 빛나는 별을 보고 있던 그가 시선을 내린 것은 그녀의 목소리가 멈추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집중해, 라고 말하고 싶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케임벨은 눈을 떴어.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셨거든. 다행히도 비는 오지 않았었나 봐.
  그 모든 것이 꿈이었던 거야. 잠자리가 좋지 않아서 꾼 악몽일 뿐이지. 마물이 말을 하다니. 심지어 한다는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라니.
  무슨 이야기냐고? 말했잖아. 같잖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라고.
  그 마물이 원래 인간이었고, 케임벨과 같은 탑사였고, 성년이 되어 한 쌍의 날개를 얻었고, 천궁을 향해 날아가던 도중 기억을 잃었고, 깨어나 보니 마물이 되어있었고, 인간이었던 기억이 그리워 탑에 숨어들었고, 한 때 두 개의 날개가 돋아있었던 자리에 부러진 날개뿌리가 인간이었던 증거로 남아있다는, 그런 이야기는 거짓말이 분명했지. 꿈이 분명했지.
  그러나 그것이 정말 꿈이었을까? 케임벨은 그렇게 생생한 꿈을 꿔 본 적이 없었어. 그 후 그는 탑을 쌓으면서 그 꿈에 대해 계속 생각했어. 다시 한 번 그와 만나기 위해, 부러 탑에서 밤을 지새워보기도 했어. 한 번 피어난 의심은 걷어질 줄을 몰랐지. 그가 설마 알았겠어? 그 의심이 성년이 될 때까지 이어질지.
  성년이 된 케임벨은 신전 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어머니는 그에게 날개 한 쌍을 주셨어.
  케임벨은 어머니에게 물음을 던졌어.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곳에서 마주했던 그 마물의 말에 따르면, 모든 마물들은 본래 인간이었으니까. 마물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라고, 더럽고 추악한 것이라 마주해서는 안된다(맞서지 마라. 깊은 어둠에 잠식되리라)고, 그렇게 어머니에게 배워왔었던 케임벨이었기에 그는 물어보아야 했어.
  '당신은 인간을 사랑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아니 하셨지.
  '삶이 비록 거대한 형벌이더라도, 당신을 향한 믿음만 있었다면 상관없었는데.'
  케임벨은 눈물을 흘리며, 그리고 웃으며, 자신의 두 쌍의 날개를 부러뜨렸어.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고자."
 
  그리곤 죽었지. 날개가 꺾였으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그는 말했다.
 
  "정말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만 하네."
 
  "그게 현실인걸. 의심하고. 파멸하고. 물론, 이 이야기들은 전부 지어낸 거지만."
 
  "그런데, 그 마물은 왜 날개가 사라져버린 거지?"
 
  "글쎄. 그건 그냥 케임벨의 꿈일 뿐인걸."
 
  "혹시 다른 누군가가 꺾어버린 걸까."
 
  "……. 그럴지도 모르지."
 
  그는 땅을 등지고 누웠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며, 저기 어딘가에 있을 천궁을 상상했다. 천궁에 도달하지 못할 누군가가, 케임벨의 날개를 꺾은 것은 아닐까? 그는 한숨을 쉬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삼(삶)
 
  "삶은 정말로 그래."
 
  사실 그는 마물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었다. 유배지에서 나온 이후로 단 한 번도 마물과 마주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은 마물 같은 건, 우리를 유배지 밖으로 보내지 못하게 하기 위한 어머니의 거짓말이 아닐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파노스가 존재할 가능성은 좀 더 높아진다.
  반쪽들을 위한 나라와 마물. 어느 것이 진실일까? 그 모두가 실은 거짓이 아닐까. 불과 몇 시간 전까지는 그런 의구심이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
  몇 시간 전, 그는 축축한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가 눈을 뜬 것과 동시에 무언가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윽고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고, 그제야 그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눈을 붙인 사이에 날씨가 급격히 안 좋아 졌고(그가 방금 들어선 그 지역의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비가 내려 모닥불을 꺼버렸으며, 불이 없어진 틈을 타 마물들이 그들 주위를 다가왔다는 상황을. 그렇다면 방금 눈을 떴을 때 지나간 거뭇한 것의 정체와, 비명의 주인은…….
  그는 어떻게든 그녀를 업고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짐승들과는 확연히 다른 발소리가 그의 주변을 쫓아왔다.
 
  "정말로 거대해서, 끝을 알 수 없는 형벌이야."
 
  그녀가 거칠게 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형벌이라는 말은,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의 입버릇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말을 하지 말라고 말하려다가 관두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그녀가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정신이라도 잃으면, 그녀를 업고 있는 그는 몸을 지탱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아모르와 클로린의 이야기야. 그래, 어쩔 수 없는 의심쟁이와, 어쩔 수 없는 거짓말쟁이의 이야기지."
 
  그는 발을 멈추었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한 박자 늦게 인간의 것이 아닌 발소리도 멈추었다. 그는 숨을 고르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아모르는 탑사였어. 탑사의 본질은, 벽돌 하나를 이고 어머니를 향한 기도를 올린 후 신뢰와 정성을 담아 탑을 쌓는 것이지. 겉으로 보기엔 아모르도 평범한 탑사였지. 적어도 유배지 내의 모든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단 한 명, 클로린을 제외하고 말이야.
  클로린은 어떤 특별한 직책도 없는, 말하자면 마을 내의 이단 격인 존재였어. 보통 유배지의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구분, 분배받아 천궁에서의 잘못에 대해 속죄하지. 가장 저열한 급사(給仕)부터 가장 고귀한 탑사까지.
  겉으로 보기엔 그녀가 하는 일은 없는 것처럼 보였어. 하나, 유배지에 있는 이상, 한 가지 일을 하고 있다는 건 분명했지. 물론 그녀는 그랬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그것이 분명한 일(속죄)이었어.
  거짓말.
  그녀는 거짓말쟁이였지. 그녀가 마을 내에서 따돌림당하는 것도 아마 그때문일 거야.
  어쨌건, 클로린은 아모르에게 관심을 있었어. 수많은 탑사를 보아 온 그녀의 눈엔 아모르가 어색하게 보였었거든. 그래서 클로린은 아모르에게 말을 걸고, 자신의 거짓말도 들려주고, 결국엔 친해지게 되었어. 아모르의 속내를 알게 된 건, 그녀가 막 그에게 78번째 거짓말을 끝마쳤을 때였어(달도 뜨지 않은 새까만 밤이었지). 그 거짓말은 아마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이었을 거야. 그 거짓말을 듣고 아모르는 되물었어.
  '어머니가 정말 있는 걸까?'
  '천궁은 정말 있는 걸까?'
  '마물은 정말 있는 걸까?'
  클로린은 그제야 아모르가 이상하게 보인 이유를 눈치챘어. 그는 거짓된 마음으로 탑을 쌓고 있었던 거야. 신뢰도, 경건함도, 숭배도 없는 마음으로. 순진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별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능숙한 거짓말쟁이인 클로린의 눈에는 그의 거짓말이 서툴러 보였던 거야.
  아모르는 고귀한 탑을 쌓으면서 계속해서 의심을 해왔던 거였지.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는 존재를, 자신이 가고 싶어하는 고향을, 자신을 위협하는 무언가를. 의심하고 또 의심했던 게지. 심지어는 자신이 서 있는 땅, 자신이 들이마시는 공기, 그리고 자기 자신조차도. 그의 세상은 의심으로 이루어져 있었어.
  성년의 날이 되었어. 의심쟁이 아모르는 그 의심 때문에, 거짓말쟁이 클로린은 그 거짓말 때문에 온전한 날개를 받지 못했지. 아모르와 클로린은 반쪽들의 나라인 파노스를 찾아가기로 했어. 마치, 제메스와 모라처럼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그런 것까지 닮을 필요는 없었는데.
  마물이 그들을 습격한 거야. 클로린이 다쳤어. 아모르가 그녀를 업고 뛰기 시작했지. 클로린은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거짓말을, 아니 참말을 하기 시작했어. 아모르에게 이렇게 말했지.
  삶은 거대한 형벌이라고.
  아모르, 믿을 수 없겠지만, 이건 이야기(거짓말)가 아니라고."
 
  숨이 턱까지 차올라 질식해버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달리던 그가, 아모르가 결국 걸음을 멈추어버렸다. 아모르는 등에 업힌 그녀, 클로린에게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건 단지 숨이 찼기 때문이었을까?
 
  "너는 처음부터 반쪽이었어."
 
  아모르는 등에 있는 그것이 정말 그녀인지 의심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성년이 되던 날, 클로린은 신전 내부에 숨어있었어, 두 개의 날개를 가지고. 아모르와 함께 가기 위해서 말이야. 이윽고 아모르가 신전에 들어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했지.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어. 아모르의 날개가 하나밖에 나지 않은 거야.
  뚝.
  클로린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신의 한쪽 날개를 부러뜨렸어. 정말, 생각할 겨를도 없어서, 왜 두 개의 날개를 가진 자신을 한 개의 날개를 가진 반쪽으로 만들어버렸는지,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지. 그런데 몇 초만 생각해보니까 바로 답이 나오더라고. 그녀는 아모르를 사랑하고 있었던 거야. 그녀가 하는 거짓말(이야기)을 들어주는 유일한 독자.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사랑에 빠질 만큼, 유약했던 거겠지. 얼떨결에 나뭇가지 꺾듯 날개를 부러뜨린 것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아모르와 함께할 수 없다는, 아주 단순하고 무식한 이유 때문이었겠지.
  클로린은 이제 숨어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아모르를 향해 다가갔어. 마침 아모르도 기도를 끝마치고 일어서려던 차였지. 클로린은 기쁜 마음으로 그를 불렀어. 아모르가 돌아보았지. 그때 클로린은 약간 기대했었는지도 몰라. 반쪽인 자신과 함께하기 위해 온전한 자신을 버린 그녀를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
  정말이지, 안이했지.
  아모르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을 뿐인데 말이야.
  아모르는 자신의 어깨와 클로린의 손을 번갈아서 보았어. 그의 한쪽 어깨에 없는 무언가와 그녀의 손에 들린 무언가를. 물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클로린은 알 수 있었어.
  의심쟁이 아모르가 의심한다는 걸."
 
  동이 트고 있었다.
 
  "누구도 너의 날개를 부러뜨리지 않았어. 넌 처음부터 반쪽이었어. 네가 나를 의심하는 건 어쩔 수 없겠지. 내가 널 좋아해서 내 날개를 부러뜨렸다는 것보단, 네 날개를 부러뜨렸다는 게 좀 더 현실성 있는 이야기겠지. 또한,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내는 거짓말쟁이인 나를, 그 어떤 것이라도 의심하는 네가 믿어줄 가능성은 정말 눈곱만도 못 하다는 걸 알아. 그렇기에 삶은 거대한 형벌이고, 어느 쪽이 진실이든 나는 너에게 사과해야만 해."
 
  더는 마물에게 쫓기지 않아도 될 게다. 그러나 클로린은 자꾸만 누군가가 자신을 쫓아오는 것만 같았다.
 
  "내가 너를 좋아해서 미안해."
 
 
 
  ◐사(실은…….)
 
  발걸음이 무겁다고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기에 힘들지는 않다. 그저 아모르는 지루했다. 그의 걸음은 피곤함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고, 이젠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모르는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 혈흔 자국이 그의 자취를 따라 선을 그리고 있었다.
  너덜너덜.
  그가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녀의 거의 꺾여진 반쪽 날개가 같이 흔들린다.
  아모르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대답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저 걸었다. 그저 생각했다.
  제메스와 모라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제메스와 모라는 반쪽이고, 그들은 반쪽들의 나라를 찾아 여정을 떠난다. 그 와중 마물의 습격을 받고 궁지에 몰려 자살한다. 자살? 그것이 정말로 자살이었던가? 아니다. 그녀는 자살이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자살이 아니라 하늘을 날았던 거다. 그래, 제메스와 모라는 하늘을 날았다. 그녀는 분명 그런 표현을 썼었지.
  이야기가 너무 모호하게 끝나서, 아모르는 그 이야기의 결말을 나중에 물어보았었다.
 
  '그들은 하늘을 나는 데에 성공했어. 처음으로 맛보는 하늘의 공기, 처음으로 보는 땅의 풍경. 그들은 서로의 날개를 보듬으며 구름 사이로 날았지.'
 
  '뭔가 이상한데.'
 
  '뭐가?'
 
  '아니, 네가 지어낸 이야기치고는 너무 밝아서. 마치 꿈 같네.'
 
  '응. 평소대로라면 나는 제메스와 모라를 동반자살자로 만들고 이야기를 끝냈겠지.'
 
  '근데, 왜?'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영원한 아이의 이야기야. 그에겐 삶 전부가 거대한 형벌이었지. 크나큰 죄를 지어서, 날개를 가질 수 없는 인간. 늙지도 않고, 긴 영겁을 아이로 살아야만 하는 인간. 성년이 되기 전까진,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는 정말 부러운 거 있지.'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었다.
 
  '내 날개가 반밖에 보이지 않았을 때 말이야. 아니, 그때문에 마을에서 쫓겨났을 때 말이야.'
 
  그 머뭇거림은 거짓말을 하기 전의 머뭇거림이 아니었는지. 하긴, 그럴 리가 없다. 그녀는 능숙한 거짓말쟁이다. 그녀가 머뭇거리는 건, 진실을 말할 때뿐이니까.
  '네 날개'를, '내 날개'라고 아모르가 잘못 들었을 뿐이니까.
 
  '차라리, 영원히 어린 아이였으면 좋았을 텐데.'
 
  다시 제메스와 모라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제 그는 의심했다. 유독 그 이야기만이 밝은 이유를. 문득, 그들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자신들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아, 그랬었구나.
  아모르는 이제 더 의심할 만한 게 없었기에,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익숙해서 지루한 걸음을. 그 걸음 하나하나마다 머릿속에서 실제로는 없었던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근데, 왜?'
 
  '그들은 우리와 비슷하잖아. 그런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야.'
 
  그리고는 아모르가 바라보는 밤하늘을 향해 그녀도 시선을 옮기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그러면 그는 자기도 모른다는 듯이 침묵하겠지.
 
  터벅터벅.
  익숙한 그 걸음은, 익숙하지 않은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오(깨달을悟)
 
  "아모르, 삶이란 무엇일까. 정말 거대한 형벌일까."
 
  그게 그가 들은 그녀의 마지막 말이다.
 
  "삶은 있는지도 없는지도 불확실한 것인데."
 
  그게 그녀에게 들려준 그의 마지막 말이다.
  그녀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는 이제 파노스를 찾지 않았다. 애초부터 파노스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던 그에게 그곳으로 가는 건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었다. 그의 걸음이 향한 곳은 유배지였다. 반쪽인 자신을 내쫓은 감옥. 그곳의 사제는 클로린을 간단히 치료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두 명의 발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경로를 되짚어 걷는다. 불을 지피고 주변을 경계한다. 하늘에 뜬 반쪽짜리 달과 자신을 비교해보고 한숨을 쉰다. 짐승의 울음소리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새벽이 되고, 동이 트고, 아침이 되면 차가워진 몸을 추스르고 다시 나아간다. 역행한다. 가파른 언덕, 짙은 색의 숲, 천 걸음 밖의 샘. 저벅거리는 자신의 발소리, 색색거리는 등의 숨소리, 이름 모를 조류의 노랫소리. 도대체 얼마나 멀리 걸어왔길래, 이렇게나 오래 걸리는 것일까? 그렇게 오랜 여정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데. 다른 점은 거짓말쟁이의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정도다. 부어오른 다리를 주무르며, 의심쟁이는 깨닫는다. 어쩌면 이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되돌아가는 걸음의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그가 지금껏 그녀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모르에게 있어 클로린은 특별한 존재다.
  아모르의 의심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거북한 분위기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아모르에게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녀만큼은 그런 거북함을 견뎌낼 수 있었다. 늘 거짓말을 해왔기에, 늘 의심받아 왔기에.
  거짓말쟁이를 평등하게 대해준 의심쟁이.
  의심쟁이의 곁을 지켜준 거짓말쟁이.
  결국, 시시하고 뻔한 이야기였다.
  그와 그녀는 결국, 반쪽이어서, 둘이 함께해야 비로소 온전한 숨을 쉴 수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돌아가세요."
 
  유배지를 둘러싼 외성의 입구 앞에, 성년이 되지 않은 사람이 나와 있었다. 아모르는 물론 알고 있었다. 그가 탑을 쌓았을 적과는 비교도 안 될 정성으로 그 사람에게 빌더라도 그는 그들을 유배지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을 것이며, 참다못한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불러오고, 온갖 욕설과 매도와 폭력을 그와 그녀에게 휘두를 것을 말이다. 신전에서 반쪽의 날개를 가졌을 때처럼, 그들은 추방당하리라.
  그럼에도 그가 가야 하는 길은 그뿐이었다.
 
  그는 꿈을 꾸었다. 그의 앞에는 클로린이 있었다. 그녀는 온전한 날개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날개를 부러뜨리려 하고 있었다. 그는 그런 그녀를 막으려고 했지만, 막지 못했다. 그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왜? 왜 너는 날개를 꺾으려는 거지?'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를 좋아해서 미안해.'
 
  이윽고 그녀의 한쪽 날개는 꺾여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손은 나머지 한쪽 날개마저 꺾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는 역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의문을 던질 뿐이었다.
 
  '왜? 왜 너는 날개를 꺾으려는 거지?'
 
  그녀는 더 이상 클로린이 아니었다.
 
  '삶이 비록 거대한 형벌이더라도, 당신을 향한 믿음만 있었다면 상관없었는데.'
 
  케임벨이었다. 그는 웃음과 울음의 중간 정도의 표정을 지으며, 나머지 날개를 부러뜨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흉측하게 변하더니 마물이 되어버렸다. 마물이 두려워진 아모르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소리가 들렸다.
 
  '두려워하지 마.'
 
  그가 눈을 뜨자, 그곳은 신전의 안이었다. 누군가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조금씩 날개가 돋아나는 모습을 보니 아마 성년이 되었나 보다. 한 쌍의 날개를 가진 그가 불현듯 일어섰다. 그런데 그 모습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아모르는 막연히 그 모습이 어머니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하소연했다.
 
  '어머니, 왜 제 날개 한쪽을 앗아가셨나요.'
 
  어머니는 이에 인자한 미소를 짓더니 아모르에게 대꾸했다.
 
  '맞서지 마라. 깊은 어둠에 잠식되리라.'
 
  그리고 이제 아모르는 마물 앞에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꿈속이 아니었다. 온몸이 욱신거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증거였다. 그는 정해진 길을 밟았고, 그녀를 대신해서 폭력을 받아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나머지 반쪽 날개는 꺾여버렸다. 그는 그녀를 부축하고, 없는 힘을 내서 유배지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쳤다. 힘이 다한 그는 쓰러져서 정신을 잃었고, 꿈을 꾸었으며 해가 지는 황혼에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앞에 마물이 있다. 아모르는 꿈속에서 들었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맞서지 마라.'
 
  마물과 맞서는 것은 금기다. 마물은 위험하니, 오염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이다. 그러나 어차피 용서받지 못하는 반쪽인데 무슨 상관이랴?
  아모르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눈을 감고 있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클로린을 내려다보고 그녀에게 말했다.
 
  "믿어볼게, 네 말."
 
  밤이 되고, 별이 뜨고.
  바람이 차다.
  아모르는 눈물을 흘렸다.
  왜일까. 반은 왜 살면 안 될까. 반은 왜 날면 안 될까. 어머니는 왜 우릴 낳았을까. 아모르는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아모르는 떠올렸다. 반쪽들이 살아가는 나라를. 아모르는 생각했다. 아모르와 클로린이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아모르는 의심했다. 우리는 어디에서 오더라? 몽롱한 상태에서 그는 환상을 보았다. 하늘에서 신전으로 내려오는 아기. 아니다. 그 아이는 어디에서도 오지 않았다. 눈앞이 환하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북쪽으로 끝없이 걷는 모습이 보인다. 그 둘은 각각 한쪽에 날개를 가지고 있었고, 반쪽 날개와, 반쪽 날개가 서로를 보듬어주는 그 사이에 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아이는 영원히 날개를 가지지 않고, 그럼에도 온전한 하나로 살아가고 있었다.
  왜일까? 의심쟁이는 그 꿈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의심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는 밝은 햇살에 눈을 떴다. 누워있는 그녀가 보였다. 마치 자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저 눈 부신 햇살만 아니었다면, 그 너머에 있는 거의 죽어가는 마물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마물을 맨손으로 이겨낸 것이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의심은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사람들이 밖으로 퍼져 나가는 게 두려워서 그런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전혀 상관없었을 것이다. 이미 그의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삶은, 그녀였고, 그녀가 숨 쉬는 광경이었고, 자신의 손이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는 모습이었으니까.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는 더 이상 반쪽이 아닌, 완전한 하나라는 사실을. 그녀가 표정을 찡그렸고 이윽고 눈을 떴다. 그리고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더는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뒤척이고는, 완전해지기 위해 자신의 등에 있는 반쪽을 부러뜨렸다. 그럼에도 그의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하나와 하나는 다시 잠들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꿈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고, 곧 그들은 깨어날 테지만, 그들의 숨소리는 어디에서든 들릴 것이다. 꿈이든, 현실이든.
 
 
 
2012.05.27
EP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