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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죽은 매장자의 애독자
 
 
 
 공상을 즐기는 자, 벌 받으라.
 
 
 
  '나 죽기로 했어. 목숨이 두 개라는 확신이 섰거든.'
 
 에드나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농담인 줄로만 알았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들었더라도 농담으로 여길 법한 말이었다. 게다가 우중충한 장례식장이라는 장소에, 술이 무르익은 분위기였다. 과연 진담이라 여길 사람이 없겠는가 하면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 상식인이라면 이러한 내 판단을 지지해 주리라.
 그러니 결국 내가 상식인이고, 에드나가 상식인이 아니었다는, 그런 단순한 이야기다. 차라리 내가 상식인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괜히 바닥을 찼다. 끊은 지 오래인 담배가 고파졌다.
 장례식장은 이번 달 들어 벌써 두 번째였다. 오늘 식장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에드나 하나가 아니라는 점에서 새삼 사람은 많이 죽는구나 싶었다. 이 넓은 도시는 사람의 밀도가 높은 만큼 생명의 순환이 재빠르다는 것을 뒤늦게야 실감해버렸다.
 영정 속 에드나는 내 속도 모르고 웃고 있었다. 에드나의 양옆으로 공양된 조의 꽃이 펼쳐져 있었다. 너는 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었는데. 그래서 꽃을 사지는 않았어.
 나는 상주에게 인사를 하고 조의로 가져온 책 한 권을 에드나의 근처에 놓았다. 상주는 그걸 보고 작은 소리로 신음하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괜히 신경 쓰여 상주를 돌아보았다.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다. 밤을 지새운 탓인지 머리는 부스스하고 눈에 기미가 끼어 있었다. 피곤한 얼굴이 원숙하게 보일 때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어릴지도 모르겠다.
 에드나의 아들이었던가. 벌써 훌쩍 자라서 어른이 되어버렸다. 나는 다시 한 번 인사했다.
 
 "그 책은……."
 
 인사를 받아 준 뒤 그가 말했다. 눈치로 봐선 무슨 책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매장자'의 소설입니다. 에드나가 생전에 좋아했었던 책이에요."
 
 청년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이내 다시 고개를 숙였을 뿐이다. 나는 그의 반응에 어리둥절해 하며 에드나의 시신과 작별했다. 차라리 에드나가 했던 그 말처럼 그녀의 목숨이 두 개였다면……. 부질없는 상상이 또 땅에 눌어붙은 그림자처럼 발을 끌기 전에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영결식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다.
 
 
 
 에드나는 문학소녀였다. 벌써 30년은 된 이야기라 구체적인 부분이 유소년기의 직소 퍼즐처럼 구멍투성이지만, 에드나의 이야기를 할 때 소설이라는 단어를 뺄 정도로 애매한 건 아니다.
 말하자면 에드나에게 있어 소설이란 직소 퍼즐의 바탕이 되는 퍼즐판 같은 존재였고, 에드나의 삶이 소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얼추 들어맞을 정도였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항상 책을 읽고 있었다. 내가 그 사실을 지적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말이다.
 
 '나는 책을 읽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렸어.'
 
 어린 마음에 나는 식겁했다. 그것이 단순한 비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족히 몇 년은 걸렸던 것 같다. 분명 에드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말했더라면 나는 머지않아 그 말이 사실이 아님을 깨달았겠지만, 그 에드나가 한 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말이 사실인 양 문자를 눈에서 놓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책을 읽다가 가끔 내게 주는 시선에, 나는 그녀가 죽을까 봐 허둥지둥 당황하고는 했다. 빨리 책을 보라고, 나 같은 것보다 네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으냐고, 신경 쓰인다면 이제 네 곁에 오지 않겠다고. 그렇게 급하게 말해버리면 에드나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잠깐 안 본다고 죽지는 않아. 그러면 잠은 어떻게 자게?'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라서 나는 뒤늦게 한숨을 쉬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주로 에드나가 읽던 책에 대한 것이었다. 그녀의 화제는 그것뿐이었으니까.
 지독한 활자중독자에게는 어떤 문장도 달게 느껴지는 법이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에드나는 그 말대로 가리는 책은 없었으나 대체로 소설류를 좋아했다. 철학서나 자연과학 논문을 읽는 것이 어떤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였을 정도로 소설광이었다.
 
 '이 세상은 수많은 작가가 있고, 그 수보다도 많은 작품이 있어. 리프렝의 말을 빌리자면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받고 있지. 읽어도 또 읽을 게 남아있다는 축복과, 끝내 한정된 시간 동안 모든 책을 읽지는 못한다는 저주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읽을거리를 골라야만 하고, 결국 취향에 맞는 책만을 읽는 게 가장 높은 만족감을 얻는 방법인 거지.'
 
 에드나의 경우 취향이 지나치게 넓다는 게 문제였지만. 신화라고 불러야 할 만큼 오래된 고대 문학이나, 낭만과 모험이 주요 소재였던 중세 문학이나, 인간성과 신의 관계를 주제로 하는 근대 문학이나, 현대의 소시민적 삶을 반영한 순문학이나, 재미만을 위해 쓰인 오락소설이나.
 웬만한 소설은 그녀의 취향이었고, 그렇기에 문학소녀의 시선이라는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렇다. 그녀의 시선은 세례였다. 세례가 어떤 존재를 더 선한 것으로, 더 나은 것으로 탈바꿈하게 한다는 의미라면 그것만큼 적절한 단어를 나는 모른다.
 나는 에드나가 해주는 책 이야기가 좋았다. 책을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목소리로 듣는 책은 에드나 특유의 상상력으로 덧칠된 해석이 부록처럼 붙어있었다.
 비유적인 표현으로나마 내가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바로 그 부록이었다. 나는 그 부록의 애독자였다. 만약 책을 재밌게 읽기 위한 안내서를 썼다면 에드나는 크게 성공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원전보다도 더 많이 팔린 기록으로 문학사에 이름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부풀어 오른다. 풍부해진다. 풍요롭다. 기세 좋게 차오른 꽃봉오리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꽉 찬 끝에 마침내 터지듯이.
 에드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러한 이미지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끝도 모르고 확장되어 가는 이야기의 노도 속에서 익사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야기하는 순서를 바꾼 것만으로도 지루한 글이 긴장감 넘치는 미스테리로 변모했고, 그녀가 고쳐 말하는 대사만으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글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였지만, 어째서 그녀는 글을 쓰지 않는 걸까 무심코 생각해버릴 정도였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과 창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달라. 나는 쓰는 건 잘 못 해.'
 
 공교롭게도 그녀의 글솜씨는 절망적이었던 것 같다. 글을 쓰지 않는 게 아니라, 글을 쓰지 않게 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활자에 목마른 사람이 소설 쓰기를 시도해보지 않을 리 없다. 에드나는 글을 썼고,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그녀는 뮤즈가 허락한 게 읽는 것뿐이라면 기꺼이 그럴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늘진 표정만으로 에드나가 자신의 재능에 얼마나 실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에드나의 픽션에 대한 갈망이 그녀 인생의 전반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거대한 벽이었을 줄은, 그녀가 죽는 날에 이르기까지 끝끝내 알아챌 수 없었다.
 에드나를 자극한 것은 한 작가였다. 에드나가 죽기 며칠 전에 숨을 거둔 그 작가다.
 에드나는 소설을 두루 읽고는 했지만 여러 번 읽지는 않았다. 이미 읽은 이야기를 다시 읽을 시간에 다른 이야기를 찾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단 한 작가의 작품만은 몇 번이고 읽었었는데, 바로 매장자라는 필명의 작가였다.
 에드나는 매장자의 애독자였다.
 
 
 
 오후 2시가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영결식이 정오에 시작되었으니 지금쯤이면 모든 의식을 끝내고 에드나였던 덩어리는 안식을 취했으리라.
 나는 지금 장례식장으로부터 걸어서 20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카페에 있다. 카페 이름은 낯선 외국어였는데, '책의 향기'라는 의미다. 예전에 에드나가 가르쳐주었었는데, 읽는 법은 잊어버렸다.
 딱 에드나가 좋아할 법한 분위기다. 커피 향이 짙은 가게 안에서 책을 읽으면 집중이 잘 된다고 했었다. 커피콩이 돌돌 볶아지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종이 넘기는 소리가 다다. 모두 독서에 여념이 없다. 에드나는 가게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적당한 소음과 불그스름한 조명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가 좋았던 걸까. 이곳에서 에드나가 읽었던 소설은 언제나 매장자의 것이었다.
 그래, 나는 지금 매장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내가 에드나를 알게 된 그 날에도, 그녀는 「매장자」를 읽고 있었다.
 나는 그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에드나가 작가에게 표출하는 일방적인 애정에 대한 질투 어린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오랫동안 증오할 수는 없는 법이다. 즉 이 경우는 싫어한다기보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쪽에 가깝다. 애초에 책을 좋아하지도 않고, 작가를 많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에드나 뿐이었다.
 매장자가 쓰는 소설은 언제나 사람이 죽어 나갔다. 어떤 사람이든, 어떤 때이든, 어떤 장소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이유로든 죽는다.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해 회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서술하는 기법을 주로 사용했다.
 언젠가 에드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왜 이 작가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거야?
 자살모임을 소재로 한 매장자의 소설 「도피자」에 대해 줄줄이 떠들어대던 에드나는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눈매가 올라갔었으니 한창 중요한 부분에서 끊었었나 보다. 아마 자살로 위장한 주인공이 타인으로 변장하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도리어 질문받고 말았다.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한 반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이야 '에드나를 좋아해서', '에드나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따위의 번지르르한 대답을 할 수 있을 테지만. 역시 당장 떠오르지 않았던 걸 보면 좋아한다든가 좀 더 알고 싶다는 건 뒤늦게 덧붙인 이유고, 실제로는 이유 따위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대답이 그러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에 이유는 없어.'
 
 좋아하는 이유를 소리로 만들어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그것은 거짓말이 되어버린다고, 그녀는 말했다. 내가 잘 모르겠다고 하자 에드나는 한숨을 폭 쉬더니 간단히 말해버렸다. 만족스러운 설명은 아니었는지 표정을 찌푸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냥 매료된 거야.'
 
 그렇게 말하는 에드나의 목소리가 얼마나 감미로웠던지. 매료라는 단어에 매료될 수도 있는 걸까? 어떻게 내가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그렇게나 적확하게 어조만으로 전달할 수 있는 걸까. 그 이후로 나는 내 감정을 나름대로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에드나에게 '매료'된 것이다. 그녀에게 배운 단어다.
 죽음은 생명의 종착점이다. 생명은 매 순간 생명력을 소모하여 죽어간다. 그렇기에 태어남은 죽어감의 다른 이름이고, 그렇기에 삶은 고통이다.
 누구의 말이었는지. 에드나는 어느 철학서에서인가 봤던 말을 인용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매장자의 소설에는 죽음의 안개가 짙게 깔려 있어. 주인공은 언제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당장 오지 않더라도 언젠가 맞이할 결말을 말이야. 그게 말이지, 좋은 거야. 나는 어떻게 죽을까. 그런 생각을 독자에게 강요할 수 있는 문장을 쓰는 작가는 매장자 정도밖에 없으니까.'
 
 참고로 나는 매장자의 문장을 두 눈에 담으며 끝을 맞이하고 싶어.
 덧붙인 그 말에 나는 에드나가 다르게 보였다. 정확하게는 에드나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로 보였다.
 나와 같은 나이인데도 이 아이는 벌써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비록 현재와 죽는 순간까지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그 끝을 정해놓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나와 에드나는 고작 열 살이 넘어가는 어린애였고, 그 나잇대 어린애의 고민이란 보통 '오늘은 뭘 하고 놀까'를 넘어서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에드나는 이미 어린애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로 돌아온다. 미지근한 커피로 목을 축인다. 그리고 생각한다. 현재의 내가 그 당시의 에드나 만큼의 사고능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조숙해 버리는 게 과연 좋은 걸까. 지금까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생을 보내면서 나름대로 세계관이 생겼다. 내 세계관에서는 '끝'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어린아이들 뿐이다. 즉,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그저 놀 궁리에 가득 찬, '오늘은 뭘 하고 놀까' 정도로 심각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기는 어렸을 때뿐이다.
 에드나는 그 시기를 박탈당했다. 그래서 내가 매장자를 좋아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책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 내 눈만을 바라보고 해맑게 웃어주는 에드나가 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슬프게도 당시의 에드나는 앞서 말했던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인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의 내가 당시의 에드나의 사고를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에드나는 언제나 나보다 앞서있다. 그녀가 죽은 이 순간조차도,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분명 내가 이해하는 것보다도 많은 것을 이해했겠지. 또래와는 다른 자신의 모습에 우월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아니면 환멸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건 에드나는 분명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게다. 자신이 다르다는 걸. 정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걸.
 나는 추측만 무성하게 해댈 뿐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 죽음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심정을 어떻게 알겠는가. 항상 끝을 바라던 에드나의 심정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결국 우리는 끝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적도 없지만. 결국 너는 뭐였을까. 결국 우리는 뭐였을까.
 빙그르르. 카페 맞은편의 큰 건물 입구. 회전문이 돈다.
 내 생각도.
 
 
 
 별생각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본다. 문득 회전문이 시계 같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일정한 속도로 한쪽 방향으로만 도는 물체.
 문득 떠오른 생각이 가라앉고,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갔다. 31일째의 시계 속에서 낯익은 남자가 튀어나왔다. 두리번거리던 시선이 나를 발견했고, 그는 망설임 없이 '책의 향기'에 들어왔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한 뒤에 내가 앉은 테이블로 걸어와 서슴없이 정면에 앉아버린다.
 내 시선은 그의 손에 집중되어 있었다. 내 시선을 알아챈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정중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벗어놓은 선글라스의 옆이다. 나는 차분한 동작으로 선글라스를 주워들어 눈에 걸쳤다.
 
 "마침 찾아뵈려고 했었는데 연락처를 몰라서요. 못 찾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운이 좋았네요."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아무런 전조도 없었다. 하다못해 그 흔한 자기소개도 없었다. 오늘 이후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테니 서로 이름을 묻지 말자. 그런 암묵적인 합의가 책과 함께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것 같다. 속으로 어떤 이름을 댈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나는 책을 집어 듦으로써 냉큼 그 합의에 동의했다.
 책은 아까 내가 에드나의 영전에 바쳤던 「매장자」였고, 남자는 에드나의 아들이었다.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내자 남자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피곤함이 잔뜩 묻어나는 웃음이다.
 
 "그 책을 돌려드리려고요."
 
 "이 책은 에드나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거예요."
 
 죽는 순간까지 두 눈에 담고 싶어 했던 책이다. 그래서 꽃 대신 책을 가지고 간 것이었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사실이 있었다. 눈앞의 이 청년이 책을 받았을 때 뭐라 이를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었었다는 사실 말이다.
 어쩌면 이 청년은 에드나가 왜 죽었는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입술을 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이윽고 남자는 마음의 준비를 마쳤는지 입을 열었다. 아니나다를까.
 
 "이 책의 줄거리를 알려주세요."
 
 "줄거리를…… 왜죠?"
 
 "알고 싶으니까요."
 
 "직접 읽으면 되잖아요?"
 
 "저는 책을 싫어하거든요."
 
 "책은 싫어하는데 줄거리는 알고 싶다고요?"
 
 "네. 분명 저는 책을 싫어해요. 하지만 책의 내용은 알고 싶어요."
 
 "그건 어째서죠?"
 
 "왠지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그 말을 듣고 괜히 웃음이 나왔다. 에드나라면 이런 비논리적인 이유로 부탁하지는 않았겠지. 앞뒤가 맞는 말이 준비되어서야 대화에 나설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책을 싫어하는 아들.
 에드나의 몸에서 나왔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나 다른 걸까. 에드나는 알고 있었을까.
 
 "그……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남자가 말했다. 미소를 띠는 내 모습을 보고 자신이 우스워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비웃은 건 아니에요. 그냥 신기해서요."
 
 그래. 이 남자는 어머니가 책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인의 뒷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관두려고 했지만, 역시 알려주어야겠지.
 에드나, 미안해. 위험하더라도 말해줘야 할 것 같아. 소설의 줄거리 정도는 괜찮겠지.
 
 
 
 공상을 즐기는 자, 벌 받으라.
 소설 「매장자」의 첫 구절이다. 에드나가 하도 읽어대서,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뇌리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문장이다.
 줄거리를 끝까지 말해주자 남자는 앞서 말했던 첫 구절을 작게 읊조렸다. 그리고 내쉬는 한숨이 너무 무거워서, 무심코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꺼내 버렸다.
 에드나가 죽기 며칠 전에 「매장자」의 작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그럼 저의 어머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따라 죽은 건가요?"
 
 남자의 사고방식은 이해하기 쉬웠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 또한 제삼자였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실제로 매장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남자 또한 작가(매장자)의 이름은 몰랐어도 이 화제는 알고 있었는지 곧장 그런 답으로 이어진 것이리라.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고개를 젓자 남자는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럼 도대체 뭔데요!"
 
 얼굴에 피어난 것은 초조함일까, 분노일까. 어쨌든 그 새빨간 것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에드나는 자살했다. 자신의 목숨이 두 개라는 바보 같은 확신을 한 채.
 마음속으로 한 대답은 남자에게 닿지 않았다.
 눈앞의 남자는 숨을 몰아쉬더니 죄송하다고 말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마 어머니가 왜 자살했는지 알지 못해서 답답할 것이다.
 왠지 모르게 미안해졌다. 나는 에드나의 친구로서, 친구가 아들에게 저지른 과오를 책임져야 한다. 에드나의 공상은 위험했고, 에드나를 잡아먹었으며, 나는 그것을 막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에게 진실의 일부라도 알려주도록 하자. 이 결심은 에드나가 나타난다고 해도 막을 수 없다.
 
 "에드나는 작가였어요."
 
 남자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말하듯 한쪽 눈썹만 들어 올렸다. 자칫하면 버릇없게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진지한 눈동자가 그런 면모를 가려주었다. 조용히, 이야기를 재촉하는 시선의 창. 나는 이야기한다.
 
 에드나는 작가였다. 정확하게는 작가 지망생이었고, 글을 쓰는 것을 읽는 것만큼이나 좋아했다. 「매장자」라는 소설로 등단한 익명의 작가에게 빠졌고, 그 작가의 필체를 동경했지만 결국 뮤즈는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한편, 당시의 나는 불안했다. 나는 에드나가 필요했지만, 에드나는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그저 하루 동안 읽을 수 있는 양질의 책과 생명 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식사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너에게 흥미 따위 없다. 오히려 책 읽는 데 방해만 된다.
 그렇게 생각할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그 와중에 그녀가 소설을 쓰다가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거다 싶었다. 나라도 에드나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게 있었다.
 내가 책을 읽더라도 그녀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독해능력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내가 한 권을 읽을 때 그녀는 다섯 권은 읽어버릴 테니까. 차라리 그저 가만히 앉아 그녀의 책 이야기를 듣는 편이 나았다.
 그렇다면 소설을 쓰자. 에드나도 못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에드나보다 잘해낼 수 있다면, 에드나는 내가 필요해질지도 모른다. 더 이상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에드나 몰래 밤마다 소설을 써댔다. 물론 얼마 안가 들켜버렸다. 에드나는 내가 쓴 원고 뭉치를 손에 들고 읽고 있었다. 쓸 때는 자신만만하게 썼는데 어째서인지 에드나가 읽고 있으니 주눅이 들었다. 눈앞의 원고용지를 찢어서 가루로 만들고 싶은 충동이 몸을 근질근질하게 했다.
 에드나는 그저 조용히 읽었다. 원고지가 넘어가는 소리만 들린다. 독서량이 많은 에드나는 내 짧은 단편 소설을 간단히 해치우고는 가차 없이 평가했다.
 
 '삼류야. 딱 봐도 초보자가 쓴 거야.'
 
 용케 도망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에드나의 감상은 촌철살인이었다. 여기는 이래서 부족하고, 여기는 저래서 부족하고, 여기는 오히려 너무 넘친다는 둥. 그녀는 뛰어난 소설가는 아니지만 뛰어난 비평가였으므로 나는 내 귀가 사라졌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주요 비판점은, 너무 이성적이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이렇게까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 이 세상에 이런 사람은 없다는 것.
 나는 상상 속 인물이니 당연히 이 세상에 없는 게 아니냐고 반박했지만, 일축당했다. 있을 법한 인물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게 소설이라나.
 에드나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인지 한 바탕 내 글을 짓이겨놓은 뒤에, '이성적, 이성적……..'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퍼뜩 떠오른 듯 자신의 서랍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왔다. 평소에 읽던 단행본이 아니라 잡지였다.
 에드나는 잡지를 펄럭 넘기고는 한 부분을 짚었다. 자세히 보니 에드나의 이름이 있었고, 무언가에 대한 평가처럼 보이는 글이 밑에 적혀있었다.
 
 '내 심사평이야.'
 
 에드나는 그렇게 말했다. 자세히 읽어보았다. 그 에드나가 어떤 평가를 받았길래 그렇게나 풀이 죽었었는지 궁금했고, 지금 에드나가 왜 흥분하고 있는지 또한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어봐도 모르겠다.
 
 '어휴. 간단히 말하자면, 내 글이 너무 감성적이라는 거야. 알겠어?'
 
 뭘 알겠다는 건지.
 내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이자,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일단 에드나의 글은 플롯이 부실하단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애매하며, 등장인물의 성격 또한 확립되어 있지 않아서 이리저리 유동적이고 줏대가 없다. 너무 감정적이고 감각적이며 감성적이다. 특유의 문체로 분위기만 잡았다. 그런 평가라고 한다.
 그리고 내 글은 플롯은 확실하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다. 하지만 등장인물이 너무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어서 마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인간적인 면모가 부족하다. 평소 독서량이 적은 만큼 문체야 말할 것도 없이 엉성하다. 전체적으로 너무 계산하듯이 이상적, 이성적으로 썼다. 에드나의 평가다.
 정확하게 반대되어 있다. 마치 거울을 사이에 두고 좌우가 뒤바뀌듯이.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네가 메인 플롯을 쓰면, 내가 다듬어서 소설을 쓸 게.'
 
 둘의 단점이 너무 커서 장점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둘의 장점을 합쳐서 단점을 덮어버린다. 에드나의 결론이었고, 그 결론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져 우리의 합작은 잡지에 우수작품으로 실렸다. 애초에 이야기를 재조립하는 건 에드나의 특기였다.
 우리의 합작은 그걸로 끝이었다. 에드나는 소설을 쓰는 데에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며, 책을 읽는 게 좀 더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 또한 소설 쓰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녀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데 쓸 이유가 없었다. 그 뒤로 우리가 소설을 쓰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정말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에드나는 최근 글 한 편을 완성해버렸다. 「매장자」의, 말하자면 팬픽션 같은 거였다. 「매장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그대로 가져오고, 시간대는 매장자의 서술기법처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매장자」의 프리퀄인 동시에 시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목은 「고해자」였다.
 그리고 그걸 출판사로 보내버렸다. 에드나는 그 팬픽션을 매장자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그에 대한 자그마한 평가나 감상이 돌아온다면 만족할 생각이었나 보다.
 사태는 생각보다 커졌다. 출판사에서는 원고들을 기성작가와 외부투고로 분류하는데, 한 사원의 실수로 에드나의 원고가 기성작가 쪽으로 분류된 것이다. 어쩌면, 첫 몇 줄을 읽고 뛰어난 필력 때문에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원고는 어이없게도 매장자의 원고로 착각되어, 「매장자」의 후속작이라는 타이틀로 출판까지 이르게 된다.
 일련의 과정은 매장자라는 작가에 대해 알면 이해할 수 있다. 매장자는 최초 투고 때부터 익명으로 원고를 보내왔으며, 그 이름은 데뷔작인 「매장자」에서 따와 팬들이 부르던 게 정착된 것이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익명으로 투고해왔으며, 특유의 필체와 제목만으로 '아, 이거 「매장자」 쓴 그 작가구나.' 하고 출판사는 알아채고 있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에드나의 원고 또한 익명이었으며, 매장자의 애독자였던 만큼「매장자」의 필체와 유사했고 제목과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틀림없는 후속작이므로, 출판사는 출간을 결정한 것이다. 매장자의 데뷔작인 「매장자」는 베스트셀러였고, 베스트셀러의 몇십 년만의 후속작은 분명 마케팅 요소가 넘쳤으므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즉, 출판사는 에드나의 원고가 「매장자」에 필적한다고 은연중에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에드나는 기뻐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매장자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거다. 갑작스레 쓴 적도 없는 소설이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리고 며칠 뒤에 자살했다. 유서에는 '내 영혼을 도둑맞았으니, 이제 내 육신을 매장할 차례.'라고 쓰여 있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남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남자는 에드나의 어디까지 알고 있었을까. 에드나가 소설을 죽을 정도로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자신이 모르는 어머니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모될까.
 현재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나뿐이다. 매장자도, 에드나도 죽어버렸으니까.
 에드나가 쓴 「고해자」는 지금도 매장자의 유작이라며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벌써 몇 번이나 증쇄했다는 소식이 신문에 실리고 있었다.
 남자는 입을 열었으나, 그 목소리는 오랜 침묵을 깨고 나온 게 원인인지 조금 쉬어있었다.
 
 "매장자는 어머니의 소설을 읽고, 자신의 작품과 필체를 빼앗겼다고 생각하여 자살했고…… 저희 어머니는 매장자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자살한 거네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부질없는 짓이다.
 
 "공상을 즐기는 자, 벌 받으라."
 
 그는 그렇게 나지막이 중얼거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역시 저는 책은 싫어요. 벌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악수를 청했다. 나는 그가 건넨 손을 가볍게 쥐었다.
 
 "그 책은 역시 돌려드릴게요. 죽은 자는 책을 읽을 수 없으니, 당신이 대신 읽어주세요. 제 명함을 드릴 테니 언젠가 한 번 연락 주시고요. 그때에는 묘지 위치가 확실해질 테니 알려드릴게요. 어머니도 기다리실 거에요."
 
 "그럴게요."
 
 물론 그럴 생각은 없었다. 나는 며칠 뒤 외국으로 떠난다. 아마 돌아올 일은 없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뭐야. 여기까지 와서 암묵적 합의를 깨뜨릴 셈이냐.
 속으로 가볍게 불평을 하고, 나는 대답해주었다.
 
 "이드입니다."
 
 "전 에드가예요."
 
 에드가는 떠나갔다. 나는 내가 발음한 이름을 다시 한 번 입으로 소리 내 봤다. 에드나(Edna)의 이드(Ed)인지,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이드(Id)인지. 도대체 무엇을 염두에 두고 이런 별명을 붙여준 건지. 대답해 줄 에드나는 여기에 없다.
 드디어 혼자가 된 나는 커피를 리필하고 느긋하게 생각에 잠겼다. 시간은 많았다.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웠고, 그 어느 때보다도 덜 속박되어 있다.
 빙그르르.
 회전문 시계는 이야기하는 사이에 몇 년이 지나간 걸까. 너무 돌아가면 어지러울 테니 좀 쉬어도 될 텐데. 우리가 밟고 살아가는 이 행성도, 저 우주 먼 곳의 신에게는 회전문처럼 사소한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 신은 저 멀리에서 소탈한 모습으로 차를 마시며, 돌아가는 장식물 따위를 보고 '아, 시계 같네.' 하고 시답잖은 감상을 품고는 이내 의식에서 이 행성을 지워버린다.
 신의 시선에서 우리는 벗어난 건지도 모른다.
 신의 시선을 손에 넣고 싶어 우리는 공상하는 건지도 모른다.
 신의 시선에서 벗어난 공상하는 자는 신의 벌을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공상하는 자는 신이 된 인간의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모른다.
 나는 공상을 즐기지 않는 자이니, 그런 벌을 받게 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시계 속에서 낯익은 여자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누군가를 찾는 기색도 없이 똑바로 '책의 향기'에 들어와 내 앞에 앉았다. 그녀의 앞에는 에드가가 주문해 놓고 입 한 번 대지 않은 카페 아메리카노가 다소곳이 놓여있었고, 아마 이후로도 누군가가 잔을 드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가슴께까지 기른 검은색 머리카락과, 반쯤 감겨 졸려 보이는 눈.
 에드나다.
 그러므로, 환각이다. 아니면 유령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에드나가 입을 열었다.
 
 "「도피자」의 내용이었지, 아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는 미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다.
 
 "'넌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야.'라는 연인의 말을 듣고 실제로 죽을 생각을 한 주인공이, 자살 모임에 가서는 죽지도 않고 타인의 신분을 훔치지. 길었던 장발을 짧게 자르고, 눈을 가려 맹인 행세를 했을 뿐인데 주변인들이 못 알아채는 게 웃기지도 않지.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어때?"
 
 나는 머리 뒤쪽으로 손을 옮겼다. 길었던 머리는 없고 짧은 쇼트커트의 끝자락이 허전하게 손가락에 얽힐 뿐이었다. 지금까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인간은 의외로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보통 머리 모양과 얼굴형같이 커다란 틀에 기대어 판단한다. 그렇기에 긴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것은 식별의 근거가 되는 부분을 크게 바꾸는 것이며, 눈을 가리는 것 또한 이에 해당한다. 거기에 '자세와 행동거지와 말투'까지 바뀌어버리면 대개는 알아차릴 수 없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그 주인공, 그러고서 하는 말은 가관이었지. '네 말대로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어.' 죽지도 않았는데 죽었다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아마 사회적으로 죽었다는 비유였겠지. 생전의 모든 관계를 끊자, 연인과의 관계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파헤칠 수 있게 된 주인공은 소설의 말미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다시 고백하지."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고백을 옛 연인이 받아들였는지 아닌지는 나오지 않았고.
 에드나의 유령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속마음을 읽어낸다.
 
 "그렇지. 그 부분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어. 주인공이 겪은 여정에 공감한다면 고백을 받아들여도 되고, 주인공이 여전히 괘씸하다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고. 매장자의 소설은 항상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거든.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나는 고백을 받아들인다, 였고. 너는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였지.
 
 "그래. 그때 나눴던 대화는 제법 재미있었지? 네가 소설 같은 걸 쓰지 않아도, 나는 즐거웠어. 내 이야기를 즐겁게 들어주는 네가 있어서 나는 외롭지 않았어."
 
 그 시절에 했던 대화의 연장. 그 질기게도 이어진 대화의 선을 따라가면서 나는 에드나가 갑작스레 나타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못다 한 그녀의 삶의 완성이었다.
 
 "이번엔 내가 쓴 이야기니까, 내가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러니 차례는 넘길게."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듣는 입장이었고, 말하는 건 너였다.
 
 "방금까지 에드가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던 건 어디의 누구였을까?"
 
 역시 에드나의 논리는 이길 수 없다. 더 이상 항의하는 건 의미 없는 고집일 테지. 나는 커피로 목을 축이고 결말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에드나가 바랐던 결말을, 매장자의 생의 결말을, 「고해자」의 결말을, 이 이야기의 결말을.
 
 
 
 「매장자」는 고백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독자 A가 작가를 죽였다고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장면이다. 그 누군가란 독자 A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이 사실은 소설 초반부에 나온다.
 작가를 죽인 흉기는 작가의 두꺼운 저서다. 살인 동기는 단순했다. 작가가 자신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몇 번이고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짤막한 답변 하나 얻어보지 못했고, 열심히 뒤를 캐서 찾아가 사인을 요청했더니 거절당했다는 그런 사소한 이유였다.
 이러한 광기에 에드나는 열광했다. 언제나 그랬다. 매장자가 쓴 소설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광기를 가만히 놔두는 법이 없었다. 눈으로 찾아내고 머리로 끄집어내서 심장으로 먹어치웠다.
 그 결과 에드나는 매장자를 뛰어넘는 소설을 써냈고, 매장자는 이 때문에 자살한다.
 방식은 달랐지만, 흉기는 같은 책이었다.
 에드가는 아까 에드나가 자살한 이유를 죄책감이라고 단정 지었지만, 글쎄. 내가 그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건, 에드나가 그런 이유로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드나는 그저 취해 있었다. 매장자가 쓴 소설 속 상황이 눈앞에 현실로 펼쳐진 것이다. 자신을 매료시켰던 소설을 재현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다. 그런 자신에 한껏 취한다.
 「매장자」에서 독자 A는 살인 혐의로 체포되고 결국 처형된다. 하지만 「매장자」는 1인칭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죽은 사람이 자신이 죽었다고 덤덤하게 서술할 수 있을 리 없다. 즉 이러한 모순을 통해 독자 A는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암시하며 이야기의 막을 내린다.
 그리고 본문의 뒤편에 이어지는 후기가 있다. 사실, 독자 A가 상상으로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던 인물은 실재했고, 독자 A를 좋아하는 청년이었다.
 즉 모든 것은 사실 청년의 서술이었고, 독자 A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청년의 상상이 본문의 정체였다.
 에드나는 독자 A가 죽지 않았고, 사실은 제3의 인물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사실 독자 A는 죽은 게 맞고, 독자 A의 시점에서 청년이 서술했다는 서사구조였지만, 이야기를 밥 먹듯이 재조립하는 에드나의 입장에서는 이미 '독자 A의 목숨은 두 개'가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독자 A에게 청년이 있었듯이, 에드나에게는 '이드'가 있었다. 에드나는 목숨이 2개라는 확신이 섰다. 그리고 죽었다.
 
 이번엔 「고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말했듯이 나와 에드나의 합작은 어렸던 시절의 딱 한 번이 다다. 그런 그녀가 매장자의 필력에 도달했다면, 반드시 원본이 있어야 한다. 에드나는 스스로가 말했듯이 글재주가 없으며, 글을 잘 조립할 뿐이다.
 에드나는 매장자의 뒤를 캤다. 「매장자」에 나오는 독자 A처럼 끊임없이, 끈질기게 매장자의 뒤를 밟았다. 그리고 그 결과 매장자가 쓴 일기장을 훔치는 데에 이르렀다. 금고 속에 고이 모셔져 있던 그 일기장에는 매장자가 외국에 유학 갔었을 때의 경험이 쓰여 있었다.
 한 작가를 미치도록 사랑하여 살해하고, 그 대가로 사형장으로 끌려가 생을 마친 여자. 그리고 그 여자를 사랑하는 작가 지망생.
 그렇다. 「매장자」는 픽션의 탈을 쓴 논픽션이었다. 매장자가 쓴 「매장자」는 보통 후기 부분까지도 소설의 일부라고 여겨지지만, 실은 후기 부분은 정말로 후기였을 뿐으로, 이를테면 자신의 범죄에 대한 고백이었다. 매장자라는 소설의 제목 또한 독자 A를 감싸주기 위해 자신이 시체를 직접 묻었다는 간접적인 고백의 표현이었고.
 이 일기장을 본 에드나는 광기 뒤에 숨어 있는 더욱 큰 광기에 매몰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이성과 감성의 합작 따위가 아니라, 광기와 광기의 혼돈이었다.
 그 광기의 행방은 이미 아는 바와 같다. 에드나는 광기 덩어리를 출판사에 보내버렸고, 출판사는 인물 관계에 입각하여 그 광기를 「매장자」의 프리퀄 내지 시퀄로 인지해버린다.
 「고해자」가 출판되고 나서야 매장자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자신의 죄가 여과 없이 기록되어 있는 소설을 읽게 된다.
 「고해자」는 「매장자」의 청년이 자신의 경험을 살려 「매장자」라는 소설을 써내고 매장자라는 필명으로 작가 활동을 하다가 열광적인 팬에게 책으로 맞아 죽는다는 이야기다.
 과거에 대한 고백이자, 미래에 대한 예언이었다. 「매장자」의 후기는 소설적 장치라고 받아들여졌었지만, 「고해자」는 명백히 현실의 매장자를 범죄자로 지목하고 있다. 매장자는 이게 세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하는 생각만으로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매장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에드나는 기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가 자신의 소설에 '동참'해 주었기 때문이다.
 에드나 또한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죽음을 택했다. 이 죽음을 택하는 과정이 또 굉장히 매장자스러웠는데, 매장자의 「도피자」를 모티프로 삼았다.
 에드나는 자살모임에 들어가 자살을 시도했고, 혼자서 살아남았다. 체형이 비슷한 시체 하나에 자신의 소지품을 끼워 넣어 자신의 시체로 위장시킨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선글라스를 낀다. 마무리는 내면에 틀어박혀 영원히 나오지 않는 것. 덕분에 주인격(에드나)과 보조인격(이드)이 뒤바뀌어버렸고, 겉보기에 보조인격(에드나)은 아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매장자의 장례식과 에드나의 장례식.
 그리고 이야기는 현재에 이른다. 열심히 설명을 하는 와중에 에드나는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아마 죽은 척할 뿐이거나, 실제로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에드나가 퇴장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본문은 막이 내렸고, 지금은 후기를 쓸 차례일 것이다.
 후기라……. 정말이지. 어디까지 그 소설을 재현하고 싶은 건지.
 소설에 입각하여 생각해보면 에드나가 원하는 건, 내가 에드나를 정말로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겠지. 그리고 일련의 사건을 에드나의 시점에서 서술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당신도 보다시피 나는 줄곧 내 시점을 고수했다. 나는 에드나에게 더 이상 귀속되어 있지 않으니까, 내 멋대로 할 것이다.
 사실은 너 같은 거 정말 싫어했고, 네가 읽는 책들 전부 음침해서 싫어했고, 네 옆에 있기 싫었어.
 그래서 소설을 써서 너를 부추겼고, 알게 모르게 너를 매장자에게 유도했어. 매장자는 예상대로 너를 매장했고, 나는 자유를 얻었지.
 이 이야기는 그게 다야. 죽은 매장자의 죽은 애독자 이야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 컵과 꽉 찬 컵이 있었고, 회전문은 돌아가고 있었고, '책의 향기'는 고요했으며, 공상을 즐기는 자는 벌을 받았다.
 나는 소설을 쓰기로 했다.
 
 
 
<END>
2016.10.3
EPOH
 
 
 
 
 
 
 
 
 
 
 
/이하 후기
 
 개천절이므로 소설을 씁니다. 개천절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지만요!
 이 소설은 제목만으로 쓴 소설입니다. 문득 제목을 떠올리고 '우와, 이 제목 마음에 들어! 언젠가 써먹을 데가 있겠지.' 하고 적어 놓은 제목이 몇십 개는 되는데 그중 하나를 골랐습니다. '죽은'이 뒤의 어떤 명사든 꾸며줄 수 있다는 중의적인 형태가 제 마음에 꽂혔습니다.
 물론 대략적인 내용 구상도 함께 있긴 했습니다만 지금의 소설과는 완전히 별개입니다. 구상 당시에는 판타지 세계관으로, 살인을 범하는 소설작가와 그 작가의 추종자들의 심리적인 갈등을 그린 소설이었는데, 그런 거 어떻게 쓰나요. 전 그런 거 쓸 줄 몰라요……. 참고로 동쪽의 매장자, 서쪽의 매장자 같은 중이병적인 이름도 메모 되어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이번 소설은 저에게 익숙하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과거작의 되풀이일 수도 있고, 새로운 시도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작가라는 소재는 자주 써먹어 왔었죠. '작가'나 '이야기'라는 소재는 정말 무궁무진하게 확장이 가능합니다. 다른 소재야 안 그렇겠습니다마는, 소설 속에서 소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메타 픽션이라는 말이 있는 만큼요. 쓰는 사람만 재미있고 읽는 사람은 아닐 지라도요(반성).
 새로운 시도라는 건, 제가 악인을 그려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쓴 단편들은 대체로 선한 인물이 역경을 이겨내거나 이겨내지 못하는 구조였고, 그 구조를 저는 싫어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는 악인 이야기를 쓸 일이 없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이번 단편에서 쓰게 되는군요.
 주요 등장인물이 죄다 악인인 소설입니다. 살인 방관에 시체유기까지 저질러 놓고 작가로서 삶을 살아온 매장자와, 매장자를 추종하여 죽음으로 몰아넣고 타인의 시체로 신분을 위장한 에드나와, 끝까지 속내를 숨기고 에드나의 몸을 손에 넣은 이드. 아, 갑자기 에드가가 불쌍해지네요.
 꼬려면 좀 더 꼴 수 있었던 플롯이지만, 제 필력이 모자라는 관계로 이 정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 공휴일은 (일요일이지만) 한글날이던가요. 과연 쓸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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