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12 20:52

[단편] 고양이,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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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고양이, 죽다

 

   고양이는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 어떤 생명이든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예정 받는 법이다. 이는 세간에서 마녀로 불리는 묨니조차도 부정할 수 없는 자연의 대법칙이다. 그렇기에 고양이가 죽었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닌지 모른다. 다만, 그 고양이가 그런 형태로 죽음을 맞이하리라고는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 예상치 못했다. 아마 묨니 본인조차도 한 생명이 그렇게 파국을 향해 치닫을 줄은 모르지 않았을까? 그렇다. 결과만을 말하자면 고양이는 묨니의 손에 죽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해가 저무는 유령저택가의 마녀라 부른다. 실제로는 그런 긴 별명보다 마녀라는 대명사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마녀는 지명도에 비해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녀의 이름을 부른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소문 때문이다. 비슷한 소문으로 묨니에게 이름이 불린 사람은 죽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소문을 묨니 본인도 믿고 있는지 다른 이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일이 없다. 어쩌면 피부로 느껴지는 실감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묨니는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그러하듯이, 지금까지 여러 사람의 이름을 접해왔고, 또 그 이름을 입에 담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이름들 모두 불릴 수 없게 됐다. 이름의 주인들이었던 자들은 흙과 먼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묨니의 주변에는 이름 없는 종자인 나밖에 남지 않았다. 실수로라도 나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기 위해 그녀는 내게 이름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불편한 건 없었다. 이름은 타인을 구분하기 위해 붙이는 호칭이다. 나와 그녀가 전부인 저택가에서 이름은 불필요한 요소일 뿐이다. 물론 내게도 이름이 있던 적이 있다. 그녀의 곁에 있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의미를 잃은 이름이지만.

   여자는 다른 사람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자주 넘어지고, 자주 상처 입으며, 자주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 정도가 특이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그저 운이 나쁘다고 하면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일이었다. 사건은 그녀가 12세의 생일을 맞이하던 날에 일어났다.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 두 명이 급류에 휩쓸려 내려갔다. 여자는 처음 경험하는 주변 사람의 죽음에 매우 슬퍼했다. 그것이 전조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여자는, 당시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 최대의 불행이라고 멋대로 착각했다.

   그녀의 집은 도시에서도 부유계층이 몰려있는 서쪽의 주택가에 있었다. 직계 조상 중에 이름난 대상(大商)이 있어 하급 귀족의 작위를 가진 그녀의 가문은, 변두리에 있는 것치고는 사교적인 교류가 많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여자는 인근 지역에 사는 사람들 이름을 많이 익히고 있었으며, 그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극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쇠약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집은 방화로 통째로 불타올랐고, 어떤 곳에서는 아이가 실종되거나 영유아살해가 일어났으며, 어떤 사람은 자신 부친의 목을 졸라 죽였고, 어떤 어린 여자아이는 기르던 개에게 목이 물려 죽었고, 또 다른 남자는 음식을 계속 게워내다가 아사했고, 그 남자의 아내는 목을 매달아 죽었다. 그 외에도 강도살해, 친족살해, 실종, 추락사, 심장마비, 익사, 기타 등등의 질병사가 서쪽 일대를 뒤덮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풍경은 형태만 다른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사건은 한 저택을 기점으로 점점 바깥으로 퍼져 갔는데, 그 중심에는 여자의 저택이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안고 저택을 찾아갔고, 저택에서 벌어진 사건의 목격자이자, 소문의 근간이 되었다. 집주인과 그 부인이 자신의 아이, 묨니를 껴안고 서로의 목을 찌른 채로 죽어있던 것이다. 재앙의 중심에서 살아있는 것은 여자 혼자였다. 온갖 악의적인 오해와 두려움이 여자를 향해 쏟아졌다. 그 마녀의 이름을 알아서는 안 돼, 그 마녀에게 이름을 불리면 안 돼, 와 같은 소문들이 떠돌기 시작했고 누구나 여자를 생존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받아들이게 됐다. 서쪽 주택가가 텅 비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거기에 남은 것은 묨니 뿐이었다. 일생 그녀의 내부를 향하던 불행이 외부에 겨누어지자 생긴 재해였다.

   그렇게 사람들은 묨니를 해가 저무는 유령저택가의 마녀라고 부르게 되었다. 넓디넓은 서쪽 일대의 주인이 그녀라고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묨니에게 그런 인정은 필요 없었는데. 따뜻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됐다. 다치고 상처 입더라도 행복할 수 있었다. 지금의 넓은 저택도 필요 없다. 마음 놓고 있을 수 있다면 좁은 방만으로도 족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34채의 빈집과 자신의 커다란 저택에 홀로 남았다. 거기에 나를 더한다 해도, 그 정도의 밀도로는 사람은 따뜻해질 수 없다.

 

   배의 상처가 의식을 앗아갈 즈음 소란스러운 잡음이 귀를 어지럽혔다. 모두 해가 저무는 유령저택가의 마녀 때문이다! 쉭쉭, 새어 나오는 숨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새까만 밤하늘만이 남았다. 별은 없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다만,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다는 사실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떠올릴 수 없어, 한동안 괴로워했다.

   눈을 뜨자 아침이었다. 눈앞에는 간신히 형태만 알아볼 정도로 훼손된 사체가 놓여있었다. 무참히 난도질 되어 있다. 소중한 무언가가 형이라고 깨닫는 순간, 차라리 떠올리지 않는 편이 나았다고 후회했다. 눈물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비일상적인 광경이었다. 나는 눈앞에 비친 죽음에서 고개를 돌렸다. 서쪽 저택가에도 뒷골목은 존재했다. 어젯밤 나와 형은 이 뒷골목에서 공격당했고, 형이 죽었다. 내 배에 난 상처는 왠지 처치되어있었다. 엷은 피로 덧칠된 붕대를 떼어내려고 했다. 어찌나 꽉 조여있는지 풀릴 생각을 안 한다. 부질없는 짓 같아서 그만둔다.

   해가 저무는 유령저택가의 마녀 때문이다!

   이 일대에 일어나는 모든 불행한 사건은 마녀 때문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우리를 공격했던 괴한이 했던 말도 그런 뜻이라면, 다들 마녀를 핑계로 이런저런 범죄를 저지르고 있을 뿐이 아닌가 생각했다. 한 편으로는 지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누군가를 탓하는 게 속 편할 것이라는 심리도 이해가 았다. 그렇다 해도 신기한 일이다. 모든 일의 원흉이라는 마녀를 머릿속에 그려보아도 도무지 화가 나지 않았다. 아마, 만나본 적도 없는 상대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형태도 없는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미워할 수는 없는 법이리라.

   멍하니 하늘을 봤다. 비라도 쏟아지면 좋으련만, 하늘은 청량하기만 했다. 죽기에는 더없이 나쁜 날씨다. 단지 그런 이유로 죽기를 망설였다. 단지 그런 이유로, 나를 치료해준 누군가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내 옆에,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사람의 감정이 손쉽게 드러나는 신체 부위는 눈과 손이라고 한다. 여자는 먼지투성이의 나이트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금 간 돌계단에 뒷짐 진 채로 앉아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눈에는 내가 비추어져 있었다. 꽉 찬 보름달이 연상되는 눈은 그 영롱한 빛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감정한 곡선의 눈매를 그리고 있었다. 아니다. 그렇게 놓고 보니, 영롱함은 없고 흐릿하게만 보였다.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여자는 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나도 여자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바람 소리만 아니면, 시간이 멈추었다고 착각해버릴 것 같았다. 여자는 전조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그녀가 할 말을 내심 기대하고 있던 나는 낙담했다. 일곱 걸음은 걸었을까, 서로의 숨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한 거리를 두고, 그녀는 고개만 돌려 이쪽을 보았다. 두 번째로 마주한 커다란 눈동자에는 여전히 내가 담겨 있었다. 한 차례 신선한 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흔들어 동그랗게 왜곡된 내 모습을 감추었다. 머리카락이 제자리를 되찾기도 전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앞을 향해 걸었고, 나는 몸을 일으켜 그녀를 따라가기로 했다.

   내가 습격당한 곳은 유령저택가에서도 꽤 변방에 위치한 곳이었다. 사람이 있을 법하면서도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물 사이를 누비는 소녀의 모습은 으스스하면서도 신비로운 그림 한 폭을 펼쳐 놓은 것 같았다. 그러한 비현실적인 분위기도 곧 사그라지고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쪽 저택가에서 그나마 가까운 듯한 저잣거리였다. 그 웅성거림 속을, 먼지투성이 소녀는 주변과 전혀 융화되지 못한 채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며 들어갔다. 어떤 사람이 소리친 것 같다. 일제히 소리가 멈추더니,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그 소란스러움은 조금 전까지의 활기찬 공기와는 십분 다른 것이었다. 두려움, 공황, 당황스러움이었다. 인파는 일제히 흩어지고, 문을 닫아 걸어 잠그는 쇳소리가 다급한 발소리에 묻혀 지워져 갔다. 그것은 명백한, 소녀에 대한 거절이었다. 소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걸음을 속행했다.

   가판대 위의 사과 하나를 손으로 집어 들어 베어 물고, 갓 구워진 듯 김을 내뿜고 있는 빵을 먹는다. 그녀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히 식사하며 거리를 누볐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들리는 건 소녀의 자그마한 발걸음 소리뿐이었지만, 건물의 어두운 틈새로부터 느껴지는 수백의 시선은 무언으로 절규하는 듯했다. 빨리 이 거리에서 꺼져! 제발 이쪽을 보지 마! 나에게 신경 쓰지 마! 만약 두려움보다 분노와 혐오의 정도가 더 컸다면, 온갖 쓰레기와 욕설이 소녀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찌르는 듯한 살벌함 속에서 소녀는 식사를 마치고 발걸음을 돌렸다. 나를 지나쳐간 그녀는, 역시 잠깐 나를 돌아본 뒤 걸어갔다.

   나는 홀린 듯이 그녀의 등을 쫓았다. 연약해 보이는 등은 이따금 멈추었는데, 내가 따라오는지 확인하는 듯했다. 걷던 여자는 해가 저무는 유령저택가의 빈집 하나에 들어가 책 한 권을 들고 나왔다. 아일레 니오벱이 쓴 특정 지역에서 나타나는 토속적 질병과 기이한 현상이라는 양장의 도서였다. 작은 손으로 쥐기에는 너무 두꺼웠는지 품속에 껴안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나를 보고 더 이상 뒤돌아보는 일 없이 소문의 중심을 향해 나아갔다.

   풍경은 소문이 사실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외각의 집들은 문을 두드리면 당장에라도 무슨 용무로 왔느냐고 묻는 이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내부 쪽의 집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무너지거나 불타거나 외벽에 피가 흩뿌려지지 않은 집이라면 그저 집주인이 게을러서 관리가 안 된 집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외각이든 내부든 사람이 으레 보여야 할 곳에 보이지를 않으니, 말 그대로 인외경에 온 듯한 스산함이 감돌았다. 그녀가 목적지로 삼은 곳은 지진으로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건물 3채 정도의 잔해더미가 눈에 띄는 장소였다. 겉보기에도 건물이 통째로 무너질 정도의 지진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잔해더미의 정중앙에는 벽돌로 지어진 낡은 저택 하나가 고요히 서 있었다. 마치 그 건물만이 사람 외적인 무언가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듯한 불길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소녀는 그 저택 앞에서 멈추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책을 껴안고 있는 그녀는, 눈도 손도 내게 보이지 않은 그대로, 무감정하게 말했다. 냉랭한 목소리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갑게 상대를 내밀치고 있었다.

 

   “나는 네가 본 그대로의 인간이야. 그럼에도 나를 따라왔다는 건, 너도 나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한다는 것이겠지? 좋아. 마음대로 해. 나는 네게 내 이름을 가르쳐주거나, 너의 이름을 부르지 않겠어.”

 

   그 목소리가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해 격리된 아이가 마지못해 세상을 거절하려는 것처럼 들린 것은, 그녀가 떨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녀의 눈도, 손도 보이지 않았지만, 떨고 있는 등은 충분한 감정을 내게 전해주고 있었다. 스스로 내뱉은 말의 온도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워서인지, 등의 떨림은 쉽사리 진정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불과 몇 시간 전과는 달리, 이제는 마녀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낼 수 있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마음속은 고요했다. 그야 당연하다. 부풀어진 소문과 소문의 실체가 주는 느낌은 다르기 마련이니까. 나는 말 없이 그녀의 앞에 섰다. 그녀의 얼굴을 보니, 왠지 모르게 나도 울고 싶어졌다. 나는 그녀의 앞에서 울었고, 그날로 나는 마녀 묨니의 종자가 되었다.
 

   조각 몇 개가 빠져있고 금이 가 있는 거울은, 그럼에도 키 작은 소녀의 모습을 온전히 비추기엔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닦은 게 언제인지, 표면에 눌어붙은 먼지가 거울상을 약간 흐릿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녀가 거울을 마주하는 이유는 몸단장을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외부로부터 단절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행위다. 그렇기에 소녀의 행동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행동이었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섰을 때 존재 자체가 가루가 되어 비추어지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에, 언제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게 습관이라고 한다. 아무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세계에서는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인식하지 않으면,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거울에 비치는 소녀의 품 안에는 아까까지의 책 대신에 검은 고양이가 안겨 있었다. 고양이는 녹황색 눈을 치켜뜨며, 거울 너머로 의뭉스러운 시선을 향했다. 그 시선의 끝에는 내가 있었다. 묨니가 손빗으로 등을 빗겨주자, 곧 눈길을 거두고 기분 좋은 듯이 갸릉거렸다. 묨니는 고양이의 시선을 대신하듯이 거울 너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몇 번 움직이며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다가, 이내 차분한 음성으로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평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하기만 한 묨니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조심스러운 자기소개였던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제외한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해가 저무는 유령저택가의 마녀 이야기였다. 이야기 속의 마녀는 어떤 이유도 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일생을 상처 입었지만,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녀를 둘러싼 세계가 버팀목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는 사라졌다. 그녀를 괴롭히고 유린하던 불행이 외부를 향해 겨누어지고, 주변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하자, 그녀는 자신을 긍정할 수 없게 되었고, 동시에 세계 또한 그녀를 부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고, 아무도 직접적으로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 마치 그녀가 역병의 화신이라도 되는 듯이 되도록 시야에 두려 하지 않고 멀리 떨어진다. 여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멍하니 서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을,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도망치는 사람을 보는 것뿐이었다. 어떤 심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어떤 심정으로 말을 삼켰을지, 나는 짐작도 못 하겠다.

   종자로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미 묨니의 생활은 정상적인 사람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그녀는 시간 대부분을 깨진 거울 앞에서 보내거나 빈집에서 가지고 나온 책을 읽는 데 썼다. 책은 대체로 유스 벨립의 보편적인 저주와 이상적인 대처법, 녹 스원의 악마들과 같은, 이름만 봐서는 마도서처럼 느껴지는 종류의 것들이었다. 묨니를 모르면서 마치 묨니에 대해 알고 있다는 듯이 떠드는 이들에게는 책을 읽는 그녀의 모습이, 마녀가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이고 유린하기 위한 주술을 찾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내 눈에는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듯한, 그러나 대체로 체념에 가까운 모습으로 보였다. 묨니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섭다기보단 우스운 글들이야.”

 

   사람을 저주하고 죽이는 방법이 적힌 책을 우습다고 표현하는 그녀는 마녀처럼도, 어떤 재해의 생존자처럼도 보였다.

그 외의 시간은 잠을 자거나, 이틀에 한 번꼴로 거리에 나가 식사를 한다. 식사량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움직이는 법이 거의 없는 그녀는, 그리고 이러한 생활을 꽤 오래도록 해온 그녀는 공복감이라는 걸 거의 느끼지 못하는 상태 같았다. 그러므로 식품의 섭취는 이제 거의 습관과 같은 것이었다.

   묨니의 행동반경은 넓었지만, 들르는 곳은 거의 정해져 있었으며, 그나마 유동적일 때는 책을 찾기 위해 유령저택가를 배회할 때뿐이었다. 자신의 저택에서조차 거울이 있는 자신의 방 외에는 발을 옮기는 법이 없다. 바닥에 쌓인 먼지는 그녀와 고양이의 족적을 선명하게 남겨주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묨니의 동선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종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가 가지 않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듣거나, 살펴보는 것 정도였다. 사람들은 묨니에 대해 곧잘 떠들었다. 그렇지만 정작 그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소문만으로 이루어진 묨니가 따로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소문 중 일부를 나열해보자면, 매일 밤 사람들을 저주하는 의식을 행하고, 눈자위는 빨갛거나 희고, 지금의 작은 몸은 2미터가 넘는 신체를 구겨 만든 것이며, 손톱 끝마다 사람 수백을 죽이고도 남을 독을 발라놓고 있고, 유령저택가의 중심에는 사람들의 뼈로 만든 제단이 있다거나, 피가 솟는 우물이 있다는 둥 허황한 소리였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지만, 어떤 이도 그녀를 바로 알기 위해 접근하지 않았으며, 유령저택가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진실을 확인해 줄 이가 없는 소문은 부풀며 분열과 복제를 반복할 뿐이다. 최근에는 마녀가 부리는 고양이에 대한 소문이 자주 언급되었다. 병과 재해를 몰고 다니는 악마라느니, 마녀의 눈을 대신해준다느니, 실은 시체가 된 고양이를 움직이고 있다느니 하는 두려움 끝에 나타나는 빈곤한 상상들이었다.

   들을 가치도 없는 소문들을 억지로 귀에 담아가며 거리를 걷고 있으면, 나를 기피하는 분위기를 느낀다. 며칠 전부터 묨니의 곁을 맴도는 나를 경계하는 시선들. 그들은 때때로 쓰레기와 모욕적인 말을 내게 겨누었다. 마녀 본인에게는 눈도 못 마주치는 겁쟁이들은 그 수하에게는 공포를 덜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무엇을 듣든, 무엇을 맞든 그녀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한밤중의 마녀의 저택은 스산함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바람 소리에 나뭇가지가 마찰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짐승의 기척이나 풀벌레 따위의 울음소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섬뜩하겠지만, 전해들 사이에 우뚝 선 낡은 저택이 그 배경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묨니가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묨니의 주변에 무언가 있다는 것은 알았다. 나에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통찰력도, 지혜도, 지식도 없었다. 그렇기에 하다못해 단서라도 찾아내기 위해 34채의 텅 빈 저택가를 누비곤 한다. 늘 마주치는 것은 덜 썩은 유해나 급히 만든 듯한 돌무덤 따위뿐이었다. 그 날도 나는 몰래 묨니의 곁을 떠나 밖을 거닐었다. 마지막이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묨니의 눈동자가 하늘에서 사라졌다. 마치 눈을 감은 듯한 밤이다. 달이 온전히 자신의 모습을 사리고, 붉은빛으로 씐 별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나는 뒷골목에 있었다. 무심코 발을 옮겨 도착하곤 하는 곳이다. 벌써 2주째였다. 매일매일 안타까움과 함께 먼지가 되어 사라져 가는 형의 모습을 두 눈에 똑똑히 담아 새기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응달진 뒷골목이어서 그런지 반도 채 썩지 않은 시체였다. 그러나 그 날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레 모습을 감춘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썩어들어가 없어질 리 만무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질척질척한 진흙이 뇌를 짓뭉개는 것 같다. 멀리서 불꽃이 튀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인기척은 없었다. 나는 저택가의 중심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있을 리 없는 백여 명 정도 되는 듯한 발걸음 소리가 내 발소리와 반 박자씩 어긋나며 따라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대로 멈추면, 그리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걸어간다면, 그 모든 게 착각임이 손쉽게 밝혀질 터였다. 그러나 나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낮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들이 노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곳곳이 뭉개진 노랫소리는 알 수 없는 언어로 되어 있었고,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증오탄식같이 음침하기 없는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소리는 내 두려움과 공포가 만들어낸 환청임이 틀림없다. 달리다가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넘어지더라도 곧바로 네 발로 뛰어갈 정도로 나는 오직 도망치는 것만을 생각했다. 발을 내딛는 길의 끝에는 세간으로부터 마녀라 불리는 묨니의 저택이 있었다. 저택 입구에 쌓인 먼지는 언제나처럼 발자국을 만들어냈다. 저택에는 평소보다도 진득한 공기가 코를 찔러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한 채로 나는 익숙한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묨니는 방에 있었다. 그녀는 온몸에 피를 두른 채로 이 빠진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내 시점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거울을 향해 등진 그녀의 모습뿐이었다. 눈도, 손도, 보이지 않았고, 등 또한 미세한 진동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달려오다 멈췄기 때문인지, 탁한 공기 때문인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가 뒤돌았을 때 나는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녀의 품속에는 거의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짓이겨진, 딱 고양이 크기만 한 사체가 안겨 있었기 때문이다.

   눈동자, 눈동자. 묨니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내가 비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나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멀거니 서 있는 내 옆을 지나쳐갔다. 안 된다. 그곳엔 무서운 노래를 부르는 망령들이 있다! 나는 그녀에게 소리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몸이 굳어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저주 같은 광경이 신경세포를 마비시켰다.

   착각일지도 모른다. 착각일지도 모른다. 방금 나를 지나쳐 간 것은 묨니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저것은 무엇인가. 거울 속에 여전히 서 있는 묨니를 빼닮은 저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피에 젖지도, 먼지에 물들지도 않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그것은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먼지가 쌓이고 피로 얼룩진 거울의 표면에 비추어졌기에 착각하는 거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그것은 눈을 감은 채로 섬뜩하게 미소만 짓고 있었다. 등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거울 속의 무언가가 눈을 뜨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눈꺼풀을 보았다. 저것이 완전히 젖혀지면, 거울 속의 무언가는 묨니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악마적인 무언가가 되어버릴 것이라는 강렬하고도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재앙은 농담이었다는 듯이, 내가 보았던 모든 세계의 눈을 감기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눈이 온전히 떠지는 일은 없었다. 거울 속의 그것이 눈자위를 보이기 직전에, 한 차례 다시 울린 단말마에 거울은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거울 속의 무언가는 표면에 조각조각 내어진 금과 함께 먼지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 광경을 얼이 나간 채로 지켜보았다. 그러고 있자니, 발 언저리가 뜨거워져 왔다. 눈치채지 못한 새에 시야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서 붉은 별이 자리를 잃고 헤매고 있는 걸까? 나는 재빨리 방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 나가기 직전 힐끗 본 거울 속에는 수십 갈래로 나뉘어 비친 고양이의 슬픈 눈동자가 그저 있었다.

 

   며칠 뒤에는 성대한 축제가 벌어졌다. 마녀의 소문을 들은 에프리스 교단이 이단심문관과 심판자들을 직접 파견하여 마녀와 그 종자를 땅에 묻어버린 기념이었다. 묨니의 종자임을 알려주던 내 배에 감긴 붕대는, 붉었던 그믐날 미친 듯이 뛰어다닐 때 벗겨진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내게 돌을 던지지 않았다.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마녀의 고양이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름 없는 고양이는, 심판자들이 찾아갔을 때 이미 마녀의 손에 의해 직접 죽어 있던 것이다. 자신의 수하를 무참히 죽이다니, 과연 마녀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에프리스의 대변인이 고양이의 죽음을 확인하였으므로, 그것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나는 그저 마녀의 고양이를 닮은, 또 다른 이름 없는 고양이일 뿐이었다.

   그 날 묨니는 자신을 죽이러 오는 이들을 예상했던 것일까? 예상했다면, 경험을 통해 얻은 위험에 대한 감지였던 걸까. 악마적인 감 덕분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렇게 살아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추측뿐이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묨니는 자신의 죽음이 곧 종자로 알려진 나의 죽음을 뜻한다는 생각에 도달했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시장을 거닐며, 어쩌면 최후가 될 식사를 하며 닭이나 돼지 따위의 피와 고깃덩이를 구했을 것이다. 그 후 나의 형을 두 번 죽이는 것으로 마녀와 고양이의 일생을 끝마친 것이다. 썩어 문드러진 부분은 고기를, 말라버린 고기 안쪽은 피를 사용하여 세계를 속인다. 그것은 아마 묨니 평생에 걸쳐 행한 일 중 가장 마녀다운 일이었으며, 동시에 타인을 상처입히는 운명에 저항하기 위한 최대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나는 전소한 그녀의 저택, 그녀의 방이 있던 곳에 서서, 처음에 그러했듯 그녀를 위해 한 차례 울었다. 야옹, 하고.

 


EPOH

초고 끝 14/10/31

1차 퇴고 끝 14/12/7

최종 퇴고 끝 15/5/13

 

 

 

   백여든아홉 째, 행운과 불행이 동시에 존재하는 동전, 딕샤.

   근원은 아틸드 대륙의 한 부족의 의식에서 나타나는 신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직계혈족을 저주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행운을 도모하는 의식이었는데, 후자보다는 전자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 자신의 혈족에게 시련을 부과하고 이를 이겨내는 것을 통해 강인함을 얻기를 바랐던 것이다. 본래 딕샤는 잡신적인 존재였고, 가해지는 저주도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하나 이 의식이 다른 대륙에 자신의 행운을 늘려주는 것으로 잘못 알려지고, 욕심에 사로잡힌 인간이 의식을 행하게 되자 의식의 본질이 바뀌게 되었다.

   딕샤는 현 인류 중 어떤 이의 모습도 취하고 있지 않다. 의식을 치르는 본인도 당연히 생면부지일 수밖에 없다. 이는 현시점에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사람의 모습을 빌리기 때문인데, 딕샤가 부과하는 불행을 짊어지는 자, 즉 자신의 자손의 모습이다.

   딕샤의 저주가 극에 달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 녹 스원 악마들

 

 

 

 

 

 

후기

   오랜만에 쓴 단편입니다. 오랜만인데 너무 오만한 글이라서 죄송합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 단편을 게재할까 말까 꽤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왕 끝까지 써 버린 거 예쁘게 퇴고해서 올려버리자는 심정으로 퇴고했습니다(최근 수면 주기가 엉망진창이라 제대로 퇴고가 되어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인용문 비스무리한 건 본래 사족 같은 거라서 넣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것도 그냥 써버렸으니 올려버리자는 심정으로 올렸습니다.

   어찌 되었든 귀중한 시간 쪼개서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장편 두드리러 가겠습니다.

  • ?
    2015.05.13 14:15

    사족은 넣으시길 잘한 것 같네요. 깔끔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훌륭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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