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246 추천 수 0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나는 이제까지 무장친위대는 회장만 있는건줄 알았다. 하지만 쉬는 시간이 되자 검은색 배경에 황금색으로 낫과 망치가 그려진 완장을 찬 무리가 밀물처럼 교실로 밀려들더니, 나를 그대로 연행해서 국기 계양대에 거꾸로 메달았다.
"천하의 개쌍놈, 우리의 여신을 건드린 우민에게 불의 정화를!"
 내 밑에는 실시간으로 어디선가 공수해온 장작 더미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고, 그 장작을 나르는 무리들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점화의 의식을 치루겠다느니, 육신은 재가 되고 영혼만 고결하게 남을것이라느니, 불은 무엇보다 위대하다느니, 하는 광신적인 말을 중얼중얼 남기며 빙글빙글 돌아댄다. 발작적으로 터져나오는 방언과, 옹알이처럼 중얼거리는 진언의 소리가 섬뜩하기 그지없다.
"읍읍읍읍읍!"
 나는 입에 테이프가 붙여진채, 뭔가 외친다. 처음에는 농담이나, 현희에 대한 애정을 표출하기 위한 일종의 쇼맨쉽이라고 생각했지만, 슬슬 쌓여가는 장작의 양과 어디선가 느껴지는 기름 냄새에 리얼한 공포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이놈들은 진심이다. 여기다 불을 지르고 나를 산채로 태울 생각이 가득하다. 쇼맨쉽 따위가 아닌 테러리즘이다.
"제단이 완성됐다!"
 황색 완장에 검은색으로 낫과 망치를 그려넣은, 머리 쪽이 꼬깔 모양인 검은색의 큰 천으로 전신을 가리고 눈과 입만 내놓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목소리가 크게 외친다.
"불! 불을 지펴라!"
 불!불!불!불!불! 광란, 터져나오는 고함들, 횃불을 높게 쳐든 검은 꼬깔, 불꽃이 대낮에도 선명하게 타오르며 내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찌익,
 테이프가 떨어져나가고,
"변명해봐라! 돼지놈아!"
 검은 꼬깔을 뒤집어쓴 마구 쉰,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목소리가 내게 크게 외친다. 나는 횃불의 끄트머리에서 선명하게 타오르는 불꽃을 실눈을 뜨고 슬쩍 본뒤, 눈을 질끈감고 외쳤다.
"너, 수지지!"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횃불이 떨어졌다. 구워진다.

 점심시간, 어떻게든, 나는 살아있다.
 정확히는 그 쑈는 불이 제대로 옮겨붙지 않음으로서 시시하게 끝났다. 불씨를 살릴 역으로 넣어놨던 신문지만 깔끔하게 타고 장작으로 쌓은 나무는 그을음 정도만 생기고 만것이다. 신문지에 불이 붙었을때 이미 '아 이거 심각한 문제가 되는거 아닌가' 하고 쫄아있었을 대부분의 친위대원들은 불이 그렇게 어물어물하게 꺼지고, 쉬는 시간 종료를 알리는 종마저 치자 그대로 우르르 해산해버렸고, 거꾸로 메달린채 방치되어있던 나는 어떻게든 자력으로 탈출해서 수업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지금은,
"너, 현희 무장친위대같은걸 조직하고, 대체 무슨 생각이냐?"
 나는 학생회장실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수지 앞에 도시락을 내려놓으며 한숨과 함께 질문한다. 회장과 현희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아마 두사람 모두 친위대나, 각종 교내 자생언론들에게 쫓기고 있을것이다. 나도 간신히 탈출해서 왔으니까.
"선배 뭔 말을 하는거에요? 제가 왜 메텔 무장친위대를 조직해요?"
"속일 사람을 속여야지. 딱 보면 견적 안나오겠냐?"
"..."
 수지는 나를 빤히 본다. 나도 빤히 마주봐줬다. 이 자식이 뭘 아닌척 잡아 떼고 있어.
"쳇. 역시 무리였나."
 봐봐.
"무슨 속셈이냐?"
"그냥, 쓸데가 있어서 조직했어요."
 쓸데가 있다면, 수지가 수장을 맡고있는 최고학생무력부도 있고, 회장친위대에서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더 사람을 모아서 뭘 하겠다는 건지.
"뭐, 회장 친위대의 배신자들도 색출할 겸 해서."
 수지는 사람이 필요했다기 보다는, 회장친위대를 그만두고 현희친위대쪽으로 파벌을 옮긴, 그런 용감한 형제 자매님에게 천벌을 내릴 생긱으로 만든듯 하다. 그 친구들은 잘 살아있을지.
"에이, 벌을 왜 내려요. 다만 그 박쥐들의 약점을 쥐고 더 충성스럽게 행동할 것을 권유할 뿐이에요."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수장이야 말로 진짜 박쥐라는 것은 모르겠지. 불쌍한 일이다.
"그럼 방금전 그 폭거는?"
 그렇다, 박쥐 친위대원들도 불쌍하지만 나는 훨씬 더 불쌍하다. 난 배신을 한것도 아닌데,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런 취급을 받아야된단 말인가.
"친위대에게는 친위대의 아이덴티티라는게 있는 법이에요. 그런 일이 있으면 그 정도는 해줘야 나중에 복잡한 일이 안생긴다고요."
 메텔에 대한 충성과 애정이 의심받으면 제 개인 사조직으로 쓰는데 한계가 있으니까요. 같은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 수지. 어디서 못된건 골라 배워와서는!
"나한텐 미안하지도 않냐?"
"그까짓 머리카락 몇개 탄거가지고 되게 뭐라 그러네요! 어차피 30살이면 다 빠질거!"
 안빠지거든! 우리 아버지도 대머리 아니고, 할아버지도 아닌데!
"거짓말!"
 수지는 필생의 적이 실은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것을 들은것 처럼 격렬하게 부정했다.
"대체 왜?!"
"선배는 이마도 넓고, 머리 카락도 얇고, 두피에 열도 많은데다가, 무엇보다 그런 느낌이 와요. 촉이 온다고요."
 넌 그렇게나 날 대머리로 만들고 싶은거냐.
"괜찮아요, 대머리를 좋아하는 여자도 있겠죠. 어딘가에는."
 수지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어린애를 달래듯 말한다. 아주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보복으로 수지의 머리를 잡고 빙빙 돌려줬다.
"꺄~ 학교 폭력이다~."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말을 기쁜듯이 말하지 말라고.
"흠흠, 뭐, 선배의 머리카락을 좀 태운건, 제 분노의 표출이었다는걸로."
 수지는 깔끔하게 정리하는 태도로, 어른스럽게 말한다. 가증스럽다.
"니가 분노할게 뭐가 있는데."
 너 진짜 현희 친위대인것도 아니잖아.
"왜 없어요?"
 수지는 나를 찌릿하고 노려본다.
"메텔과 다니는게 수상하다고 했더니 바로 프로포즈라니, 저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잖아요!"
 너에 대한 도전은 무슨,
"그리고, 프로포즈 아녔어."
"같이 살자고 했다면서요."
 그래, 그랬지. 현희니까 진짜 문자 그대로의 의미일거라고. 동거도 아니고 룸쉐어일거라고. 룸쉐어.
"선배가 메텔에 대해 얼마나 잘안다고 그래요?"
 아마 우리학교에서는 제일 잘알지 않을까?
"헤헹, 제가 최소한 선배보다는 메텔을 잘 알고 있다고요?"
 회장각하는 말할것도 없고요. 나는 수지의 이죽거리는 얼굴을 보며 내가 현희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잠깐 고민한다.
 그래, 나는, 인간 최현희의 정체를-.
"메텔, 비밀도 되게 많고 선배 몰래 정말 이것저것 많이 한다고요?"
 그 녀석이 내게 숨길게 뭐가 있겠냐. 심지어 자신의 중2병적인 설정까지 내게 늘어놨다고.
"예, 예, 선배는 유물O자니까, 보여줘야 믿는다는거 저도 자알 알고 있어요."
 유물O자가 뭐냐 유물O자가.
"그거야 당연히 고-."
 나는 수지의 말이 끝나기전에 머리통을 잡고 빙빙돌려줬다.
"네, 선배가 딱히 맑스주의자중에서도 그게 없다고는 말 안했어요."
 ...말해 무엇하겠냐.
"네네, 선배는 맑스, 마르크스보다는 마륵스라고 읽어야 된다고 주장하잖아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지.
"바로 그런 차원의 문제에요. 봐야만 믿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되는거라고요."
 나는 수지의 궤변에 질려서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오늘 학교끝나고 바로 교문으로 와요. 기다릴테니까요."
 수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생회실의 문이 열리고 회장과 현희가 들이닥쳤기에 나는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좋은 배짱이네요?"
 수지는 품에서 스턴건을 꺼내 몇번이고 탁,탁, 하는 전기 불꽃을 튀기며 나를 위협한다.
"왜?!"
"30분이나 늦었잖아요!"
 그거야, 학생회실도 들려야했고, 그 옆방에도 들렸어야했으니까.
"선배가 원래 그런 인간이라는건 잘 알고 있지만요."
 수지는 한숨을 푹 내쉬며, 내 팔목을 잡아 끌며 척척 걸어나간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건데."
 아까의 대화로는, 현희의 사생활(?)을 공개하겠다는 듯이 말했었는데.
"그거야-."
 수지는 품속에서 손바닥 크기의 수상한 기계를 꺼낸다. 동그랗게 생긴 싸구려 흑백 액정에 점 몇개가 떠있고 중심점에서 시작된 줄이 한번 훑고 지나갈때마다 그 점들이 반짝거리며 위치가 조금씩 변한다. 즉, 이건.
"드래곤 레이O냐!"
 저 싸구려 디자인! 아무리봐도 그거다.
"후후후, 제가 드래곤O을 다 모으면..."
 수지는 수상쩍은 웃음을 흘리며 말을 길게 늘린다. 모으면, 얼마나 큰 악이 이 세상에 도래하게 되는걸까. 나는 공포에 부들부들 떨었다.
"키가 크게 해달라고 할테니까요!"
 레드냐, 넌 레드였던거냐! 그거야 확실히 절절했겠지만. 넌 키보다 먼저 키워야 될게 있지 않을까.
"죽고 싶어요?"
 수지는 스턴건을 내몸에 쓱 가져다댔다. 등골에 서늘한 땀이 흐른다.
"아, 아니, 그게.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우시다고."
"제가 언제까지 선배의 입발린 말에 넘어갈꺼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수지는 툴툴대면서도 스턴건을 내렸다. 십년 감수했다.
"아쉽게도, 이건 평범한 위치추적기에요."
 어디가 평범한데.
"다들 쓴다고요. 회장도 쓰고, 메텔도 쓰고, 저도 쓰고."
 나는 내 주변의 '다들'의 현실에 그저 망연했다.
"참고로 선배에게는 우리 세명의 발신기가 전부 붙어있으니까, 섯부른 행동은 파멸을 불러올걸요."
"대체 왜 그런걸 달아놓는거냐."
 나는 인간으로서 분노했다.
"그거야, 미행하고 추적하고 약점잡기 위해서인게 당연하잖아요?"
 그러니까 빨리 따라와요. 수지는 드래곤레이O를 앞세운채 다시 내 손목을 잡아 끌었다. 아니, 어차피 이 시간이면 학생회실 옆방에 쳐박혀있을거고. 위치 추적따위 의미없을텐데.

  • ?
    KDJKH 2012.06.02 09:33
    제목 옆에 붙어있는 U는 무슨 의미가 있나요?
  • ?
    epoh 2012.06.03 00:30
    그 글의 상태가 업데이트 되었다는 소리입니다. 댓글이 달렸거나, 글이 수정되었거나 하면 달리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9 반쪽 하늘의 별, 3화 이수지(6) KDJKH 2012.06.01 1047
178 반쪽 하늘의 별, 3화 이수지(5) KDJKH 2012.06.01 884
» 반쪽 하늘의 별, 3화 이수지(4) 2 KDJKH 2012.06.01 1246
176 반쪽 하늘의 별, 3화 이수지(3) KDJKH 2012.05.31 1013
175 반쪽 하늘의 별, 3화 이수지(2) KDJKH 2012.05.31 868
174 반쪽 하늘의 별, 3화 이수지(1) KDJKH 2012.05.31 888
173 반쪽 하늘의 별, 2화 김민혜(10) KDJKH 2012.05.31 912
172 반쪽 하늘의 별, 2화 김민혜(9) KDJKH 2012.05.31 916
171 반쪽 하늘의 별, 2화 김민혜(8) 2 KDJKH 2012.05.30 1118
170 반쪽 하늘의 별, 2화 김민혜(7) KDJKH 2012.05.30 781
169 반쪽 하늘의 별, 2화 김민혜(6) KDJKH 2012.05.30 821
168 반쪽 하늘의 별, 2화 김민혜(5) KDJKH 2012.05.30 842
167 반쪽하늘의 별, 2화 김민혜(3) KDJKH 2012.05.30 948
166 반쪽 하늘의 별, 2화 김민혜(2) KDJKH 2012.05.30 795
165 반쪽하늘의 별, 2화 김민혜(2) KDJKH 2012.05.30 955
164 반쪽하늘의 별, 2화 김민혜(1) KDJKH 2012.05.29 950
163 반쪽하늘의 별,1화 최현희(9) KDJKH 2012.05.29 873
162 반쪽 하늘의 별 1화, 최현희(8) KDJKH 2012.05.29 918
161 반쪽하늘의 별 1화, 최현희(7) KDJKH 2012.05.29 961
160 반쪽하늘의 별 1화 최현희(6) KDJKH 2012.05.28 91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 Nex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