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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지? 이게 마지막 기회야. 포기하지 말고 알겠지? 그리고... 가끔은 할머니 댁에도 전화도 해주고...."
지금 이 순간에도 멍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여동생에게 둔함 아니, 최고의 바보를 자처하는 백작 직위를 하사하고 싶다만.

그 녀석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히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너의 DNA는 남이 욕하게 하는걸 주저하게 만드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거냐?
"알았어. 그리고 오빠.... 도와줘서 고마워."
그 녀석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참 지금 고마워 할 시간이 있으면, 얼른 가. 비행기 놓치겠다.

멍한 눈으로 정원을 바라보다 나를 힐끗 바라본다. 괜시리 없던 미안함을 만들어 내는 이 녀석은.

그러다가 그 녀석이 마지막으로 몇 마디를 벙긋거렸는데, 마침 차가 오는 바람에 듣지 못했다.

들었다고 하더라도, 아마 잘못 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여동생은 멋들어진 세단을 타고 유유히 정원을 벗어나갔다.

그 세단이 정원에서 완전히 벗어나기전까진 나는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의학박사 과정.
 그것이 그렇게나 힘들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 빈대같은 존재일줄은 몰랐다. 자그마치 일주일 전, 1년만에 다시 만났을땐 나를 물론이거니와 친척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여동생은 핏기가 가신 얼굴로 우리들을 찾아왔고, 여동생의 얼굴엔 통통하게 붙은 그 녀석의 귀여움이 소실되어 있었다. 마치 말라붙은 해골이었다.
"한번쯤 쉬면서 하는게 어때?" 라는 내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 녀석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순간도 고집을 한꺼풀 꺾지도 않았다. 이러다가 늦겠다며... 그저 자신의 일만 몰두했다.
 나는 그 녀석의 그런 서투른 행동에 화를 내기도 했지만, 오히려 돌아온 것은 후회일 뿐이었다. 후회는 이젠 더이상 입에서 꺼내기가 싫다. 그렇게 화를 내면서까지 그 녀석이 돌변한 이상징후의 해답을 찾고 싶었다. 이상한 이론을 덧붙이기도 했고, 그 녀석이 좋아하는 허브차를 두고 말을 건넸다. 하지만, 내가 아니 가족 모두가 그 녀석에게 다가설 때마다 여동생은 홀연히 떠나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뭐, 벌써 2월이니까 곧 봄은 올거다. 새찬 바람이 그치지 않자, 별 수 없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추워서 들어온건 절대 아니다. 집안사람들이 들어오라기에 들어온 것 뿐이다. 때로는 때늦은 반항도 해보고는 싶었지만.
 거실 옆에 걸린 액자를 올려다보았다. 점잖게 생긴 아저씨와 아리따운  아가씨 사진이 끼어져 있었다. 아마 그 녀석이 이러는 것도 어떻게 보면 모두 이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머리가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이상한 사람 덕분에.

 

 

 

 

 

언제나 사랑은 숨쉬고 싶어한다.

 

 

 

 

 

 그 날은 몹시 더운 여름날로 기억된다. 7살짜리 여동생이 흰색 원피스와 늘여뜨린 생머리를 하늘색 머리띠를 묶고 다녔으니까, 적어도 여름은 확실할거다. 동화 '해와 바람'에서 해의 꿈을 실현시키려는 여름 해가 따끔하게 내리쬐는 여름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여름해를 피하는 대피소는 도서관이 제일이다. 다음은 대형마트이고.

아무튼 나와 여동생은 늘 가던 시립 도서관에 도착했으며, 어제처럼 늘 거대한 1층 로비를 두리번거리며 들어왔다.

 

"오빠, 오빠 이거 봐아, 이거."
그 녀석이 옷자락을 새차게 힘들며 소리쳤다. 그렇게까지 안 흔들어도 알아. 제발 매달리지마 부끄럽잖아. 사람들이 다 보잖아!
 14살짜리의 쓸데없는 부끄러움이었다. 그들 눈앞에 놓인 것은 필연 커다란 유채그림이었을거다. 아마 내 뇌세포가 괴사하지 않는 이상, 그 그림은 앞으로 50년은 잊어버리진 않을거다. 14살이 보기에 충격적인 그림이었을테니까.


 영양실조로 쓰러진 한 아이의 모습. 배경은 굶주린 사자들이 쓰러진 아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유채그림 제목표에 눈이 갔다. 아프리카의 최후라고...

제목에 시선을 정지한 나를 보고 여동생이 물었다.
"오빠, 엄마하고 아빠, 아프리카에 갔지?"
"맞아, 의료봉사하러갔지."
"음... 그렇구나. 거긴 어떤 곳이야?"
여동생은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이상은 그것에 대해 말하기 싫었다. 엄마와 아빠를 데려간 그 병신같은 땅은.

저주 같은 땅은. 죽어도 그 땅의 이름이 내 입에서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냥 불쌍한 사람들이 모인 땅. 그리고 엄마와 아빠를 데려간 최악 최저의 사람들이 모인 땅이다, 라고 덧붙여 말하려는 것을 꾹 삼켜버렸다. 그러자 여동생은 "아,아 그렇구나." 적절하게 대답하며, 2층 아동 도서관으로 가는 계단을 향했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채 흐르지 않았을 때였다. 어느 날 밤 자고 있던 나와 여동생의 귓전을 때린건 거친 폭풍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할머니의 잔소리도 아니였다. 심플한 전화 벨소리가 집안을 울려퍼진 것뿐이었다. 잠에 덜 깬 나는 할머니께서 전화를 집으시려는 모습을 보았다. 그 전화를 받은 할머니께서는 '어이쿠야'하시며 그 자리에서 쓰러지셨고, 그 뒤에 삼촌과 이모가 달려와서 할머니를 부축한 것 뿐이다. 나는 무서운 생각이 든 나머지 이불속에서 한걸음도 나오지 않았다. 이건 할머니께서 받은 전화 때문이 아니다. 그저 그날 밤은 새찬 폭풍우가 불어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무서웠을 뿐이다.

 

 그 날 뒤로 여동생은 그토록 무서워하던 바퀴벌레를 때려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힘든 숙제를 나를 통해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내가 도우려고 손을 펼치면, 그 녀석은.
"괜찮아. 오빠. 엄마, 아빠가 혼자서 잘 해내라고 했는걸."
싱긋 웃으며, 어설프게 편 내 손을 오므려주었다.
바보야. 그냥 울어. 참지말고, 울어버려라고. 그렇게까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그 녀석, 눈이 녹았다. 애써 닦아내며 초연히 서있었지만...

그렇게 여동생은 서럽게 울어댔다.

 

 

 여동생이 의료봉사를 가겠다고 결심을 굳힌 말을 뱉은 어제, 나는 그 녀석에게 심한 역정을 냈다. 네가 미쳤어? 거기가 어딘 줄 알아? 친척들도 할머니도 강한 반대에 한 표씩 냈다. 포기한다는식의 말을 해대고, 그 녀석은 묵묵히 그 자리를 떴다. 나와 친척들에게는 유럽여행을 간다고 해놓고선 분명 아프리카로 날아가버렸을거다. 내가 붙잡지 못한 것은 그 녀석을 단지 그걸 눈치채지 못해서가 아니다. 아니, 눈치채지 못했다고 단정 해두자.

나는 묵묵히 급하게 뜯긴 봉투를 정장 안주머니에서 꺼내 탁자위에 던져두었다.

자세하게 읽어보진 않았지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두사람의 전언과 엇비슷할 것이다.

 

좋다. 찾아보고 오너라.

네 녀석이 존경하는 사람들이 찾으려고 했던 사랑이 무엇인지를...

우리의 부모님이 도대체 뭘 말하려고 했는지도...

 

 

오빠, 난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아니라 그 땅에서 사랑을 숨쉬게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

 

 

 5년 뒤, 여동생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교통사고. 급한 환자 때문에 옆 마을로 이동하다 차가 전복되어 사고를 당한 것이다. 친척들은 모두 혀를 끌끌 찼지만, 왜일까? 그들이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여동생은 흔적 없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그 녀석은 척박한 땅에 사랑을 숨쉬게 만들었다. 아마 그것이 내가 여기에, 아프리카에 서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온 나는 내 가족들의 흔적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병원 건물, 학교, 교회.

무엇보다 그들이 남겨놓은 사랑이 움트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몇 년전만 해도 전쟁과 시위가 가득했던 거리는 치안이 잘 된 번화가가 되어 있었으며, 시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미소 짓고, 이따금씩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어가는 웃음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들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나의 아프리카의 첫 날은 이렇게  지나갔다.

 

나는 여기에 서 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기적같은 희망에 서서. 무엇보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은 숨쉬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약 60년 전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던, 실날 희망조차 없던 우리가 얻었던 사랑은 이곳에서도 숨쉬고 싶어 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Ps. 1) 원래 3부로 나눠서 주인공이 여동생을 따라 찾아나가는, 그런 비스무리한 이야기인데.

          길게 구체적으로 쓰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A4 3장에서 마무리합니다.

          그러다보니 급마무리한 감이 있어, 그다지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는 소설입니다.

 

Ps. 2) 저는 또 한번 도주를 시작하죠

 

  • ?
     손님 2011.02.01 04:45

    이거 너무 급마무리 아닌가요.

    물론 훈훈하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끝이라기 보다는 뭔가.... 정말 급마루리가 아닐까요 ㅋㅋㅋ;

     

    뭔가 떡밥은 다 뿌려졌는데, 대어를 낚지 않다니... 그러면 아니되요.

     

    도망가지 마시고 책임져주세요 ㅠㅠ

  • ?
    ColdWind 2011.02.06 17:44

    손님의 댓글을 너무 늦게 발견하는 바람에;;

    기간이 지나버렸는데, 수정을 가한건 반칙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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