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2013.12.29 23:42

<단편쓰기대회!-4회> 초월동맹

조회 수 2111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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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음." 

남자의 눈이 살며시 떠졌다. 자고 싶은 만큼 푹 잤지만, 아직 완벽하게 피로가 풀리지 않은 몸을 일으키기에는 좀 더 누워있고 싶었다. 

남자는 누워있는 채로 옆으로 손을 뻗었다. 아무렇게나 늘어져있는 옷가지를 손으로 몇 차례 뒤적거린 결과, 남자는 자신의 핸드폰을 손에 쥐어들 수 있었다.

"5시…반…인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남자는 몸을 뒤집어 배를 바닥에 깔고 핸드폰을 만지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키고 자신이 자주 가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확인하고, 새로운 글들을 확인한다. 허나 댓글은 달지 않는다. 어쩐지 제대로 확인하고 댓글을 달지 않으면 실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볍게 댓글을 달지 않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때 댓글을 달려다가 까먹어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지만, 남자의 성격이 그러하다. 

일단 이 남자의 이름은 이여어다. 초월동맹에 여러 사람들은 여어의 이러한 성격을 보고 너무 피곤하게 사는 것이 아니냐고 자주 묻지만, 사실 초월동맹에 속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다. 남을 나무랄 만큼 정상적인 인간은 극히 드문 초월동맹이지만, 서로의 인연이 인연이다 보니 질리지도 않고 그런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편이다. 

이윽고 새로운 소식들을 전부 확인한 여어는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리고 잠시 멍하니 앞을 바라보기를 몇 초.

"…춥다." 

여어는 몸을 완전히 일으켜 보일러의 외출 버튼을 눌렀다. 추위에 강한 편인 여어였지만, 역시 일어나자마자 찬물로 씻는 것은 싫었다. 

여어는 4평정도의 원룸에 살고 있었다. 좌식책상에 놓인 컴퓨터와 좌식의자. 그 옆으로 게임소프트와 책들이 잔뜩 꽂힌 책장이 벽을 따라 나열되어 있었다. 문을 제외하고 책장으로 둘러싸인 방 중앙에서 여어는 이불을 펴고 잔다. 

사실 침대하나쯤 두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고, 온라인 게임의 돈을 팔아서 생활하는 여어라 할지라도 침대 하나쯤 사는 것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어가 바닥에서 이불을 펴고 자는 것은 침대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워낙에 옛날부터 바닥에서 자오던 여어였기 때문에 쉽사리 침대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이렇듯 초월동맹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습관을 하나 이상씩은 가지고 있었다.

"슬슬 나가볼까." 

대충 몸을 씻고나온 여어의 몸에서 하얀김이 살살 피어올랐다. 아직 물기를 머금은 머리카락이 머리에 착 달라붙어 앞을 살짝 가렸다. 하지만 여어는 훈훈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어제는 그럭저럭 득템도 있었고, 아. 어제는 아닌가." 

여어는 혼잣말을 하며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었다. 검은 계통의 일자청바지와 밝은 계통의 셔츠를 입고 그 위에 줄무늬 니트를 입었다. 여어는 혼자 있을 때 혼자만이 많은 편이다. 초월동맹의 모두가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저절로 혼잣말이 많아진다.

"그럼 가볼까나." 

배란다에 걸어둔 녹색 야상을 걸치고 여어는 집을 나섰다. 삐빅, 하고 도어락이 스스로 문을 잠기는 것을 걸을 뒤로 확인하고 여어는 계단을 내려갔다. 여어의 목적지는 집 앞에서 5분 거리의 카페였다. 

다시한번 이 남자를 소개하겠다. 남자의 이름은 이여어. 확실히 특이한 이름이지만, 그가 스스로의 이름을 이여어로 지은 이름은 단순히 부르기 편해서이다. 이 이름을 짓기 위해 3일정도 고민했다는 것도 웃긴 이야기이지만, 입을 딱 한번 여는 것으로 부를 수 있는 이여어라는 세글자를 이름으로 정한 것은 더욱이 웃긴 이야기이다. 

여어는 게임을 해서 돈을 번다. 어제도 새벽까지 게임을 해서 돈을 벌었다. 굳이 새벽에 게임을 한 이유는 그때의 온라인에는 사람이 한적하기 때문이다. 사실 친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게임을 즐기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여어지만, 한산하게 혼자 즐길 수 있는 새벽게임도 싫지는 않았다. 

어제도 현금으로 5만원 정도하는 아이템을 먹을 수 있었다. 무척이나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가 꼭 돈을 위해서 게임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여어는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로도 좋아하기에 그의 원룸에는 각종 게임소프트와 콘솔들도 존재했다.

"여어."
"응?" 

눈이 쌓인 거리를 타박타박 걷던 여어는 자신을 부른 주인공에게 고개를 돌려 올려다 보았다. 180은 넘을듯한 훤칠한 키와 회색으로 탈색하여 부분부분 푸른빛의 느낌을 주는 듯한 강렬한 헤어스타일이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소프트 모히칸으로 올린 머리와 깔끔한 정장이 더해져서 더욱이 시원한 이미지의 이남자의 이름은 자월초. 사실 여어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자월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두 번 만난 사이가 아닌 만큼 초월동맹의 속한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알아보았다.

"어쩐 일이야?"
"그냥 얼굴이나 볼까 해서." 

일어나자부터 반가운 얼굴을 만났기 때문인지 여어는 씩 하고 웃었다. 자월초는 여어의 그 미소가 좋았다. 자월초뿐만이 아니라 초월동맹 내에서는 여어의 팬들이 몇 명 존재하였다. 물론 여어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다.

"요즘 바쁘지 하암- 않았어?"
"지금 일어난 거야?"
"음, 뭐……." 

분명 6시쯤 되었긴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오후 6시였다. 보통의 사람들의 퇴근시간이었다.

"여전히 설계적이지 못하군. 뭐라도 좀 더 배우는게 어때?"
"난 지금이면 충분해. 너나 많이 배워."
"뭐, 이번에 라틴어까지 마스터했지. 대단하지?"
"네에, 네." 

여어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다시 목적지로 걸음을 옮겼다. 월초 또한 자연스럽게 여어를 따라 걸어갔다.

"여어, 너도 더 배우라니까."
"됐어. 솔직히 한국어로도 벅찼으니까."
"남는 게 시간인데 심심하지도 않냐?"
"몰라. 적어도 네 말은 듣지 않을 거야."
"어허!" 

뒤를 따라오던 월초가 여어의 머리를 팔 사이에 끼우고는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야, 야! 그만해!"
"어허, 형님에게 야가 뭐야. 아직 정신을 못차렸구만." 

여어는 인상을 쓰고 빠져나오려고 바둥거렸지만, 월초는 쉽사리 풀어주지 않았다.

"저, 저번에! 그때 언제야. 그때."
"잘 모르겠는데."
"저번에 그때, 인디언이 대세라고 해서 퐁카족 언어 배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재밌었잖아?"
"망했잖아 퐁카족!" 

여어가 소리르 빽 지르자, 월초가 즐겁다는 듯 웃으며 여어를 풀어주었다. 여어는 헝크러진 머리를 대충 정리했다.

"그래도 너 엄청 좋아했었잖아, 고개숙인 우물씨."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언어는 하나면 충분합니다. 거미의 다리를 따라 춤추는 달씨."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분명 그때 평온했던 것은 맞았다. 여어는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좋았지. 항상 고맙게 생각해." 

여어는 웃었다. 월초는 그 웃음에서 같이 말을 타고 초원을 달렸던 그때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뭐라도 해보는건 어때?"
"죽어도 싫어."
"죽지도 않으면서." 

월초가 씩 웃으며 팔꿈치로 여어의 옆구리를 톡 쳤다.

"요즘도 계속 게임하면서 지내냐?"
"뭐, 그렇지."
"그거 해서 생활이 되냐?"
"한 달에 한 50만 원 정도 버는 거 같아."
"그걸로 뭐 먹고 사냐."
"그래도 재밌는걸. 온라인이잖아."
"흠……." 

월초는 여어의 말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초월동맹의 사람들은 주로 사람을 사귀지 않는다. 물론 보통 그렇다는 점이긴 하지만, 대체로 사람을 사귀지 않는다. 

마주 보고 함께 걸어간다는 것은 즐거움이다. 서로를 알아가고 깊어지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함께 과거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르다. 시간이 멈춰있는 그들로써는 언젠가 이별은 필수였고, 벗들이 늙어가는 동안 전혀 모습의 변화가 없는 초월자로써는 항상 엔딩은 배드엔딩일 뿐이다. 

시기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여 멀어지거나, 아니면 초월자 본인이 스스로 멀어지게 된다. 끝이 없는 그들이기에 관계서의 끝도 없었다. 항상 천천히 멀어지며 바르라져서 결국 아득한 파편이 되어버린다. 

더욱 슬픈 점은 그것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서로 마주볼 필요가 없으니까, 그저 채팅을 하던가, 댓글을 달던가, 가끔 마이크로 쓰기는 해도 목소리뿐이니까."
"50만원으로 생활이 돼? 아, 만젤로인가?"
"…응."
"그 변태놈. 아직도 에어리어51에 있는건가?"
"변태라고 하지마!" 

이번에는 여어가 월초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만젤로는 초월동맹 안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드는 괴짜로써 월초의 말대로 상당한 변태였다. 그것도 마조 성향의 진성M변태였다.

"그래도 만젤로는 덕분에 우리는 편안하게 살고 있잖아."
"뭐, 확실히 덕분에 자유로운 편이지. 지금쯤 또 목이 잘리면서 실실 웃고 있겠지?"
"하지만 어쩌면 조금 부러울지도……." 

분명 초월자들이 세간에 알려지면 큰일이 날것이다. 역사의 흐름에 상관없는 산 증인들. 죽음과 상처조차 없이 몇백, 몇천년을 살아온 불로불사의 인물들이 공개된다면 세계의 큰 이슈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초월동맹이 세상의 표면으로 떠올리는 일은 없었다. 

이미 만젤로라는 초월자가 앞장서서 미국정부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미국의 절대구역인 에어리어51에서 미인도적인 실험을 받고 있는 중이다. 동시에 막대한 양의 금액과 세계에서 초월동맹의 은폐라는 보상을 받아냈다. 만젤로는 엄청나게 오래된 초월자이며, 어래부터 그를 알고 있던 초월자들은 그게 대한 걱정은 별로 하지 않는다. 

애초에 극강의 마조히스트인 만젤로는 영원한 고통마저 자신의 삶의 의미로 만들었다. 기억의 아픔도, 실연의 영겁도, 망각의 슬픔도 모두 자신의 행복으로 만들었다. 어찌보면 가장 축복받은 초월자라고도 할 수 있었다.

"만젤로가 나눠주는 돈하고 내가 버는 걸 합치면 충분하고도 남아."
"그래, 그래." 

어느새 까페에 도착한 두사람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안녕." 

익숙한 여종업원의 밝은 인사소리에 월초에 손을 들어인사해주었다. 월초의 외모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편이라 여어에게는 익숙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여어는 어수룩하지 않다. 오히려 어느 순간의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초월자들은 그것이 배려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여어를 좋아하는 것이다.

"여기 자주와?"
"그런데?" "근데, 왜 한 번도 못 만났을까." 

여어는 조용히 월초를 올려다보았다. 월초는 그런 여어의 표정을 흘려넘기며 몸을 돌려 카운터로 향했다.

"너하고는 시간대가 너무 달라서 그런 거겠지."
"하긴, 넌 성실하게 사니까……." 

여어는 표정을 풀고 살며시 미소 지으며 월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조금 씁쓸한 기분이 났다.

"네가 이상한거야. 다들 그렇게 산다고."
"그런 거치고는 이름 너무 대충지은거 같은데."
"네가 할 말이냐!" 

여어는 월초의 뒷모습에서 월초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분명 미소짓고 있겠지. 월초의 미소는 시원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조금의 떫은 맛이 섞여있을 것이다. 여어는 알 수 있었다.

"뭘 마실 건지 안 물어도 되겠지?"
"응." 

여어는 대답을 하고 빈 자리를 찾았다. 퇴근후 막 까페로 온 사람들 몇몇을 빼고는 아직까지는 한산했다. 여어가 선택한 자리는 창가 쪽이었다. 동시에 카운터가 바로 보일 수 있는 자리를 택했다. 

자리에 앉은 여어가 카운터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보던 여자종업원이었기에, 여어에게는 월초만큼이나 익숙했다. 그런 익숙한 두 사람이 카운터에서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장발을 어깨너머까지 내린 여종업원은 월초와 이야기하며 즐겁게 웃고 있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밝은 톤의 머리카락이 빛의 파편을 사방으로 뿌렸다. 마치 행복이 카페 안으로 흩날려 퍼지는 것 같다고 여어는 생각했다. 여종업원과 이야기하는 월초의 표정 또한 밝았다.

"길어질 것 같네." 

여어는 야상의 주머니의 손을 넣고 여러 가지 물건 중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주문한 음료가 나올 때까지 월초가 카운터에서 여종업원과 이야기를 나눌 것이 뻔했기에 핸드폰을 꺼내든 것이다. 여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잠금을 해체하고 페이스 북을 켰다. 그리고 초월동맹을 포함한 지인들의 소식을 하나둘씩 살펴보았다.

"별누나 파리로 갔구나." 

핸드폰의 액정 속에는 에펠탑 옆에서 빨간 장발의 여성이 기쁜 듯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여성이 한국에 있을때의 이름은 명별로 역시나 초월동맹다운 특이한 이름이었다.

"지금은 세실리 인가." 

여어는 씁쓸하게 웃었다. 초월자들은 사람 사귀는 것에 상당히 조심스럽다. 하지만 사랑은 다르다. 사랑은 언제 어디서든 갑작스레 찾아온다. 심지어 수천 년을 살아온 그들에게 사랑의 기회는 수도 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사랑의 끝은 언제나 가혹하다. 그렇기에 초월자들 사이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 케이스도 있었다. 그러한 커플중 하나가 명별과 명달 커플이었다. 일명 별달 커플이라고 불렸던 이 둘과 여어는 무척이나 친했다. 

어찌 보면 여어와 같이 있기 위해 명별과 명달 둘다 한국으로 주거지를 바꾼 것도 크다. 여어도 별달커플을 형 누나처럼 따르며 무척 친하게 지냈었다. 

보통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들 말하지만, 이들에게는 정말 영원한 사랑이 실현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초월동맹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달랐다.

"설마 그렇게 끝날 줄이야." 

이런 상황을 눈앞에 두면 더더욱 서글픈 기분이 드는 여어였다. 별달커플의 끝은 초월자들에게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별달 커플은 몇 백 년을 같이 지내었다. 서로의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것을 받았다. 단순히 사랑을 넘어선 관계로서 명별에게는 명달이 있었고, 명달에게는 명별이 있었다. 한국에 와서도 서로의 이름을 맞출 만큼 서로가 서로의 전부였다. 

즉 명달은 명별의 모든 것을 알았고, 명별은 명달의 모든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의 행복이었지만, 몇 백 년의 시간으로 말 그대로 서로의 전부를 알아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별의 변화는 명별과 명달 두 사람에게 동시에 나타났다. 자신이 자신에게 혼돈이 일어남과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버렸다. 둘은 하나가 되어버렸는데, 사람은 두사람인 채 그대로였다. 

그 결과 또 다른 자신을 눈 앞에 둘 수 없게 된 것이다. 자신의 앞에 있는 상대의 모든 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 그런 자신의 모든 것 또한 눈 앞의 상대는 알고 있다. 헐벗다 못해 완전히 자신의 속이 그대로 보이는 거울 앞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소름이 돋아났다. 

처음에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에 둘은 자연스럽게 갈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인연을 정리하였다. 

명달과 명별 두 사람 모두를 알고 있던 사람들 중 아직도 그들과 인연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은 여어 딱 한사람이 유일했다. 초월동맹내에서도 여어를 제외하고는 두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아는 이는 한명도 없었다. 

별달커플이 두사람 모두 알고 있는 사람들과 인연을 끊은 이유는 그들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의 이야기를 접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미칠듯한 소름을 다시는 느끼지 않기 위한 그들만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단하나의 예외가 여어였을 뿐이다.

"그렇지만 난 아무런 댓글도, 심지어 좋아요 버튼조차 누를수가 없지만." 

여어는 쓸쓸하게 웃었다. 두사람 모두 친구로 등록되어있는 여어였기에, 댓글로 인해 글이 공유되면 큰일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여어."
"아." 

드륵, 여어에게 음료를 건넨 월초가 의자를 빼서 앉았다. 여어의 음료는 휘핑이 잔뜩 올라간 초코칩프라푸치노였다.

"아, 계산은?"
"괜찮아. 당장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선물은 그것 뿐이니까." 

여어는 쓴웃음을 지으며 월초에게서 프라푸치노를 받아들었다. 월초에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있었다. 방금전 여종업원과의 대화에서 보았던 빛나는 미소가 월초의 얼굴에 겹쳐보였다.

"행복해 보이던데?"
"장난하냐. 어차피 거품이지."
"사람은 어째서 사랑을 하는 걸까?" 

여어가 한숨을 내뱉으며 혼자말을 하듯 탄식하며 말을 꺼냈다.

"받아 들일 수 있다면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그렇잖아." 

여어는 쓴웃음을 지우지 못한채 프라푸치노 위에 휘핑크림을 떠먹었다. 무척이나 달콤했지만 쓴웃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이 여어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월초는 일부러 여어에게 달콤한 음료를 가져다 준 것일지도 모른다. 

여어도 사랑을 한 적이 있었다. 사랑은 행복했고, 제대로 직장생활을 하며 자신의 가정을 꾸려나갔으며 사랑의 결실을 맺기도 하였다. 하지만 초월자에게 사랑은 일반적인 사람들과의 사귐과는 절대적으로 차원이 틀렸다. 

시간이 흘러 함께해야할 동방자여야 하는 자신은 그대로이고, 황혼은 일방적으로 한쪽에게만 찾아온다. 만약 그것이 이해된다 하더라도, 결국에 남는 것은 자신 뿐이다. 여어의 경우에는 단 한번만 사랑을 해보았다. 

여어의 아내는 여어의 존재를 인정하고 행복하게 눈을 감았다. 하지만 여어의 자식들과 손자는 그를 괴물 취급하였고, 결국 여어는 아내가 황혼의 문턱을 건너간 순간 가족들의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자괴감과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받은 모멸감으로 인해 여어는 항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울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어야 했다. 다른 초월자들이 그에게 사랑에 대한 충고를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일년, 오년, 십년, 수십년이 흐르고 나서야 그것이 자신의 오만임을 깨달았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 그 사람과 결혼했을 당시에는 어떤 슬픔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혼자가 된다는 사실이 괴로웠어도, 몇 십 년이라는 그 짧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좋아 라는 욕심이 자신을 움직였을 정도로 사랑했다. 

문제는 수십 년이 지나서 점점 기억이 흐릿해졌을 때였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세자리를 넘어가는 순간 자신이 사랑했던 기억이 서서히 잊혀져갔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괴로움이 여어를 덮쳤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 잊으면 괜찮을거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렇게나 사랑했는데, 아픔따위는 이겨낼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바치고 사랑했다. 사랑후 이별의 아픔을 각오할 정도로 사랑했다. 

하지만 자신은 잊어간다. 그 사실이 여어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런 각오로 사랑했는데 결국에는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잊어버린 자신에게 미칠 듯한 혐오감을 느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목을 매달고 몇 번이나 자해를 했다. 모든 것을 바칠 각오로 시작했던 사랑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잊혀져가는 기억 때문에, 이미 잊어버린 기억 때문에 영원한 자기혐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만젤로가 부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만젤로는 그러한 자기혐오까지도 모두 자신의 쾌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후우, 맛있다." 

프라푸치노를 전부 먹어치운 여어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라틴어면… 라틴아메리카?"
"그래. 아르헨티나로 갈 거다."
"역시 외국인가……."
"쓸쓸해주는건가?" 

월초가 살짝 눈썹을 찡그린 여어를 보며 시원하게 웃었다.

"너는 어떻게 하게?"
"계속 한국에 있을 거야. 이 나라가 망하기 전까지는 다른 말을 배우고 싶진 않으니까. 어디로 거처를 옮기긴 해야겠지만."
"미안하게 되었네. 혼자서는 자신이 없어서." 

여어는 월초의 눈을 바라보았다. 여어는 월초의 파란 눈동자에서 여러 가지를 읽을 수 있었다. 망설임, 후회, 행복, 두근거림, 그리고 희망이 보였기에 조금은 씁쓸해졌다. 

여어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의자를 집어 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여어의 거대한 외침소리와 함께 까페내의 모든 시선이 여어에게로 집중되었다. 여종업원도 놀라서 여어를 바라보았다. 여어는 그대로 의자를 유리창을 향해 집어던졌다. 

쨍그랑, 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나며 의자가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까페 내의 이목 뿐만아닌 까페 밖에서의 이목 또한 여어에게로 모두 집중되었다. 

깨어져 흩날리는 유리파편을 보며 여어는 생각했다. 우리는 영원히 마음속의 소중한 무언가를 깨버려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무언가를 깨부수며 살아가겠지만, 그곳에 끝은 없겠지.

"이 개자식아-! 죽여 버리겠어!" 

여어가 야상 주머니 깊은 곳에 쳐 박힌 폴딩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월초에게 달려들어서 정확히 심장을 향해 최대한 힘껏 나이프를 박아 넣었다. 최대한 아프지 않게 단번에 찌르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 찔러 넣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여종업원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은 단순한 살인사건의 목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갈라지고 찢어진 비명이었다.

"시, 시발 뭐야!"
"겨, 경찰. 경찰!" 

여어는 신속하게 나이프를 뽑아냈다. 심장을 중심으로 월초의 셔츠가 점점 빨갛게 젖어들었다.

"아, 아아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여종업원은 비명인지 절규인지 모를 무언가를 계속에서 자신의 입에서 뱉어내었다. 목소리는 점점 갈라지고 메말라갔지만 비명은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정신이 들 때는 이미 영안실이겠군. 월초는 생각했다. 점점 닫혀가는 눈꺼풀을 힘겹게 유지하며 자신이 깬 창문을 통해 사라지고 있는 여어의 뒷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굳어가는 입술을 힘겹게 움직였다.

"고…ㅁ…ㅏ…… 워……." 

죽은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고, 죽은 사람은 사랑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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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글을 쓰게 된 계기


 설정이나 초월적인 무언가나, 예를들어 불사자나 괴물이나 그런게 있다면...

 그런 것들의 입장에서 일상적인 느낌이 무엇인가...

 결국 그 입장에서 자신이었다면 이라던지, 어떻게 살아갈까 라던지

 그런건 결국 작가가 생각하는 몫이고 그게 곧 답이 되는 것이기에

 픽션이지만 일상적인 느낌이랄까... 그런걸 써보고 싶었슴니다 히힣

 그 결과가 불사자들의 이야기였네요


 초월자들이라면 가능한 농담이나 일상적인 대화를 떠오르는대로 이것저것 적어놨었느데...

 핸드폰이 터져버려서 으흙 ㅠㅠ

 몇가지 구성을 짜다가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하는걸 썼는데

 뭔가 짧아지면서 기승전결이 애매한것 같슴니다


 그리고 역시 제목과 등장인물의 이름은 맘에듬 ㅎㅎㅎ

  • ?
    Josh。 2014.01.06 19:36
    니가 어디서 지적질이냐?너도 네가 지적한 부분을 똑같이 못하지 않느냐? 하고 생각하면서 읽어주세요.
    감히 지적을 먼저 하자면..
    일단 초반의 서술은 상당히 장편에 적합한 신변잡기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침대에 관한 설명이라던가.. 단편이라고 해서 주인공의 정황을 설명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더 말하기에 앞서 지적해두고 싶은건, 이건 전지적 작가 시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란 화자가 등장인물의 속내를 설명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게 아니라 서술자가 2,1인칭도 아니면서 제 의견을 말하는 게 기준이겠죠. 아마도. 일단,이라거나 훈훈한, 이라거나 하는 말이 들어간 것만 봐도. 전체적으로 화자의 의견이 들어가 있고요.
    다 읽고 난 감상은.. 나쁘지않은 프롤로그를 본 기분입니다. 전체 얼개에서 별달 이야기가 꼭 필요했느냐...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기승전결이 있다기보다 초월자 개인개인을 소개해나가는 느낌에 가깝네요.

    칭찬파트는..
    초월자의 능력 부분에 포인트를 맞추지 않은 게 신선했고, 그 덕분에 바카노 느낌도 살짝 났습니다.
    전체적으로 nt소설의 전형적인 느낌이 나서 위화감 없이 읽었습니다.
    메조키즘을 가진 초월자와 정부의 협상 부분 설정은 좋네요. 메저키즘 하나로 모든 감정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는 논리는 좀 순진한 발상...일수도 있지만 지금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라고 생각해서 좋습니다.
    전체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주요 키워드는 불멸자와 필멸자의 사랑인 것 같은데.. 사실 사랑이라는게 걍 안보이면 잊혀지는 거지 굳이 죽일 필요까지 있었나 싶은 결말이긴 하지만... 이것 또한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발상이라는 점에서 높이 사야겠네요.
  • ?
    닭날개튀김♡ 2014.02.05 15:44
    1. 라틴아메리카라고 라틴어를 쓰진 않습니다 @@; 브라질은 포르투칼어를, 외 지방은 스페인어를 써요. 그러니 라틴어를 스페인어로 바꾸면 적당하지 않을까요.

    2. 중간중간 자잘한 오타가 보입니다. '여어는 혼자 있을 때 혼자만이 많은 편이다' '도어락이 스스로 문을 잠는 것을 걸 뒤로 확인하고' '라젤로 덕분에 우리가~' '다행히도 초월동맹이 세상의 표면으로 떠올리는 일은 없었다' '미국의 절대구역인 에어리어51에서 인도적인 실험을' '어래부터 그를 알고 있던 초월자들은 그 대한 걱정은'  등등 있네요. 너무 많아서 일단 여기까지.

    3. 기승전결중 전이 빠져있는 느낌입니다. 아니면 결이 빠져있거나? 무엇보다 초월동맹에 대한 서술이 너무 많아요. '라젤로' 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라거나, 물님이 미리 지적하셨듯 별달 이야기가 필요해 보이지는 않네요. 사랑에 관한 거라면 여어만의 경험을 서술하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개를 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킬 부분에 이런저런 다른 초월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감으로써 글이 늘어졌다고 볼 수 있겠죠.

    4. 일상적인 내용은 충분히 표현됬다고 봐요. 다만 초월자들의 '일상적인' 내용 자체가 초월자라고 해서 딱히 흥미를 끌 만큼 특별한 일상이 아니어서 분위기가 더 풀어졌다고 생각해요. 좀 위험하긴 하지만 차라리 만젤로가 주인공으로 실험을 받으며 살아가는 초월자의 이야기라거나, 아니면 이여의 시점으로 별달을 보며 그들이 헤어지는 장면을 현대로 잡아 묘사했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네요.

    5. 그러니 이 설정으로 장편을 써보심이 ㅎㅎ 장편을 쓰기 꽤 매력적인 설정과 캐릭터들이라고 보는데 말이죠.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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