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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거리.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발걸음 소리.


또다. 또 들리기 시작했다.


괜히 겁을 집어먹은 건 아닌가, 이번에야말로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닌가?


발걸음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내 어깨를 잡아챌 듯했다.

뒤에 신경 쓰지 않는 척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골목을 꺾는 곳에 높게 달린 원형거울을 노려보았다.


내가 보였다. 무언가에 쫓기듯 식은땀에 젖은 앞머리를 한 내가 거울의 나를 마주 쏘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했다시피. 아무것도 없었다.


훅, 숨결이 귓가에 와 닿았다.

꺼져, 따라오지 마. 꺼져!


두 귀를 막고 달렸다.


아무것도 들리지 마라. 아무것도 느껴지지 마라. 나는 미치지 않았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나는 단지!


퍽.


숨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핸드폰 액정을 보느라 잠시 정신을 판 사이, 등을 노린 발톱이 내리 꽃혔다.

필사적으로 뛰었던 덕분에, 행인지 불행인지 발톱은 가방을 찢어놓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뛰는 통에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하고서야 겨우 통화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또야, 또 나타났어요. 선생님!


아, 선미구나.


선생님, 어떻게 해요? 지금도 바짝 쫓아와요!


선미야, 선생님이 말했잖아. 그건 그냥 허상일 뿐이야. 그냥 못 본 척 하면 괜찮아. 다 괜찮아, 선미야.


선생님, 이제 못하겠어요. 그것 때문에 점점 더 저를 노리는 것 같다고요.


아냐, 선미야. 그건 다 환상이야. 판타지. 꿈이라고.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나를 더 이상 도와주지 않을 거니? 앞으로 창창한 네 미래를, 우리의 꿈을 포기할 거야?


나는 달리던 발을 우뚝 멈췄다. 아직도 숨이 가빠왔다.

뒤를 돌아보았다. 내 키보다 더 커다란 입이 쩍 벌어진 무언가가 뒤를 바짝 추격해오고 있었다.


선생님, 하지만...


선미야. 낮에 꾸는 꿈은 마치 현실처럼 느껴질 수 있어. 하지만 꿈은 꿈일 뿐이야. 맞지?


네...


항상 그렇잖아. 내 옆에 와 서면 그 모든 것들은 사라져. 그렇지?


네...


어서 와. 선생님은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멍하니 전화를 끊었다.


저게 실체가 아니라고? 저 명확한 그림자를 가진 저것이 실체가 아니라고?


선미는 발톱자국이 길게 새겨진 가방을 양 손으로 움켜쥐었다. 안에 든 교과서며 노트가 금방 흘러나올 것 같았다.

차마 더 멈춰 서 있을 수 없었다.


가쁜 숨을 눌러 삼켰다.

달려야 했다.




◆ 2 ◆


처음 내 눈에 들어온 건, 하얀 거품 그물이 흐트러진 청량한 물 사이의 내 발가락이었다. 내 발은 단단하게 모래를 지탱하고 서 있었다. 시선을 들어올렸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에는 아득한 수평선이 점점 멀어지는 듯 번져보였다. 빛은 머리 바로 위에서 내리쬐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시간을 가늠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방에는 내 발을 집어삼킨 물이 일렁이고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한 차례 빠져나간 물길이 다시 발 위로 덮쳐 흘렀다.

 

포 말 이 일 었 다.

     포 말 이 일 었 다.

  포 말 이 일 었 다.

       포 말 이 일 었 다.

   포 말 이 일 었 다.


여기서 뭐 해?


흠칫, 고개를 들자 커다란 고기망을 든 꼬마 여럿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아이 셋, 여자아이 셋. 합해 여섯이었다.


아무것도.


꿈이라는 건 벌써 알고 있었다.


몇 걸음 더 걷기가 무섭게 모래사장은 내 앞쪽에서 뒤쪽으로 휙 돌아가버리고, 앞쪽에는 하얀색으로 일렁이는 바닷길만 남았다.


여기서 뭘 하는 거야?

고기 잡아. 여기엔 고기가 많거든. 하하하.

고기 같이 잡을래?


얼떨결에 고기망을 넘겨받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비명소리가 들려 고개를 번쩍 들었다. 돌린 시선 저 너머로 수면 위에 까만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기망을 집어던졌다.


도망쳐.

어디로?

어디로든!

우리는 익숙하니까 괜찮지만, 오빠는...

나는?

암튼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될거라고!


말을 섞는 사이에도 까만 구름은 순식간에 지척까지 몰려왔다. 물 위를 따라 낮게 깔려온 까만 구름은 수면에 반사되어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 탓에 두 배로 더 커 보이고 육중해 보였다.


그건 척 보기에도 기분 나쁜 것이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꿈이니까.


돌아올게. 난 아무렇지 않을 거야. 이건 꿈이잖아?


벌써 저만치 달아난 아이들은 어떻게 내 말을 들었는지 마주 고함을 질렀다.


모두들 그렇게 말했어! 하지만 돌아오지 않았다고!


모두들?


기분 나쁜 예감과 함께 뒤를 돌자, 메뚜기 떼가 달려들듯 순식간에 몰려온 연기가 나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암흑.

그 뒤에는 조금 가위에 눌렸던 것 같다.


기묘하게도 그 날의 꿈은 생생하게 뇌리에 남았다. 굳이 떠올리려 애 쓸 필요도 없을 정도로.



◆ 3 ◆


저번 시간에 걷었던 과제는 수업 마지막에 나눠주겠다. 저번 시간 숙제였던 레포트의 주제는 18C 철학자들이 쓴 소설의 패러디였다. 단순히 철학적인 주장을 내세우는데 소설을 이용한 것 뿐이지만, 사교계에 파고들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었다고 보여지지.


몽테스키외의 <페르샤인의 편지>, 볼테르의 <캉디드> 등, 어떤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써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그 형식을 그대로 배낀 제군은 0점을 주었다. 항변할 말이 있는 학생은 수업 후에 따로 남아도 좋다.


붉은 줄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은 표현이 좋은 부분이거나 시대적 상황을 잘 반영했고, 창의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붉은 표시가 많을수록 점수가 좋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리고...

교수가 과제를 뒤적이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구민교? 구민교 학생이 누구지?


야! 야, 너 부르잖아!


한창 꾸벅꾸벅 졸던 아이 하나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네!


자네가 구민굔가?


네, 그렇습니다.


자네의 리포트는 실로 참신했네. 그런 독특한 이미지들, 눈을 뜨지 못하는 싸이클롭스, 거식증에 걸린 인큐버스, 그런 이미지들은 다 어디서 나온건가? 어디서 참고한 건가?


민교는 얼떨떨한 얼굴로 눈곱을 띠었다.


아닙니다. 그냥 생각이 났습니다.


허, 그래? 그냥 생각이 났다?

교수는 뭔가 못마땅한 듯 혀를 쯧 차더니, 민교를 세워둔 채로 떠들어댔다.


오늘은 꿈에 대한 수업이다.

제군들도 잘 알겠지만 무의식에 대한 이론을 창시한 사람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프로이트와 융 정도겠지.

 

지금은 이론이 많이 발전해서 이제 와서 프로이트의 이론은 거의 많은 부분이 불완전하다고 지적받고 있어. 고작해야 가십을 다루는 잡지나, 흥미 본위의 사설에나 인용되고 있지. 엄마에 대한 욕망이라느니, 리비도라느니, 얼마나 사람의 흥미를 돋구기에 딱이냔 말이다.

 

이번 수업시간 내내 이론이라는 말을 들을텐데, 제군들이 모두 짐작하고 있다시피 꿈과 무의식의 영역은 과학의 범주로 들어가기보다는 하나의 가설에 가설을 겹쳐놓은 영역이다. 뒤집어 말하면 프로이트의 이론을 전면 부정하는 것도 힘들다는 이야기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심리학의 유행을 거슬러, 프로이트와 융에 대해서 다루어볼까 한다.

리비도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니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지.

프로이트는 꿈을 왜 꾼다고 생각했을까?


아무런 대답도 없는 적막한 교실을 한 번 슥 둘러본 교수는 멍하니 서있는 민교를 지적했다.


잠을 계속 자게 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습니다, 교수님.

 

좋아, 만약 자네 말대로라면 프로이트는 엄청난 모순을 주장한 셈이지 않나? 꿈은 램수면 상태에서 이루어진다고들 하지. 푹 자는 상태가 아니란 말이야.

 

교수님이 지적하려 하시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허나 프로이트가 주장했던 건, 꿈을 계속 꾸기 위해서, 방해하는 요인들을 합리화하는 기재로 작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말하자면, 다른 사람이 흔들어 깨울 때 지진이 나는 꿈을 꾼다던가, 그런 식이지요. 그렇게 외부의 자극을 합리화함으로써 계속해서 꿈을 꿀 수 있고, 계속해서 잘 수 있다는 이야기죠.


교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아, 구민교라고 했나. 자네에겐 특별히 태도점수에서 가산점을 주지. 좋은 대답이었어. 하지만 다른 의견은 없나? 다른 사람?


태도점수와 가산점이라는 말에 교실이 술렁였지만, 섣불리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좋아, 다들 점수에 관심이 없는 모양이군. 거기 제일 앞에 머리를 땋은 여자애. 자네가 말해보게.

 

네? 저요?

여자아이는 당황한 듯 보였지만, 살짝 상기된 볼로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프로이트는 꿈은 억압된 욕망, 즉 리비도의 발현이라고 보았습니다. 간절히 원하거나 욕망하는 일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사회적 윤리 때문에 억압되어 왔던 욕망이 꿈에서 발현되는 거죠.


좋아, 자네 이름은 뭐지?

차선미입니다.


선미의 볼이 한층 더 붉어진 듯 보였다.


자네 의견대로라면 조금 설명하기 힘든 일이 있네. 억눌러온 욕망이 꿈에서 발현된다는 이론은 좋아. 누구나 그런 게 하나 둘 씩은 있지. 예를 들면, 아주 사랑하는 부모님이라도, 부모님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유년기의 아이들에게 흔히 한 두 번은 관찰되는 은밀한 욕망이지.

 

네, 교수님

 

하지만 그렇다면 왜 꿈에서 모든 욕망은 실현되지 않나? 가령 나는 키에 아주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네. 그렇다면 나는 꿈에서 2m되는 거인이라도 되야 할 게 아닌가?


선미는 잠시 말을 망설였다.


교수님, 무의식은 꿈에서 욕망을 실현하려는 동시에 억제하려고 합니다. 스스로를 검열하는 도덕은 무의식 중에서도 스스로를 억누를 만큼 강력합니다.

 

뭐야, 지금 내가 무의식 중에서도 절대로 키가 큰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와하하하- 웃음이 터져나왔다.


좋아, 앉게. 제군에게도 가산점을 주도록 하지.


볼이 터질 듯 붉어진 선미는 서둘러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긴 머리칼이 커튼처럼 드리워졌다.


프로이트의 유명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프로이트의 유명한 일화 중에 이런 일이 있었어. 프로이트가 평생 동안 리비도에 대한 이론을 주장하고, 어린 나이에 충분한 욕망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 생기는 집착들에 대해서 설명했지. 그래서 어느날 프로이트가 담배를 피는 것을 보고 다른 학자들이 놀려댔어.


학생들은 그 다음 이야기를 짐작한 듯, 벌써부터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구강기 때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해서 담배를 피는 군, 자네? 그러자 프로이트는 당황해 부인했다고 하지. 모든 담배에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해. 어때?




◆ 4 ◆



자, 이제 괜찮지?


선미는 가만히 앉아 제 눈을 가려주는 손을 양 손으로 붙들었다. 정말이었다. 현실과 몽상의 경계가 마치 이 사람의 손인 양, 이 사람의 곁에 와서 손을 붙들면 모든 것이 사라졌다. 땅을 헤엄치는 인어도, 눈이 보이지 않는 싸이클롭스도, 꿈을 먹지 않는 인큐버스도, 그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환상도.


네, 아, 살 것 같다.

그렇게 좋아?

네?

내 손이 부러질 판인데.

아!


선미는 양 손에 힘을 빼고 화다닥 물러 앉았다.

 

어차피 환상이라고 했잖아. 왜 그런 것 때문에 고생하는 거니. 넌 특별한 아이잖아.


교수는 다그치듯이 물었다.


그.... 하지만...


선미는 입 안으로 작게 웅얼거렸다. 하지만, 그것들이 내 가방을 찢어발겨놓았는걸요-


선미야, 나랑 보내는 시간을 내내 그런 이야기만 할 참이야? 나는 선미가 많이 보고 싶었는 걸.


선미는 황망하게 눈길을 어디다 두어야 될 지 몰라 결국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정말 제가 도움이 되나요?


왜 그런 질문을 하지?


교수님은 항상 우리나라 시나리오계의 거장이시고, 저는 그냥 시덥잖은 아이일 뿐이잖아요. 교수님은... 교수님은 항상 참신한 시나리오를 써서 매 해 세상을 놀라게 하잖아요. 이번에도 봤어. 문비, 문사, 경향, 한겨레, 죄다 교수님 얘기 뿐이었어. 어떻게 그렇게 매번 새로운 세계관과 등장인물을 뽑아 낼 수 있냐고. 단 한 번도 천편일률하지 않앗다고 말이에요. 나 같은 건 교수님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게 생각해?


응, 정말로요. 왜 나 같은 걸 매일 만나는지 모르겠어.


교수가 팔을 넓게 벌렸다. 선미는 투정부리듯 그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주던 교수의 눈알이 데굴 굴렀다. 오른쪽 위를 바라보다가, 다시 선미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사랑하니까 그러는 게 당연하잖아?




◆ 5 ◆



아, 머리아파 죽겠네.

머리가 왜?


민교는 형돈이의 머리를 짚어보았다.


열도 없는데?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래.


민교는 음흉한 얼굴로 형돈이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뭔지 짐작이 가는데? 여자 문제야?

그...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만 맞다고 할 수도 없는 게...


이 놈 보게? 배신자! 나와 함께 영원한 솔로의 제국을 건설하기로 했던 걸 벌써 잊었나, 친구여?

이 미친놈이? 나더러 평생 솔로로 살라는 거야?


멱살 잡는 시늉을 하는 형돈의 손을 간단히 빠져나온 민교가 혀를 쯧쯧 찼다.


넌 아직 나한테 멀었어, 임마. 대체 뭐가 문젠지나 불어.

꿈에... 자꾸 어떤 여자가 나오는데...

이열, 좋아하는 여자냐?

아니... 그게... 아는 사람이긴 한데... 분명히 난 그 여자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단 말야. 그런데 꿈에 자꾸 나오니까 헷갈려서 말야.


그게 뭐야?

민교는 김이 샜다는 표정으로 가방을 들쳐 맸다.


장난하냐? 그냥 좋아하는 여자가 아니라도 한 번씩 꿈에 나오고 그럴 수도 있지, 임마.


형돈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그렇겠지?


그래, 임마. 빨리 일어나. 게임이나 하러 가자.


형돈은 민교의 재촉에 얼른 가방을 정리해 맸다.


후... 난 또.... 일주일이나 계속 나오길래 뭐라도 있는 줄 알았지. 맨날 그 까만 안개에 뒤덮여서 잠에서 깨면 기분이 정말 더럽단 말이야.


앞서 교실 문으로 향하던 민교가 우뚝 멈춰 섰다.


까만 안개라고 했어, 지금?





◆ 6 ◆




설명하자면 좀 애매한데...


그래도 얘기해 봐. 우리 이쁜 자기가 하는 건 뭐라도 궁금해서 그래.


그러니까...


선미는 이불을 만지작 거리며 한참을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좋아요. 뭐, 거짓말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한 번이라도 신체 접촉이 있었던 사람이면 누구나 가능해요. 그냥 제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한걸요. 


뭐야, 그게 다야? 그러면 다른 사람의 꿈 속에 들어갈 수 있나?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꿈 속에 다른 사람이 나오면, 그건 내가 그 사람을 보고싶어한 게 아니라... 상대가 나를 보고 싶어하는 거라는 말 있잖아요. 그 사람의 무의식이 날 보고싶어하는 마음이 내 꿈으로 찾아오는 거라고. 그냥 그런 거랑 비슷한 거에요. 일반인도 아주 조금은 가능할지도 몰라요. 다만 내 경우는 좀 더 보려는 의지가 강하달까... 그런 거겠죠.


교수는 선미의 머리 아래에서 팔을 빼내고 몸을 돌려 눈을 맞추었다.


그렇게 간단한 거라면 나도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거라면, 왜 내가 이런 걸 숨기고 살겠어요... 뭐, 해 보고 싶으면 해 보시던가요.


좋아. 그럼 지금 이렇게 널 붙들고 있으니까 더 쉽게 할 수 있는 건가?


선미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자고 있을 때만 가능해요. 신체접촉이 강할수록 타인의 꿈에 발을 들이는 게 쉬운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마 관계없지 않을까 싶은데...


흠, 이것저것 까다롭구만. 


선미는 이불로 몸을 감싸며 일어나 앉았다.


저 이만 가볼게요, 교수님.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면 남의 꿈을 볼 수는 없거든요.


흠... 처음부터 괴물들을 달고 다녔던 건 아닐 거 아냐, 요즘은 왜 자꾸 환영에 쫓기는 거야?


그... 구민교라는 애의 꿈에 들어간 뒤부터 늘상 그래요. 걔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건지... 꿈이 온통 괴물 밭이야. 


다른 사람의 꿈 안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뭐라도 볼 수 있나?


선미는 옷을 정리하다 말고 교수를 노려보았다.


교수님의 꿈은 절대로 들여다 보지 않을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쾅!

선미는 부러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고 나섰다.


젠장, 이용당하는 건 진즉 알고 있지만... 이젠 너무 노골적이잖아...


참았던 눈물이 그제야 터졌다. 소매로 슥 밀어 닦았다.


이런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라곤.... 젠장, 젠장! 내가 잘하고 있는건지 뭔지 모르겠어... 


선미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 7 ◆



그러니까 이 얘기를 종합해 보면, 우리 네 명 모두...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거야?


민교와 형돈이 교실을 나갈 생각을 않고 진지하게 토론을 하고 있는 꼴을 보고 다가온 민재와 지호도 입을 떡 벌리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고, 그 결과가 이거다.


그게 말이 돼?

말이 안되니까 그러는 거 아냐.

꿈이 동일한 건 아냐. 동일한 부분은 그 까만 안개와 물, 그리고 그 여자가 나온다는 부분이야.

걔 말하는 거지...?

선미...

그래.

난 또 내가 걜 좋아해서 나오는 건 줄 알고 자책했는데, 뭐, 마음은 가볍네. 


나머지 셋이 민교를 확 째려보았다. 


네 개인적인 로맨스는 이럴 때 좀 접어둘 수 없어? 마음이 가벼워서 어쩔거야? 네 짝사랑이 장르를 로맨스에서 오컬트로 바꾸고 있잖아!


민교는 고개를 척 들면서 팔짱을 꼈다.


내 짝사랑이 왜 니네 꿈에 나오는데? 사실 니네들이 더 수상한 거 아니냐?


셋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숨을 길게 뿜었다.



◆ 8 ◆  (이부분은 귀찮아서 못쓰겠음)


비명소리가 들렸다.

넷이 급히 달려나가보니 마침 이야기하던 그 여자아이가 이상한 괴물더미에 쫓기고 있었는데, 그 괴물더미는 민교의 눈에만 보였던 것이다!

왜 민교의 눈에만 보이냐면 창조주 같은 거니까.

선미는 민교를 보자마자 (당연히 자기의 환상일뿐 상대도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못하고) 욕을 퍼붓고,

대충의 정황을 눈치챈 민교는 도와주기 위해 나서지만,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꿈 속에 나온 검은 안개는 선미의 짓이고, 그 아이들은 선미의 존재를 알아채고 있었던 거구나. 하고 이해한다.(겁에 질린 그녀가 털어놓는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떠올려 본다.

떠올렸다!



◆ 9 ◆


도둑맞아도 별로 상관없는 감정들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꿈에서 튀어나온 것들이 선미를 곧 잡아먹을 판인데 뭐가 중요하랴.


젠장!!!

똑똑히 들어!!!


야, 너 뭐할려는 거야?


민교는 둘의 팔을 뿌리치고 눈이 없는 사이클롭스와 그 옆의 날개 없는 드래곤에게 소리쳤다.


이 미친 내 꿈의 투영체 자식들아! 귀를 활짝 열고 똑똑히 들어!

난 사실 형돈이가 참 좋다! 영원히 친구먹었으면 좋겠다!


형돈이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서 민교의 뒤통수를 빡 때렸다.


이자식아, 갑자기 뭐하는거야?


민교도 형돈 못지않게 얼굴이 붉게 물들어서 계속 열심히 소리쳤다.


민재도 지호도! 사실은 그동안 말 못했지만, 민재가 잘생겨서 너무 부럽다! 나도 반만 닮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런 민재가 여자친구가 없는 게 너무 좋다! 

지호는 돈 많아서 부럽다! 부자새끼라고 그동안 욕한거 다 부러워서 한거다! 부자인데다 개념까지 충만해서 아주 좋아 죽겠고, 얻어먹기 미안해서 민망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민재랑 지호도 얼굴이 달아올라서 민교를 노려보았다.


야, 저 자식 저거 갑자기 미쳤냐?

어, 어어어어, 그래. 내 생각에도 그래.


셋은 민망함에 몸둘바 몰라하며 제 얼굴들을 가렸다.


역시, 예상대로군.


민교는 붉은 얼굴로 씩씩거리며 사이클롭스가 사라진 텅 빈 공간을 노려보았다.


저것들은 내 꿈에서 나온거군? 내가 썩혀둔 감정들을 네가 굳이 끌고 나온거겠지. 그래서 널 쫓아다니는 거지?


선미는 겁을 집어먹고 머리를 움켜쥐고 웅크린 자세에서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틀림없이 긍정의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묵혀둔 감정들을 굳이 말을 통해 실체화하면, 저것들은 근본을 잃고 사라진다는 논리인가보군. 젠장. 


그 때, 달걀귀신 마냥 생긴 작은 도깨비 형상의 무엇이 민교의 곁으로 척척 다가와 섰다.


어라? 이건 또 뭐야? 아까는 없었잖아?


선미는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걔 이름은 부끄러움이야.


젠장. 이거 원 끝이 없구만.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걸 말로 털어놓으니, 그것들을 털어놓아서 생긴 부끄러움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건가. 아이러니하구만. 프로이트 자식 사기꾼이었어. 뭐가 리비도야. 젠장. 


민교는 피식 웃으며 선미를 일으켜세웠다.


내 꿈이 알고 싶으면, 그냥 나한테 물어보는 게 더 빠르지 않겠어?


내가 기분나쁘지 않아?


나빠 임마!


민교는 선미의 이마를 쥐어박았다.


야, 저 여자애 지금 맞고 좋아하는 거 같지않냐?

민교가 좋아하는 앤데 뭐 정상이겠냐.

SM커플이네. 완벽하구만.


민교가 셋을 노려보자 셋은 더 소리높여 낄낄거렸다.


왜, 우리가 좋아 죽겠다며?


하, 민교는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 ?
     손님 2014.01.27 15:32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분량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좀더 분량을 가졌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따라다님... (나도 그렇지만 헤헤)

    글로써 무엇을 도구로 쓰든 그 의미만 전달되면 괜찮다
    라는건 요즘 내가 크게 느끼고 체험하고픈 슬로건인데
    지금 눈이 조금 침침한 상태라 그런건지 읽기에 힘들다는 느낌이 듬당

    역시 아쉬움은 중간에...
    와 점점 스택을 쌓아가는 구조랄까...
    마지막 부분을 보면 좋은 대화 (놀림,말장난 그런 늬앙스)도 나오는데,
    그런 대화는 이부분에는 이 대사를 쳐야지 하고 생각해 놨을법한 그런건데...

    역시 이때는 이런 생각으로 썻겟지 하면서 읽는 나는 이해하며 공감하겠지만...
    아쉬운건 아쉽슴다
    꼭 무리 하지 않고 다음 회차로 가지고 갔어도 되었는데 ㅠㅠ

    지식에서 올수 있는 이런 주제는 부럽기도 한 면과 동시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슴당~
  • ?
    닭날개튀김♡ 2014.02.05 16:06
    잘 읽었습니다.

    1. 살짝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등장인물들간의 대사와 상황서술을 같이 줄바꿈으로 처리를 하다 보니, 일단 당장의 상황파악에 작은 딜레이가 있는 정도일까요. 그리 심각하진 않고 또 인물들간의 대사도 주로 1:1의 상황, 여럿인 경우엔 헷갈리거나 구분이 가지 않긴 했지만 굳이 구분을 할 이유는 없는 상황이긴 했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강재개행과 함께 한 문단으로 묶어둔 점은 눈에 띄었습니다. 참신한 시도라고 생각되지만, 예를 들어 선미와 꿈에 대해 네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라거나, 마지막에 민교와 선미를 두고 삼인방(?)이 쑥덕거릴 때 구분이 확 되었다면 개개인의 캐릭터성이 조금 더 살아나거나,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찬찬히 읽고 난 뒤 교수와 선미와 민교 -그리고 나머지 셋- 정도로 구분이 확연이 됩니다. 물론 비중상의 차이가 더 큰 이유겠지만 일단 같이 꿈을 꾼 세 사람이 민교에 비해 비중이 떨어지는 것은 조금 아쉽긴 하네요. 물론 선미가 가진 관심의 정도가 다른 세 사람에 비해 민교에게 훨씬 많이 향해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테니 굳이 나쁜것만은 아니고, 서술방식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2. 서술방식에 따른 부작용으로 하나 더. 전 처음 훑어보듯 읽고 다시 찬찬히 재독하는 스타일인데, 처음에 읽고 나서 민교가 여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교수가 민교를 지적할 때는 '꾸벅꾸벅 졸던 아이' 선미를 지적할 때는 '여자 아이'. 성별에 대한 암시가 나오는 부분이 7번으로, 민교를 두고 다른 두 사람이 '네 짝사랑' 언급을 해서, 전 처음엔 '아 동성애인가보다' 하고 넘어갔어요(.............) 작품 전체를 통틀어 민교의 성에 대한 암시나 언급이 너무 뒤편이기도 하고. 음. 그건 조금 손보시는게 어떨까 하네요. 둘 다 '남학생' '여학생' 이라거나.

    3. 2번의 꿈을 꾼 이가 명확하지 않으며 (바로 직후 졸던 민교가 있어서 민교일 수도 있고, 혹은 다른 3인방일 수도 있고) 물론 꿈을 꾼 이가 명확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큰 문제는 없어보입니다. 대상이 민교라면 그라는 점을 명확히 해서 비중을 확 올려버려도 괜찮을것도 같고요. 음. 또 8번이 절정일텐데 생략되서 아쉽네요. 어허허.

    4. 전체적인 구조나 아이디어는 꽤 좋네요. 특히 이런 주제는 이해하는 사람은 보고 자신의 공부와 연결시키며 재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너무 매니악한 글이 나와 읽으며 느끼는 재미가 줄어들기도 하거나 너무 평범한 내용으로 호들갑을 떠는(...) 등장인물들이 나오긴 하는데 그렇지 않고 적절히 밀당을 하셔서 괜찮다- 하고 느끼며 읽었습니다. 딱히 모르는 사람도 '선미의 꿈' 이 일단 주 소재라는 것을 알 수 있고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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