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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열광하고 있다." 

남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 걸까? 좀 더 들어 보자.

"세계의 일대기는 그저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일반적인 작별과 다름없는 이기적인 물결이다. 스물여섯 번의 해가 지고, 수백 명의 용사가 떠올랐으며, 세계는 어두컴컴한 그림자에 잠겨있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흘러버린 어제일 뿐이다." 

천천히 남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타오르는 푸른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다. 구름이 남자가 서 있는 자리를 지남과 동시에 숨어있던 빛이 세상으로 내리 꽂힌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의 물결이다. 철썩이며 흔들리는 파도에는 생동감이 있다. 그것은 분명 역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는 파도는, 이 커다란 청색의 감옥은, 우리를 태우고 새로운 시대를 향해 요동친다." 

빛에 완전히 노출된 남자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단지 미적으로 아름답다면 그것은 1차원, 비장이란 이름으로 당장이라도 남자의 생명을 찬란하게 활활 불태울 열정이라면 그것은 2차원. 

하나의 시대의 끝을 고하며 타닥 타닥 타들어가는 세상의 도화선 위에 올라선 지금이야말로 3차원의 아름다움이다.

"비로소 하나의 시대에 끝을 고하는 싸움의 막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눈앞에 그것이 보였다. 그것, 그것은 생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지막지한, 단지 시선을 쫒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쿵 하고 내리 찍을 듯 한 위압감을 풍겼다. 그것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것, 그것은 마왕이다." 

남자가 시선을 쫒아 가자 그것에는 철갑을 두…

"분명히 커다란 체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철갑의 요새라고 해야 할까?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오라를 풍기며 마왕은 서있었다." 

마왕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마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커다란 2개의 뿔. 뿔에서부터 뻗어 나온 철갑의 벽은 마왕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아래로는 단단한 쇠의 향연이었다. 가슴에는 삼각뿔처럼 갑옷이 불록 쏟아 있었으며, 팔에는 용사의 허리 둘레만한 거대한 철조 각들이 붙어있었다. 그야말로 철의 마왕, 이미 마왕은 철과 하나, 철은 마왕의 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유일하…

"유일하게 내놓은 마왕의 신체 일부는 딱 하나였다. 빨갛게 불타오르는 머리카락. 여태 마왕이 쓰러뜨린 희생자들의 피로 물들은 듯 소름 끼치고, 그렇기에 치명적으로 아름다웠다." 

잠깐…

"각오해라, 마왕. 세상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싸워왔다. 그렇기에 여기까지 왔다. 동료의 피를 밟고, 연인의 눈물을 마시며, 사랑하는 자들의 마음으로 담금질하여 여기까지 왔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로 손을 뻗었다.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어깻죽지에 고정된 푸른색 망토를 거칠게 쥐어뜯었다. 남자의 손을 따라 푸른색의 망토가 둥글게 펄럭였다. 

그림자와 빛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푸른 망토는 있는 힘껏 빛을 반사하며 흩뿌렸다. 마치 남자의 비장한 각오가 세계 각지로 뿌려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오버를 했지만, 미리 말해두지만,

"자, 드디어 시작되었다!" 

이 남자는 용사가 아니다.

"인류의 존망을 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싸움! 제 72회 용마전설 중계 시작합니다!" 

남자의 이름은 디 M.크라우드 언어의 축복을 받은 8번째 해에서 태어나 디의 이름을 받았지만, 고아였기 때문에 가문의 성은 M이 고작인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훌륭하게 용사와 마왕의 싸움의 중계로 성장했다. 물론 단순히 운이 좋아서는 아니다. 아무래도 크라우드의 성격이 그가 중계가 되는데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은데. 더 이상 말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니 자세한 설명은 제외한다.

"마왕! 어째서냐, 어째서 세상을 파멸로 몰고 가는 것인가!"
"용사는 자신의 분신이자, 모든 것을 걸은 성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것은 용사가 걸어온 순백의 이정표. 그리고 그 끝에는 마왕이 서있… 용사씨. 그냥 평소대로 말해요. 집중이 안되잖아요."
"흐, 흠. 알았어." 

……말해두지만, 지금 이 장면은 분명 세계의 양면을 올리고 용사와 마왕이라는 추가 저울질하는 장면이 확실하다. 하지만 디 M.크라우드 라는 이 남자. 이 남자로 인해 이것이 그저 하나의 연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것이다. 

용사가 있었다. 그리고 마왕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했다. 

초기의 문헌에는 분명히 그렇게 적혀왔다. 용사가 있었기에 세계가 있었고, 마왕이 있었기에 세계평화의 꿈을 기리는 이들이 줄지어 일어났다. 그것은 세계를 구하는 원동력이 된 것은 확실한 이야기이다. 

역사는 기록이다. 역사는 이미 우리를 지나쳐버린 커다란 바위와도 같다. 그렇게 커다란 바위가 지나쳤음에도, 그곳에서 우리들이 인지한 것은 커다란 바위가 지나갔다는 단순한 사실뿐이었다.

"마왕! 당장 세계를 파멸시키는 것을 멈춰! 그렇지 않으면 내가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크, 크큭. 웃기는군."
"마왕은 가뜩이나 보이지 않는 투구에 두껍고 투박한 자신의 손바닥을 얹었다. 무식하게 두꺼운 철 조각들이 겹쳐서 이제는 태양이 떳는지도 졌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야를 가린 꼴이 되었다. 그래도 마왕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이런 세상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마왕은 피로 물든 자신의 머리카락처럼 섬뜩하게 세상의 종말을 고했다."
"어째서! 왜! 왜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역사의 순간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 역사의 순간에는 기록이 있어야 한다. 

과거의 싸움은 그저 침묵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숨죽여 지켜왔던 살아 숨 쉬는 소리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던 그들의 찰나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을, 지금 이 종말을 증언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위한 것이 중계자이다. 용사와 마왕의 싸움은 그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애초에 내가 마왕이 아니던 시절, 그 날 난 세계에 속았다. 당했다. 처박혔다. 그리고 절망했다. 그리고 죽었다. 오직 순수를 가지고 있어야 했을 그 때, 내 눈 앞에서 순수는 죽었고 나는 세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결심했다."
"마왕에게서 소름끼치는 쇠의 공명이 울려 퍼졌다. 누군가 주변에 있었더라면 귀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질 정도로 피에 사무친 소리였다." 

그리하여 이 순간을 가장 빛내줄 것은 용사와 마왕, 그리고 중계자이다. 근데… 눈 앞의 중계자는 약간… 뭐랄까… 약간… 음…….

"그러면 할 수 없지. 간다, 마왕."
"용사는 강한 그의 의지, 그리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신념을 마왕에게 말하며 자신의 성검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 그의 말에는 마왕에게 뒤처지지 않는 세계의 속삭임이 담겨 있었다. 용사를 주변으로 백색의 빛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최후의 불모지에서 용사를 주변으로 빛이 번저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잠깐! 그러면 할 수 없지……. 같은 게 세계의 속삭임이라니 그런 건 슬프잖아? 그보다 백색의 빛은커녕, 이미 아까 전에 빛에 완전히 노출되었는데 불모지라니? 설마, 설마…….

"용사의 검이 마왕을 향해 그어졌다. 세계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있는 일격으로 마왕의 두껍기만 하고 쓸모는 없어 보이는 소름끼치는 갑옷은 종이 잘리듯 썰릴 것이 눈에 선했다." 

설마 이 녀석 줄 타는 건가! 잠깐, 용사! 싸우는 중에 그렇게 헤벌쭉 웃지 말라고! 집중해!

"강한 섬광이 흩고 간 자리에는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마왕은 용사의 일격을 피한 것인가? 아무리 마왕이라 할지라도, 방금 전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치는 것은 힘들어보였다." 

헤벌쭉하면서도 용사는 잘도 공격을 했고, 검이 마왕에게 닿았을 때의 소리는 거짓이 아니었다. 분명 맞았다.

"이윽고 먼지가 가라앉고, 그 사이로 너덜너덜해진 쓸모없이 두껍기만 한 마왕의 갑옷이 모습을 드러… 냈으면… 지는 않았다." 

이 녀석을 중계자로 내세운 녀석들은 대체 누굴까. 얼굴이 궁금해진다.

"더는 피하지도, 숨지도 않는다. 즉, 도망치지 않는다."
"먼지 사이로 드러난 마왕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소름끼치도록 고혹적인 모습, 그것은 단 1센티도 다름이 없었다. 마왕의 말 그대로였다. 마왕은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고, 용사의 공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렸다."
"꿈쩍도… 안하잖아?"
"용사는 그 자리에 멍하니 벙쪄있었다. 성검은 이미 어느 정도 빛을 바래서 약간,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누레져있었다. 용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성검과 마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약간 바보 같았다." 

용사의 일격이 마왕에게는 상처하나도 없이, 갑옷에 흠집하나 내지 못한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용사와 마왕의 싸움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혼란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크라우드도 그러한 영향을 탄 것인지 중계가 조금 흔들리는 듯 했다.

"이런 세계는 필요 없다고 했다. 그렇게 결심한 것이 십년도 더 된 이야기. 유일하게 나에게 세계의 빛을 알려준 소년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막 피어오르기 전에 푸른 꽃봉오리와 같았다."
"마왕은 고개를 치켜들고 용사를 내려 보았다. 마왕의 앞에 있는 것은 용사 하나였지만, 마왕이 말하는 것은 인류 전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꽃을 피우지 못하고, 그대로 인간의 손에, 추악한 인간들의 손에 의해 꽃봉오리는 잔혹하게 꺾였다. 지금의 날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너희들이다. 동족이 동족을 기만하고 능욕한 결과 내가 탄생했다. 자 봐라! 이것이 이 세계를 멸망시킬 마왕이다."
"그렇다. 마왕이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에는 이러한 각오가 서려있던 것이었다. 인류에 대한 절망, 그것이 마왕에게 강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거기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중계자가 마왕에게 심취해 있는 동안 용사는 다시 한 번 성검을 쥐어들었다.

"아직, 아직 포기할 수는 없다!"
"소용없다고 했을 터, 도망치지도 않는다고 했을 터!"
"마왕의 목소리에는 짙은 무게감이 가득했고, 마치 커다란 마왕성이 바닥에 깊게 뿌리를 찔러놓은 듯 했다. 용사에게는 정녕 희망이 없는 것인가? 이대로 커다란 힘 앞에 무릎 꿇는 것인가!" 

용사는 자신의 성검을 들고 매서운 속도로 마왕에게 달려갔다. 마왕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런 용사를 내려보았다.

"용사는 검을 뒤로 가득 당긴 채 달려 나갔다. 다만, 아까와의 공격과 전혀 다를 것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미 같은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눈앞에서 확인하고도 미련하게 똑같은 방법으로 공격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공법이라고는 하지만, 저기에 인류의 희망이 담겨있다면 조금 절망적일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마왕… 도망치지 않겠다는 마왕의 의지는 확실했다."
"와라!"
"이번에도 역시 마왕은 피하지 않았다. 힘껏 당겨진 용사의 검이 오색찬란한 빛을 뿌리며 마왕과 맞닿았다. 콰왕! 대단한 격돌이다. 일격으로 마을 하나쯤은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만들 수 있는, 물론 용사 본인이 직접 설명해준거라서 신빙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는, 용사의 일격이 마왕에게 꽂혔다."
"그, 그러지마!" 

크라우드의 설명을 들은 용사가 얼굴을 붉히며 크게 외쳤다.

"아아… 뭐였드라 저 공격 이름. 에… 레…레이닝…? 아닌데."
"그, 그만둬! 더 말하지마!"
"아, 그래 레인보우. 오색찬란하니까 분명 레인보우가 맞았어. 레인보우 슬래쉬 참! 이었나. 아하하하하하, 이거이거, 여러분! 세계의 최후를 걸었던 기술의 이름이 바로 이겁니다! 레인보우 슬래-애쉬, 참! 아하하하하하. 그러나 지금의 마왕을 보십시오. 아무런 상처도 없던 갑옷은… 에, 그대로이지만, 바닥에 널브러져서…어……."
"끄아아아아아아아아. 이대로면 나 장가 못 갈지도……." 

일단 용사는 부끄러워하고, 마왕은 널브러졌으며, 크라우드는 물타기를 시작하였다. 지금 필요한 설명은 이것이다. 그리고, 

슬래시에 참은 왜 붙는거야! 고대어를 번역해도 둘다 베는거잖아! 그리고 마왕은 왜? 왜 대체?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으면서 완적히 넉다운 된거지? 마지막으로 장가가 무슨 소용이야! 세계가 멸망한다고 젠장!

"어… 용사는 레인보우 슬래쉬 참을 사용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용사의 용기와 용사의 어깨에 놓인 전 세계인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서 이뤄진 7색의 레인보우, 레인보우 슬래쉬 참이 드디어 마왕에게 커다란 데미지를 입힌 것이다. 용사의 용기와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합쳐진 이상, 마왕이 용사에게 맞서는 것은 무의미였다." 

크라우드 너 이 자식!

"레인보우 슬래쉬 참. 그 이름은 후세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지금 이 세계를 지킨 기술의 이름은 레인보우 슬래쉬 참이다.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과서에는 레인보우 슬래쉬 참이 세겨질 것이고, 나뭇가지와 철제 쓰레기통으로 무장한 귀여운 악동 용사들은 레인보우 슬래쉬 참을 온 마을이 떠나가도록 외칠 것이 분명했다. 이로써 세상은 레인보우 슬래쉬 참에 의해 구원받았다."
"그, 그만해… 제발 그만해. 내가 잘못했어……."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해야 할까. 용사는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며, 눈과 귀를 막고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이제 세상은, 어, 어? 뭐지? 그 때 정체불명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곳에는 마왕과 용사밖에 없었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웃음소리는 분명 여자였다. 어딘가 묘하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시원한 목소리랄까? 분명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름다운 여성일 것 같았다." 

분명 사심이 가득차 있었지만, 크라우드가 말한 그대로였다. 그보다 갑자기 튀어나오더라도 묘하게 해설은 계속 이어가는 구나. 조금은 안심했다.

"분명,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고 했다."
"그놈의 도망 타령, 이제는 좀 지겹다고 생각합니다만, 갑자기 튀어나온 여성의 목소리는 분명 그렇게 말하였다. 그 때 용사도 새로운 목소리에 정신이 들어서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목소리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서, 설마!"
"하, 완전히 못 써먹을 정도는 아니었군, 용사.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인정해주도록 하지."
"마왕이, 여자! 이 목소리에 저런 대사라면 츤데레인가! 츤데인건가! 츤데레 마왕이다!"
"다, 닥쳐라!" 

마왕은 부끄러운 듯 당혹스럽게 크라우드에게 외쳤다. 그보다 츤데레라니, 시대에 전혀 맞지 않은 단어이지만… 다들 그 뜻을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관대하게 넘어가도록 하자.

"마왕의 목소리는 매력이 있었다. 뭔가 까칠하면서도… 음… 뭐랄까… 어디선가 좀 들어본 듯도 한데 이런 목소리……. 어쨌든 바닥에 널브러진 주제에 인정이니 뭐니 하는 것도 조금 웃긴 상황이었다."
"말로만 들어봤지만, 중계라는 건 원래 이런 건가? 인간들도 참 가지가지 하는군. 자, 그럼." 

마왕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일으키기 보다는 천천히 몸이 떠오르면서 수평이었던 몸이 수직으로 펴져갔다. 그리고 원래 모든 중계가 그런 게 아닙니다. 전대 71회 중계였던 레 Spk. 레딧씨가 저세상에서 울고 있을 겁니다 분명.

"그럼 다시 가보도록하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은 인정해 주겠어."
"마왕의 몸에 빛이 휩싸이기 시작했다. 기분나쁜 붉은 빛이 마왕의 몸을 감싸며, 주로 갑옷을 감싸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커다란 뿔이 달린 투구, 철의 공성요새와도 같았던 두꺼운 갑옷과, 산이라도 파괴할듯한 건틀릿과 부츠 등이 붉은 빛에 휘감겨 점점 그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어, 어버버. 어어어……."
"한심한 용사는 그런 마왕을 보면서 할말을 잃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런 인간이 인류 전체의 희망이라는 것은 조금 슬프기 그지없지만, 어쩌면 좀 더 분발하면 파워업한 마왕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보도록 한다. 힘내라, 레인보우 용사여. 세계는 그대의 슬래쉬 참에 달려있다." 

마왕과 다시 싸울 생각으로 다시 몸을 일으키던 용사가 살짝 다리를 삐끗했지만, 같이 응원해주도록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마왕을 감싸던 붉은 빛이 사라졌다. 동시에 다시금 붉은 파도가 마왕을 따라 넘실거렸다. 갑옷 사이로 빼꼼 하고 간만 보란 듯 드러나 있던, 마왕의 장발은 대단했다. 마치 마왕의 몸을 감싸고 붉게 타오르는 듯한, 강렬한 마왕의 장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장발에 감싸여 있는 마왕은 모습은… 어, 모습이… 와우, 정말. 나이스!"
"도, 동의한다."
"……." 

마왕이 크라우드와 용사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일단 마왕의 모습에 푹 빠져있는 크라우드를 대신해서 마왕의 모습을 설명하자면, 아까전 크라우드가 주절주절 설명했던 붉은 빛을 발하던 모든 장비들은 사라졌다.  

머리와 마찬가지로 붉게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와 앵두같이 앙증맞은 입술 또한 또렷하게 색이 짙었다. 아름다운 턱선이 이어…

"아름다운 턱선의 아찔한 라인을 따라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배꼽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갑옷은 정확히 마왕의 가슴을 반절만 가리고 있었다. 대, 대단히 풍만해 보이는 가슴은, 가슴은 정말로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건틀렛의 변화가 상당했는데, 팔뚝부터 손가락의 끝까지 뒤덮은 얇은 건틀렛의 은색과 적색의 조화가 상당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가냘픈 팔뚝부터 매끄럽게 잘 빠진 새끼손가락 까지! 그 모든 것을 감출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만! 역시 인간은 사라져야 하는 존재다! 과연 더 이상 나불거릴 여유가 있을까? 나의 갑옷은 전부 나의 마나로 이루어진 존재. 그리고 갑옷을 두르고 있었던 것은 마나의 봉인을 뜻하지. 1차 봉인을 해체한 나를 이길 수 있을까? 어리석은 인간아!"
"인간을 얕보지마라!" 

방금 것은 용사의 외침일 것 같은 진행구조지만, 정말, 정말로 의외로 크라우드가 자신의 망토를 펄럭이며 격하게 외친 것이다. 크라우드의 푸른 눈동자에게는 신념이 담겨 있었다. 그 역시 인류. 인간이었던 것이다.

"아주 예전이었다. 아주 옛날의 이야기였다. 내가 아직 철들기 전의 이야기. 그리고 죽음을 맞이할 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음의 순간이 나에게 왔었을 때, 비정하고 거대한 낫이 막 목 끝에 차올랐을 때 나에게 떠올랐던 생각이었었다. 그것은 나의 최후의 욕망, 평소에 이루고 싶었던 염원이었지." 

크라우드는 마왕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자, 나는 최후의 욕망으로 눈앞에 있던 가슴을 힘껏 만졌다. 죽어가면서도 가슴을 만지겠다는 내 의자가 빛을 발한 것이지. 당시의 소녀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리고 다시 만나보고 싶지만……. 이것이 인간이다! 물론, 살아남았으니까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지만 말이야, 하하." 

잘 보니 크라우드가 쳐다보던 것은 마왕의 가슴이었던 것 같았다. 저 자식, 용사가 지면 분명 마왕의 가슴에 달려들 기세다.

"최, 최악이다! 역시 최악이다! 너 같은 인간이 예전에 날 구해줬던 그 아이를 죽인거야!"
"뭐, 뭐라고?"
"마왕의 말에 놀란 용사가 마왕을 바라보았다. 인류를 향한 마왕의 복수심의 정체와 과거 마왕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내가 마왕으로 각성하기 전에, 마차에 치여 죽을 뻔한 순간이 있었다. 웃긴 일이지. 마왕의 자질인 내가 고작 마차 따위에 치여 죽을 뻔한 위기란 것이. 하지만 그때는 나 또한 평범한 인간 소녀와는 다름이 없었다. 마왕의 힘이 없었기 때문이지."
"그 인간 누군지 몰라도 정말 인류에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이네."
"닥쳐라! 적어도 너 같은 인간보다는 나아!" 

마왕은 크라우드를 향해 증오의 눈빛을 쏘아 보냈다.

"마차에는 귀족이 타고 있었어. 하지만 멈추지 않았지. 아니, 멈출 생각도 없었어! 나같이 신원도 알 수 없는 비루한 평민소녀 따위를 위해 마차를 멈출 필요도 없던 것이지. 하지만 그런 날 구해준 소년이 있었어. 갑자기 뛰어든 그 소년은 날 전력으로 밀쳐 내주었고, 난 살아남을 수 있었어. 날 힘껏 밀어준 소년의 마음이, 그 푸른 따뜻함이 소년의 손을 타고 정확히 내 가슴을 향해 들어왔었어."
"하, 하지만 어째서? 어째서 인간을 미워하는 거지?" 

용사는 적절한 타이밍마다 튀어나와서 자신의 궁금증을 호소했다. 어쩐지 누구씨와 역할이 바뀐 것 같은 건 기분 탓이 아니다.

"아마 그때 마왕의 힘이 반 정도 각성했다고 생각했어. 게다가 그 소년 또한 살아남았지. 난 정말 기뻤고, 소년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소년이 입원했다는 병원으로 향했지. 하지만……." 

마왕은 웃고 있었다. 마왕의 붉은 눈동자에는 푸른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따뜻하면서도 마음을 풋풋하게 달궈오는, 은은한 온정이었다. 하지만 마왕의 눈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내가 목격한 것은 소년의 죽음이었다. 멀리서 분명히 지켜보았다. 소년의 위에 올라탄 실루엣, 그리고 양손으로 치켜들은 흉기……. 그리고 흉기는 그대로 소년에게… 닿으며, 피는 병실 전체로 퍼져나갔지. 그리고 나는 인간에게 절망했다. 혹시 나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 따위가 사랑을 품었기 때문일까? 내가 마왕이기 때문일까?"
"마왕은 붉은 오른손을 올려 자신의 얼굴위에 얹었다. 길게 뻗은 다섯 손가락이 자신의 얼굴을 쥐었고, 얼굴과 손이 붉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마디마디로 보이는 뻘건 원념에서는 시뻘건 슬픔이 흘러내렸다. 불타오르는 머리카락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세계의 끝에서 가장 붉게 타올랐다."
"그러니 세상은 여기서 끝을 고한다. 더는 도망치지 않는다. 내일은 나와 함께 재가 될 때까지 언제까지나 타오를 것이다." 

동시에 마왕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분노도 슬픔도 거짓도 진실도 세상마저 사라졌다. 덤으로 크라우드도 정신을 차린 듯 했다.

"마왕의 표정처럼 마왕 또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결심한 순간 거리낌은 없었다. 대상은 분명 용사가 분명했다. 용사도 마왕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고 오감을 집중했다."
"읽을 수가 없어……."
"용사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이미 마왕은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붉게 타오르는 증오는 모든 것을 태우고 오직 눈앞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공격할 대상은 용사가 확실하지만, 공격의 징조는 지워버렸다. 그때였다."
"읏!"
"쾅! 용사가 검을 들어 올린 것도 순간이고, 검에 의해 마왕의 주먹이 막힌 것도 순간이었다. 용사가 검을 들어 올리는 것은 무척이나 본능적이고 힘들었다. 그 증거로 용사가 막은 것은 오직 주먹 한발 뿐이었다. 주먹이 막히는 것과 동시에 이어진 마왕의 발차기로 인해 용사는 저 멀리 쳐 박히게 되었다." 

움직이기 시작한 마왕은 강했다! 용사는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가 드디어 모든 것이 정상궤도로 돌아가서 전 세계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오른 듯 했다.

"마왕의 동작은 훌륭했다.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몸매만큼 군더더기 없는 발차기였다. 아아. 역시 용사는 안 되는 것인가. 아름다운 마왕이여! 그대의 분노를 잠재울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 

절망적인 상황,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다. 마왕은 활개치고 용사는 쳐 박히고, 심지어 인류 최후의 눈이라는 양반이 완전히 물을 넘어서 파도를 타고 있는 듯하다.

"아, 아까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사실 죽음에 문턱에서 살아나서 병원에 있을 무렵이었는데, 그 당시에 환자라면 가슴을 슬쩍 만져도 화내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다시 가슴을 만져본 적도 있었지. 물론 다시 죽음의 문턱으로 가버렸지만 말이지."
"사, 살려줘!" 

아아, 이 녀석 못쓰겠네. 완전히 포기한 모양이다. 쓸모없는 잡소리나 하는데, 정말 이런 인간이 어떻게 중계로 뽑힌 거야 대체. 참고로 용사는 현재진행형으로 마왕에게 털리고 있는 중이었다. 크라우드가 시답잖은 소리만 하고 있지만 용사의 검은 마왕에게 흠집조차 주지 못하였고, 마왕의 펀치는 매섭게 용사를 몰아붙였다.

"나, 나도! 나도 파워업 같은 할 수 있다면! 보통 이 타이밍에 해야하는 거 아니야? 내가 용사인데! 나도 갑옷 따위 바칠 수 있다고오!" 

용사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잠깐, 파워업? 갑옷? 갑옷에 마나를 저장해 둔다고 했던가……." 

최후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전 세계가 술렁거리지만, 혹시 용사니까, 그래도 용사니까. 그런 울며 겨자 먹기의 눈빛들이 용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워업을 하려면 갑옷을 흡수해야 하는 거였지. 그러면……." 

아아, 이대로 세계는 끝이 나는 것인가. 세…

"세계는 구원 받을 길이 없는 것인가! 정녕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하지만 언제나 희망은 있다. 흙발로 짓밟힌 전쟁터에도 꽃은 피어난다. 모든 것을 낭떠러지로 떨어뜨리는 세계의 끝이라 할지라도 끝과 시작은 언제나 이어져있었다."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크라우드가 제대로 중계를 시작했다. 용사는 그것에 희망을 걸고 검을 지탱하여 몸을 일…

"일으켰다. 그리고 마지막 희망이 용사에게 깃들었다. 그것은 세상의 의지, 세계의 힘. 그리고 사실 이 몸의 힘이지만 말이다."
"우오오오오! 대, 대체 이 힘은!" 

크라우드가 용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용사는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며 자신의 양 손으로 들어오는 힘을 느꼈다.

"대단해 크라우드! 그러고 보니 너 버프사였지! 하지만 중계로서 이래도 괜찮아?"
"용사는 쓸모없는 걱정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차피 높으신 분들은 세계만 멀쩡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괜찮았다. 그리고 이것은 전세계인의 의지이기도 했다." 

설마, 이 녀석 중계로 뽑힌 이유가 이거 때문인가! 어쩐지 이번 용사는 역대 용사중 가장 약한 거 같더라니……. 그보다 이런 게 전세계인의 의지가 될 리가…… 

있구나. 하하, 사실 세계만 멸망하지 않으면 그만이지요 하하.

"좋아, 간다!"
"용사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마왕의 주먹이 용사의 얼굴을 향해 뻗어져왔다. 용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먹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마왕의 주먹은 용사의 볼을 타고 미끄러지듯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굉장한 주먹 속도로 인해 용사의 머리칼이 펄럭였다."
"받아랏!"
"드디어 용사의 반격이었다. 마왕이 주먹을 거둬들이기도 전, 용사가 몸을 앞으로 움직이며 무릎을 들어 마왕의 배를 가격하였다. 제법 둔탁하고도 묵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크, 크으……."
"적막의 순간을 비집고 마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왕의 얼굴에 표정이 떠오르는 듯 했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용사의 공격이 마왕에게 확실하게 먹혀들었다는 것은 증명되었다." 

버프의 효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파워업한 용사가 마왕보다 우위를 취한 것이다.

"이제 마왕이 용사에게 패하는 것은 보나마나 뻔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마왕은 어쩔 수 없이 용사에게 이기기 위해서 또 다시 파워업을 해야할 것이다. 그렇다. 파워 업 하기위해서는 나머지 갑옷마저 수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자 가라 용사여! 파워 업을 위한 최후의 일격을! 그래서 최고로 파워한 가… 아니 파워한 세계 최후의 싸움을!" 

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 이 녀석 최악이다. 정말 최악이다. The 최악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네놈의 삶은 가슴으로 시작해서 가슴으로 끝날 셈이냐!

"더 파워업 따위 없다고! 빌어쳐먹을 인간놈아! 크아아아아아아!" 

참다못한 마왕의 얼굴에 표정이 떠올랐다. 동시에 원통한 표정으로 괴상한 소리를 내뿜으며 용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깟것! 이깟 것! 이따위 거어어엇!"
"더 이상 파워 업이 불가한 마왕은 열심히 공격했지만, 파워 업한 용사는 여유롭게 피하거나 자신의 검을 이용해 파워업불가마왕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는 중 파불마왕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 따위이 거어어어어엇! 으흑, 왜 하필이면 이딴 놈에게! 으흐, 으흑." 

아, 어쩐지 마왕이 울려는 거 같지만, 조금 이해가 간다. 그보다 마음대로 줄여서 부르면 실례잖아…….

"죽으면 그 아이를 만나러 갈 수 있을까? 이제 이딴 인간들은 지긋지긋해. 푸른 머리의 상냥했던 그 아이를 만나고 싶어."
"결국 마왕은 더 이상의 파워업이 없는 결과, 모든 힘을 소진하여 용사 앞에 무릎 꿇고 말았다. 용사는 검을 치켜들었다. 아무리 아름답고 예쁜 마왕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세계의 평화라는 사정이 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지켜져야 할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크라우드같은 놈이 중계라지만, 결국 그도 인간인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자라서 인간으로써 죽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인간이다. 그저 인간이다. 용사의 검이 마왕의 목으로 다가가는 이유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었다.


"아, 근데 아까 전에 갑자기 생각난 건데 말이야."
"뭐냐, 용사. 한참 감정 잡고 마지막 멘트 날리려는데 분위기 깨지 말아줘. 어서 마무리를 가하라고." 

그래도 이 녀석. 정말 불량하구나.

"전에 술추는 춤집에서 이야기해준 옛날이야기 있잖아. 어렸을 때 마차에 치여서 죽을 뻔한 적이 있다고 했던 거 말이야."
"근데, 왜. 지금은 사설은 참자 용사야."
"아니, 만약 그 때 죽었다면 이 순간도 없었겠구나 싶었는데 말이야. 그거 말고 마차에 치일 뻔한 이유말이야."
"별거 아니라니까. 그저 동네 예쁜 누나가 보는 앞에서 멋있는 짓 좀 하고 싶어서 그랬어. 그때는 죽는지 알고 구해줘도 가슴을 밀어서 구했다고 말했잖아. 대단한 의지지."
"으에? 으이럿! 얼, 아그악?!" 

그때 마왕이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놀란 듯 빨간 눈을 크게 치켜뜨고, 입을 멍하니 벌리다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정체불명의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크라우드의 머리카락은 시커먼 속마음과는 다르게 아름다운 푸른색이었다.

"아, 아닐 거야. 분명 아니야. 죽여라 용사!" 

마왕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외쳤다. 그런 눈매를 타고 한방울의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그것은 충격과 진실과 의지의 눈물이었다. 

잠깐! 마왕 너 도망치고 있잖아!

"어쩐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마왕을 구한건 네가 아니었을까 싶어서. 그럼 끝!"
"용사는 더 이상 할 이야기는 없는지 높이 든 검에 힘을 가득 주었다. 인류의 모든 희망으로 장인들이 한땀 한땀 정성스레 쾅쾅 내리친 전설의 검은 무척이나 대단했다. 풀잎을 올리면 그대로 반토막이 나서 스르륵 갈라지는 그런 검이기 때문에, 마왕의 약하디 약한 목은 순식간에 두동각이 나버릴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용사에게 걸린 버프또한 엄청나게 대단하기 때문에, 그 버프가 함게라면 일반인도 검으로 나무를 벨 수 있는 정도였다. 진짜로 엄청난 버프이기 때문에, 마왕의 목은 그만큼 위기라는 것이다. 세계 최후의 최종의 순간에서 비추는 빛이 용사의 검신을 타고 용사의 두 손까지 흘러져 내렸다." 

준비된 멘트가 이것이라면, 정말 이건 좀 대단하다고 할까… 정말 징그럽다고 해야 할까. 용사의 검이 마왕의 목에 내려쳐질 때까지 크라우드는 엄청난 양의 말을 내뱉었다.

"흘러내리는 빛은 앞으로 있을 세계의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일몰하는 태양처럼 져버리는 세계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세상이 끝이 난다고 해도 결국 다시 새로운 시작은? 아니 이게 아니라, 세상이 구원된다 하더라고 언젠가 다시 이어져야할 것은 세계 멸망과의 숙명이다. 다시 인류는 심판을 받고 이겨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까므로 이순간을 기억해야 하는것이다는 것은 그러니까, 한마디로 검은 심판이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 뭔가 틀리는 것 같은데, 일단 대사이니까 틀려도 뭐라 하기가 애매한데… 정말 괜찮은건가 이거?

"그러니까 심판은 결구근 내려지는 것이니까 그것은 상징적은 의미는 가지는 것으로 용사의 발걸음이 또다시 세계를 한바자국이어가는세계의멸망은죽음으로 일눼거는 것이믁! 가은 아루와아라아아 내말끝내기전에그검절대내리자마라용사!!!알겠냐!!!" 

크라우드는 달렸다. 계속해서 자기 좋을대로의 말만 나불대면서 달렸다. 용사가 마왕을 숙청하는 한 시대의 끝을 향해 달렸다.

"그러니까, 절대로! 세계의 끝은 새로운 검! 시작과도 마찬가지였다 내리지마! 그렇다면 끝과 시작을 이어버리자. 검 내려놔 이자식아!" 

속사포로 쏟아내던 말처럼 무서운 속도로 달려간 크라우드가 몸을 날리며 용사에게 플라잉 니킥을 먹였다. 크라우드의 무릎이 정확히 용사의 옆구리에 직격했다. 잠깐, 잠깐! 뭐하는 짓이야 네 녀석!

"하아, 하아. 괜찮나?"
"에에……." 

별안간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크라우드가 마왕을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어,어째서?" 

마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크라우드를 올려다보았다.

"글세, 태어나서 맨 처음으로 만져본 여자아이의 가슴에서 따뜻함이 전해왔다고 해야하나."
"……." 

……야 이자식아.

"나 때문인지 알았어."
"응?" 

크라우드는 영문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딱 2가지만 약속해주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순간 크라우드의 표정이 사악하게 바뀌었다. 동시에 크라우드를 마주보고 있는 마왕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이렇게 보니 용사건 인간이건 마왕이고 모두 표정이 재밌다.

"저,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크라우드가 허리를 푹 꺽으며 마왕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 하하. 이거 뭐야. 그딴게 먹힐 리가 없잖아! 애초에 마왕은!

"…네, 네……." 

마왕은 얼굴을 붉히며 크라우드의 손을 잡았다. 도망치지 않았구나 마왕! 

그리고 마왕의 손과 크라우드의 손이 포개졌다. 얼굴을 붉힌 마왕의 수줍은 표정은 타오를 듯한 마왕의 장발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전 세계인이 지켜보던 가운데 인류 역사상 최강의 프로포즈가 성공한 셈이다. 

얼굴을 붉힌 마왕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하고 후세에는 전해졌다. 훗날 교과서에도 실린 역사학자, 순환을 알리는 13번째 해에 태어난 마제 A. 토크와르는 어쩌면 마왕도 인간과 다를바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아 그리고 하나 더…" 

그리고 크라우드는 마지막으로 세계의 평화를 약속받을 것이 틀림없었다. 어쨌든 그도 결국은 세계를 지키고 싶었던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마왕은 붉어진 얼굴로 포개진 손에 힘을 주어 크라우드를 자신의 품으로 힘껏 당겼다.

"얼마든지!" 

그리고 몸을 일으키며 무릎을 치켜세웠다. 마왕의 무릎이 크라우드의 명치에 적중하면서 둔탁하고도 사랑이 넘치는 소리가 전 세계로 울려 퍼졌다. 

잘한다 마왕! 그딴 놈에게는 세계 멸망이 뭔지 알정도로 따끔하게 먹여주라고!






****** 






세계는 지금까지와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용사가 탄생하는 것을 목격했다. 세계는 평화를 되찾았으며, 용사는 포악한 마왕과 함께 마계로 돌아갔다고 전해졌다. 

앞으로 영원히 마왕이 세계로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용사는 마왕함께 영원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라는 일은 아쉽게도 일어나지 않았다.

72회 용마전설 혹은 프로포즈 전설이라고도 불리는 그 일 이후, 용사와 마왕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깽판 아닌 깽판을 치고 다녔기 때문에, 이제는 용사 마왕 커플을 목격한 사람이 목격하지 못한 인물보다 많을 정도였다. 

처음에나 신기해서 쫒아 다녔지, 이제 와서 이 빨갛고 파란 커플은 신기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귀찮을 정도?

"아하하. 내가 누군지 알고 말하는 건가?"
"야, 야! 그만해!"
"이 몸이 바로 용사. 그리고 이 불붙을 정도로 매섭기 그지없는 자가 바로 마왕이다. 그런데 감히 나에게 맥주 값을 물겠다고?! 장난 하냐? 엉?!"
"죄, 죄송합니다! 여기 돈 주고 갈게요. 이건 수리비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머리는 타오를 듯 불타지만 몹시 사람다운 감성을 가진 여성은 산뜻한 푸른 머리로 깽판을 치는 남성을 데리고 서둘러 가게를 나섰다. 

지금에 와서 역사학자들은, 어쩌면 무언가 잘못되었던 건 아닐까 하고 헷갈려 한다.

"얘가 마왕이고…… 쟤가 용사 아니야?" 

하고 말이다.






-----------



하... 늦게 올리다니.. 나란 녀석은 참 ㅠㅠ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


 용사와 마왕이 나오는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근데 용사나 마왕이 메인 주인공인건 왠지 싫은데... 좋은 제목이 떠올랐다!

 "얘는 용사고, 쟤는 마왕이야." <--- 이 제목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제목이 이러니까 메인 주인공은 둘 사이에 누군가여야 할 느낌이야...

 그래서 씀!

  • ?
    Josh。 2013.11.17 23:01
    안녕하세요. 일단 다 읽는데로 리뷰하려고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읽기가 너무 힘드네요.
    전체의 줄거리와 결말을 놓고 시작했다고 해도, 그 중간을 메우는 데 꽤 힘이 들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스토리 얼개 자체의 굴곡은 크지 않은데 반해 작은 사건이 너무 많이 터져서 그에 대한 서술이 너무 많습니다.
    기본 대사량+사회로 처리되버린 서술의 대사량+전지적 시점의 서술 이다 보니 읽는 사람으로서는 서술을 이중으로 읽는 기분이 듭니다.
    거기다 몹시 문어체적인 서술이 대사로 처리되니 어디를 빠르게 읽어야 할지가 조금 어렵습니다. 보통 글을 읽게 되면 아무래도 서술보다 대사에 집중해 읽게 되고, 몰입도가 높아지는 것인데... 서술이 전체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보니 읽는 입장으로서는 몹시 껄끄럽습니다. 아예 서술이라고 인식되면 또 다를텐데, 대사라고 인식하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또 서술은 이상하게 구어체적인 느낌이 강하다 보니 의식적으로 구분하려고 해도 힘든 구석이 있습니다.
    대사/대사/대사/대사 로 처리되었지만, 실은 대사/서술/대사/서술인 경우가 많네요.
    '사회자'의 등장이라는 건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대사/서술/대사/서술의 전형적인 구도를 깬 것도 재미있는 시도에요. 하지만 독자를 위해 조금 다른 기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전체적으로 하나의 스토리라기 보다는 하나의 큰 장면- 사진으로 친다면 세 개 정도를 나열해 놓은 듯한 느낌이 드는 단편입니다.
    그래서 반전이나 스토리의 전개보다는 그 장면 장면에 집중하게 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장면 장면의 분량이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데 비해, 그 장면이 차지하는 무게나 비중은 또 다르게 안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까지는 글만의 인상으로 판단한 것이고,
    장시간에 걸쳐 쓴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 치고는 어쩐지 평소와 다르게 지나치게 평면적인 구성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항상 모든 글을 읽을 때 배울 점을 먼저 보게 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적을 하다가도 칭찬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이 글은 몇 번에 걸쳐 다시 읽어보려 했으나 읽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관계로 칭찬은 생략합니다.

    편집자가 작가의 글을 볼 때, 처음의 몇 장은 아예 건너뛰고 본다고 합니다.
    글을 쓸 때 처음에는 아주 힘들게 도입을 시작하고, 그 글을 쓰는데 익숙해지고 힘이 빠지고, 굉장한 도입부를 써야 겠다는 의식적인 시작이 사실은 독자에게는 형편없이 비춰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항상 도입은 껄끄럽지 않게 시작하려고 애를 쓰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어떤게 껄끄러운 건지, 어떤게 잘 읽히는 건지도 사실 작가의 입장이 되면 판단이 잘 안됩니다.
    이 글의 도입이 중후반부에 비해 지나치게 읽는 맛이 좋지 않은 것도 그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잔뜩 잔소리만 해놓고 가네요.
    선생질은 나쁩니다.
    나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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