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2013.09.30 21:51

<단편 쓰기 대회!> 플라네타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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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은 울적하다. 

삑. 삑. 하고 띠리링하고 열리는 현관 도어 락의, 복도로 울려 퍼지는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짧은 순간의 울음소리는, 단지 몇 개의 높낮이의 구성일 뿐이지만 그것은 무척이나 풍부하다. 

현관이 열리고 발걸음을 옮긴다.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서 신발을 벗어둔채로 한걸음 올라간다. 새삼스레 또 다시 한차례 높아진 높낮이를 느끼며 손을 더듬으면 딸칵하고 스위치는 지렛대 운동을 하고, 기계장치의 기믹이 맞물리며 높은 쪽과 낮은 쪽이 뒤바뀌며 단단하게 고정된다. 

아무도 없던 공간에 흘러넘치는 빛이 넘실거리며, 쓸쓸했던 공간에 자신의 자취를 순식간에 뿌려 된다. 식견이 짧은 나에게는 단순하게는 흰색,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면 힘찬 하얀 빛의 하얀 형광 빛으로 밖에 말할 수 없다. 

누군가가 나간 지 얼마 안 된 것을 표현하는 걸까? 흰색의 빛을 받아 청록의 향을 은은하게 피어올리고 있는 화분들이 있다. 길쭉하고 둥그렇고 울룩불룩한 제각각의 녀석들에 제각각의 위치에 제각각의 크기로, 자기 편할 대로 맺혀있는 이슬에는 흰색 빛이 투영되어 자신만의 색과 하얀 형광을 자기 편할 대로 비춰내고 있다. 

다만 제멋대로인 그 부분에서 나는 무언가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누군가의 흔적, 살아있다는 증거, 환상이 아닌 진실이기에 뭔가 울컥하는 온기를 느끼며, 이곳은 나의 방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세삼 감탄하며 이내 시선을 돌린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작은 문지방으로 발끝이 넘어가는 순간, 발끝을 통과해서 복숭아뼈를 타고 종아리를 넘어설 무렵, 지금 경계선을 넘어설 무렵 확실하게 생각하게 된다. 지금 이곳이 경계선이라는 것을, 넘어가기 싫은 경계선이라 할지라도 이미 발을 옮겨버렸다는 것을 눈치 채버린다. 

경계선에, 설령 환상이라고 할지라도 찬란하게 흘러넘치는 빛을 넘어선 순간. 흘러내리던 내 두 눈은 깊은 정적을 품어버린다. 단순하게 눈앞의 사실만을 투영하고 정보로써 분석하고 처리하고 인식한다. 

희색의 전신거울, 온통 검을 뿐인 이불이 덮어삼켜버린 침대, 얼룩지고 썩어문드러진 제멋대로의 크기인 이빨을 가진 책장, 그리고 그 사이에는 네가 있다. 

서둘러서 움직인다. 두 팔을 어설프게 휘저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그 모습은 엉망이다. 자신이 완전하게 경계선을 넘어버렸다는 사실에 발이 휘청했지만, 고개는 돌리지 않고, 방 한 가운데 있는 플라네타륨을 바라보았다. 실수로라도 고개를 돌린다면, 비록 환상이라 할지라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할 것만 같았다. 

유성우는 너무나도 빨랐기에, 그것은 우리들을 비웃는 것만 같다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방 한 가운데에 놓여 있는 너에게 나의 두 손을 올렸다. 내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그것은 자기 멋대로 방을 하나의 소우주로 바꾸었다. 아마도 소우주의 중심에는 얼마 안 되는 모든 희망이 뭉쳐서, 천천히 자신의 존재를 흩뿌리며, 남아있는 메여있지 않는 구멍을 통해서 아득한 기억의 저편을 천천히 영사한다. 

그건 무엇의 기억이었을까, 뒷걸음질 한 채로 바닥에 쭈구려앉아서 멍하니 너를 쳐다보았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련한 기억으로 인해서 몸의 어딘가가 조금 삐걱거림을 느낀다. 

시선은 아무것도 보려하지 않은 채, 단지 눈 앞에 쏟아지는 빛을 잡아내려고 노력한다. 분명 하얀빛은 이 곳에 있지만, 방 안을 가득 채웠지만, 눈으로는 쫒을 수가 없다. 

그러니 나는 손을 뻗어간다. 봐, 이렇게 흘러넘치는 빛을 향해 손을 뻗을 거야. 점차, 점차 계속해서 손을 뻗어간다. 

다시는 켜지 않을 거야. 

이제 다시는 키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네가 그랬듯이 나는 다시 기약 없고 제멋대로인 여행을 떠날 거야. 

저건 하얀빛의 하얀 형광일 뿐이야. 느껴지는 것은 아련하면서도 풀내음 가득한 어둑한 벌판에서의 밤하늘의 공허한 냄새일 뿐이야. 하늘색의 전신거울에 비춰지고 있는 것은,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일 테니까. 은은하게 머리칼을 간질이는 달콤한 핑크빛 푸딩 같은 침대는 앞으로도 날 감싸줄 테니까. 

바램은, 마음은, 봐 바. 이게 나의 흔들림 없는 답일 뿐이니까. 

슬픔의 밤을 계속해서 우리들은 넘어가니까. 유성우는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그것은 마치 우리들 같다고 너는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빛을 막고 통과시키는 작은 벽은, 그리고 이 안을 가득 채워 넣는 빛은, 나에게는 흔들림 없는 작은 하나의 세상인거니까. 

너의 플라네타륨에 나는 몇 번이고 말했어. 고마워. 고마워. 설사 단순한 빛이라 할지라도 고마워. 하지만 슬픔의 밤을 은은하게 내 방을 가득 피우더라도 고마워. 

그러니까 다시는 너의 플라네타륨을 켜지 않을 거야. 그리고 여행을 떠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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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이벤트, 혼자 북치기, 혼자 얼쑤!


 대망의 1번 타자. 이벤트 주최자이지만, 아무래도 혼자 놀거 같은 손님의 첫타석, 과연 그 결과는!


 맨날 시답잖은것만 쓰다가,

 감성잖고 시답잖은 것을 쓴 결과는... 네... 뭐 그냥 멍멍소리입니다

  • ?
    Josh。 2013.10.10 11:32

    안녕하세요. 글은 잘 읽었습니다.
    '뿌려 된다.','메여있지','키지 않을'를 빼고는 크게 오타도 눈에 띄지 않고, 무엇보다 문장의 느낌이 글 전체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좋습니다.
    조금 과하게 비유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작가 무라카미 류의 글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수성이 잘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시제도 문장과 훌륭하게 어울리는 듯 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이긴 하지만.. 문장이 아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스토리에 무게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묘사에 치중하기 위해 일부러 가벼운 설정을 택한 듯 보입니다.
    가능하다면 이 분위기를 살려 조금 더 현실과 맞닿아 있는 소재를 조금 더 넣으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느낌이 나는 훌륭하고 대중성 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넘어가자면 최근에는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글'이나 '감수성을 담은 글'을 쓰려는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제게 좋은 자극이 된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 많은 발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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