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0 00:26

헌트 엔드 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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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pilogue. Hunt End
종장. 사냥의 끝
 
 
 
 건물이 불타오른다.
산산히 부서진 채.
무너진 건물의 잔해 사이로 두 인영이 불꽃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만하지."
 
 푸른 단창을 돌리던 노인이 부서진 전봇대에 기대며 입을 열었다.
대답 없는 사내는 콘크리트 바닥에 도를 박아 넣고 가쁜 숨을 몰아쉴 때마다 피를 흘려댔다.
 
 "끈질기구먼. 자네같이 질긴 헌터는 처음이야."
 
 노인의 안쓰러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사내는 움직이지 않았다.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여전히 거친 숨을 토해낼 뿐.
 
 "쯧…."
 
 노인이 혀를 찼고,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흙먼지와 굳은 피로 헝클어진 검은 머리칼 사이로 사내의 붉은 안광이 보였다.
 
 사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노인은 알 수 없었다. 벌써 한 시간을 넘게 전투를 치르고 있건만, 사내는 그저 휘두르고 막기를 반복할 뿐. 그 어떤 말도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섬뜩하리만큼 붉은 눈동자. 사내의 눈동자는 우수에 차지도, 복수를 꿈꾸는 분노도 들어있지 않았다. 마치 죽은 생선 눈처럼 공허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유난히 눈이 참 붉군.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이름을 묻지 않았군. 자네가 B급에서 유명하다는 광인? 무인? 분명 자네 이름이… 아, 미안하네. 내가 참 기억력이 안 좋아서 말이야.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쉽게 잊거든."
 
 노인의 조롱을 흘려 들으며 사내는 묵묵히 몸을 일으켰다.
 
 "하아…."
 
 뜨거운 숨만이 그가 낼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노인의 미간이 좁아졌다.
 
 "결국 내려놓지 않는구만. 그만하면 됐네. 포기하게. 이 지역에서는 그 어떤 노아도 헌터도 날 이길 순 없네."
 
 노아, 괴물이 나타난 세상에서 저항할 길을 얻은 사람들. 그리고 괴물과 싸우는 이들. 헌터.
 
 휘청거리는 사내도, 그를 설득하는 노인도 노아이며 헌터다. 같은 헌터라 할지라도 아득한 차이가 있지만.
 
 진심으로 안타까워 보이는 표정을 지은 노인이 창을 콘크리트에 꽂고 발걸음을 멈췄다.
 
 "만약 자네가 능력이 좋았다면, 좋은 장비을 얻었다면 분명 우리와 함께 했을게야. 운도 없지. 끌끌…."
 
 바라지도 않아.
사내는 그리 생각하며 도를 뽑아들었다. 예기라곤 남아 있지 않은, 날이 상하고 끝이 부러진 볼품 없는 환도.
 
 사내의 모습에 노인은 다시금 창을 뽑아 들었다.
둘은 다시금 서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몸. 바닥을 박차며 내달리는 사내의 무게 중심은 이리 저리 움직여 넘어질 것만 같았다.
 
 얼굴에 흘르는 피가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고, 난잡한 시야 사이로 내지른 공격은 대부분 허공을 가르거나 노인의 창날에 힘없이 막혔다.
 
 "그렇게 추할 만큼 버티는 이유가 뭣때문인가. 가족? 동료? 연인?"
 
 창을 밀어내며 한발짝 물러난 사내의 발이 흡사 뿌리를 내린 듯 굳었다.
 
 "아무래도 이 중 하나가 맞나보군. 죽이기 전에 하나만 말해주겠네. 이미 자네와 관련된 사람은 모두 죽었을게야. 아니 진즉 죽었네."
 
 확신에 찬 노인의 말에 청년의 몸이 떨렸다. 세게 물은 입술의 살점과 피가 입 속으로 들어와 씁쓸하면서도 상처가 쓰라렸다.
 
 힘이 들어간 오른손에서 흘러나온 피가 도신을 타고 갈라진 콘크리트 바닥을 적셨다.
 
 "아무래도 녀석들은 우리 외에 헌터와 관련된 것들이 살아있는 게 싫던 모양이더구만. 자네와 내가 싸우고 있는 사이에 이곳 관악구 일대의 모든 헌터와 노아가 죽었을걸세. 그게 내려온 지시 사항이었으니까. 안타깝게."
 
 청년은 노인의 말을 다 듣지 않고 다시 한 번 몸을 날렸다.
 
 깊게 찔러 드는 공격에 노인은 한 발을 뒤로 빼 몸을 비틀며 도를 피했고 사내의 몸이 파고 드는 동시에 창대로 그의 복부를 강하게 후려쳤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는 날아가 무너진 건물벽에 처박혔다.
 
 어지러운 시야 속에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노인이 보였다. 척 봐도 날카로운 창날은 담담하게 자신을 찌르리라. 
 
 죽는 것일까.
청년은 짧은 시간에 무수히 많은 생각을 했다.
 
 "뭐, 수고했네. 다음 생에는 잘해보시게."
 
 끝이다.
자신의 피로 얼룩진 창이 목을 향해 다가왔다.
너덜너덜해진 두 팔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한쪽 다리가 부러져 기괴하게 꺽여 있었다.
 
 정말 이대로 끝인가.
창끝이 목에 닿자 한 줄기 피가 흘렀다.
 
 "아픈 건 한순간일세. 젊은이."
 
 사내의 세계는. 언제나 투쟁의 연속이었다.
전장이 달랐을 뿐. 평범한 회사원이 괴이라 불리는 괴물들을 마주했고, 특별한 에너지를 몸으로 운용할 수 있는 그릇인 노아가 되고, 살기 위해 괴이를 사냥하는 헌터가 되었다.
 
 "…."
 
 사내는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유독 추운 이번 겨울. 묵색 하늘에 재와 같은 눈이 내렸고, 하얀 입김이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괴이를 사냥하는 삶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괴이는 남아 있지 않으니까.
 
 목에 화끈한 통증과 함께 울컥하고 올라온 피를 토했다. 의식이 희미해짐을 느꼈고 저절로 눈이 감겼다. 그것이 사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사냥 끝. 복귀하겠네."
 
 허리춤에서 꺼낸 작은 무전기에 속삭이는 노인의 목소리만이 폐허를 맴돌았다.
 
 나의 세계는, 헌터들에 의해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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