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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

잠들어 있는 진율을 백설이 깨운다.
진율은 크게 하품을 하며 정신을 차린다. 목을 돌리고 팔을 뻗으며 근육을 풀어준다.

"뒷좌석의 놈은?"

"아직 잠들어 있어요."

차는 본청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진율은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
마취제에 취해있는 녀석을 들쳐멘다.

"차는 지하에 주차하고 5층 취조실로 와."

백설은 고개를 끄덕인 후 액셀을 밟는다. 지하로 들어가는 차를 바라보며 진율은 본청으로 들어간다.

4층 취조실로 들어간 진율은 들쳐멘 녀석을 철제 의자에 앉혔다.
취조실은 전면이 검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빛이라고는 천장에서 약하게 빛을 비추는 백열전구.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카메라와 마이크가 달려 있지만, 모르는 사람은 발견하기 쉽지 않다.
진율은 의자에 뻗어있는 벰파이어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둘 사이에는 철제 책상만이 놓여 있었다.
진율이 무의미하게 핸드폰을 바라보는 사이 쓰러졌던 벰파이어가 정신을 차린 듯 신음을 흘렸다.

책상에 박고 있던 머리를 들고 눈을 깜빡인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 확인한다. 자신의 앞에 있는 진율을 보고 질문한다.

"여기는?"

진율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남자를 바라본다.

"기억 안 나?"

진율의 질문에 남자는 기억을 떠올리려 한다. 머리가 아픈지 머리를 부여잡는다.
피를 마신 벰파이어에게 사용하는 마취제는 효과가 좋은 대신 기억을 날려버리는 부작용이 있다.
어차피 변해있던 당시의 기억이라 떠올려도 좋을 건 없다.

"잘 모르겠습니다."

진율이 입을 열려는 때 취조실 문 너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한백설입니다."

"들어와."

취조실로 들어온 백설은 서류철을 하나 들고 있었다.
진율은 백설이 들고 온 서류철을 받아들고 살펴보았다. 지금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신상명세서다.

"이름 박한구. 나이 27세. 군대는 다녀왔네요? R&K 출판사 직원."

박한구는 자신의 신상을 말하자 바짝 긴장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일이 아닌 것을 느낀 것이다.

"박한구 씨는 오늘 오후 7시경에 퇴근 후 푸차에 들러서 술을 마셨습니다. 맞습니까?"

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 이곳이 어딘지, 자신이 이곳에 왜 있는지 깨달았다.

"박한구 씨는 술을 마시던 중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성분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한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백설은 진율의 옆에 서서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박한구 씨는 그 남자와 주먹다짐을 하던 중 그 남자의 목을 물어 피를 마셨습니다. 그다음은 말 안 해도 알겠죠?"

한구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번 피에 중독된 벰파이어는 다시 피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해독제는 지금 당장 효과를 발휘하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금단증상이 나타날 것이다.

"박한구 씨는 폭행죄, 흡혈죄로 인해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의의 있으십니까?"

박한구는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께 전화할 수 있을까요?"

그저 진율에게 부탁할 뿐이다. 진율은 핸드폰을 꺼내 한구에게 건넨다.
한구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붙잡고 진율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
진율은 통화가 끝나기까지 자리에서 기다린다. 통화가 끝난 후 진율은 핸드폰을 받아들고 취조실을 나선다.
백설은 한구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진율을 진율의 뒤를 따라간다.
취조실 밖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두 사람이 서 있다. 그들은 진율과 백설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취조실로 들어간다.
취조 담당자들. 이제 본격적인 취조가 시작될 것이다. 의미도 없지만.
금세 한구를 붙잡고 지하의 구속실에 가두어 놓을 것이다. 재판이 시작되길 기다리면서.

진율은 사무실로 올라간다. 사건을 처리했으니 팀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혈액 사용 건도 마찬가지. 팀장실 앞에선 진율은 심호흡을 한다.
팀장은 언제 봐도 껄끄럽다. 역시나 팀장은 아무 말도 없이 진율의 보고를 받는다.
진율은 보고를 마치고 자신의 책상에 주저앉는다.
하루에 두 번씩 유적성의 얼굴을 본 것이 불만인 듯하다.
백설은 이 불편한 상황에 안절부절못하며 자신의 의자에 앉아있을 뿐이다.

"야. 퇴근하자."

한참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진율이 입을 열었다.

"퇴근이요?"

"하자. 퇴근. 이제 여기 못 있겠다."

진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선다. 백설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눈치만 보다가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Over the horizon> 삼성의 기본적인 벨 소리가 단잠을 깨운다.
머리맡의 핸드폰을 쥐고 전화를 건 상대를 확인한다.
등록되지 않은 번호다. 누가 아침부터 전화한 거지? 일단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한백설!!!! 너 어디냐!!!"

천지를 진동할 고함이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온다.
정진율 기사님의 목소리. 포근하게만 느껴지던 침대가 얼음장보다 차갑게 느껴졌다.
탁자의 시계가 가리키는 숫자는 9시. 핏빛 십자 기사단의 출근 일반적인 출근 시간. 지각이다.

"어디냐고!!!"

"히익! 죄송합니다! 아직 집입니다!"

폰 너머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20분 준다. 준비해서 나와."

전화가 끊겼다. 망했다. 이 시간에 씻지 못한다.
욕실은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옷만 잽싸게 갈아입는다.
젖은 머리를 말리며 시간을 확인한다. 9시 18분. 안 늦었다.
현관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1층. 기다리다간 늦는다.
계단을 통해 내려간다. 감았던 머리가 소용이 없어질 만큼 땀이 흐른다.
건물 밖에서는 진율 기사님이 차에 기댄 채 기다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허리를 숙여 사과한다.
신입이 지각이라니. 내가 필요 없으시진 않을까?
급하게 준비하느라 머릿속에 떠오르지 못했던 상념들이 퍼져나간다.
싫다. 버려지는 건. 필요 없어지는 건. 너무나도 두렵다.

"차에나 타라."

기사님은 혀를 한번 차더니 운전석에 앉았다.
나는 재빨리 조수석에 앉았고. 기사님의 눈치만 살핀다.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내가 필요 없진 않을까?
기사님의 입에 그런 말들이 담겨질까봐 말도 건네지 못한다.
창밖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을 떠올리길 거부한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안 좋은 생각을 하면 그 생각에 먹힌다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좋은 생각을 떠올리려 애쓴다.
소용이 없다. 어둠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 같다.

"어? 강원도?"

방금 지나간 도로표지판에 강원도라고 적혀있었다.
강원도로 가는 건가? 기사님을 바라본다.

"강원도 가는 거 맞아."

간단한 대답만 해주시고 다시 운전에 집중하신다.
강원도에 가본 적은 없다. 나쁜 일은 아니겠지?





고속도로를 달려 핏빛 십자 기사단의 강원 지부에 도착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출근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백설을 기다리던 중 홍보팀에서 연락이 왔다.
강원도로 가란다. 제기랄. 처리했던 사건 뒤처리로 가는 건 이해하겠는데, 인터뷰 요청까지 들어왔단다.
귀찮아 죽겠다. 백설을 기다렸지만 9시가 될 때까지 오질 않았다.
얘는 왜 안 오냐. 전화했더니 아직 집이란다.
어차피 강원도에 가야 할 거니까 가는 길에 태우자.

그렇게 해서 강원 지부에 도착하고 홍보팀으로 올라갔다.
강원 지부의 홍보팀장이 일을 마칠 때까지 사무실에 앉아서 기다린다.
백설은 내 옆에 얌전히 앉아있다. 궁금한 게 한가득한 것 같지만 질문하지 않는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팀장실로 들어갔다.
강원 지부의 홍보팀장은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아저씨였다.
이름은 전청원. 인간이다.
홍보팀장은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안 받을 수 없으니 밝은 표정으로 악수한다.

"고맙네. 정진율 기사. 덕분에 한 시름 덜었어."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이틀 전에 처형했던 수도 지부의 사후처리팀원.
그 사람은 강원도로 도망쳐 다섯 명을 살해했다.
피에 중독된 벰파이어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강원 지부는 그를 제때 잡지 못해 수도 지부에 지원을 요청했고, 내가 파견되어 그를 처형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마였기에 신문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거다.
언론 매체에 출현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언론에 내 이름이 나오면 이런저런 곳에서 연락이 온다.
특히 순혈주의자들이 진짜 많이 연락한다. 너 따위 혼혈때문에 우리들이 피해를 보는거다. 그뒤에 욕도 많이 달려있었다.
뭐 그렇게 전화한 녀석은 지금 감옥에 있지만.

"인터뷰는 오후에 한다더군. 그전에 나와 점심 식사를 하는게 어떤가?"

지부는 다르지만 높은 사람과 친해져서 나쁠 건 없지. 백설과 다른 홍보팀원들과 간단하게 한 끼 식사를 했다.
좀 좋은 데 갈 줄 알았는데, 평범하게 백반집이었다.

점심을 얻어먹고 1층의 응접실에서 대기했다.
소파에 앉아 잡지의 가십 기사나 읽으며 인터뷰를 기다린다.
백설도 옆에 앉아서 허리를 펴고 꼿꼿이 앉아있다. 좀 편하게 앉아도 될 텐데.
백설이 머뭇거리며 입을 연다.

"그... 오늘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면서 사과한다. 아직도 그 일 때문에 저러고 있는 거야?

"됐어. 인마. 사람이 늦을 수도 있는 거지."

백설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주저한다. 이럴 때 계속 얘기하는 건 쓰잘데기 없지.
그냥 스스로 생각하라고 놔두고 소파에 늘어지게 기대어 쉰다.
요즘 일이 너무 많다. 너무 피곤해. 원래는 한 달 동안 늘어지게 쉬려고 했는데.

응접실의 나무문이 열리고 사진기를 든 여자와 수첩을 든 남자가 들어왔다. 기자들이네.
일어서서 그들을 맞이한다.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마친 진율은 백설을 데리고 그대로 서울로 출발했다.
인터뷰라고는 하지만 지역신문에 조그맣게 나올 것이다.
진율이 이런 일을 좋아할 리는 없지만, 명령을 거부할 정도의 배짱은 없다.
백설은 아직도 고개를 들지 못한다. 진율은 침묵을 유지한 채로 운전에만 집중한다.

장시간의 운전 끝에 왜건은 수도 지부의 주차장에 주차되었다.
진율과 백설은 보고를 하기 위해 사무실로 올라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백설은 진율을 바라보며 머뭇거린다. 진율은 백설의 행동을 눈치채고 한숨부터 쉰다.

"백설."

백설은 진율이 먼저 자신을 부르자 놀라 대답한다.

"네!"

"너 오늘 지각할 거로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거냐?"

진율의 말에 백설은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한다. 진율은 다시 한숨을 내쉰다.

"사람이 완벽하진 못해. 가끔 실수도 하고 그런 거지. 심각한 실수도 아니니까 너무 마음에 두지 마라. 다음부터 일찍 일어나."

엘리베이터가 14층에 도착했다. 먼저 내린 진율은 뒤따르는 백설을 제지한다.

"넌 먼저 퇴근해라. 내일은 일찍 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백설은 그 안에 남았다. 백설은 1층 버튼을 누른다. 백설은 휴대폰의 알람을 세개 더 추가한다.

백설을 보낸 진율은 팀장실 문 앞에서 심호흡한다. 이제 보고만 하면 집에 간다. 오직 그 생각만 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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