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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법으로 될까?"
"일단 해보는 거지."
한유리가 건네준 황금의 펜은 김유빈의 손에 꼭 들려있다. 이야기의 시작 자체를 방해한 악마 덕분에 사서들은 꽤 고생하게 생겼다. 잠시 고민하던 한유리가 일단 마법 책을 가져와 보라고 하여 김유빈이 펜을 들고 있다.
김유빈은 눈을 감고 자신에게 집중한다. 성냥팔이 소녀를 상대할 때 느꼈던 느낌을 받기 위해.
"잠깐."
집중이 깨져나간다. 김유빈은 눈을 뜨고 한유리를 바라본다. 한유리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너 그렇게 느린 방식으로 이야기를 불러올 거야? 더 빨리해봐."
김유빈은 그저 머리를 긁적인다.
"어떻게?"
"무의식적인 행동을 의식적으로 옮겨."
"무의식이 더 빠른 거 아니야?"
"넌 수학 문제를 무의식적으로 푸냐?"
답답한지 가슴을 두드린다. 김유빈은 그래도 머리를 긁적인다.
"그 펜으로 글을 써봐."
"글?"
"이야기를 써내려가. 네가 서 있는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를 덮어 써."
한유리는 쉽게 말하지만, 김유빈은 이해를 못 하고 있다. 그래도 모르겠다고 하면 한유리가 화를 낼 것을 알고 있기에 일단 시도라도 해본다.
펜이 김유빈의 손에서 춤춘다. 손글씨를 쓰는 것은 오랜만이지만,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해본다. 적당한 바위를 찾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무엇을 써야 할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김유빈은 그저 손이 흐르는 데로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자신의 손에 있을 마법서를 생각하며 서술하고, 묘사한다. 글이 끝나고, 이야기가 끝나자 김유빈의 손에는 검은 책이 나타난다. 자신의 왼손을 빤히 바라보며 상황을 이해하려 애쓴다.
"저번보다는 빨라졌네. 그래도 더 빠르게 하려고 노력해."
한유리는 손을 뻗는다. 펜을 돌려 달라는 손짓. 김유빈은 펜을 건네준다. 그리고 다시 손에 있는 검은 책, 위대한 마법서를 바라본다. 왜 자신의 손에 이게 있는지,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본다.
"정신 차리고 이리와."
심각한 고민은 한유리가 깨트린다. 김유빈은 책에서 눈을 떼고 한유리를 따라간다. 한유리는 악마를 발견한 곳에 서서 김유빈이 오기를 기다린다. 김유빈은 늑대들의 사체를 보고 얼굴을 찌푸린다.
어떻게 할지는 미리 정해 놨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김유빈은 책을 편다. 읽을 수 없는 글자들. 이해할 수 있는 글자들. 김유빈은 글자를 읽는다. 아니다. 알지도 못하는 글을 읽을 수는 없는 법. 김유빈은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다.
입을 나온 언어는 김유빈이 만들어낸 규칙에 따라 마법이 된다. 오른손에 검은 연기가 생성된다. 음습한 기운을 느낀 한유리가 몸을 살짝 떤다. 김유빈은 늑대의 사체를 바라보며 오른손을 내리친다. 검은 연기는 식어버린 늑대의 입으로 들어간다. 마법을 사용하느라 지친 김유빈이 털썩 주저앉는다.
"성공한 거야?"
"아마도."
김유빈과 한유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늑대들의 몸이 움직인다. 하나씩 하나씩 몸을 일으킨다. 아직 못 일어난 동료들을 도와준다. 모두 일어난 늑대의 수는 열다섯. 하나의 무리가 통째로 악마에게 살해당했다. 모든 늑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우두머리 늑대가 땅에 앉아 있는 김유빈에게 몸을 숙인다.
"장난 아니네."
한유리가 제안한 작전은 김유빈의 마법을 이용하는 것. 그중에서도 죽은 자를 되살리는 네크로멘서의 마법. 김유빈은 자신이 벌인 일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김유빈은 늑대들에게 간단한 명령을 내려본다. 김유빈의 명령과 의지에 따라 늑대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달려가고, 물어뜯고, 되돌아오고. 이 정도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데 충분하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
사서들은 늑대 떼를 이끌고 숲의 가장자리로 간다. 저 멀리서 흰 양 떼와 함께 돌아다니는 양치기 소년이 보인다. 밝게 빛나는 해가 그들을 비추고 있다. 김유빈은 해가 움직이지 않은 것을 본다.
"해가 움직이지 않는데?"
"너 양치기 소년 이야기에서 밤이 온다는 말 들은 적 있어?"
김유빈은 고개를 젓는다.
"이야기에서 밤이 온다는 서술이 없기에, 이곳에는 밤이 찾아오지 않아."
한유리의 말에 김유빈은 고개를 끄덕인다.
"얼른 시작이나 해!"
쓰잘머리 없는 질문에 한유리가 화를 낸다. 김유빈은 우두머리 늑대에게 명령한다. 늑대는 그 뜻에 따라 숲을 나와 양치기 소년에게 달려든다. 늑대들의 울부짖음은 소년의 주위를 끌기 충분하다. 소년은 쥐고 있는 막대기를 휘두르며 양들을 한쪽으로 몬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친다.
"늑대가 나타났다!"
엄청난 고함. 한유리와 김유빈은 귀를 막는다. 그 소년의 외침은 퍼지고 퍼져 마을까지 도달한다.
"돌아와!"
김유빈의 명령에 늑대들은 양 떼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멈추고 다시 숲으로 돌아온다. 김유빈과 한유리도 눈을 마주치고 숲 깊숙한 곳으로 발을 옮긴다.
마을 사람들이 도끼, 괭이, 낫 같은 무기로 쓸법한 도구를 들고 헐레벌떡 달려온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는 늑대의 모습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소년은 늑대가 숲으로 도망갔다고 하지만, 늑대의 흉포함을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소년의 거짓말이라고 일축한다.
마을 사람들은 소년을 한껏 나무라고 마을로 돌아간다. 소년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마을 사람들을 원망한다.
사서들의 계획은 간단하다. 소년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소년을 거짓말쟁이로 만들면 된다. 늑대로 습격하고, 마을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도망치면 소년은 금세 거짓말쟁이가 된다. 김유빈은 이 작전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한유리의 강력한 주장과 다른 대책이 없기에 이 작전이 수립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간 것을 확인한 김유빈은 다시 늑대를 이용해 양 떼를 공격한다. 소년은 다시 소리 지른다. 늑대들은 숲으로 도망간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온다. 늑대가 없는 것을 보고 소년을 호되게 혼낸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간다. 다시 늑대가 양 떼를 공격한다.
반복. 반복. 반복. 김유빈은 다시는 마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 때까지 늑대로 양 떼를 공격한다. 일곱 번째 습격 때 찾아오는 마을 사람들의 수가 줄었다. 열한 번째, 마을 사람들이 늦게 도착한다. 열다섯 번째, 단 세 명만이 양 떼를 확인하러 온다. 열일곱 번째, 아무도 오지 않는다. 만약을 위해 두 번 더 습격하였지만, 역시 반응은 없다. 소년은 완벽한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이제 된 거야?"
사람 하나를 사회적으로 매장한 김유빈의 눈동자는 퀭하니 볼품이 없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한 듯하다.
"이야기를 마무리해야지."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한유리의 말에 김유빈은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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