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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총은 그걸로 될 것 같은데?"

대기실에서 상황을 보던 자성이 말을 한다.
진율도 그에 동의하여 백설과 함께 사격실을 나왔다.
자성은 사격실을 나온 백설에게 들고 있던 권총을 건네준다.

"그것도 쏘고 와봐."

백설은 사격실로 들어가 표적들을 쏘고 나왔다.

"사용한 소감은?"

"반동을 조금 더 줄인 모델은 없을까요?"

자성은 백설이 건넨 권총을 다른 모델로 바꿔주었다.
백설은 사격실로 들어가 사격을 하고 나와서 사용 소감을 말한다.
백설의 피드백에 따라 몇 번씩 바꿔가면서 사격.
열두 번의 총기 교체가 끝난 후에야 사용할 권총이 확정되었다.

"이제 끝난 건가요?"

사격을 하다 지쳐버린 백설이 쉬고 싶다는 의미를 내포한 말을 한다.
진율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아직 멀었어."

백설의 표정은 경직되었다.

"밥은 먹여줄게."




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진율은 백설에게 각종 유탄과 근접전을 위한 무기들, 잡다한 장비들을 사용하게 하였다.
테이저건. 후추 스프레이. 포승줄. 수갑. 등등.
다섯 시간의 장비 선택이 끝난 후 백설은 진이 모두 빠져버렸다.
마치 여자친구의 쇼핑에 끌려온 남자 같다. 반대로 진율과 자성은 매우 만족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 이다음에는."

"또 있나요...."

백설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이제 옷을 맞춰야지."

옷을 맞추는 데 한 시간 걸렸다.




"옷은 사흘 후에 사물함에 놓아둘게."

의상 담당자의 배웅을 받으며 자성과 진율이 혼이 나가버린 백설을 데리고 의상실을 벗어났다. 

"여자들은 쇼핑 같은 거 좋아하지 않냐?"

"다들 그렇지는 않아요."

백설은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자성과 헤어진 진율과 백설은 14층의 사무실로 되돌아간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진율은 팀장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창가 자리의 책상에 앉는다.
백설은 진율이 꺼내어준 의자에 앉았다.

"그 자리가 네가 3년간 쓸 자리야."

백설은 새삼스레 책상을 손으로 문질러 본다.
책상 위에는 사무용 컴퓨터와 서류를 보관해 놓을 수 있는 서류철들이 있다.
책상 뒤에는 길쭉한 캐비닛이 놓여있었다.
원래라면 각종 장비로 가득 차 있어야 하지만 신입인 백설의 캐비닛은 비어있다. 

진율의 책상은 이것저것 가득 차 있다.
동료들과 찍은 사진이 걸린 액자. 표창장. 상장들. 여태까지 처리해온 사건들을 정리한 서류철도 가득 있었다.
백설은 진율의 책상을 보며 자신은 언제 저렇게 될지 생각해 보았다.

"장비는 옷이랑 같이 올 거야.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삐리리. 사무실을 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진율의 가슴팍에서 소리가 퍼져나갔다.
진율은 짜증을 내며 입고 있는 코트 안에 손을 집어넣고 통신기를 꺼낸다.
귀에 쏙 꽃을 수 있는 콤팩트한 사이즈.
서울 어디서나, 나아가서 대한민국에 통신이 가능한 모든 곳에서 잘 터지는 통신기.
한번 충전할 경우 300시간은 가는 배터리 용량.
물과 웬만한 충격도 무시하는 내구성.
이 통신기 덕분에 기사들에게 참된 휴식은 없다.
진율은 손에든 통신기를 보고 한숨을 내쉬고 귀에 꽂는다.

"기사 정진율 호출받았습니다."

통신기는 오직 중앙 통신 센터와만 통신할 수 있다.
다른 기사들과 연락 하기 위해서는 중앙을 거쳐야만 한다.

"정진율 기사님. 13-9 사건입니다."

13-9 사건. 벰파이어에 의한 인간 폭행. 벰파이어의 근력은 인간의 뼈는 손쉽게 부러트린다.
심각한 경우에는 사망자가 나오기도 한다.

"현재 용의자가 도주 중이랍니다. 속히 출동하여 주세요."

자기 할 말만 하고 통신이 끊어졌다. 진율은 머리를 긁적인다.

"밥은 나중에 먹자."

기본적인 장비들은 차에 실려 있다. 따로 장비를 챙기지 않고, 진율과 백설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때마침 수리된 왜건을 타고 시동을 넣는다.
백설은 조수석에서 안전벨트를 멘다.

"너 안전벨트 메지 마라."

"네?"

일단 백설은 안전벨트를 푼다.

"차에서 급하게 내릴 때 방해된다."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용의자를 발견할 경우 바로 차에서 내리기 위해 안전벨트를 메지 않는 것이다.
불법이지만 기사는 미묘하게 초법적인 위치에 서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위치로 차를 몰고 간다. 차가 막혔지만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작은 포차 주변에는 경찰들이 폴리스 라인을 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진율은 차를 길가에 주차한 후 차에서 내린다. 백설은 이런 곳에 차를 주차해도 괜찮은 걸까 라는 생각을 가지며 진율을 따라간다.

진율을 알아본 경찰들이 폴리스라인을 제쳤다.
진율이 안으로 들어가고, 백설이 들어가려 할 때 경찰들이 제지했다.

"내 종자야. 들여보내 줘."

진율의 말에 경찰은 백설을 들여보내 주었다.




포차 주변은 피가 상당히 흩뿌려져 있었다. 피해자 상태가 걱정되는 수준이다.
백설은 피 냄새를 맡고 인상을 찡그린다. 계속 맡다 보면 금방 익숙해지겠지만.

"피해자는 병원으로 후송했습니다."

폴리스 라인을 지키던 경찰관 한 명이 설명을 시작한다.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던 두 명의 남성이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단순한 폭행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벰파이어가 충동을 못 참고 상대 남자의 목을 물었다는 것이다.

"그거 큰일이네."

벰파이어에게 인간의 피는 마약과 같은 작용을 한다.
환각이 보이고, 강한 고양감을 느끼게 한다. 계속 피를 갈구하게 되며, 금단 증상도 발생한다.
심지어 각성효과가 있어서 신체 능력도 향상된다.
인간의 수준에서 제압하지 못하는 괴물이 인간의 피를 탐하며 돌아다니는 것이다.

"다행인 건 용의자가 피를 흘렸다는 것입니다."

"거참 불행 중 다행이네."

피를 흘렸으니 추적할 수 있겠지.
안주머니의 통신기를 꺼낸다. 귀에 꽂고, 버튼을 누른다.
통신 연결음으로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흘러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어울린다.
연결되었음을 알리는 짤각 소리.

"핏빛 십자 기사단 수도지부 본청입니다. 정진율 기사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13-9 사건으로 수사 나왔는데, 벰파이어가 인간의 피를 빨았답니다.
혈액 사용 허가를 요청합니다."

잠시 침묵. 기사의 혈액 사용은 중앙통신부 수준에서 허락할 수 없다.
각 팀의 팀장 허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정진율 기사님. 혈액의 사용을 허가합니다."

삐-. 통신이 종료되었다.
슬슬 준비 좀 해볼까?

"백설. 차에서 세트 가져와."

백설은 차로 달려간다. 행동은 빠릿빠릿하네.

"주변 일대에 경찰관 뿌려. 멀리 가진 못했을 거야."

경찰은 무전기로 연락을 취한다.
인간의 피를 먹은 벰파이어는 환각과 고양감이 잠잠해질 때까지 어두운 곳에 머무는 것을 선호한다.
효과가 떨어지는 데는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 시간 내로 잡아야 한다. 그 시간이 지나게 되면 피에 대한 갈망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공격할 거다.

"진율 기사님! 가져왔습니다!"

백설이 들고 온 것은 혈액 즉석 공급 키트, 진압봉, 흡입형 마취제와 혈액 해독제를 들고 왔다.
진압봉과 마취제, 해독제를 받아든다.
백설은 키트를 열고 사용할 준비를 한다.
키트는 피를 뽑아낼 주사기, 유리병, 고무 밴드, 알코올 솜과 지혈용 밴드로 구성되어있다.

"사용할 줄 알지?"

백설은 고개를 끄덕이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왼쪽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 올리고, 고무 밴드를 팔에 묶었다.
솜으로 주삿바늘을 찔러 넣을 자리를 소독한다.
거리낌 없이 바늘을 찔러넣고 피를 뽑는다.
백설이 건네는 주사기를 받아들고, 유리병에 쏟아낸다.
백설은 솜으로 지혈을 하고 있다.

"나중에 차 타고 쫓아와!"

통신기를 가지고 있으면 내비게이션에 위치가 떠오른다. 알아서 찾아오겠지.
병 안의 피를 들이킨다.
인간의 피는 벰파이어에게 마약이지만, 혼혈에게도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목구멍에 뜨겁고 끈적한 것이 흘러 들어간다.
미친 듯이 박동하는 심장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호흡이 가빠지고 근육이 경직된다.
주변의 모든 정보가 일순간에 들어온다.
백설과 경찰들의 숨소리, 멀리서 사건 현장을 보며 잡담을 나누는 학생들.
그리고 달콤한 피 냄새.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다.
백설이 손수건을 내민다. 손수건에는 벰파이어의 피가 묻어있다.
피의 향기를 뇌에 각인시킨다. 고개를 들고 공기 중에 떠도는 놈의 피 냄새를 추적한다.
골목 너머에서 피 냄새가 진하게 느껴진다.
달린다. 피 냄새를 쫓는다. 골목으로 들어가 벽을 박차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놈이 흘린 피가 방울방울 떨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멀리 가진 않았군.

피 냄새를 쫓아 달려간다. 건물들을 뛰어넘고, 담벼락을 넘으며 추적한다.
냄새를 따라 깊숙한 골목에 도착했다. 골목 안에서는 강한 피 냄새가 느껴진다.
저 어둠 속에 피 흘리는 벰파이어가 있을 거다.
골목 안쪽은 광원이 전혀 없다. 하지만 피를 마셔 확장된 동공은 미세한 빛도 인식하여 어둠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시야를 확보한다.
막다른 골목의 벽에 기대어 누군가가 거친 호흡을 하고 있다.
가슴을 부여잡고 벽을 긁으며 신음을 내고 있다. 저놈이 흡혈한 벰파이어군.

허리춤에 챙겨온 진압봉을 꺼내 든다.
나도 피를 먹은 상태지만, 중독되지 않게 최소한의 양만 섭취했다.
저놈은 미쳐버릴 정도로 과하게 먹었고. 섭취한 피의 양이 다르다 보니 신체에 미치는 효과도 다르다.
나는 이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저놈은 생각을 못 할 것이 분명하다.
신체 능력은 저쪽이 높겠지만. 

"어이 형씨."

놈은 나를 돌아보았다.
얼굴의 혈관들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흰자는 불게 물들었고, 벌어진 입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인다.
침을 뚝뚝 흘리며 내게 걸어온다. 진짜 끔찍하게도 생겼다.
피를 먹고 거울을 본 적은 없지만 나도 저런 꼴일까?
놈을 자극하지 않게 다가간다. 피를 마시고 나서 침착하기란 쉽지 않다.
따로 훈련을 받기는 하지만 언제나 고역이다.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수고 파괴하고 죽여 피를 마시고 싶은 충동. 그런 충동을 억지로 억누른다.
놈은 내 앞까지 다가왔다. 코를 벌름거리며 나의 냄새를 맡는다.
내가 인간이었다면 바로 공격했겠지만, 나에게는 벰파이어의 냄새도 난다.
놈은 내가 동족인지 먹이인지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난 사냥꾼이거든?

오른손에 들고 있는 진압봉으로 머리를 후려갈긴다.
힘을 빼지 않고 휘둘렀기에 인간이라면 즉사할 수준이었다.
머리를 맞고 잠시 주춤한 놈은 고함을 지르며 나를 덮쳐왔다.
피를 먹은 벰파이어는 상당히 튼튼하다. 피부로 총탄을 막아낼 정도.
근력으로는 놈을 이기지 못한다.
덮쳐오는 놈의 옷 소매를 붙잡고 그대로 넘겨버린다.
땅에 내던져진 녀석의 머리를 발로 밟는다.
머리를 짓누르는 발을 붙잡으려 팔을 이리저리 휘젓는다.
진압봉으로 팔을 쳐내며 발에 체중을 싣는다.
놈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댄다.

"얌전히 좀 있어라!"

제기랄. 팔을 붙잡혔다. 내던져져 벽에 몸이 부닥쳤다.
으윽. 놈은 일어나서 나를 향해 달려온다.
쓰러져 있는 상태로 손에 쥔 진압봉으로 다리를 후려친다.
놈은 그 충격으로 넘어졌다. 재빨리 일어나 머리를 진압봉으로 가격한다.
이번엔 충격이 심했는지 금방 일어나지 못한다.
기회다 싶어 진압봉을 입에 끼워 억지로 입을 벌린다.
벌어진 입에 마취제를 부어 넣는다.
마취제와 해독제는 둘 다 액상 형태로 복용하여 효과를 발휘한다.
주사기로 혈액에 직접 집어 넣는 게 효과는 좋지만, 총알도 막아내는 피부를 주사기로 뚫겠다고? 미친 짓이지.
뒤이어 해독제도 입에 부어 넣는다.

놈은 몇 번 꿈틀거리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마취제의 효과가 나타난 거다. 해독제의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끝났다.

"기사님!"

백설이 골목 입구에서 뛰어온다. 수갑과 해독제를 들고서.
백설이 쓰러진 벰파이어에게 수갑을 채우는 동안 해독제를 마신다.
뜨거워진 피가 차갑게 식는다.
감각들이 약해진다.
근육은 풀려서 강한 힘을 내지 못하게 하고, 심장의 박동도 느려진다.
해독제의 부작용으로 현기증이 몰려온다.
벽을 붙잡아 넘어지는 것은 피한다.
백설이 쓰러진 벰파이어를 끌고 차량 뒷좌석에 태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조수석에 탑승한다.

"본부로 가자."

백설이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잠시 눈을 붙이자.
얼른 가서 보고하고 퇴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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