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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복도. 바닥의 붉은 융단. 빛은 찬장에서 내리 쬐는 작은 전등. 한 없이 늘어진 나무문. 각 문에는 금색 금속 판에 검은 글씨로 방의 용도가 적혀 있다. 'Laundry room' , 세탁실 이라든지, 'Billiard room' , 당구장이라든자. 뭐랄까 난잡하다.
종류별도 정리 되어 있지도 않다. 한눈에 보이는 표식도 없다. 왜 있는지 모르겠는 방들도 꽤 있다. 한유리의 말을 따르면 누군가 특정한 방을 요청하면 그 방이 생긴단다. 아주 좋은 시스템이다.
"자. 식당 도착."
주변에 널린 수많은 문 만큼이나 특색없는 문. 박혀있는 이름은 'A restaurant'. 레스토랑이라고 박혀있다. 나 혼자서는 못 찾는다. 확실하다.
한유리는 문을 연다. 문이 열리고, 식당 안쪽이 보인다. 식당은 거대하다. 복도에 보이는 문과 문 사이의 거리를 뛰어넘은 크기. 이건 예상 했다. 전투팀 사무실고 밖에서 보이는 것과 다르게 어마어마한 공간을 자랑하니. 순간이동도 한다는데, 공간 따위 조작 못할까.
그 거대한 공간에는 기다란 식탁이 빈틈없이 매꾸어져 있다. 한쪽 면에만 열명은 앉을 수 있겠다. 나무로 만들어진 책상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갯수는 일곱개 정도? 여유있게 앉을 수 있겠군.
식탁에는 듬성듬성 사람들이 앉아있다. 여럿이 모여서 떠드는 사람도, 혼자사 음식을 즐기는 사람도, 커피 한 잔과 함께 무언가 쓰고 있는 사람도.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있다.
한유리는 식탁 사이를 가로지르며 사람들과 인사를 한다. 나도 일단은 그 사람들에게 인사한다. 한유리가 소개해 주지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국 이름이 아니다 보니 기억하기 힘들다. 얼굴을 외우는 것도 마찬가지.
어떻게든 사람들을 머릿속에 집어 넣고 한유리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이야. 앉으니까 엄청 좋은 의자라는 것을 알겠다. 천이 없는 나무 의자임에도 불편함이 없다.
"난 김치 볶음밥이나 먹을까. 너는?"
갑자기 메뉴를 물어온다. 난 메뉴도 모르는데. 내가 당황하자 한유리는 입을 가리고 웃는다.
"여기는 정해진 메뉴가 없어. 그냥 먹고 싶은걸 말해봐."
그럼 만들어 주는 거야? 요리사가 누군지는 몰라도 대단하네. 생각해보니까 죽기전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럼 오늘 나흘만에 먹는 건데. 뭘 먹을 까나.
생각보다 메뉴를 정하기 힘들다. 결정장애를 가진 나한테는 정해진 기준 없이 고르는게 더 고역이다. 한유리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늦어서 미안하군. 제기랄. 대충 정하자. 기역으로 시작하는 걸로 먹는 거다. 기역은 역시 김치. 김치찌개가 좋을까, 김치찜이 좋을까. 나는 이렁 걸로도 고민에 빠지는 구나.
"그냥 나랑 같은 거 먹어!"
한유리는 화가 났는지 소리를 지른다. 뭐 10분동안 메뉴 고민하면 화낼 법도 하지. 한유리는 씩씩 거리며 펜을 꺼내든다. 저거 여기서도 쓰는 거야?
황금의 펜은 한유리의 손에서 춤춘다. 책상에다 무언가 글씨를 쓴다. 잉크로 쓰는 것은 아닌 듯 남는 흔적은 없다. 그저 목제 책상을 달린다. 한유리가 펜을 집어 넣는다. 그리고 식탁에는 음식이 나타난다.
......... 당황스럽다. 받아들이기 힘들다. 나의 모든 정신이 상황을 거부한다. 펜으로 무언가를 쓰더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 볶음밥이 나타났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은 빨갛다. 구수한 냄새의 된장찌개가 나타났다. 두부, 버섯, 호박.
"놀랐지?"
놀랐다. 이걸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지? 다른 사람들도 같은 방법으로 음식을 소환? 한건가? 펜으로 책 속에도 들어가고, 이야기를 끌어오고, 음식도 소환한다. 나는 안주나?
"일단 먹자."
그래. 일단 먹고 보자. 배는 고프지 않지만, 맛있는 냄새가 위장을 자극한다. 근데 죽은 사람도 밥을 먹나? 한유리는 숟가락을 들고 열심히 움직인다. 된장국은 그릇 째 들고 마신다. 맛있게 잘 먹는다. 나도 식사를 시작해야지.
숟가락에 밥이 담긴다. 입으로 가져간다. 밥알이 살아있다. 이빨과 이빨 사이로 꾹꾹 씹어 삼킨다. 맛있다. 적당히 묵은 김치가 밥알을 맛나게 한다. 각종 채소들도 잘 익어있다. 얼마만에 먹는 밥이냐.
엄청난 기세로 밥을 해치운다. 한유리도 어느센가 다먹고 그릇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펜으로 책상에 무언가를 적는다. 그릇이 사라진다. 내앞에 놓인 그릇도. 적응이 안된다.
"그 펜은 뭐야? 이것저것 다하네."
한유리는 펜을 손바닥에 올려 나에게 보여준다. 아무리 봐도 그냥 펜인데.
"이 펜은 사서의 상징이야."
오호라. 그런데 난 왜 안주지?
"넌 수습이라 없어. 수습 떼면 행정실에서 보내줄거야."
그럼 그동안은 밥을 먹으려면 한유리랑 같이 다녀야 한다는 건가? 빨리 정식 사서가 되야곘다.
"정식 사서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이야기 하나를 끝내면."
나 같은 경우에는 소설을 완결 시키는 거겠군. 열심히 써야겠다. 그런데 어디다 쓰지? 원래 컴퓨터로 쓰다 버릇해서 손으로 써야 한다면 어색할 거다.
"자. 그럼 네 방으로 가볼까?"
"내 방으로?"
한유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왜? 갑자기? 아직 내 방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방에 여자가 들어온다니. 침을 삼킨다.
"안가?"
"가야지."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유리의 뒤를 따라간다. 한유리는 식탁 사이를 걸어가며 사람들과 인사한다. 나도 그 인사에 낀다. 그래도 이름을 외우기는 힘들다. 적당히 인사를 하고 식당을 벗어난다.
다시 기다란 복도. 수많은 방들과 문들을 지나쳐 휴게실을 벗어난다. 동상들의 홀에서 다윗의 동상 옆의 숙소로 들어간다. 다시 어마무시한 복도. 아무리 생각해도 대기록원의 건물 구조는 비효율적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순간이동을 한다고 해도, 수습 사서들은 어떻게 하라고.
"네 방 어디야."
가장 중요한것을 잊고 있었다. 난 내방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한 10분 쯤 걸으면 나오겠지만, 그래도 자세한 위치는 모른다.
한유리는 나를 보고 한숨을 쉰다. 미안하지만 어쩌겠어. 여기 너무 넓단 말야. 한유리가 나를 한심하게 바라본다. 한마디 쏘아 붙이고 싶지만, 그러면 맞을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방은 기억해야 하는 거 아니야?"
뭐라 할말이 없다. 한유리는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벽에 무언가를 적는다. 뭘 적는지는 모르겠다. 이번에는 펜의 움직임이 보이지만, 한글을 쓰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도형인가?
비어있던 벽에 문이 나타난다. 나무 문. 금색 판. 검은 글씨. 'Kim Yubin'. 하아. 적응 못하겠다.
"개인의 방은 다른 사람이 열지 못해. 열어줘."
저번에 요한 씨는 열고 들어왔는데. 팀장 권한 인가 보지 뭐. 나무문의 문고리를 잡고 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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