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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엑"
구토감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차원 이동 후유증이란 거 진짜 무섭구나. 한유리가 물을 건네준다. 물을 마시니 좀 진정이 된다. 다행히 바닥에 흘린 것은 없다.
한유리는 바닥에 놓인 책을 집는다. 성냥팔이 소녀. 그림자로 뒤덮였던 책은 다시 하얀색이다. 책을 다시 제자리에 꽂는다.
"얼른 정신 차려라."
꿇은 무릎을 일으킨다. 아직도 어지럽다. 한유리는 내가 일어난 것을 확인하고 어딘가로 걸어간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따라가야지 뭐.
한유리는 거대한 책장 사이를 걸어나간다. 저번에는 날아다녔는데.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딱히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책장 사이를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나무문. 역시나 금색 판에 무언가 적혀있다. `Team Leader Johannes Pilsburg`. 팀장 요하네스 필스버그. 요한 씨의 방인듯하다.
한유리는 문을 가볍게 두드린다. 나무문이 경쾌한 소리를 낸다.
"한유리입니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연다. 한유리는 거리낌 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팀장인데 저렇게 막 들어가도 되나? 그렇다고, 밖에 있을 수는 없으니 들어가자.
요한 씨의 방은 뭐랄까. 살벌하다. 흰 벽. 흰 바닥. 가구라고 있는 것은 책상과 의자, 그리고 책장뿐. 모두 금속으로 되어있다. 방에서 냉기가 퍼져나오는 것 같다.
한유리는 방 중앙에 서서 요한 씨를 바라본다. 요한 씨는 서류를 정리하던 중이었는지, 책상에는 서류가 상당히 쌓여있다.
"무슨 일이지?"
요한 씨는 고개를 들어 한유리를 바라본다.
"성냥팔이 소녀 정리하고 왔습니다."
"그런 보고는 일일이 하지 말도록."
한유리의 보고에 요한 씨는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그리고 수습 사서 김유빈이 능력을 사용했습니다."
요한 씨가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빤히 보면 약간 부담스러운데.
"벌써?"
"네. 벌써."
"상당히 빠르군."
빠르다니. 능력 발동이 빠르다는 의미겠지만, 뭔가 기분이 나쁘다. 꼭 내가 빠르다는 것 같잖아.
"능력의 형태는?"
이 질문은 나를 향한 것이다. 한유리도 요한 씨도 나를 바라본다.
"마법서를 소환해서 마법을 씁니다."
내가 말했지만, 나도 믿기 힘들다. 마법이라니. 뭐 죽은 나도 이렇게 살아있는데. 살아있는 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내 상태는 어떤 상태지?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자. 요한 씨는 나를 보고 슬며시 웃는다.
"역시 판타지 소설가군. 전투팀에 접합한 인재야."
한유리도 했던 말. 판타지 소설가가 없나? 내가 연재하던 때만 해도 수두룩하던데.
"궁금해?"
어느샌가 한유리가 내 앞으로 얼굴을 내민다.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놀라 살짝 뒤로 물러선다. 그게 재밌었는지 입가를 가리고 웃는다.
"잠깐만. 지금 생각을 읽은 거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궁금하냐고 물어봤다. 한유리는 키득거리며 웃는다. 요한 씨는 책상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본다.
"표정이 읽기 쉬운 거지. 무언가 심각하게 고민하는데 묻고 싶은 게 있는 거 아니겠어?"
예전부터 그런 말은 많이 들어왔다. 넌 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다 들어나. 넌 표정을 숨기는 걸 못하는구나. 그 단점이 여기서도 나타나는구나.
이미 들켰으니 질문이나 하자.
"판타지 소설 작가가 드물어?"
한유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설명은 요한 씨가 해준다.
"물론 판타지 소설을 쓰는 사람은 많지. 하지만 소설을 쓰고 음악을 한다고 다 작가는 아니야."
"그러면요?"
"작가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자.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자. 글을 쓴다고 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는 않지. 특히 판타지 쪽은 그게 심하단 말이지.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끼얹는 거 말이야."
음. 모르겠다. 그러니까 자신만의 독창적인 걸 만들어야 한다는 건가? 근데 오르니아의 왕이 독창적이라고 하기는 힘든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소설인데. 그래도 내 작품이 인정받은 거 같아서 기분은 좋다.
"그러므로 계속 글을 써내려가라. 너의 세계가 넓어지고 깊어질수록 발휘하는 힘도 커지니까."
세계를 넓히고 깊게 만든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쓰다 보면 되겠지.
"오직 작가만이 불려 오는 이유가 그것에 있다. 작가는 신의 창조성에 가장 근접한 존재거든."
작가는 세계를 만드니 신과 달았다. 이건가?
"이해는 차차 하고!"
한유리가 어깨를 두드린다.
"우린 이만 가볼게요."
요한 씨는 별다른 대답이 없다. 한유리는 그대로 방을 나선다. 나는 요한 씨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방을 떠난다.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갈까?"
한유리는 다시 책장 사이를 걸어 다닌다. 그다지 배는 고프지 않은데. 그나저나 어떻게 여기서 길을 찾는 거지?
전투팀 사무실(사무실 같지는 않지만, 일단 요한 씨가 그렇게 불렀으니)은 거대한 책장으로 가득하다. 어떠한 표지도 없이 걸어가는 한유리가 신기하다. 나라면 길을 잃겠지.
다시 나무문이 나타난다. 문도 다 똑같은 디자인이다. 금색 이름표 만이 문을 구분할 방법.
한유리가 문을 연다. 너머로 보이는 것은 거대한 샹들리에. 동상들의 방.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중앙홀. 호메로스의 동상이 나를 반긴다.
"걸어 다니다니 너무 싫다."
"응? 평소에는 어떻게 다니는데?"
"날아다니거나 순간이동."
못 들은 거로 하고 싶다. 날아다니는 건 봤지만, 순간이동이라니. 그게 물리 법칙상 가능한 건가?
"너 물리법칙 같은 거 생각하지?"
한유리의 얼굴이 또 내 앞에 나타난다. 들켰다. 난 생각을 감추는 방법을 연습해야겠다.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너나 나나 죽은 사람이야. 지금 몸이 있는 거 같지만, 그냥 영혼이라고."
그렇긴 하지. 확실히 어떤 이야기를 봐도 죽은 사람의 혼은 벽 정도는 통과한다. 날아다니는 건 기본이고, 가끔은 순간이동을 한다.
"대기록원에서는 물리법칙에 대해 생각 하지 마."
한유리는 그대로 홀을 가로지른다. 나도 날아보고 싶은데 설명은 안 해주나? 한유리가 향하는 곳은 휴게실. 세르반테스의 동상이 서 있는 곳. 그렇지만 저 동상을 보고 세르반테스라고 떠올리기는 힘들 것 같다.
중세 귀족 하면 떠오르는 옷을 입고 있는 백인 남성. 솔직히 백인인지도 모르겠다. 대리석이다 보니 다 하얗다. 그리고 세르반테스는 가난하지 않았나?
"정신 차려."
그래. 동상이나 구경할 때는 아니지. 동상을 만든 사람은 세르반테스를 본 적이 있을까 하는 의문은 잠시 집어넣는다. 한유리는 휴게실의 문을 연다.
식당이 휴게실에 있나? 라는 의문도 잠시. 숙소에서 나왔을 때 본 기다란 복도를 보고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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