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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백설은 진율의 종자로서 3년간 일하게 되었다.
진율은 오늘 휴일이었지만 새로 종자가 들어온 이상 휴일은 반납이다.
진율은 백설을 데리고 현장 3팀의 사무실로 향한다.
사무실에는 십여 개의 책상과 의자가 있었지만,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두 명뿐이었다. 기사 한 명과 그 종자.
현장에서 몸으로 뛰는 게 일인 현장 3팀이기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게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진율! 오늘 휴일이지 않았냐?"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사용하던 기사가 진율에게 아는 척하였다.
그의 책상에는 [기사 백강원] 이라 적혀있는 명패가 놓여있었다. 강원은 진율과 같이 입단한 동기다.

"종자 들어왔어."

진율을 백설을 소개해줬다. 백설은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한백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백설의 인사에 강원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팀장한테도 소개해야 하지? 지금 팀장실에 계셔."

진율은 고개를 끄덕이고 팀장실로 향한다.
강원은 자신의 업무에 복귀하고, 백설은 진율의 뒤를 따라갔다. 진율은 팀장실 문을 두드린다.

"기사 정진율입니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문에 내실이라고 적혀있으니 방 안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저 정진율과 말을 섞기 싫어서 대답을 안 할 뿐이다.
진율도 그걸 알고 있기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예의에는 어긋나지만, 유적성과 정진율은 그런 관계다.
백설은 대답이 들리지도 않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자신의 기사를 보며 어찌할 줄 몰랐지만, 진율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따라 들어갔다.

방안에는 당연하게 유적성이 의자에 앉아 진율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이 썩 좋지는 않다. 진율은 그 표정을 무시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기사 정진율 보고합니다. 이번에 한백설을 새로 종자로 들였습니다."

적성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
진율은 눈살을 찌푸리며 방을 나선다.

"기사님은 팀장님이랑 사이가 안 좋으신가요?"

방을 나온 진율에게 백설이 질문한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가능한 질문이다.
옆에서 그 질문을 들은 강원과 그 종자는 움직임을 멈추고 긴장한 채 진율과 백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혼혈인 건 알고 있지?"

정진율은 혼혈이다. 인간과 벰파이어 사이의 혼혈. 혼혈은 드물지만, 아예 없지는 않다.
벰파이어 처럼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아버지가 순혈주의자 수장의 아들이야."

정진율의 할아버지 정철주는 한국 벰파이어 순혈주의자의 수장이다.
정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순혈주의자와 벰파이어가 그를 존경하고 뒤따른다.
순혈주의자들은 벰파이어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그런 와중에 수장의 아들이 인간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았다. 순수한 벰파이어가 아닌 더러운 혼혈을.
순혈주의자들은 혼혈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거부하지도 않는다.
정치적인 문제가 걸려있지 않는다면. 정진율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철주의 약점이었다.
순혈주의자 수장의 손자가 혼혈이라니. 기자들이 참으로 좋아할 먹잇감이다.
그렇게 진율은 존재만으로도 순혈주의자들에게 껄끄러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건 기사님 잘못이 아니잖아요."

"내 잘못은 아니지.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

백설의 위로에 진율은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얘기나 할 때가 아니야. 가서 장비를 맞춰야지."

진율은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투로 말했다.
백설은 사무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진율을 그저 따라갈 뿐이다.
14층에서 5층을 올라가면 나타나는 곳. 두 개 층을 한꺼번에 쓰는 유일한 부서. 장비개선부.
기사들이 사용하는 모든 장비를 관리하는 부서다.
지하의 차량정비팀도 장비개선부 휘하의 부서고.
진율은 호쾌하게 장비개선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왔다!"

"미친개 등장했다! 장비들 숨겨!"

진율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을 보자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개발하고, 연구하던 장비들을 천으로 덮어 숨겼다.
예전부터 진율은 장비를 험하게 쓰는 거로 정평 나 있다.
특히 오늘처럼 어디선가 스트레스를 받고 오면 그 날은 실험 명목으로 무수한 장비가 오류를 일으킨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오늘은 종자 장비 맞춰주러 온 거니까요."

그렇다고 안심이 되지 않는다.
3년 전에도 6년 전에도 종자의 장비를 맞추러 올 때마다 연구원들의 골머리를 썩이게 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개선부장이다. 선임의 신호에 막내가 부장을 부르러 간 동안 진율을 알고 있는 연구원들이 진율의 앞길을 막아섰다.

진율은 그들을 제치며 장비들을 덮은 천을 하나씩 들추어 본다.
진율이 천을 들출 때마다 연구원들은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낀다.
안돼 저건 어제 만들었단 말야. 으악! 제발 그것만은! 그거 고치느라 한 달 걸렸어!
백설은 연구원들의 소리 없는 비명들을 듣고 같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야! 정진율!"

장비개선부의 무수히 많은 방 중에서 개선부장실 이라는 문 너머에서 거대한 고함과 함께 하얀 가운을 입은 청년이 등장한다.
장비개선부장 이자성. 20대의 외모지만 실제로는 40줄에 들어선 애 아빠다. 정진율은
이자성의 목소리에 하던 일, 장비들을 들쑤시는 일을 멈춘다.

"형님!"

손을 흔들며 이자성을 반기는 정진율.
자성은 진율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턱을 후린다.

"컥."

진율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땅에 쓰러진다.
연구원이긴 하지만 혼혈들이 으레 그렇듯 기본 신체 능력이 인간을 웃돈다.
같은 혼혈을 기절시킬 수 있을 정도로.

자성은 쓰러진 진율을 둘러메고 자신이 나왔던 문으로 들어간다.
백설은 어떻게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다 친절한 연구원의 안내로 부장실로 들어간다.

부장실 안쪽은 접대용 소파와 탁자, 책상과 의자, 각종 문서로 가득한 캐비닛이 전부였다.
자성은 기절한 진율을 소파 하나에다 대충 던져놓고 자기의 의자에 앉았다.
뒤따라 들어온 백설은 자성이 권유해준 차를 마시며 진율이 깨어나길 기다렸다.

잠시 뒤 신음을 흘리며 진율이 정신을 차렸다.
누워있던 소파에 똑바로 앉은 진율은 자성에게 눈을 흘긴다.

"만나자마자 기절시키깁니까?"

자성은 검토하던 서류를 내려놓고 진율을 똑바로 마주한다.

"여태까지 네가 망가트린 장비의 복수다."

복수 당할 만 하다. 진율이 고장 내고 오류를 일으킨 수많은 장비 때문에 장비개선부는 날밤을 새우는 일이 수두룩했다.
진율은 자신이 잘못한 게 있어 뭐라 말하지 못했다.

"종자 새로 들어와서 장비 맞추러 왔다며?"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백설은 몸을 음추렸다.
진율은 그런 백설을 딱하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안내해주지."

자성은 의자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진율과 백설도 그 뒤를 따라갔고.
자성은 진율과 백설을 데리고 장비들을 구경시켜 준다.
연구원들은 진율의 존재에 불안을 느꼈지만, 부장이 있으니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애써 무시했다.

"백설 양은 특기가 뭐지? 근접전? 원거리 견제?"

백설은 자성의 말에 잠시 고민한다.
이내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를 말한다.

"총기를 잘 사용합니다.."

"총기? 범위가 좀 광대한데."

"저격 소총이 특기입니다."

백설은 당당하게 말한다.
진율이 받았던 신상 보고서에도 적혀있었다.

"괜찮네. 진율이는 근접전 특기니까."

자성은 그렇게 말하며 연구실에 놓여있는 소총을 백설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그걸 진율이 빼앗는다. 백설은 잠시 당황했지만 잠잠코 진율이 하는 행동을 지켜본다.
진율은 받아든 소총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방아쇠도 당겨보고, 노리쇠도 당겨보며 관찰하고 있다.
총과 함께 있던 탄알집을 하나 주워 장전까지 한다.
그리고는 어깨에 견착하고 조종간을 사격으로 돌린다.

"잠깐 너!"

이자성이 제지하기도 전에 폭발음이 들렸다.
진율의 어깨가 강하게 뒤로 밀려나고. 총구가 향하고 있던 원형의 장비에 구멍이 난다.
참고로 저 장비는 연구원들이 석 달간 연구하여 시제품으로 막 내놓은 참이었다.
진율은 탄알집을 빼고 노리쇠를 후퇴시켜 약실에 있던 탄알까지 빼낸다.
백설은 입을 다물 생각을 못 하고 자성은 자주 보던 광경에 머리를 부여잡는다.
다른 연구원들은 눈물을 흘린다.

"이거 반동이 너무 심한데. 다른 건 없어?"

"제발 마음대로 쏘지 말아 줄래. 사격장도 있잖아."

화낼 힘도 없는 것 같다.
자성은 진율이 건네주는 소총을 받아 원래 두었던 자리에 올려놓는다. 

"사격장은 너무 멀잖아?"

진율은 너무나 당연한 듯 대답한다. 자성은 진율의 귀를 잡고 사격장으로 끌고 간다.
백설은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터덜터덜 걸어간다.





사격장에는 수많은 화기가 벽과 책상에 즐비하게 놓여있다.
방탄유리로 준비실과 사격실로 구분되어있으며, 사격 표적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귀를 붙잡혀 이곳까지 끌려온 진율은 빨갛게 변한 자신의 귀를 부여잡는다.
자성은 진율의 눈빛을 무시하며 벽에 걸려있는 총기를 하나 꺼낸다.

"불펍(개머리판에 약실을 집어넣는 방식 총열의 길이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방식.
5.56mm 나토 탄. 아까보다 반동이 적은 모델이야."

진율은 자성이 건넨 소총을 받아 아까처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약실을 살펴보고, 총구가 휘었나 검사해보며. 자성이 건네준 탄알집을 끼우고 노리쇠를 당긴다.
견착하였지만 자성의 눈을 한 번 보고 사격실 내부로 들어간다. 자성이 없었다면 대기실에서 총을 쐈을 것이 분명하다.
진율은 1번 사수석에 들어가 사격을 준비한다.
자성은 진율이 준비된 것을 보고 1번 사수석을 작동한다.

진율은 움직이는 표적. 인질을 잡고 있는 표적들을 한발 한발 신중하게 쏜다.
열다섯 발짜리 탄알집이 비었을 때 표적 열다섯 개의 머리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진율은 만족한 듯 안전검사를 한 후 사격실을 나왔다.

"실력이 늘었는데?"

자성은 진율이 건네주는 소총을 받아들며 말했다.

"그래도 500미터 이상 떨어지면 못 쏘겠더라고.
연사속도가 조금 느린 거 같은데, 저격소총에게 연사를 바랄 필요는 없지."

자성은 탄알집을 새로 끼운 후 백설에게 건넸다. 백설은 두 손으로 소총을 받아 들었다.
어떻게 할지 몰라 눈동자만 굴리는 백설에게 진율이 사격실 안쪽으로 안내한다.
1번 사수석에 백설을 세운 뒤 자신은 사수석 뒤의 의자에 앉았다.

"형. 700미터로 맞춰줘."

대기실에서 자성이 무언가를 조작하자 표적이 걸려있는 벽면이 변화했다.
표적들이 한쪽으로 수납되고, 벽면이 열려 광대한 평원이 나타났다.

"이건?"

백설이 건물에 나타난 평원에 의문을 품자 진율이 설명해 줬다.

"스크린 야구장 같은 거로 생각하면 돼."

그렇게 말하니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자세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친근한 것을 예로 드니 이해하기 수월했다.
백설은 심호흡을 한 후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 댔다.
평원에 살짝 솟아 있는 언덕에 붉은 풍선이 실에 매달려 있었다. 아마 저것이 표적일 터.
집중한다. 호흡을 멈춘다. 손가락을 살짝 움직인다.
폭음. 어깨가 들썩인다. 호흡을 가다듬고, 조준경에서 눈을 뗀다.

"다음은 1000미터."

표적이었던 풍선이 터진 것을 확인한 진율이 자성에게 부탁한다.
이번에는 숲이다. 나무들과 수풀들에 가려져 목표인 사슴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심지어 진짜 사슴처럼 움직이기도 한다. 백설은 침을 삼키고 다시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 댄다.
집중. 호흡 조절. 격발. 다시 일련의 과정이 작동된 후 사슴이 피를 뿜으며 쓰러진다.

"이번엔 도심지."

화면이 바뀐다. 높은 빌딩에서 시가지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수많은 사람과 차들. 건물들이 즐비하다. 표적이 어디 있는지 찾기도 힘들다.

"선글라스. 남자. 회색 머리. 갈색 바바리코트. 왼손잡이.
턱에 점이 있음. 오른뺨에 십자 흉터. 시간은 5분 준다."

백설은 진율이 말한 표적을 찾기 위해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사거리를 본다. 목표는 보이지 않는다.
차량에 타고 있는지 확인한다. 보이지 않는다.
빌딩들을 훑는다. 보이지 않는다.
백설은 이마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낀다. 손에 땀이 흘러 소총이 미끄러진다.
부릅뜬 눈이 아려오기 시작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바바리코트를 입은 사람을 보고 고 무심코 방아쇠를 당길 뻔 했다. 여자였다.
빌딩 옥상에서 핸드폰을 하는 사람을 찾았다. 오른손잡이다.
비슷한 사람은 보이지만 표적을 찾을 수가 없다.

"1분 남았다."

거대한 압박감을 느낀다.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억지로 부여잡는다.
침만 삼키며 시간이 흘러간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아직도 목표를 찾지 못했다.

"끝!"

진율이 손뼉를 치자 화면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백설은 조준경에서 눈을 떼며 항변한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기회는 더 없어."

백설은 울상이 되었다. 자신이 자랑하는 특기를 발휘하지 못했다.
자신의 담당 기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상념의 폭풍이 몰아친다.

"목표는 원래 없었어."

"네?"

"목표는 없었다고. 이번에 평가한 건 사격 능력이 아니야.
자기 제어력과 관찰력을 평가한 거지.
스트레스 상황에서 목표와 비슷한 사람을 찾았을 때 방아쇠를 당기는가 아닌가를 본 거라고."

백설은 진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게 무슨 의미지?

"너 진짜 마음에 든다."

진율의 칭찬에 백설의 표정이 변한다.

"감사합니다!"

백설은 환한 미소로 응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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