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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성냥을 팔던 소녀는, 창 너머의 풍경을 본다. 타오르는 모닥불.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음식들. 서로의 얼굴을 보며 밝게 웃는 가족들. 소녀가 처한 상황과는 다른 이야기. 소녀는 멍하니 자신이 꿈꾸는 풍경을 바라본다.
검은 양복의 사내가 소녀를 본다. 재밌는 것을 찾았다는 듯, 미소 짓는다. 소녀의 어깨를 두드린다. 소녀는 화들짝 놀라 사내를 본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감미로운 목소리에 소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사내의 미소는 더욱 커진다.
"그렇다면 제가 힘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을 불행하게 만든 것을 이겨내세요."
소녀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것들을 떠올린다. 자신을 학대하는 아버지.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는 사회. 소녀의 눈동자에는 분노와 증오가 뚝뚝 흘러넘친다.
사내는 방긋 웃는다. 잔혹한 웃음. 비릿한 웃음. 사내의 몸이 안개로 변해간다. 그리고 소녀의 호흡에 조금씩 조금씩 흘러들어 간다. 사내가 사라지고 소녀의 눈동자는 빛을 잃는다.
"이 이야기는 파괴되어야 해."
소녀의 목소리는 이전과 다르다. 음습하고, 차갑다. 마치 소녀가 받아온 냉대만큼이나. 소녀는 자신이 받아온 차디찬 눈으로 거리를 바라본다.
수많은 사람. 그 수만큼이나 받아온 냉대. 소녀는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겠다고 맹세한다. 방법이 거칠지라도.
"찾았다. 악마!"
소녀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한유리. 그리고 뒤에서 숨을 몰아쉬는 김유빈. 아직 체력이 붙지 않아 한유리의 달리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소녀는 바구니에 들어있던 성냥갑을 꺼낸다. 손가락으로 밀어 뚜껑을 열고 성냥을 하나 꺼낸다. 소녀는 성냥을 잠시 바라보다 갑에 문질러 불을 붙인다.
"막아!"
그제야 소녀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한 한유리가 소리친다. 김유빈은 짜증을 내면서도 소녀를 향해 달려나간다.
문제라면, 김유빈의 발이 느리다는 것. 소녀는 불이 붙은 성냥을 내리긋는다. 성냥이 이동한 방향에 불꽃이 남는다. 일자로 만들어진 불꽃은 이내 화살이 되어 소녀에게 달려오는 김유빈을 향한다.
체력은 부족해도, 운동 신경 자체는 뛰어난 김유빈은 몸을 굴린다. 불꽃의 화살은 그의 등 뒤를 지나간다. 소녀의 위험성을 확인한 김유빈은 더욱 빠르게 달려나간다.
소녀는 이번엔 세 개의 성냥을 들어 올린다. 한 번에 그어 불꽃을 만들어낸다. 세 개의 성냥. 세 개의 불꽃. 세 명의 사람. 소녀가 만들어낸 불꽃은 다시 김유빈을 향해 날아간다.
날아가던 불꽃의 형태가 변화한다. 선들이 꼬이고 꼬여 형체를 만들어간다. 김유빈은 발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본다. 세 개의 불꽃은 하나가 되었다. 늑대. 불꽃으로 이루어진 늑대.
"이건 상상 밖인데?"
김유빈도 한유리도 행동을 멈추고 늑대를 바라본다. 늑대는 낮게 으르렁거리더니 가까이 있는 김유빈을 공격한다. 운동신경이 좋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일반인 수준. 직선으로 날아오지도 않는 늑대의 움직임은 김유빈을 잠시 멈칫하게 한다.
늑대의 발톱이 가슴을 가르기 직전, 김유빈은 몸을 굴린다. 하지만 늑대의 불타는 발톱이 김유빈의 등을 훑고 지나간다. 뜨거운 칼에 베이는 듯한 감각. 김유빈의 등에 난 상처는 열기로 익어간다.
"일단 튀자!"
늑대가 쓰러진 김유빈에게 덤벼들기 전에 한유리가 달려나간다. 늑대의 발을 피해 김유빈을 들쳐메고 골목으로 숨어들어 간다. 늑대는 잠깐 소녀를 돌아본다.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불꽃의 발자국을 남기며 사서들을 쫓아간다.
소녀는 바구니의 성냥을 꺼낸다. 다시 불을 붙인다. 성냥은 타오른다. 자그마하게. 소녀는 그 불꽃을 바라본다. 이전까지 느끼지 못한 온기를 느끼는 듯이. 소녀의 눈동자에는 불꽃이 일렁인다.
성냥이 소녀의 손을 떠난다. 집에 불이 옮겨붙는다. 벽돌집에 옮겨붙은 불꽃은 집을 삼키고, 그 안의 웃고 떠드는 단란한 가족을 삼킨다. 소녀는 그 거대한 불꽃을 바라본다. 손을 뻗는다. 온기가 느껴진다. 세상이 주지 못한 온기. 소녀는 타오르는 불꽃에서, 타인의 행복을 집어삼키는 화염에서 그 온기를 느낀다.


한유리는 골목 구석에 김유빈을 내려놓는다. 지쳤는지 숨을 몰아쉰다.
"제기랄. 너무 아파."
김유빈은 고통스러운지 몸을 뒤척인다. 익어버린 상처에서는 피가 흐르지 않는다.
"여기서 나가면 다 치료돼."
한유리는 김유빈의 상처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생각에 잠긴 듯 황금색 펜을 손가락 사이로 돌린다. 김유빈은 등을 기대지 못한 채로 땅바닥에 앉아있다.
"이제 어떡해?"
"저걸 막아야지."
간단한 대답. 간단하지 않은 행동. 한유리는 금빛으로 빛나는 펜을 계속 돌린다.
"너도 생각해 봐!"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지, 한유리는 김유빈에게 소리 지른다. 김유빈은 머리를 긁적인다.
"물을 뿌릴까?"
"어떻게?"
"모르지."
한유리는 한숨을 쉰다.
"필살기 같은 건 없어?"
"내가 쓴 곡에는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김유빈은 한유리의 말이 의문스러운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리가 쓰는 힘은 이야기에서 나오지. 자신이 만든 이야기. 악마를 물리치는 데 쓸 수 있는 도구는 들어가 있는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뿐."
한유리의 설명은 김유빈에게 와 닿지 않는다.
"그럼 전쟁 소설을 쓴 사람은 군대를 불러 낼 수 있어?"
"각자 능력 여하에 따라서."
불가능하지는 않다. 한유리의 말에 김유빈은 자신의 소설을 생각해 본다.
오르니아의 왕. 전통 판타지 소설을 표방하는 작품. 마법과 검이 부딪히는 전장과 왕이 되기 위해 투쟁하는 인물들. 배반과 충성, 맹세와 거짓의 협주곡.
"나도 할 수 있나?"
"방법 있어?"
"생각대로 되면."
한유리는 잠시 김유빈을 바라본다. 김유빈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표정을 보고 돌리던 황금의 펜을 던져준다. 김유빈은 펜을 한 번에 잡지 못한다. 손에서 튕겨 나와 공중에 뜬다. 그것을 잡기 위해 손을 뻗지만, 또 손가락에 맞아 튀어 오른다. 몇 번의 반복 끝에 잡아챈다.
운동신경이 있는지 없는지 헷갈리는 저 몸을 보고 한유리는 한숨을 쉰다. 김우빈은 펜을 쥐고 한유리를 바라본다.
"이제 어떻게 해?"
"그 펜을 쥐고 너의 이야기를 그려. 너의 세계를 불러와."
김유빈은 펜을 쥐고 머리를 긁적인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
"사서라면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 집중해."
한유리의 조언대로 김유빈은 집중을 시도한다. 눈을 감고, 자신을 본다. 자신이 써내려간 이야기. 자신이 만들어간 세계를 본다.
강한 열기가 골목을 채운다. 어느샌가 사서들을 찾은 불꽃의 늑대가 골목의 입구에서 두 명을 노려본다. 한유리는 김유빈을 바라본다. 그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제발 빨리해라!`
집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속으로만 소리친다. 그리고 늑대는 김유빈을 목표로 땅을 박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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