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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씨가 먼저 전투팀 사무실로 들어간다. 그 뒤를 따라가는 나도 마찬가지로 들어간다. 문 너머로 보았을 때와 비슷하다. 거대한 책장들, 수많은 책, 그리고 날아다니거나 뛰어다니거나 하는 사람들. 너무 기이한 광경.
"아까 전투팀에 관해 물었었지?"
방안에서 질문했었지. 이제 대답해 주려나.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이 세계에는 악마가 있어. 그리고 그 악마들을 막는 게 전투팀이지."
너무 설명이 대충인 것 같습니다만. 요한 씨는 나를 보지 않고 책장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자세한 설명은 네 파트너가 해줄 거다."
혼자서 일하는 건 아닌가 보군. 요한 씨는 두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입가에 가져다 댄다.
"한유리!!!"
요한 씨가 거대한 소리로 소리친다. 귓전을 때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를 막는다. 다른 사람들은 익숙한지 자신의 할 일을 진행한다.
귀에서 손을 뗀다. 멀리서 무언가 날아오는 것이 보인다. 그것은 엄청난 풍압을 일으키며 내 앞에 내려온다. 바람 때문에 감긴 눈을 다시 뜬다.
내 앞에는 여자 한 명이 서 있다. 검은 머리를 뒤로 묶은. 갈색 폴라티와 청바지를 입은. 눈동자와 입술이 반짝이는.
"한유리 도착!"
왼손은 허리에, 오른손으로는 브이 자를 그린다. 이 사람이 내 파트너. 한유리. 성격은 나랑 안 맞을 것 같다.
"이쪽은 김유빈. 소설가지. 네 파트너다."
요한 씨는 나를 가리키며 한유리에게 나를 소개한다. 일단 나도 인사는 해야지. 허리를 숙인다.
"김유빈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난 한유리! 작곡하던 사람이야! 잘 부탁해!"
한 유리는 나에게 손을 뻗는다. 여자 손을 잡아 본건 고등학교 체육 시간의 현대무용 시간 때가 마지막. 여자와의 접촉은 어색하지만, 그렇다고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마주 잡은 손에서 온기가 전해진다. 한 유리는 손을 격하게 흔든다.
"난 업무 보러 간다. 기본부터 가르쳐."
요한 씨는 그대로 다른 곳으로 걸어간다.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고, 명령하면서.
결국, 당장 나는 내 옆의 여자와 함께하는 수밖에 없다. 한유리도 이 상황이 어색한지 머리를 긁적인다.
"일단 우리 서로 알아볼까? 난 스물에 죽었고, 3년이 지났으니 올해 스물셋!"
"난 올해 스물다섯."
나보다 어리구나. 내 나이를 안 한 유리는 몸이 굳어진다.
"나……. 나보다 나이가 많네? 내가 선배인데? 그것보다 그 얼굴로 스물다섯?"
뭐. 어려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기는 했지만. 한유리의 눈동자가 좌우로 격렬하게 움직인다. 몸은 뻣뻣하게 굳었다.
"그래도 나이 많다고 존댓말을 쓰지는 않을 거야!"
아. 역시 안 맞아. 한 유리는 나에게 삿대질을 한다. 귀찮다. 어떻게 살아있을 때보다 죽은 뒤가 더 걱정이냐.
한 유리는 그대로 책장들 사이로 걸어나간다. 일단 내가 후배의 입장이니 쫓아다녀야겠지? 한유리의 뒤를 따라 걷는다.
막 들어왔을 때는 몰랐는데, 책장이 진짜 높다. 꼭대기 부분은 흐릿하게 보일 정도. 책장과 책장 사이는 4차선 도로 정도 폭이라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녀도 불편함이 없다. 그보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겠지. 거의 모든 사람이 날아다닌다. 아까 한유리도 날아다녔는데, 나도 날 수 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한 유리는 저 멀리 가버린다. 걸음이 너무 빠르다. 집, 학교, 집, 학교만 이동하던 나에게는 쫓아가기 벅찬 걸음이다.
한 유리는 나를 기다리는지 책장에 기대어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본다.
"빨리 와! 신입!"
이름으로 불러주지도 않는다. 첫날부터 찍힌 건가. 요한 씨한테 파트너 바꿔달라고 해야겠다.
내가 근처에 오자 한 유리는 책장에 꽂혀있는 책 한 권을 꺼내준다. 하드커버. 검은 표지. 금색으로 쓰여있는 제목. 영어다. 제길 또 영어야? 「History of The Great Archives」.
좋아. 한국의 12년 의무교육의 힘을 보여주지. 그래 봐야 영어 7등급이었지만. 히스토리 오브 더 그레이트 아카이브. 아직 실력은 안 죽었군. 대기록원의 역사라. 흥미로운 재목이다.
한유리를 한번 본다. 읽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인다. 두께는 어림잡아 70쪽. 얇다. 역사서가 이렇게 얇아도 되나?
바닥에 주저앉아 책을 펼친다. 꽤 글씨가 큰 편이다. 문제는 내용이 영어라는 거. 책을 향하던 고개를 들어 한유리를 바라본다.
"영어입니다만."
"그것도 해석 못 해?"
한 유리는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다. 말을 잇지 못하겠다. 이곳은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오는 지옥이었어.
한숨을 쉬며 한유리가 다른 책을 꺼내 던져준다. 아까와 비슷한 두께. 하드커버. 검은 표지. 금색 제목. 한글로 쓰여있는 제목은 「대기록원의 역사」.
"한글로 된 것도 있는데 원서로 던져주는 건 왜죠?"
"대기록원의 기록들은 대부분 영어야. 그러니까 영어 공부는 해."
역시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오는 지옥이 맞다. 죽어서도 공부라니.
일단 읽자. 다시 책을 펼친다. 와! 한글이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보는 한글이다. 잠깐. 그런데 요한 씨는 어떤 언어로 말했지? 한글을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
"말은 어떤 언어로 해?"
이럴 때 물어보라고 파트너가 있는 거지. 한 유리는 들고 있던 책을 덮는다. 언제 일고 있었지. 표지는 붉은색. 잠깐 보인 글자는 영어. 당연히 해석 불가.
한 유리는 나를 바라본다. 표정에는 귀찮음이 가득하다.
"우리는 죽은 사람이잖아? 그래서 특정한 언어가 아닌 영혼의 언어로 대화하지. 그래서 바로 이해할 수 있어."
이해하기 힘들다. 영혼의 언어라니. 그래도 말하고 듣는 것에는 문제없겠네.
그럼 다시 읽어 보자. 속독은 전문이 아니지만, 느긋하게 읽기에는 시선이 매섭다. 70 페이지는 금방이지.
20분 정도 읽고 책을 덮는다. 감상. 이해 못 하겠다. 교과서를 읽는다고 수학을 다 이해 못 하는 것과 비슷하다. 전체적인 내용은 알겠는데, 처음 보는 단어가 꽤 많이 등장한다.
우주, 차원, 세계, 초월자, 신, 악마 등등. 분명 내가 살아있을 때 쓰던 뜻은 아닐 거다. 그렇지만 이해한 것도 몇 개 있다.
첫 번째. 이 세계는 신이 만들었다. 신은 우주의 탄생 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우주가 탄생할 때 수많은 초월자와 세계와 우주와 차원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생겨난 초월자 중 한 명이 대기록원의 원장.
두 번째. 대기록원은 이곳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하나가 아니다. 가장 높은 개념인 세계, 그다음 우주, 가장 하위 개념인 차원. 설명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다중우주론과는 다른 것 같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사항. 내가 배속된 전투팀과 직결된 정보. 악마라는 게 있는데, 그놈들이 대기록원을 공격한다고 한다. 이야기에 파고들어서 이야기를 망친다고 한다.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막는 게 전투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다 읽었어?"
"읽기는 했는데, 잘 이해는 못 하겠어."
"실전 몇 번 하면 이해가 쉬울 거야."
바로 실전인가요. 이론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싶네요. 한유리는 그저 나를 보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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