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0 21:48

테아모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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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사람들에게 테아모는 무슨 의미일까. 왜 그렇게 다들 테아모를 아끼는 걸까. 아끼니까 아낀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는 이 미스터리를 설명하는 가장 유망한 가설은 이것이다.

 

 수백년 전, 테아모를 지은 그 예술가 같은 건축가가 굉장히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고, 그가 혼신을 다한 건축물 역시 좋아했다. 그렇게 애착의 감정이 대대로 내려져 온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다음과 같다. 테아모의 가게 주인님이 너무 좋은 사람이어서 덩달아 시계탑의 지위도 오른 것이다. 개인적으로 후자의 답변이 더 유망해 보이지만, 테아모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애착은 오래전부터 내려져 왔다.

 

 그러니 두 가지가 다 정답이다. 여기서 문제. 나는 어떨까. 테아모를 내가 부수면 내가 좀 나아지려나. 하루하루를 과거에 앓았던 역병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는 것 같은데, 이게 좀 나아질까.

 

 정답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어. 저는 여기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요."

 

 그 여자분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단념하고 팔을 내렸다.

 

 "아. 읍장님 맞으시죠? 직접 물으시고 다니시는 거에요? 되게 부지런하신데요?"

 

 "그냥 가방에 넣어두고 다닐 뿐입니다. 못 보시던 분이라 한 번 물어본 거고요.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른손에 가방과 함께 들고 있던 서류를 가방 안에 넣었다. 내가 인사를 하고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이런. 손님이 계셨네요. 어. 너 하람이 아니냐?"

 

 카운터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 점장이 눈을 비비며 여자분께 인사하시다가 날 발견했다. 내가 인사했다. 엎드리고 있어서 몰랐는데, 아저씨였다. 아저씨가 반가운 얼굴로 나와 대화를 나누셨다.

 

 "글쎄. 주인이 내놓고 이사 간다기에 내가 덜컥 사버렸지. 아마 딸이 나가고 6개월도 안 돼서 따라갔을 거야."

 

 점장 아저씨한테 여린이에 관련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젠 다 쓸모없는 정보다. 그 나쁜 놈 사건 이후 왠지 모르게 서먹해져서 고등학교 끝날 때쯤엔 대학을 어디 가는지도 물어보지 못했다.

 

 "기다려라. 내가 노래 틀어줄 테니까. 책 읽는 데 걱정은 안 될 테니 아가씨도 걱정 마시고요. 어디 보자."

 

 수다스러운 아저씨다. 내가 어쩌다가 여자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여자분이 미소를 지었다. 저 미소는 무슨 뜻일까. 별 뜻 없는 사교용 미소다.

 

 노래가 틀어졌다. 천장 구석구석 스피커가 설치된 것 같았다. 클래식이라도 틀어주실 줄 알았는데 가요였다. 그래. 가요였다. 내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머리가 딱 멈춰 버려서, 일정 간격이 지나고 뇌가 정상이 되었는데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듯 다시 뻗어버렸다. 내가 딱 그랬다.

 

 "그 뜨거웠던 여름밤. 그 뜨거웠던 너. 아무것도 갖지 못한 나."

 

 날 번뜩 정신 차리게 한 건 여자의 목소리였다. 여자분이 방금 한 소절을 따라부르신 것이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자분을 보았다. 여자분도 내게 시선을 돌리셨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는 걸 깨닫자 그제야 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뚱히 서서 굳어버린 나는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여자분은 딱히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진 않았고, 아저씨는 미묘한, 그러면서도 이해한다는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고 계셨다. 그럴 만도 했다. 이건 여린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니까.

 

 여린이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였다. 자기는 이 노래가 제일 좋다고 최신곡 하나를 들고 왔다. 그때는 다들 그 노래를 흥얼거렸으니 나는 그냥 넘겼다. 여린이가 주관이 굉장히 뚜렷하다는 걸 고려하지 않고 내린 결론이었다.

 

 여린이의 옷 크기가 바뀌어도 여린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변함없었다. 그래서 덩달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됐다. 친구들은 옛날 노래라고 했지만, 그럴 때면 주관이 뚜렷한 어떤 멋진 사람도 좋아하는 데 내가 좋아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방금 그 소절은 여린이가 제일 좋아했던 소절이다.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분이 말했다.

 

 "이거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에요. 좀 옛날 노래이긴 한데, 들어도 들어도 좋더라구요."

 

 눈이 커졌다. 놀란 표정으로 여자분을 바라보았다.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여자분이 미소를 지으셨다. 오른쪽 뺨에만 보조개가 나타났다. 저 미소에 무슨 뜻이 있을까. 아무 의미도 없는 데, 딱히 미소를 지을 때도 아닌데 왜 미소를 지으시는 걸까.

 

 그 미소는 여린이는 닮았다. 미소가 기본 표정이라도 된다는 듯 여린이는 항상 날 볼 때 살짝 웃어줬었다. 그 미소는 가끔은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게 여린이였다.

 

 여자분의 보조개가 보인다. 그 보조개는 반만 닮아있다. 여린이는 웃을 때 양볼에 아주 살짝 보조개가 들어갔었다. 저렇게 한쪽에만 강한 보조개가 남진 않았다.

 

 "저도, 이 노래 좋아합니다."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내 솔직한 감정을 말한 것뿐이었다.

 


 


 "빨리 와. 늦겠다."

 

 "알았어. 보채기는."

 

 여린이가 이렇게 말하고는 계단을 빠르게 달리듯 내려온다. 내가 다시 외친다.

 

 "천천히 와. 다치겠다."

 

 "아까는 빨리 오라면서. 왜 이렇게 줏대가 없어?"

 

 50여개나 되는 이 긴 계단은 나와 여린이의 집에서 고등학교까지 가려면 항상 거쳐야 하는 계단이다. 여린이가 안 나오기에 문자로 먼저 가겠다고 말했고, 이내 뛰어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답장이 왔다.

 

 여린이가 계단의 반을 내려왔다. 음. 속바지가 보이기에 고개를 옆으로 살짝 틀었다. 행동은 은근히 무방비하면서도 속바지를 입는 등 철저한 면이 있다. 내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앗!"

 

 바보. 우리 둘 다 바보였다. 대체 왜 다 내려와서 발을 삐끗하는 건지, 다치겠으니 천천히 오라고 말해놓고 왜 딴생각을 하는 건지. 이 굉장히 가파른 계단에서 여린이가 발을 삐끗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몸이 먼저 반응했다. 계단이 다섯 개 정도 남아있었지만 이 가파른 계단에서 다섯 개는 엄청난 높이다. 내가 뒤로 한 발짝 물러갔다. 품속으로 날아오는 여린이를 그대로 안았다.

 

 팍. 옷이 펄럭이는 소리가 나고, 내가 뒤로 휘청했다. 왼발을 뒤로 빼 여린이의 몸무게까지 지탱하고 나서 내가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안 다쳤어?"

 

 이번만큼은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면 했다. 여린이가 품속에서 숨을 내뱉더니 말했다.

 

 "…… 아파."

 

 "왜? 어디 다쳤어?"

 

 "…… 네가 너무 세게 안아서."

 

 "아."

 

 내가 여린이를 가두고 있던 두 팔을 풀었다. 여린이는 어딘가 뚱한 표정으로 신발과 옷을 정리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죽는 줄 알았어. 그래도 이번에는 다행이네."

 


 


 "괜찮아 안 다쳤어, 아파, 어디 다쳤어, 네가 너무 세게 안아서. 흐."

 

 우리 마을은 밤이 되면 정전이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대한민국의 밤은 낮보다도 환할 터인데 유독 우리 마을만 그랬다. 내가 우리 마을에서 가장 짜증 나는, 항상 여린이와 함께 다녔었던 그 계단에 왔다.

 

 그 계단 바로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 캔을 기울였다.

 

 여린이는 당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괜찮다. 옷을 정리하면서 한 그 두 문장에 고맙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은 확실했다. 부끄러우니 고맙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갔다. 글쎄. 왜 부끄러웠을까.

 

 우리는 그런 애매한 기분을 즐기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연인은 아닌데, 분명 친구인데 가금씩 그런 감정에 마음을 녹여보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딱 거기까지일 뿐, 진지하게 다음을 생각하진 않았다. 내가 고백하지 않은 걸 보니 확실하다.

 

 이 미스터리를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가설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마음에 존재하는 빈칸을 가끔 그렇게 채웠던 것이다. 암묵적 합의로, 매번 순간의 감정에 취한 척하며. 내가 오히려 그걸 더 좋아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거기에 만족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에쿠."

 

 왼쪽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가 옷을 정리하면서 왼쪽 발목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거의 다 내려와서 발을 삐끗했지만 용케 제대로 착지한 것 같았다.

 

 "어, 안녕하세요?"

 

 근데 그 사람이 구면이었다. 서점에서 뵌 그 여자분이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네요. 여자분이 말했다. 내가 고개를 까닥하자 여자분이 손을 내미셨다. 내가 악수를 했다.

 

 "한하린이라고 해요. 그때 제 이름도 모르시고 가셨죠?"

 

 여자분이 말씀하셨다. 내가 말했다.

 

 "김하람이라고 합니다."

 

 "알아요. 그때 서점 점장님께 들었는걸요."

 

 한하린 님께서 내 옆에 앉으셨다. 내가 맥주 캔을 다시 기울였다.

 

 "술 드시는 거에요?"

 

 "이거만 마시고 다시 들어가 봐야 합니다. 오늘도 야근이거든요."

 

 사실 내가 낮에 일 안 하고 싸돌아다닌 탓이 컸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낫다. 왠지 엄마아빠 얼굴을 보기가 좀 싫었다.

 

 "근데 저한테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음. 이건 어떨까요? 저 읍장님한테 관심 생겼는데."

 

 무슨 말을.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술이 들어가니 별 이상한 짓을 다 한다. 별 뜻 없는 몸짓을 참 과장되게도 하는구나. 한하린 님께서 등받이에 등을 기대시더니 밤하늘로 시선을 옮기셨다.

 

 "시계탑을 왜 부수는 건가요?"

 

 "수명이 다 됐답니다. 보수하느니 너무 비싸서, 시에서는 차라리 부수고 신식 시계탑을 지으라고 한 겁니다. 어떻게 할지 고민 중입니다."

 

 한하린 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한하린. 한여린. 비슷하다. 이 여자분과 있으면 뭔가 여린이랑 같이 있는 것 같다. 두 여자분에게는 기분 나쁠 일이다.

 

 "테아모를 부수시면 그분을 잊으실 것 같나요?"

 

 한여린 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시선을 돌렸다.

 

 "점장님한테도 들었고, 그쪽 친구분으로 보이시는 분한테도 들었어요. 술자리를 몇 번 같이 한 적 있는데, 항상 그쪽 얘기만 하시던데요."

 

 "혹시 뿔테 안경입니까?"

 

 "음. 그분도 있었고, 다른 분들도 있었고. 유명인이시던데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갑내기 중에선 여린이가 가장 유명인이었고, 다음으로 내가 유명인이긴 했다. 여린이만큼 공부를 잘하진 않았지만, 친구는 엄청 많았다. 담배도 안 피우면서 그런 애들이랑도 친분을 쌓은 건 내가 생각해도 좀 대단한 짓이긴 했다.

 

 "반대가 아닐까요. 잊고 싶으니 부수는 걸 겁니다. 부순다고 잊을 것 같진 않지만요."

 

 "쓸모없는 짓이네요. 추억이 떠오르는 물건을 없앤다고 추억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고민 중입니다."

 

 우리 마을은 어둡다. 큰 거리에는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지만, 그마저도 유럽풍이라는 건 차치하고 밤이 되면 모두 집의 불을 끄고 밤을 자는 편이다. 그래서 밤에 불어오는 바람이 특별하다.

 

 도시에서, 밤은 낮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연장 근무의 정수인 한국답게 낮보다 더 밝아져 낮에 일하지 못했던 나를 자책하며 할 일을 끝내야 했던 시간대다. 밤에 쉬지 못하니 낮에 일을 못하는 게 당연한데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밤은 특별하다. 우리 마을의 밤은 휴식 시간이다. 나는 지금 휴식을 취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린이를 떠올리는 것도 내겐 엄연히 휴식이다. 한하린 님의 향수는 여린이와는 다르다. 다행이다. 좋은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저 갑자기 궁금한 거 생겼습니다."

 

 "저도 질문할 거 있는데요."

 

 내가 입을 열었고, 한하린 님도 입을 여셨다. 내가 말했다.

 

 "그럼 하나 둘 셋 하고 동시에 말하는 걸로 합시다. 뭔지 대충 알 것 같아서 그럽니다."

 

 "좋아요."

 

 한하린 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다. 내가 시선을 다시 정면을 향하게 하고 말했다. 하나. 둘. 셋.

 

 "여린이랑 무슨 관계이십니까?"

 

 "여린 언니랑 어떤 관계게요?"

 

 

 

사실 처음에는 떨어지는 여린을 잡으면서 이뤄지는 키스신을 생각했습니다. 이가 다 깨질 것 같아서 조금 현실적으로 바꿨습니다. 근데 중력가속도를 이기고 떨어지는 사람을 큰 무리 없이 받아낸 다는 것도 현실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추후 실험하실 기회가 되신다면 결과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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