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8 11:28

테아모 - 1.

조회 수 3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어렸을 적 우리 마을에는 테아모라는 이름의 시계탑이 있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맞추지 않고 점점 더 오래된 모습이 되어가는 그 시계탑을 난 이상할 정도로 싫어했다.

 

 아마 그것은 테아모를 자기 가족보다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반발심리였을 것이다. 테아모 시계탑은 우리 마을의 상징이었다. 그 밑에서 고백을 하면 이어진다거나, 거기서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는 상반되는 두 개의 헛소문이 가리키는 장소였다.

 

 그 오래되어서 관리 비용만 엄청나게 잡아먹는 늙은 시계탑을 사람들이 왜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 곳은 자기 학교가 아니라 테아모 앞이었다. 그 정도로 우리 마을 사람들은 테아모 시계탑을 마을의 상징으로 여기고 아꼈던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집과 학교에 가는 길목에 테아모가 있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테아모를 많이 지나쳤다. 주말에는 괜히 테아모 밑에서 서성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테아모는 나쁜 신이라 불신자에게 기적을 주진 않았다.

 

 그러니 테아모는 내게 옆구리가 시렸을 적 많은 시간을 빼앗은 앙숙이다. 그러니 내가 아직도 건재하게 남아 있는 테아모를 아직도 마을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준다고 칭찬하지 않고 늙은 것 아직도 안 내려갔냐고 비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엄마. 아빠."

 

 대학에서 배운 지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나는 공무원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방황하던 나를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셨을 사랑하는 부모님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모님과 인사를 하고 고향에 남아 있던 친구놈들과 저녁에 술약속을 잡았다. 내가 없는 몇 년 동안 마을이 많이 바뀌었으려나, 오후 몇 시간 동안 마을을 거닐기로 했다.

 

 마을의 풍경은 내 기대대로였다. 내 기억과 많이 겹쳐지는 곳도 있었고, 같은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진 곳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등굣길에 늘 보이던 빨간 자전거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좀 더 큰 파란 자전거가 차지했다. 저기에는 횡단보도가 없었던 것 같은데 횡단보도가 생기기도 했고, 아스팔트 대신 자동차의 무게를 견디는 그 벽돌 중간 중간에는 빨간 이단아가 섞여 있었다.

 

 바뀌지 않고 그대로인 건 두가지 밖에 없었다. 테아모다. 오후 다섯 시가 거의 다 되자 테아모로 왔다. 내 친구놈들이 손을 흔든다.

 

 "야! 김하람!"

 

 바뀌지 않고 그대로인 내 소중한 친구들. 그리고 테아모. 친구들을 보니 눈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뛰어서 친구놈들과 뜨거운 사나이의 포옹을 했다.

 

 몇 분 동안 몇 년 동안 쌓았던 이별의 한을 풀듯 이야기를 쏟아냈다. 친구놈들은 내가 우리 마을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된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이것들 진짜. 내가 웃었다.

 

 친구들이랑 이제 막 술을 먹으러 간다. 그러는데, 내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야."

 

 "왜. 지금 귀신이라도 보여?"

 

 "테아모 어디 갔어?"

 

 내가 말했다. 애들이 테아모는 여기 있지 않느냐고 했다. 건장한 고풍적이고 웅장한 시계탑. 난 지금 테아모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아. 테아모. 아. 맞다."

 

 친구놈들은 테아모는 문을 닫고 가게를 팔았다고 했다. 그 추억 속의 테아모는 어디 가고, 그 자리에는 하늘북스라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서점이 들어서 있었다.

 

 사실 시계탑의 이름은 테아모가 아니다. 테아모는 그 시계탑 1층에 있는 가게의 이름이었다. 테아모는 스페인어로 사랑한다는 뜻이었다. 시계탑에 별다른 이름이 없으니까 다들 붙어있는 옷가게의 이름인 테아모라고 시계탑을 불렀던 것이다.

 

 테아모는 한국에서 로망스어군의 언어가 으레 그렇듯 세련되고 서구적인 느낌을 주는 옷가게였다. 이렇게 멋지고 세련된 옷가게가 저런 구리고 낡은 시계탑에 있어도 되는지, 이런 작고 아담한 마을에 있어도 되는지 의구심이 가는 가게였다.

 

 하지만 테아모의 주인아주머니와 주인아저씨만큼은 로망스어군이 아닌 한국분이셨다. 한국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정 문화의 장점을 느낄 수 있는, 포근하고 따뜻하신 닮고 싶은 어른이었다.

 

 테아모는 마을 사람들의 자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첫째로 시계탑 테아모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둘째로 옷가게 테아모를 사랑스럽게 생각했다.

테아모라는 이름에 깃든 우리 마을의 상징성과 익숙함, 소중함이 장난 아님을 안다.

 

 "그래서 어디 갔다고?"

 

 내가 술잔을 꽝 내려놓으며 말했다.

 

 "야야. 얘 취했다. 아까부터 테아모 얘기야."

 

 "야야. 들어가라. 돈은 우리가 낼 테니까. 그렇지?"

 

 "뭐 임마?"

 

 눈 앞이 핑핑 돌았다. 우씨. 나 아직 안 취했다. 내가 날 부축하려는 놈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리고 그대로 엎어졌다. 내가 중얼거렸다.

 

 "테아모……. 테아모……. 여린아……."

 

 내가 말실수를 했다. 말이 퍼지기 무섭게 놈들이 달려들었다.

 

 "여린? 야. 김하람. 너 아직도 한여린 못 잊었어?"

 

 "헐. 야. 도시에 예쁜 애가 그렇게 없던?"

 

 "닥쳐."

 

 여린이. 여린이. 여린이는 내 첫사랑이다. 그리고 테아모 사장님 두 분의 자랑스러운 따님이다. 사람 좋은 테아모 사장님의 딸 답게 성격이 너무 좋았고, 너무 착했고, 너무 사랑스러웠다.

 

 여린이는 예뻤다. 여린이의 패션 센스는 아름다웠다. 여린이가 곁을 지나갈 때의 그 살 냄새는 야릇했고, 머리카락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그 비단결은 내 소유욕을 자극했다. 날 향해 웃어줄 때 그 눈웃음을 사랑스럽던지. 그 눈웃음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게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자그마치 12년이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수능 날까지 여린이를 잊은 적이 없다. 나는 미래를 택해 도시로 떠났지만, 그건 여린이 역시 도시로 떠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테아모 밑을 서성거리던 그날이 여린이를 그리던 날이다.

 

 "여린이 어딨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애들이 서로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게 보이기까지 하다. 나도 안다. 나도 나한테 고개를 절레절레 짓고 있다.

 

 "김하람. 젊은 나이에 이 시골 읍장으로 오신 게 왜 때문인진 모르겠는데요. 우리 동창 중 연락이 안 되는 게 여린이랑 너였어. 꿈 깨라. 걔 말고도 예쁜 동창 많잖냐."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그날 애들은 잔뜩 취한 날 둘러싸며 거의 똑같은 충고를 건넸다.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내 눈이 보고 귀가 들은 건 그 시절의 여린이였다.

 


 

 

 시계탑 테아모. 저 시계탑이 테아모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얼마나 시기했는지 모른다. 이제 테아모의 이름이 이제 온전히 저 시계탑이라는 것을 질투하게 생겼다.

 

 "시 추정 금액과 비슷할 것 같은데요. 보수할 바엔 부수고 다시 짓는 게 훨씬 쌀 것 같습니다. 저렇게 오래된 시계탑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줄 몰랐네요. 히야. 부수는 건 안타깝지만 오늘 정말 감명받았습니다."

 

 건축설계사에 말에 내가 물었다.

 

 "이 시계탑이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

 

 "음. 이런 시가 있죠. 처음에는 파르르 떨리더니, 이어 부르르 흔들리고. 뭔가 왈칵 쏟아지는 듯하더니. 목사님은 어느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죠. 바퀴는 딱 끌채만큼 강하고, 바닥은 딱 문턱만큼 강하고, 벽판은 딱 바닥만큼 강했던 이 마차를 노래한 시는 올리버 웬델 홈스의 집사의 걸작이라는 십니다."

 

 관심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기에 이 건축설계사는 이렇게 황홀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할까. 내가 별 뜻 없는 시선으로 건축설계사를 보았다.

 

 "무슨 말이냐면, 이 시계탑은 지금 거의 모든 부분이 보수가 필요합니다. 이건 예술작품이죠. 시곗바늘은 딱 톱니바퀴만큼 강하고, 톱니바퀴는 딱 기둥만큼 강한. 시계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할 수 있는 가장 오랜 세월을 살다가 이제 가는 거죠. 몇백 년 전 이 시계탑을 설계하고 지은 그 공학자는 필시 예술가였을 겁니다."

 

 테아모. 하나의 생명체. 건축설계사가 좀 많이 오버한다는 게 확실했지만 그의 말은 내 마음에 아주 약간의 심경변화를 주었다.

 

 "고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돈이 많이 들겠지만요. 제 생각에는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하니 부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요. 참. 시의 결정은."

 

 내가 테아모를 올려다보았다. 시에서 테아모를 부수고 새로운 시계탑을 지으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개인적으로, 이런 예술적인 건축물이 사라지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건축설계사가 날 따라 테아모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테아모를 계속 올려다보았다.

 


 

 

 "테아모 부순다며?"

 

 친구놈들이 오늘 밤 단체로 몰려와서 물었다. 내가 차마 입을 떼기도 전에 놈들이 말했다.

 

 "야. 어떻게 테아모를 부수냐? 우리 마을의 상징인데 말이야. 나가서 시위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자기들끼리 떠들 거면 나는 왜 찾아온 걸까. 말할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그중 한 놈이 다른 애들의 말을 끊었다.

 

 "진정해. 아직 결정 난 거 아니니까."

 

 놈이 자기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그놈의 뿔테 안경은 여전했다. 새끼. 금테로 바꾸라니까.

 

 "야. 네가 결정 난 일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아냐?"

 

 "왜냐하면, 내가 알기로 시의 공문은 읍장의 승인이 필요하거든. 그래서 내가 얘 찾으러 가자고 한 거다."

 

 애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내가 무표정으로 응수했다.

 

 "야. 읍장. 테아모 부술거냐?"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으면 테아모 못 부수지. 그래. 테아모 보수 공사는 가능하대?"

 

 떠드는 놈들에게 내가 사정을 설명했다. 테아모가 무너질 징조가 나타나서 건축회사에서 건축물 점검을 했고, 보수할 곳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시에서는 막대한 비용을 들어 테아모를 보수할 바엔 새로운 신식 시계탑을 지으라고 했다.

 

 테아모의 운명이 온전히 내게 달린 것도 맞았다. 내가 이것을 시인하고, 입을 열었다.

 

 "근데, 난 테아모 부술 건데."

 

 놈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내게 반론하는 녀석은 없었다. 이놈들도 내게 테아모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아예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닿을 수 없던 첫사랑, 홀로 눈물을 삼키던 테아모의 밑. 마음 같아서는 부수고 싶다.

 

 "다섯 명의 사인이 필요하단다."

 

 내가 말했다. 애들의 눈이 커졌다. 시에서도 테아모가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말이 그렇지 부수고 올 후폭풍을 효과적으로 잠재우기 위해 시민 다섯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섯 명의 서명을 받는 것. 필요하다면 기자회견에도 참석해야 할 정도로 귀찮은 일을 마을의 눈초리를 받으면서 감행할 다섯 명을 찾는 게 내 일이었다.

 

 

 

폴더스토리로 작성한 단편소설입니다. 3~5화까지 갈 것 같네요. 폴더스토리 만들어 주신 것에 감사하여 힘내시라고 시간을 짬짬이 내어 작성했습니다. 인형고향이님께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폴더스토리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단 거니까, 힘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75 핏빛 십자 기사단 - 4화 justme 2018.11.14 1
1574 대기록원의 사서 - 12화 이야기는 잔혹한 것 justme 2018.11.14 0
1573 대기록원의 사서 - 11화 늑대와 함께 춤을 justme 2018.11.14 0
1572 대기록원의 사서 - 10화 양치기 소년 justme 2018.11.14 0
1571 핏빛 십자 기사단 - 3화 justme 2018.11.13 1
1570 대기록원의 사서 - 9화 새로운 사서의 삶 justme 2018.11.13 1
1569 대기록원의 사서 - 8화 식사를 합시다 justme 2018.11.13 2
1568 대기록원의 사서 - 7화 작가란 무엇인가 justme 2018.11.13 1
1567 핏빛 십자 기사단 - 2화 justme 2018.11.12 4
1566 대기록원의 사서 - 6화 오르니아의 마법사 justme 2018.11.12 5
1565 대기록원의 사서 - 5화 불꽃의 소녀 justme 2018.11.12 3
1564 대기록원의 사서 - 4화 성냥팔이 소녀 justme 2018.11.12 4
1563 핏빛 십자 기사단 - 1화 justme 2018.11.11 6
1562 대기록원의 사서 - 3화 파트너 justme 2018.11.11 4
1561 대기록원의 사서 - 2화 동상들의 홀 justme 2018.11.11 3
1560 대기록원의 사서 - 1화 죽은 작가들의 사회 justme 2018.11.11 8
1559 테아모 - 3. 미온 2018.11.10 6
1558 테아모 - 2. 미온 2018.11.05 16
» 테아모 - 1. 미온 2018.10.28 34
1556 ' 제목 미정 ' 자유연제 전 프로필 - 1 PrundalIska 2018.10.11 5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79 Next
/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