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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리메 메리스는 앤 엔딩과 똑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비밀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스리메는, 자유롭고, 자유롭지 말라고 말하는 스리메는, 미칼렉시부속종합대학 제3구역 비인가기숙사 세계의 사생회장인 스리메는, 결코 한 번에 두 인물과 만나려 하지 않는다. 스리메와 만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그녀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홀로 맞대해야 한다.

 나는 마법사를 알고 있다. 마법사는 마법을 쓸 수 있다.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손에서 불이 나오고 얼음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정말 그런 마법사도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는 마법사는 외롭고, 고독하고, 특별하며,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끝내는 불행하다. 마법사는 마법사이기에 행복할 수 없다.

 나는 마법사를 알고 있다. 그리고 경험에 비추어 스리메가 마법사라고 확신하고 있다.

 스리메는 앤은 아니지만, 마법사다.

 

 

 

I. The Spider to Begin Weaving a Web(17, fin.)

 

 

 

 이야기가 끝났다. 속이 메스꺼웠다. 필요한 단어들만 가지고도 이렇게 많은 종이를 먹게 될 줄은 몰랐다. 앤이 나에게 걸어놓은 듣는 역할의 제약은 지금도 이렇게 후유증으로 남아있다.

 눈앞에는 메리가 앉아있었다. 그녀가 이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을 할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해 준 이야기에서는 어떠한 답도 구할 수 없다. 그러기는커녕, 답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무참히 깨져버리는 베긴의 모습만 볼 수 있다.

 사실, 종이를 많이 먹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메리에게 모든 이야기를 해버린 탓이다. 모든 이야기를 해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믿지도 못할 이야기일 테니 적당히 얼버무려가며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러고 나서 메리와 연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생각지도 못하게 메리가 불쑥 말을 꺼낸 것이다. 메리의 경험담이었다. 그 이야기는 끔찍하고, 잔혹하고, 속을 뒤집히게 하고, 머릿속을 엉망으로 망쳐놓는 것으로, 내 이야기만큼이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동시에 메리의 별명이 왜 자해하는 시체가 아닌 자살하는 시체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을 한 메리라면, 내가 겪은 일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해줄 생각이 없던 뒷이야기까지 전부 메리에게 말해버렸던 것이다.

 메리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자리를 피해 주기로 했다. 메리의 방을 빠져나왔다. 그녀가 어떠한 결론을 내리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내가, 어떠한 결론을 내릴지가 더욱 중요한 문제다.

 스리메가 전달한 공지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나와 메리를 붙여놓고, 메리의 이야기를 듣게 해서, 그런 결론으로 이끌려는 것이다

 내가 이끌어 낸 결론은 이것이다. 메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살하는 시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스리메는 이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스리메 메리스를 죽여라.’

 

 그것을 깨닫고 나는 한 여자를 떠올렸다. 세상을 책 읽듯이 하는 여자. 세상을 책 읽듯이 할 수밖에 없는 여자.

 거미가 바라는 것. 그리고 스리메가 바라는 것.

 그 둘은 어쩐지 비슷하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어느새인가 도서관에 도착했다. 도서관까지 이르는 길이 평소보다 짧게 느껴졌다. ‘서술타협이다. 그녀라면 그런 식으로 표현했겠지. 실없는 농담에 웃는 척 해봤다.

 

 무엇이 그리 웃기죠?”

 

 도서관에 들어가기 직전 누군가 그렇게 말을 걸었다. 주변을 돌아보아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사서를 제외하곤 말이다. 사서도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와 그, 아니 그녀를 보고 있다면, 악행의 공모자들이 자신들만의 비밀을 공유하며 짓는 웃음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서는, 사서의 정체는 변장한 스리메 메리스였다.

 그러니 이름을 떠올릴 수 없었던 거겠지. 애초에 알고 지낸 사이라는 건 착각이었던 거다. 실체가 없는 허상이었던 것이다. 어떤 이야기처럼.

 사서는 그 날, 내가 빈센트를 안내해 준 그 날 내게 두 가지 물건을 건네주었다. 책 한 권과 편지 한 봉투.

 『흑색의 성과 모나 모나모의 유서.

 그 둘이 사서의 정체가 스리메라는 가장 확고한 증거다. 흑색의 성, 앤이 써내려간 책. 이 세상에 나올 리 없는 책. 이 책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전능한 스리메밖에 없다.

 사서, 스리메가 변장했을 게 분명한 사람. 문득 모든 것을 계획하고 그 뜻대로 막힘없이 진행했을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가 웃는 모습은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이미지를 상기시켰다.

 거미줄을 짓기 시작하는,

 그래, 시작하는 거미의 이미지를.

 

 

 

 흑색

 1Spider to Begin

 EPOH 2015/5/17














/1부 후기/

 말장난을 좋아하는 EPOH입니다.

 거미가 무엇을 바라는지는 (베긴의 생각일 뿐이지만) 연재분 초반부에 나와 있습니다. 게재한 지 오래되어서 노파심에 언급해봅니다.

 1부 끝났습니다. 다음 연재분인 외전 챕터 T까지 끝내야 1부가 온전히 끝났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쨌건 끝났습니다. 141월에 시작해서 155월인 이제야 1부가 끝나다니. 그렇게 많은 분량도 아닌데 면목없습니다. 막연하게만 생각해 둔 1부의 후반 부분이 시작과 동시에 막혀버리면서 좀 손을 놓았던 기간이 길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후반부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임기응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캐릭터로서의 깊이가 너무 얕았다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모도스. 미안하다.

 아직 풀어나가고 싶은 떡밥이 많습니다. 2부는 주로 1부 초반에 등장했던 기숙사 세계의 인물들 위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문제는 이 2부를 언제 시작하고, 또 언제 끝내느냐인데. 현재 국방부 퀘스트 진행 중이라서 언제 다시 연재가 재개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언젠가 다음 챕터(외전) Three Trees Treat the Tick-tock Trick에서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지련 2015.06.01 21:56
    ㅋㅋㅋ 국방부 퀘스트 진행중...
    쓰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외전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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