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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사는 없다. 그 말에 담겨있는 진실성은, 정말로 그 말이 진실되거나, 웰셰인이 뛰어난 거짓말쟁이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거짓말은 내 특기야.”

 

 그렇게 말하던 앤.

 그러고 보면 론도와 모도스는 화해했을까? 론도에게 마법사가 없다는 사실도 전해줘야 한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걸 보면 모도스의 방에 있을지도 모른다.

 모도스가 머무는 방 앞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생각했지만, 그 생각들은 기억이 되지 못한 채 거품처럼 흩어졌다. 손등으로 노크하기 직전, 문이 벌컥 열렸다. 손이 허공을 가르고 본의 아니게 문을 연 사람의 얼굴을 건드렸다. 그 얼굴을 보고 내 몸은 경직됐다. 론도다. 정수리로 날아올 주먹을 예감했지만, 그 예감은 간단히 빗나가버렸다. 론도는 멍청히 서 있는 나를 밀치고 복도를 헤쳐나갔다.

 손등이 축축하다. 이건 눈물이다.

 우는 얼굴을 보았다. 또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모도스가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손은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무나 금속 부품으로 이루어진 기계장치인데, 용도는 잘 모르겠다. 모르겠고, 궁금하지도 않다.

 

 무슨 볼일이지?”

 

 가만히 숨죽이고 있자 모도스가 말했다.

 

 론도에게 할 말이 있거든요.”

 

 그래서?”

 

 론도가 나가버렸네요.”

 

 그래서?”

 

 론도가 어디로 갔는지 아시나요?”

 

 나에게 묻기 전에 쫓아갔으면 되는 일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도스와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모도스의 표정이.

 불안감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왜소하다. 머리카락이 짧고 눈이 가늘어 뱀 같은 인상을 준다. 선교사이자 신학자이자 신자. 저택의 다른 이들과는 대체로 삐걱거리지만 마울과는 마음이 맞는지 자주 이야기한다고 들었다.

 이 사람은 적어도 나와는 다르다. 나와 달리 타인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모도스에게 무엇을 물어보면 좋을까. 무엇을 말하면 좋을까.

 모도스는 왜 론도와 싸우나요. 이젠 의미 없는 질문이다.

 론도는 왜 울고 있었나요. 궁금하지만, 당사자에게 물으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죠. 아무런 대답도 안 해 줄 것 같다.

 웰셰인이 떠났다는 이야기로 주의를 끌까? 주의를 끌어서 뭘 하지?

 차라리 론도나 나의 비밀을 말해 버리는 건? 그렇다고 모도스가 입을 열까?

 나는 무엇을 묻고 싶은 걸까. 무엇을 알고 싶은 걸까.

 머릿속에서 꿈틀거리는 애매한 생각을 확실한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정했다. 무감정하게 나는 말을 꺼내기로 했다.

 

 “‘그대가 오늘 죽었으므로 비로소 나는 고백할 수 있다라는 노래를 듣고 싶어요.”

 

 바쁘게 움직이던 모도스의 손이 멈칫했다. 모도스는 애써 못 들은 척하려는지 다시 손을 놀렸다. 나는 어설프게 기억하고 있는 선율을 따라 콧소리로 노래하기로 한다.

 십자 모양의 쇳덩이가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노래를 멈추고 모도스를 노려보았다.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저는 몸이 편해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어요. 음악이란 이렇게 무감한 저라도 느낄 수 있는 거였어요. 그런데 모도스는 이 노래를 듣고 화를 내네요. 왜 그렇죠?”

 

 왜 그러냐고? 너의 그 뻔뻔스러운 얼굴이 짜증 나니까.”

 

 본심을 말하지 않으시네요. 왜 그렇죠?”

 

 모도스의 눈자위가 보일 정도로 그는 눈을 부릅떴다.

 

 본심을 말하지 않는 건 회피하고 싶어서. 두려워서. 모도스는 무엇이 두려운 거죠?”

 

 그의 입술이 파들파들 떨려왔다. 내 머리는 계속해서 질문과 결론을 도출한다. 앤의 이야기로써 학습된 감정의 이해라는 장치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모도스가 두려움의 반응을 보일 때는 항상 론도와 관련이 있었을 때였죠? 그렇다고 론도가 두려운 건 아니에요. 두려운 건 론도와의 관계네요.”

 

 이야기 속 인물들은 서로 관계를 갖고 감정을 가졌다.

 

 그렇다면 무슨 관계이기에 그런 걸까요? 둘은 일단 동행이고, 그렇다면 기존에 알던 사이겠죠. 이런 오지까지 함께 올 정도면 매우 친한 사이? 어쩌면 직업의 유사성 때문에 알던 사이인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이 감정을 지식으로써 알고 있다. 이야기로써 알고 있다.

 모도스는 계속 물건을 던져댔다. 그 물건이 내게 도달하는 일은 없었다. 결국 모도스는 나를 맞히지 못한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관계에 변화가 생기려고 하면 사람은 두려워하게 돼요. 더 가까워지든 더 멀어지든 말이에요. 모도스는.”

 

 론도와 멀어질까 봐, 혹은 더 가까워질까 봐 이렇게 불안에 떨고 있던 것은 아닐까.

 좋을 대로 말해버렸지만, 내가 한 이야기는 추측에 불과하다. 앤이 가르쳐준 추론의 방법에 불과하다. 학습된 것, 정형화된 것, 앤의 말에 의하면 클리셰와 비교해 추론한 것에 불과하다.

 모도스는 겨우 입술을 뗐다.

 

 네가 뭔데 우리의 일에 간섭하는 거야.”

 

 덜컥.

 장치가 멈추었다. 그의 의문은 타당한 것이었다. 나는 무엇인데 그들의 일에 간섭하는 걸까. 그들은 타인이다. 내가 아니다. 그런데 왜?

 

 너처럼 관심을 갖고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감정이 있을 것이라 난 믿어.’

 

 앤이 언젠가 해준 말들.

 그렇다. 그것은 관심이었다. ‘사랑이라는 미지의 감정에 대한 압도적인 관심이었다.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 등장한 감정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내가 물어보아야 할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모도스는 론도가 좋나요?”

 

 맥락에서 벗어난 그 질문에 모도스는 당황해하며, 무심코 대답해버린다. 그렇다고.

 

 모도스는 론도를 사랑하나요?”

 

 이미 자포자기한 듯이 모도스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약간의 침묵 뒤에 그렇다고.

 나는 뒤돌아서서 방을 나서려 했다.

 

 어딜 가지?”

 

 론도에게도 같은 걸 물어보려고요.”

 

 론도 또한 모도스를 좋아하는가? 사랑하는가? 머릿속의 장치는 그렇다는 대답을 쉬이 내놓았지만, 나는 론도에게서 직접 답을 듣고 싶었다. 모도스가 비명을 지르지만 않았다면, 실제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만둬!”

 

 모도스의 공포에 떠는 듯한, 창백한 얼굴을 보았다. 그것은, 론도의 대답을 두려워하는 표정이다. 나는 호기심을 억누르고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과 알고 지내다 보면 정답은 자연스레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엔딩에게 고백할 거에요.”

 

 모도스의 얼빠진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아른거린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좋다는 감정이 발전하여 나아갈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인 형태. 그런 사전적인 정의는 아무래도 좋다. 사랑한다고 해서 싸우지 않는 것은 아니며, 싸운다고 해서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감정은 정확히 나누어떨어지지 않는, 유기적인 스펙트럼 같은 것이다. 구분은 늘 모호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사랑이라 규정하고, 무엇을 사랑이라 믿으며, 무엇을 사랑이라 확신하는 것일까.

 풀리지 않을,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위대한 수수께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 의문에는 늘 답이 필요한 것일까? 답하지 않고, 그냥 애매모호한 채로 놔두면 안 되는 것일까?

 이야기를 생각했다. 질문과 답이 존재하는 세상을 생각했다.

 현실은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는 명증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좋아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라는 마울의 말을 생각했다. 론도와 모도스가 싸우는 것은 서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와 앤이 싸우게 된 것도 서로를 좋아하기 때문인 걸까? 아직 이해는 못 하지만,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만약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이 세계에 감정이 있어야 하는 이유, 내가 감정을 배워야만 하는 이유를 확신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앤을, 만나고 싶다.

 

 

 

 그러나 내가 먼저 마주친 것은 앤이 아닌 론도였다. 공간을 찢어버릴 것 같이 날카로운 비명이 귀를 꿰뚫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중앙 홀, 그림이, 거대한 그림이 기울어져 있고, 숨겨져 있던 통로가 보인다. 그 속으로 들어가자 론도와 마울이 있었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다.

 전혀 모르는 누군가. 누군가의 시체.

 

 마법사는 없어.”

 

 있었지만 지금은.

 웰셰인의, 중간에 빠진 그 말이 들린 것만 같았다.

  • ?
    epoh 2015.05.17 11:42

    왜 글이 등록이 안되나 했는데 용량 문제였군요... 14편은 나눠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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